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3章 뜨거운 治療
능비헌과 천라제왕은 백옥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중 능비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주께서 소생만 이렇게 부르신 것은 무슨 연유이신지요?"
천라제왕은 전신에 어제와는 달리 흑빛이 자르르 흐르는 가슴에 두 마리 혈룡이 새겨진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예의 그 부드럽고 인자한 웃음을 띠었다.
"노부는 잔소리를 싫어하네. 자네는 나의 진심을 듣겠는가?"
"……?"
"허허허. 그렇게 의혹에 찬 시선으로 노부를 볼 필요가 없네. 노부는 다만 자네와 한 가지 협상을 하고 싶어서이네."
"협상?"
능비헌이 담담하게 반문했다.
"혹시 부주께서 소생과 협상하고자 하는 일이란 유령마계를 쳐부수고 황금제국을 찾자는 것이 아닙니까?"
천라제왕은 흠칫했다.
(무서운 놈! 이미 노부의 마음을 읽고 있었구나.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손해 보기 쉽겠구나.)
그는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헛헛헛! 과연 노부의 짐작대로 자네의 두뇌는 칼날처럼 예리하구먼!
그렇다네. 노부는 바로 그것을 말하려던 참이었네."
능비헌이 입가에 괴이한 미소를 흘렸다.
"부주! 부주께서도 보다시피 소생은 아직 무림에 알려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혼자이며 무공도 그리 정순하지 못합니다. 한데 무엇 때문에 소생을 끌어 당기시려는 것인지요?"
"아니야! 자네는 지금 노부를 속이고 있어."
돌연, 천라제왕이 형형히 빛나는 눈으로 능비헌을 꿰뚫을 듯 응시했다.
"조금 전에 노부가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 솔직하게 서로 털어놓고 의논하자고"
천라제왕은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능소협! 확실하게 말해주겠나? 노부는 진정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자네가 거느린 검벌에 대해서 말일세"
(검벌?)
"노부는 본부와 검벌의 힘을 합해 황금제국을 움켜쥐고 전 무림을 통일시킬 생각이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무림은 지금처럼 혼란도 살겁도 없이 평화만이 존속할 것일세. 어떤가? 응락하겠는가?"
능비헌은 경악했다.
(역시 봉황후 하예란의 말이 맞았었군. 천라제왕! 이 노인은 지금까지 대단한 야심을 지니고 있었어.)
그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부주! 소생이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소."
"뭘 말인가?"
"소생이 어찌하여 검벌의 벌주란 말입니까? 소생은 지금 부주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천라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질문일세. 사실 노부도 어젯밤에야 알았으니까"
그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검혼!"
그러자 어디선가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예! 이미 모셔왔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좌측 벽면이 소리 없이 열리며 초췌한 얼굴을 한 신비검후 하여옥이 걸어 나왔다.
(아!)
능비헌은 해연히 놀랐다.
그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첫째, 천라제왕의 부름에 어디선가 응답했던 검혼이란 자 때문이었다. 음성이 이 넓은 실내에 넓고 고르게 퍼지는 응답수법은 바로 무형전성술이 었다.
- 무형전성술(無形傳聲術)!
전설적인 육합전성술을 변형시킨 것으로 십갑자의 내력이 있어야 시전이 가능했다.
이 수법은 듣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종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전음술의 최상승 단계였다.
두 번째, 능비헌이 놀란 것은 흔적이 전혀 없는 벽면이 소리 없이 열리는 가공할 기관장치 때문이었다.
기관지학에도 이미 달통한 그였기에 소리 없이 열리는 기관장치가 얼마만큼 가공스러운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놀란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런 기관장치를 설치한 천라제왕 헌원천의 마음이었다.
천하만인의 존경과 흠모를 받음은 물론이요, 정도무림의 지존격인 그가 부내에 이토록 신묘한 기관장치를 해놓았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밀문을 통해 나오던 신비검후 하여옥이 능비헌을 발견하자 급히 그의 앞에 달려와 부복했다.
"검벌 십대검왕 중 십좌 신비검후 하여옥이 삼가 검황지존을 배알하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혹시 부인께선 사람을 잘못 보신 것이 아닙니까?"
신비검후 하여옥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자는 분명 검벌의 지존이십니다."
그녀는 검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비검후 하여옥의 모든 사연을 들은 능비헌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소생을 지존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철혈무보를 익혔다고 무조건 지존으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신비검후 하여옥은 고개를 쳐들어 능비헌을 직시하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붓 한 자루를 지니고 계시지 않는지요?"
