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0
국내 경차 시장이 왜 계속 줄고 있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올해 국내 경차 시장이 2007년 이후 처음 10만대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2.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경차를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차(완전변경 모델) 투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3. 그러나 경차 시장은 최근 10년간 연간 15만대 내외를 유지했다. 그런데도 선택지가 3개 차종에서 전혀 늘지 않았고, 특히 지난 4년간 신차 투입이 아예 없었다.
4. 일본의 경차 시장은 연간 200만대에 육박하지만, 일본 8개 자동차회사에서 총 55개 차종을 투입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박스카·SUV·지프형·승용밴·컨버터블 등 차량 성격도 다양하다. 일본 경차의 차종당 연 평균 판매대수는 3만6000대 정도로, 한국의 차종당 평균 판매대수보다 높지 않다. 그렇지만 이익을 내고 매년 다양한 신차를 출시한다.
5. 한국에서 경차가 덜 팔리는데는 복합적 이유가 있지만, 경차 시장에 매력적인 SUV가 추가된다면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제조사들이 마진이 높은 대형·고급차에 주력하느라 경차 시장의 신차 투입에 소극적일 수 있다.
▲ 아웃도어 라이프에 어울리는 경 SUV가 일본에서 인기다. 사진은 스즈키 허슬러. 올해 11월 일본에서 6579대가 팔려 경차 판매 6위에 올랐다. / 스즈키자동차
◇ 올해 경차 시장,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연 10만대 무너질듯
경차(輕車)의 올해 누적판매가 2007년 이후 처음 10만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결과를 놓고 일부 언론에선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경차 시장이 점차 줄고 있어 신차 개발을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점점 경차를 찾지 않는게 시장 축소의 이유라는 얘기이지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 선호도가 올라가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차박’ 열풍 등 전체적으로 큰 차 수요가 늘면서 경차 시장의 축소가 더 심해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10월 경차 누적 판매는 8만234대로 전년동기 대비 16% 줄었습니다. 최근 월 평균 경차 판매량이 7000~8000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는 경차 판매 10만대가 무너질게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연간 경차 판매가 10만대를 넘지 못한 것은 2007년 5만4000대 이후 13년 만입니다. 경차 시장은 2008년 13만4304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148% 성장했고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감소하는 상황입니다. 2017년 13만8204대로 15만대선이 무너졌고 작년에는 11만3708대까지 줄었습니다.
수치만 보면 경차 인기가 계속 줄고 있는게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소비자가 경차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최근 한국의 경차 시장 축소를 소비자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절반 정도 틀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경차 선택지가 적어도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연간 20만대까지 경차 시장이 형성됐으나 선택할 수 있는 차종이 단 3종류에서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얼마 안되는 선택지 중 가장 신형이라는 기아자동차 모닝도 2017년 1월 출시가 마지막입니다. 지난 4년간 국내 경차 시장에 신차(완전변경 모델)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기아의 박스카 레이는 무려 2011년 11월 출시됐지요. 2017년 12월 부분변경 모델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완전변경 모델은 아직입니다. 국내 유일의 박스형 경차, 경차급을 넘어서는 실내공간으로 사랑받았던 레이는 무려 9년간 ‘사골’만 계속 끓여오고 있는 상황이지요.
기아차 이외에 경차를 내놓고 있는 유일한 경쟁업체로 쉐보레가 있는데요. 쉐보레의 경차 스파크도 2015년 7월 출시 이후 아직까지 완전변경 모델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연간 20만대까지 형성됐던 국내 경차 시장에 소비자 선택지는 단 3개 뿐이다. 그조차 출시 이후 4~9년이나 된 노후모델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 혼다 N-박스. 올해 11월 일본에서 1만5685대가 팔려 경차 판매 1위를 차지했다. / 혼다자동차
◇ 경차, 안 팔려서 안 만드나, 안 만들어서 안 팔리나?
