솔바람님의 장산 산행기
장산(萇山) 산행기
일 시 : 2006.4.15 / 날씨 갬
참 가(6명) : 최*호 대장, 정*균, 심*희, 이*옥, 정*라, 안*덕(안예주)
뒷풀이 : 해운대 놀부쌈밥집
이번 산행에 가기 전에 ‘산지락’에 들어가 공지난을 클릭해 보니 다녀간 사람은 스물이 넘는다. 그러나 최종 참가는 겨우 다섯. 자신은 公私多忙하여 못 가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쑤욱 고개 내밀고 궁금해 하는 것이 人之常情이긴 하다. 나머지 회원은 서운하니 댓글도 달아놓고 다음을 기약한다. 오후 2시 10분에 집결지인 반여고에 도착하니 정*라 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사무실로 가자는 것을 마다하고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으니 굳이 커피 한 잔씩을 뽑아 나온다. 인정이 배어있는 맛있는 커피!
반여고는 2년 전에 개교하였는데 근년에 세운 학교는 그래도 한국경제가 잘 돌아가는 시절에 만들어서인지 건물이 첫눈에도 태가 난다. 校舍 사이 마당에는 인조 잔디를 깔아 걷기에도 발목 부담이 적다. 학교 입구와 주변 마을은 30여 년간의 철거촌 탈을 벗고 고급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반여고와 담 하나를 두고 인지초등학교, 인지중학교가 있는데 둘 다 2, 3년 전에 신설된 학교 같다. 교정의 나무들도 어디에서 금방 뽑아와 심은 듯 잎도 줄기도 아직은 낯이 설다.
한 10분 있으니 최*호 대장이 그의 옛 동료 안* 덕씨와 같이 밝게 웃으며 나타난다. 그런데 그녀가 등산 유니폼도 입지 않고 동참하니 우리는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나보다고 생각한다. 날씨는 등산하기에 아주 좋다. 하늘은 구름이 적당히 가려주고 가벼운 봄바람만 살랑거린다.
2시 20분에 등산 시작. 일행 여섯은 반여고 교문에서 200m 석대동쪽으로 이동한다. 산행 들머리는 이름도 생소한 광명사라는 절이다. 그런데 절이 무슨 연립주택 같다. 좁은 마당에 최근에 조각한 듯한 돌부처 하나만 뎅그라니 세워져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그 앞에서 佛供을 정성스레 올리고 있다.
절 마당을 슬그머니 지나 산언덕으로 오르니 이내 진달래꽃들이 반겨준다. 벙긋벙긋 웃으며 산행객들을 맞는 발그레한 꽃송이들. 그 아래 요염하게 핀 보랏빛 野生花를 보고 모두
“이게 무슨 꽃이지? ” 하고 눈들을 주니, 정*라 씨가 “붓꽃이다, 붓꽃!”이라고 알려준다. 이름을 알게 되니 더 반갑다. 수없이 산행을 하지만 늘 보는 꽃들과 나무 이름을 몰라 괜히 그들에게 미안한데 이렇게 이름을 알면 더 눈길이 간다.
그런데 정말 장산 산행이 이다지도 재미가 솔솔 솟아날 줄은 몰랐다. 일반적인 산행 때는 한바탕 치고 오르는 것은 다 각오하는 일. 하지만 이 산은 조금 오르고 나면 어김없이 편편한 곳이 나와 숨쉬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 과정이 몇 번이나 이어지니 오를 만하다. 폭삭한 흙길이 많아 발바닥에 닿는 느낌도 한참 동안 기분 좋다. 정상까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또한 동쪽 폭포사에서 오르는 길보다 한적하여 산행의 맛에 韻致가 더해진다.
