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지> 영광굴비정식
법성포 굴비거리, 놀라운 곳이다. 굴비, 하나의 주제만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커다란 거리가 형성되는지. 굴비거리에는 수많은 굴비정식집과 굴비 판매집이 있다. 세계적인 굴비거리다. 맛집도 현란할 정도로 많다. 그중 전통적인 맛이 강한 일번지 식당에서 굴비를 주제로 한 한정식을 맛본다. 전체적으로 수준 이상인데, 그중 몇가지는 특히 이상적인 맛을 낸다.
1.식당 얼개
상호 : 일번지
주소 : 전남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650-3
전화 : 061) 356-2268
주요음식 : 영광굴비정식
2. 먹은음식 : 영광굴비정식 60,000원 (2~4인 가능)
먹은 날 : 2020.8.14.점심
3. 맛보기
푸지고 소담한 밥상이 순식간에 차려진다.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밥상을 마련해 놓고 있는 대형 음식점이다. 맛은 찬마다 전문가의 솜씨가 여실하다. 찬마다 수준급이지만 특히 놀라운 건 조기구이, 조기찌개, 모듬전, 간장게장 등등이다. 해파리냉채와 조개젓도 대단하다.
조기구이, 이것이 오늘의 주연일 텐데, 예상보다 크기가 작다. 짜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오히려 약간 슴슴하게 느껴져 밥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간이다. 결이 살아 있는 하얀 육질에서 아직도 바다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거기다 적절하게 노릇노릇하게 구운 솜씨는 굴비의 고장 맛집답다.
해파리가 싱싱하고 토실토실하여 풍미가 입안 가득히 머문다.
고기완자전에 생선전이다. 잔가시를 머금은 육질이 탱글거리면서 전의 기름맛하고 어울려 상급의 맛을 낸다.
게장이 쌍으로 나왔다. 양념무침과 간장게장, 차례로 맛본다.
게딱지보다 배쪽에 살을 더 아금박스럽게 머금었다. 시중의 보통 간장게장집보다 약간 간간해서 오히려 냄새없고, 전통 맛을 제대로 낸다.
조기찌개는 압권, 조기 주제 음식이 둘이다 보니 구워도 먹고, 끓여도 먹고 여러가지로 맛을 본다. 너무 맵지도 않고 국물이 조기맛을 포함, 다양한 맛을 깊게 담았다.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온, 찌개 국물 맛이 귀가 후에도 아슴아슴 눈앞에 어른거린다.
조개젓 맛이 이렇게 신선하고 탱글거릴 수 있다니, 갈치속젓, 목포 낙지집에서 먹은 그 신선한 맛이 떠오른다. 역시 해물의 고장이다. 조기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해물은 죄다 한 가락 하는 고장이다.
식당이 손님으로 너무 번다해보여 조개젓을 파느냐고 못 물어본 것이 걸린다. 맛이 이렇게 최상인 상태에서 식탁에 올리는 그것도 전문가의 식탁 관리 능력이다.
잡채가 탱글거리면서 풍성한 당면 맛을 담아 자꾸 손이 갔다. 거섶이 많지 않은데도 당면가닥에 맛이 잘 담겨 있다.
모시송편도 올랐다. 영광이 굴비 다음의 특산품으로 자랑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싸올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상 손님도 그렇게 하는 거 같다. 만 하루가 지나도 쫀득거리며 맛있다. 개피한 고운 동부콩 속이 달지 않아 좋다.
고슬고슬, 탱글탱글, 쫀득쫀득한 흰밥 덕분에 반찬 맛이 더 살아난다. 조기 흰살에는 흰밥이 잘 어울린다. 녹차물에 말아 먹기도 하나, 여러 찬과 함께 할 때는 맨밥이 더 나은 거 같다.
4.먹은 후
굴비 하나로 이룬 특색 있는 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세계적 명물이다. 여행을 여기저기 다니고 많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이곳 법성포 외에 국내외 어디에도 이런 동네가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조기를 가공한 굴비를 주제로 거리, 아마도 수백 개가 넘을 듯한 식당과 가게가 즐비한 이 거리는 우리 음식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거기다 바다로 막 통하는 와탄천을 낀 거리 모습은 아름답고도 실용적이다. 그 거리 입구에 세워진 굴비의 고장 조형물은 거리 분위기를 더한다.
와탄천 앞 거리 이름은 굴비로다. 생선 이름으로 거리 이름을 삼은 곳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렇게 하늘과 바다와 거리를 뒤덮은 굴비도 모든 곳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굴비는 서해의 생선, 전라도의 생선이다.
지역마다 익숙한 동물과 생선이 다르다. 한국은 소, 중국 티벳은 야크, 동남아시아는 물소, 초원지대 몽골은 양, 사막에서는 낙타 등이다. 이들 동물은 살아서는 농업이나 상업을 위해 쓰이다가 죽어서는 육신의 살은 인간의 고기가 되고, 기타 부위는 장신구가 되고 일상 생활용품이 된다.
동물 외에 해산물도 지역에 따른 변별성이 있는데, 우리는 국내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특히 동해의 강원도 경상도와 서해의 충청도 전라도가 다르다.