능비헌은 그제야 모든 것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소. 소생은 분명 혈필 한 자루를 얻었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검황지존을 상징하는 신물이란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철혈무보와 그 지존신필을 지니신 분이 바로 본벌의 지존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천라제왕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능공자 아니 능벌주! 어떠한가? 노부의 말이 틀림없잖은가?"
그는 괴이한 정광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자! 모든 것은 밝혀졌고, 노부 역시 모든 것을 다 말했네. 이젠 능벌주의 결심만 남았네."
"음!"
능비헌은 침음성을 터뜨린 후 신비검후 하여옥을 일으켜 세우며 천라제왕을 향해 말을 던졌다.
"만약 소생이 부주의 제의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천라제왕의 두 눈에서 기광이 뻗어 나오며 차디찬 표정이 되었다.
"허허. 노부는 그대가 결코 어리석은 인물이라고 보지는 않네."
능비헌의 안색 역시 차디차졌다.
"후후! 부주께선 소생이 봉황후 하예란처럼 보이시는 모양입니다만……!"
"뭣이! 봉황후 하예란!"
천라제왕의 안색이 급변하며 자리에서 퉁기듯 일어섰다.
"네놈이 어떻게 봉황후 하예란을 알고 있느냐?"
놀랍게도 그의 두 눈에서 흉흉한 살광이 뻗치고 있었다. 그것은 천라제왕이란 외호와는 전혀 맞지 않는 표정이요, 행동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능비헌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더욱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부주! 앉으시지요. 그렇게 흥분하시니 소생이 무척 보기가 민망스럽소이다."
"음!"
일순, 천라제왕의 표정은 개의 간을 씹은 표정이 되었다. 짧은 순간, 그의 표정은 몇 번이고 변했다. 이윽고, 그는 모종의 결심을 내린 듯 차갑게 말을 쏟았다.
"능비헌! 나는 네가 어떻게 봉황후 하예란에 대해서 아는지 묻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말들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츠으……팟!
그의 눈은 무섭게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노부는 그대들을 더 이상 핍박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노부는 책임질 수 없다."
그는 천천히 밖을 향해 사라졌다.
이것은 분명 축객령이었다.
"……!"
능비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이곳을 빠져 나가기 전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능비헌이 홀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의 표정에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기개와 결심이 서리고 있었다. 그는 좌측에 공손히 시립해 있는 신비검후 하여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비검후! 본인은 지금 이 순간 결심했소. 검벌(劒閥)의 검황지존(劒皇至尊)이 되기로 말이오."
"아! 지존!"
희열의 빛을 띠는 신비검후 하여옥을 바라보며 능비헌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검후. 우리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오. 하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소."
"……?"
"우리는 검벌에 도착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오."
신비검후 하여옥의 노안에 일순 깊은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지존! 천녀는 이미 오래 전에 무면음마라는 색마에 의해 죽었사옵니다. 설령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저는 기쁘게 죽을 것입니다."
"고맙소."
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쳤다. 아주 강렬하게……
또다시 밤은 예외 없이 찾아들었다. 칼날처럼 번뜩이는 음모와 함께……
실내에선 굵은 황초가 무섭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찬란한 불빛을 바라보며 능비헌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뒤에는 인자한 풍모의 신비검후 하여옥이 조용히 시립한 채 허리를 살짝 숙이고 서 있다.
착 가라앉은 침묵이 흐른다.
능비헌이 촛불에서 시선을 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검후!"
"예!"
"그대는 지금 이 천라제왕부가 어떤지 파악해 보았소?"
신비검후 하여옥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천녀로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짐작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대라신선이나 유령이라 할지라도 안내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렇소."
능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의 추측은 틀림없소. 이곳은 설사 나는 새라 할지라도 빠져 나갈 수 없을 만큼 첩첩이 기관매복과 진식 그리고 죽음의 함정으로 이루어져 있소."
"아아!"
신비검후 하여옥의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검황지존이 죽는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뚜벅! 뚜벅!
별안간 능비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배회했다.
"천라제왕! 그자가 우리를 이렇게 놔둔 것도 우리가 절대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확신과 우리가 절망을 느끼고 공포를 느낀 후 절로 자신을 찾기를 기도하고 있소."
신비검후 하여옥의 옥용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렇구나. 무서운 자……)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천라제왕의 깊은 마음을 꿰뚫은 능비헌의 혜안을 말이다.
능비헌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형형히 빛나는 눈길로 창밖의 야공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외쳤다.