10여 분 걸어 오르니 싸-한 산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도심 속에서 이처럼 마음 놓고 맡을 수 있는 이 신선한 냄새는 꽃향기다. 싱그런 나무 냄새. 산 아래쪽에 핀 산벚꽃은 거의 다 졌지만 중턱에서는 아직 꽃잎을 볼 수 있다. 길옆에는 후손이 관리를 포기한 듯한 어느 무덤에 진달래 줄기만 무성하고 어저께 내린 봄비에 산은 알맞게 촉촉하다. 산새들도 한 무리 짹짹거려 심심하지 않다.
해마다 봄 산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가르쳐 준다. 수목들의 우듬지에 솟아난 수많은 새 순들. 요 며칠 사이에 온 산에 터져 오른 푸른 爆竹들을 보고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그들과 눈길을 맞춘다. 이 녀석들의 어리고 부드러운 軟綠빛 색조가 귀엽기 짝이 없다. 우리는 五感으로 이들을 느끼고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의 歡喜를 온몸으로 맛본다.
나무 사이, 바위 사이에 지천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진달래꽃들도 우리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달래는 나무 뒤에 숨어 요리 찡긋, 저리 찡긋하는 산처녀들이다. 그들의 눈부신 몸짓에 사람들은 그만 마음을 내어보인다. “어머나, 저 진달래 봐!”
사람의 情에도 색깔이 있다면 진달래처럼 은은한 연분홍이 아닐런지. 한번 물들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진달래 빛깔. 그래서 이 꽃은 김소월 선생의 가슴을 그리도 저리게 한 것인가.
‘-<전략>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후략>’
- 진달래꽃(김소월)에서-
최 대장은 바알간 진달래 더미를 배경으로 심*희, 이*옥, 정*라씨를 사진 찍어 준다. 진달래꽃럼 예쁘게 웃어 보이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가슴을 설레어 본다. 아, 그리운 지나간 시간들...
길을 오르다 보면 진달래 꽃 아래로 양지꽃이 샛노란 얼굴을 하고 한 번씩 눈길을 끌어당긴다. 요 앙증맞은 양지꽃들! 화려한 꽃들에게만 너무 시선 준다며 우리보고 ‘우리들도 여기 있어요!’하며 작은 소리로 눈 홀기는 것 같다. 그래, 너희들에게도 미안하구나.
40분 쯤 오르니 전망대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파스텔화 같은 산자락. 엷은 연두, 갈색, 연한 노랑, 회색, 연분홍으로 배합한 양탄자 같이 부드러운 봄산에 우리는 한동안 魅了되어 버린다. 같이 간, 심*희, 이*옥, 정*라 씨는 그 신비함에 그만 빠져들어 歎聲을 질러대고 만다.
“어머나, 너무 좋다! 어쩌면 저런 색깔이!”
눈을 들면 저 앞에 석대동, 반송동 마을이다. 평지를 따라 집들이 빼곡하다. 30년 전에 초량동에서 철거되어 눈물 흘리고 들어간 이 동네도 이제는 살만하다. 질긴 삶의 세월이 반송동을 그런대로 풍요하게 만들었구나. 그 앞에는 풍산금속 등 주요 군시설이 있다고 친절한 지형설명을 빼놓지 않는 최 대장의 손짓이 바쁘다. 전망대 위에서 한참 동안 바위氣를 받는다고 서 있는 우리 일행 건너편에 까마귀 한 쌍이 솔개처럼 빙그르르 공중 圓舞를 그리고 있다. 사람들 때문에 까마귀 살림살이도 힘든 산허리.
갈림길 표지에는 반여2동, 억새밭, 위봉 화살표를 붙여 놓았는데 최 대장은 정상가는 길로 이끈다. 편편하게 나 있는 오른편 옆길로 조금 더 걸어가니 날카로운 가시철망이 살벌하게 쏘아본다. 그 위로는 地雷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위협적이다. 정상 아래까지 철조망과 어색한 동행인데 그래도 어쩌랴, 정상에는 주요 군 레이다 시설이 있으니 잘 보호해야지. 평화도 낭만도 다 독수리 같은 눈매로 적군을 막아야 맛보는 일부 행복인 것을. 정상으로 가까워지니 여기에도 진달래 더미들이 화려한데 마침 쏟아지는 逆光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다가온다.