경상도에서는 굴비를 먹지 않고 방어를 먹었다. 전라도가 홍어를 먹는 대신 문어를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꽃게와 꼬막이 나지 않는다. 대신 대게는 간식으로 먹는다. 전라도는 꽃게를 흔하게 먹고 꼬막은 잔치상 단골이었지만, 대게는 구경도 못했다. 작은 나라지만 3면이 바다면서 자연조건이 다 달라서 바다에 따른 주요 어종이 다 달라 지역마다 식재료와 식탁이 달랐다. 다양한 식재료는 또 저마다 가공법과 요리법이 달라 음식의 변이는 더 커졌다.
조기는 생으로 조기찌개 등으로도 먹었지만, 말리는 가공을 통해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며 굴비를 만들어 구워도 먹고 튀겨도 먹고, 다양하게 그것도 사철 먹었다.
조기는 여러 곳에서 잡을 수 있지만, 맛있는 굴비를 만들려면 영광, 그것도 법성포로 와야 한다. 영광굴비는 법성포 굴비고, 잡는 곳보다 가공하는 곳이 더 중요해서, 어디서 잡든 영광에서 가공하면 영광굴비가 된다. 법성포의 해풍과 공기와 습기라야 법성포 굴비가 되어 맛을 제대로 낸다. 순창에서 만들어야 맛있는 순창고추장이 되고, 마오타이현에서 만들어야 마오타이주가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광은 전국 굴비 유통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조기는 황해에서 주로 난다. 우리와 중국이 최대생산국이고, 일본에서도 조금 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조기류를 거의 안 먹는다. 일본 식당의 메뉴판에서 조기를 본 적이 없다. 명태도 알은 많이 먹지만 살코기는 별로 먹지 않는다. 아마 어묵의 재료로나 쓰는 듯하다. 해물을 많이 먹는 일본도 우리와는 요리방식이나 식습관이 많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조기는 황화어라 하며 많이 먹는다. 식당에서도 파는데 주요 메뉴가 아니고, 주로 가정집에서 먹는다. 시장에 가면 튀겨 놓는 것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꼬득꼬득 말려서 구워먹는 것은 보지 못했다. 보리굴비 없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는 조기가 대표 생선이다. 조기는 비린내가 없고,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많아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나며, 원기 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건조 가공으로 이동과 보관이 편한 데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아서 제수용, 선물용으로 가장 보편화되었다. 그렇다면 조기에 관한한 우리가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조기하면 영광굴비, 사실은 법성포 굴비니 법성포에 굴비 거리가 만들어지고 거리 이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기의 종주국으로 조기 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세계 조기 식문화의 중심, 한류 한식의 동심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조기의 어획량이 너무 많이 감소했다는 것, 파시가 언제 열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기 생산량이 감소하여, 관계기관이 참조기 치어를 2013년 이래 매년 방류해오고 있다. 다행히 성과가 있어 생산이 늘었다 하나 이전 생산량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거기다 파시 관련해서는 일제의 왜곡까지 있었다 하니 조기 하나를 보면 역사가 보이고 세계사가 보인다고 할 정도다. 관련 책을 하나 소개한다. <조기의 한국사>(정명섭, 2020), 식재료 하나로 한국 역사까지 살펴보는 책이다.
조기 위상이 이렇게 변해온 시점에서 영광의 역할은 더 커진 셈이다. 실제로 와보니 염려보다 기대가 앞선다. 먹거리도 지키고 문화도 창조하고, 영광도 알리고, 한국도 알리고, 한국 문화도 알리고, 할일이 아주 많다. 모든 것이 세계 유일의 입지조건에서 창의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므로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굴비거리
#영광굴비 #영광굴비정식 #영광굴비맛집 #영광맛집 #일번지영광굴비 #법성포굴비거리
첫댓글 어렸을 때 차례상에 올리던 굴비는 한 마리 크기가 대접에 꽉찰 정도로 크고 맛이 짜면서도 살이 찰지고 쫄깃쫄깃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시장에서 파는 조기는 크기도 작은데다 살이 푸석푸석하고 맛 역시 밍밍하고 싱거워, 자주 사다 먹지는 않습니다. 헌데 집사람은 비린 생선을 싫어해 비교적 비린내가 덜한 조기를 선호합니다. 특히 조기대가리를 좋아해서, 저는 몸통을 뜯어먹고 대가리는 아내 접시에 옮겨줍니다. 영광굴비가 맛있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영광에 들러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번 가을 전라남도에 가면 이곳도 찾아갈 생각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채 못 쓴 말이 있는데요. 영광굴비와 다른 굴비는 맛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입니다. 고추장은 순창고추장이 맛있듯이 굴비는 영광굴비를 먹어야 제맛을 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식감과 결이 확실히 다릅니다. 가시면 꼭 챙겨 사다 드시길 권유합니다. 그리고 조기 대가리를 통째로 먹진 않아도 눈 부위는 드실 것을 권합니다. 아연이 아주 많다고 하는 부위입니다. 중국에서 한의사들은 닭눈과 생선눈을 반드시 먹을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