흔히 자동차 산업은 신차로 먹고 산다고 하지요. 2012년 연간 판매가 20만대를 넘은 것도 어찌보면, 그 이전 해에 레이가 출시된 효과가 컸다고 생각됩니다. 즉 자동차 업계에선 ‘소비자가 찾지 않아 새로운 경차를 만드는게 어렵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자동차 업계가 신형 경차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관심이 멀어지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현대·기아·쉐보레·쌍용·르노삼성 등 5개 완성차 메이커가 있지만, 하나의 그룹사인 현대·기아의 경우 기아에서만 모닝·레이의 사골을 끓이고 있을뿐, 현대차는 아예 경차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요. 대신 중대형차·고급차, 덩치 큰 SUV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경차보다는 그 쪽이 대당 마진이 훨씬 많이 남겠지요. 만드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차 값을 높게 받기 어렵다는게 경차에 손 대지 않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쉐보레가 스파크 이외에 다른 경차를 내놓지 않는 이유, 르노삼성·쌍용차가 경차를 내놓지 않고 있는 이유도 채산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경차·소형차를 낮은 원가에 좋은 품질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중차 회사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수익성 높다고 대형·고급차에만 주력한다면, 언젠가는 원가 경쟁력의 근간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요. 채산성 낮다는게 경차를 안 만드는 이유의 전부일까요? 그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 결정적 이유는 국내 경차 시장의 주도권이 소비자보다는 생산자 쪽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업계 입장에서만 보면 ‘수익성이 낮더라도 경차시장을 적극 공략하지 않으면 전체 파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따라서 경차 시장에 신차를 계속 투입해 점유율을 방어한다’는 식의 절박한 동인(動因)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역으로 얘기하면, 자동차 회사들이 채산성 높은 차, 즉 고급·대형차의 매력을 높여 그쪽으로 소비자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이 잘 먹힌다는 것입니다.
▲ 험로주행용 경차인 스즈키 짐니. 벤츠 G바겐의 미니 버전으로도 불리는 등 인기다. / 스즈키자동차
◇ 일본은 경차만 55개 차종...한국은 3개, 최근 4년간 신차 투입 없어
반면 ‘경차 대국’이라는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본의 경차 시장은 2014년에 227만대로 사상 최대를 찍었고요. 작년엔 191만대가 판매됐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판매가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바람에 1~11월 누적 판매가 158만대로 작년 같은 기간의 9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만 놓고 보면 전년 동월보다 8% 증가한 15만9000대가 팔렸군요. 올해 일본 경차 판매는 170만대를 조금 넘는 선이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달 판매로 보면, 상용차를 제외한 일본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 41만대 가운데 경차 비중이 무려 39%에 달했습니다. 현재 경차 비중이 6% 수준에 불과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럼 일본의 월간 경차 판매량이 한국의 연간 경차 판매량보다 많고 또 전체 시장에서 경차 비중이 39%나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본 소비자가 한국 소비자보다 작은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분명 있을테고요. 특히 일본은 차량 구입 때 차고지 증명의 부담이 있는데, 경차는 그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제도적인 혜택도 크지요. 하지만 또다른 큰 이유가 있는데, 바로 경차의 선택지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일본의 경차 순위 상위권 모델의 특징을 살펴보면요. 1위 혼다 N-박스(1만5685대), 2위 스즈키 스페시아(1만2027대), 3위 다이하쓰 탄토(1만599대), 4위 다이하쓰 무브(9980대), 5위 닛산 룩스(9019대), 10위 닛산 데이즈(5427대) 등이 전부 기아 레이처럼 키를 높여 내부공간을 극대화한 박스카이고요. 6위 스즈키 허슬러(6579대), 7위 다이하쓰 타프트(6503대)는 SUV 형태로 일본에서도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아웃도어 라이프에 적합한 모델입니다. 한국의 기아 모닝이나 쉐보레 스파크와 비슷한 해치백 형태는 경차 판매 톱 10 가운데 8위 다이하쓰 미라(6068대), 9위 스즈키 알토(5654대) 등 2개 차종에 불과합니다. 일본도 과거에는 미라·알토 같은 해치백 형태가 가장 많이 팔렸지만, 소비자들이 경차에서도 더 넓은 공간, 아웃도어 라이프에 적합한 차를 점점 더 원하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도 그 취향에 맞춘 새로운 모델을 쏟아낸 것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의 8개 자동차회사가 자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경차 종류가 무려 55개 차종에 달합니다. 경차가 주력인 다이하쓰와 스즈키는 각각 11개와 13개 차종을 내놓고 있지요. 경차가 주력이 아닌 혼다도 5개 차종이고요. 닛산 4개, 미쓰비시 5개, 마쓰다 5개, 도요타 5개, 스바루 7개 차종 등 업체마다 다양한 경차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타사에서 생산한 차를 자사 차종에 편입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차종이 일부 중복되는건 있습니다만, 종류만 많은게 아니라 특징도 여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박스카·SUV가 주류이긴 하지만, 다이하쓰 코펜, 혼다 S660 등 달리는 재미와 개방감을 추구하는 로드스터(2인승 소형 컨버터블)도 있고요. ‘벤츠 G바겐’의 미니 버전으로도 불리는 스즈키 짐니처럼 본격 험로주행용 차량도 인기입니다. 닛산 NV100처럼 아예 승용밴처럼 생긴 차도 있지요.