평소 지나가며 올려다보던 장산은 아파트 단지가 산 중턱까지 숨 막히게 蠶食하여 볼품이 없다. 시골 골짝 살림을 버리고 부산에 와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장산 품에 안겨 발버둥치는 사람들. 그들을 감싸 안은 장산은 내 품을 풀어헤쳐 안아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벌레처럼 야금야금 갉아먹어도 다 끌어안고 살아간다.
2시간 걸려 정상(에 올라선다. 여기서는 한 눈에 부산이 조망된다. 영도 봉래산, 철마산, 황령산, 금련산, 구덕산, 엄광산, 백양산, 금정산 고당봉이 굽이굽이 능선을 이루어 아름답다. 아까 전망대에서 본 천성산, 달음산, 푸른 기장 앞바다까지 보았으니 부산이 눈 안에 다 들어온 셈이구나. 거기다 해운대, 광안대교, 오륙도, 북항도 바로 저기다. 한곳 한곳 손끝으로 짚어가는 최대장의 손길따라 우리는 차례로 그곳을 확인한다. 화창하면 대마도도 볼 수 있다니 이곳이 四通八達로 트인 고급전망대로다. 부산의 기막힌 名勝地가 바로 여기다. 연제구, 수영구, 동래구에 가득찬 아파트군을 보면 숨이 막히지만 고개 도려 바다를 보면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누리마루로 새 명소가 된 동백섬이 고층아파트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구나.
잠시 쉼터에서 모두 쉬고 있는데 여기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 하나.
갑자기 최 隊長이 안 예주씨의 가방 소재를 확인하니 그녀의 손에 없다. 아까 억새밭에서 우리들 사진 찍어준다고 잠시 핸드백을 내려놓았는데 깜박 잊고 그대로 온 것이다.
“어머, 내 가방!”
하며 비명을 지르는 그 순간 후다닥 왔던 길로 달려가는 최대장의 그 민첩함이란... 카드가 들었다고 동동 발구르는 안예주. 풀숲에 놓아두었다는 핸드백이 그 자리에 없을까 조바심 치고 있는데 잠시 후 찾아들고 최대장이 유유히 나타난다.
안 예주가 감격하여 “살짝 고마워지려 하네.” 이러는데 최대장은
“에이 누가 가져가버리지 않고!” 이러면서 놀린다. 우리를 놀라게 한 최 대장이 더 믿음직하다.
30분 정도 하산하여 유명한 옥녀봉에 오른다. 멀리서 보는 산봉오리가 보기 좋으면 다 옥녀봉이다. 선녀처럼 예뻐 보이는 옥녀봉.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깜찍하게도 앉아 있다. 눈 아래로는 옛날에 왜적 경비하던 간비오산이 볼록하고 해운대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20분 더 걸려 대천공원 쪽으로 빠지니 아, 이건 또 뭐냐, 깊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수려한 계곡이 나타난다. 흐르는 물도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하다. 잘 꾸며 놓은 조경에 값나가는 아파트들. 각종 문화 시설이 풍부한 신시가지. 이곳 사람들은 복 받았구나. 장산을 배경으로 멋지게도 꾸며 놓은 대천공원이 평화롭다. 시계를 보니 6시다.
<기억에 남는 어록집 >
심*희 - “뭇 여성이 좋아하면 한 여성이 통곡한다.”(최대장이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이*옥 - “내가 앞장 서 걷는 폼이 대장 같지 않나요?”( 산중간에서 앞장 서서 걸으며) “나무 가지에 솟은 저 새 순을 보고 ‘幼綠’이란 단어를 쓰지요.”
정*균 -“아니, 나를 벗겨보고 싶은 눈으로 보는군요.”(내가 옷을 여러 겹 껴입은 것을 지적하는 李 隊長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