"내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천라제왕은 지금 우리가 며칠 동안 이곳을 탈출(脫出)하기 위해 고심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
"후후. 아마 그는 지금 분명 조금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능비헌이 두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후후! 본시 꾀많은 자는 생각이 깊기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일이 많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신비검후 하여옥을 불러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했다.
천라제왕부 깊은 곳에 비밀로 싸여있는 하나의 은밀한 대전이 있다.
이 대전 주위에는 각종의 무서운 기관과 진법이 설치되어 무형 중 살벌한 살기와 왠지 모를 사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 대전의 안엔 화려하게 꾸며진 내실이 있다.
사방 벽면은 은은한 자색이 맴도는 나무로 이뤄져 있고 벽면 곳곳엔 승천하는 청룡들이 각기 상이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다.
바닥은 온통 서역에서만 나는 적양양피가 잔잔한 붉은빛을 띠며 깔려 있었다.
수십 개의 굵은 야명주가 박혀있는 천정 밑바닥에는 태사의가 십여 개 줄지어 있었고 그 위엔 한결같이 복면한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태사의 제일 위쪽엔 황금으로 만든 대형의 태사의가 놓여있었는데 그곳엔 바로 천라제왕이 앉아있었다.
천라제왕이 좌우측 태사의의 복면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음성을 흘려냈다.
"본좌가 지시한 일은 모두 시행했는가?"
그러나 그와 제일 근접한 곳에 앉아 있는 풍채 좋은 복면인이 살짝 허리를 숙였다.
"예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는 무척 긴장했는 듯 마른침을 삼킨 후 말을 이었다.
"예전에 설치해 있던 천 구백 여든 세 개의 기관과 천 육백 개의 각종 살진 외에 서른여섯 군데에 독진을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산을 통하는 백 여섯 개의 소롯길에는 복마멸사단을 전원을 잠복시켰습니다."
천하 정파의 대정지존이 기거하는 천라제왕부에 이토록 많은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복면인의 보고를 듣던 천라제왕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됐다! 하지만 명심해라! 능비헌! 그 아이는 생각보다 무서운 잠룡이다! 기관매복이 제아무리 잘 됐다 하나 방심하다간 의외로 뚫릴지도 모르지.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혈천묵검전의 인물들을 삼십육사로진 근처에 배치시키고 혈천백검전과 천라불사대의 전 인원을 동원해 부 주위를 잠복해 있도록!"
"지존! 대체 그 능비헌이란 아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라고 봉황후 하예란이 왔을 때도 사용치 않던 세 곳의 고수들을 동원하시는 겁니까?"
복면인들의 눈빛엔 불신과 회의, 불만의 기색이 서렸다.
천라제왕 헌원천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의 음성은 줄곧 담담했다. 음성의 높고 낮음이 없이 줄곧 평탄했다
. 그런 말은 듣는 이에게 일종의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함께 묘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억지로 꾸며낼 수가 없는 선천적 기질이었다.
"후후후! 본좌가 본 눈은 정확하다! 능비헌! 그 아이는 어쩌면 유령마계마저 단숨에 뭉개고 천하최강이라 자부하는 천룡십전주(天龍十殿主)조차 당해낼 수 없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으음!"
십 인의 복면인들 눈에 경악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문득, 가운데 앉아있던 땅딸한 키의 복면인이 일어서며 질문을 던졌다.
"삼가 지존께 묻겠습니다."
"뭔가?"
"지존의 말씀대로 만에 하나 그 아이가 천라제왕부를 빠져나가게 되면 곧 천하엔 천라제왕부의 전모가 밝혀질 텐데 그건 생각해 보셨는지요?"
"크하하하핫!"
우르르르!
천라제왕이 전각이 무녀져 내릴 듯한 우렁찬 광소를 터뜨렸다.
"……?"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집중하자 천라제왕이 웃음을 그치며 말을 꺼냈다.
"본좌는 한 가지 확신을 할 수 있다. 그 아이는 절대 천라제왕부에 대한 일은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해도 본좌는 결코 신경쓰지 않는다!"
"……?"
"능비헌! 그 아이는 나이는 어리나 이미 일무지존(一武至尊)! 그런 자리란 무공만 높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아!"
"그리고 설령 그 아이가 말을 한다 해도 걱정할 것은 없지! 왜냐구? 흐흐흐 그것은 천라제왕부의 부주가 바로 나 천라제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천라제왕 헌원천이 누군가?
천하만인의 절대자요, 정도의 가장 완벽한 대정지존이다.