일본의 경차 시장을 연간 200만대로 보면, 일본의 경차 차종별 평균 연간 판매량은 3만6000대 정도가 되는군요. 이 정도에서도 각 회사들마다 경차를 앞다퉈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일본 경차 시장이 엄청난 경쟁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진이 많이 남는 대형·고급차, 큰 SUV만 팔겠다고 해도, 즉 경차 시장에 신차를 내놓지 않고 대신 대형·고급차 상품성을 높여 마진 향상을 유도하려 해도 그게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는 것이죠. 내가 매력적인 경차를 안내놓으면 경쟁사가 그 파이를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1~11월 누적 경차 판매량을 보면, 다이하쓰가 49만1290대, 스즈키가 48만1514대, 혼다가 34만3284대, 닛산이 18만7011대, 미쓰비시가 3만9757대, 마쓰다가 3만4676대, 도요타가 3만4105대, 스바루가 1만9478대를 팔았습니다. 1위 다이하쓰도 경차 시장의 31%를 차지하는데 그칩니다. 2위 스즈키(30%), 3위 혼다(22%)와 함께 치열한 3파전 양상입니다. 그 외에도 일본 승용차 8개사가 전부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습니다.
▲ 경 로드스터(2인승 소형 컨버터블)인 다이하쓰 코펜. 운전의 재미와 개방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 다이하쓰
◇ 한국도 SUV 등 다양한 신차 투입되면 경차 시장 부활할 수도
사실 한국의 경차는 일본 경차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경차에 비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일본 경차 규격은 배기량 660cc, 길이 3.4미터, 폭 1.48미터, 높이 2미터 이하입니다. 반면 한국의 경차는 배기량 1000㏄ 미만, 길이 3.6미터, 폭 1.6미터, 높이 2미터 이하이면 됩니다. 한국의 경차는 일본에 가면 경차가 아니라 소형차 대우를 받습니다. 일본의 박스형 경차를 타보면, 한국 경차보다 분명히 작은데도 실내 공간이 그리 부족하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정해진 규격 안에서 어떻게든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공간을 키우고 수납 공간 등을 잘 배치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경차 규격 정도에서 레이와 같은 박스카의 신모델이 더 나오고, 또 지금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SUV 등이 추가된다면, 한국 경차 시장은 정점을 찍었던 2012년의 20만대보다 더 많이 팔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경차는 신차 구입시 자동차세가 연간 10만원으로, 배기량 1.6리터 소형차의 절반 이하이고요. 고속도로 톨비도 반값이고, 공채매입비도 면제되고, 연간 20만원 한도의 주유할인 카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취등록세는 이전의 완전 면제에서 2019년 이후로는 구입금액 1250만원 미만인 부분은 완전 면제, 그 이상은 일부 면제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혜택이 많지요.
정부가 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 보급에 주력하느라 경차 혜택을 줄여갈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글쎄요. 최선의 친환경차는 물자를 적게 써서 만드는 차, 즉 생산에서부터 운용·폐차까지의 비용과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차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환경의 한 방법은 ‘작은 차를 타는 것’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요.
앞으로도 국내 제조사에서 신차를 내놓는데 계속 소극적이라면, 경차 시장이 계속 쪼그라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나 자원을 외부에 대거 의존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작고 실용적인 경차는 얼마든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경차 신모델이 나와 시장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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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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