전혀 이름도 없던 능비헌이 천라제왕부가 마의 소굴이며, 천라제왕이 인면수심의 효웅이요, 천하를 움켜쥘 야망에 가득찬 인물이라 해도 믿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천룡십전주의 눈 속에 경탄과 흠모의 빛이 떠올랐다.
천라제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십전주! 그대들은 한 가지 사실을 꼭 명심하시오. 능비헌! 그 아이야말로 본부가 천하를 제패하고 황금제국을 차지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함을"
"예! 알겠습니다."
"흐흐흐 화살이 쏘아진지는 이미 오래다! 천뢰대법황이 이미 천뢰수라마강을 십이성 완성하고 천명의 마불구단을 데리고 서장(西藏)을 넘어서고 있고, 백사환도와 여인제국 역시 보름 전부터 본격적으로 대륙을 휘젓고 있다!"
"음!"
"더욱이 유령지존! 그 작자는 이미 오래 전에 북천(北天)으로 유령암흑기사단(幽靈暗黑騎士團)을 보냈다! 이젠 더 이상 몸을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능비헌! 저 아이의 일만 끝나면 본좌가 직접 북천을 향해 출발할 것이다!"
"드디어……"
좌중 인물들의 얼굴에 흥분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어나 번져간다.
"흐흐흐 앞으로 일 년 반 후면 천하무림은 우리 천라제왕부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무림 수천 년 사상 처음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말이다! 으하하하!"
광천광소.
그의 웃음은 죽음을 알리는 저주(詛呪)의 웃음이었다.
밀전의 복면인들의 두 눈에 서서히 욕망의 빛이 가공스럽게 폭사되기 시작했다.
휘익!
두 줄기 흑영이 암천을 가르며 어디론가 쏘아가고 있었다.
능비헌과 신비검후 하여옥이었다.
곧 두 사람의 신형이 한 곳에 멈췄다.
며칠 동안 천외삼미화가 기거했던 오층 누각이었다.
능비헌이 좌우를 한 번 살핀 뒤 짤막하게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오. 빨리 동생들을 데려오시오."
"예, 알겠사옵니다."
신비검후 하여옥이 대답과 함께 오층 누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미……홍!"
신비검후 하여옥의 입에서 처절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저토록 장신에 옷 위로 산봉우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철혈염희 하미홍 이외에 또 있을 수 없었다.
"죽……었어! 아직은 체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망시각은 얼마 되지 않지만……심장이 완전히 멎어버렸어."
하여옥은 넋을 잃은 듯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해버렸다.
철혈염희 하미홍.
이것이 침상에 죽어 있는 여자의 이름이었다.
엄청나게 큰 신장 때문에 모든 남자를 눈 아래로 보아야만 했고, 지닌 가공할 무공은 중원무림의 무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던 무신녀(武神女)였다.
여자는 죽은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신비검후 하여옥은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채 이를 악문다.
"빠득! 천라……제왕! 네놈과 생사를 걸고 싸우겠다! 내가 공조(公助)를 거부했다고 둘째를 죽여?"
하여옥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것이 천라제왕 헌원천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천라제왕부의 내부에서, 철혈염희 하미홍같은 절세고수를 이렇게 깨끗하게 죽일 수 있는 인물이 천라제왕 헌원천 이외에 또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 확신의 배경이었다.
"얼마나……아팠을까? 이 차가운 비수로……흐윽!"
눈물이 흐르는 뿌연 시선으로 심장에 박힌 단도를 잡아간다.
바로 그때였다.
"검후. 잠깐……"
하나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존……"
"복수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소. 하지만……범인은 천라제왕이 아닌 듯하오."
어느새 들어온 능비헌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누가?"
"중요한 것은 동생분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오."
"예? 맥(脈)이 움직이지 않는데……?"
흠칫하면서 신비검후 하여옥은 능비헌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범인은 면식범(面識犯)이오. 심장을 정확히 찌르긴 했지만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은 건드리지 않았소. 그냥 두면 내출혈로 죽겠지만……다행히 늦진 않았소. 천라제왕같으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소. 분명히 잘 아는 사람이 접근해서 방심하고 있을 때 찔렀지만……마음의 갈등 때문에 미세한 실수를 한 것 같소. 범인은 나중에 찾고……일단은 살려보도록 합시다."
"살려 주세요. 지존……이 아이만 살려주신다면 첩신은 평생 지존의 시녀가 되겠사옵니다. 제발……"
신비검후 하여옥은 애원했다.
"근데……우선은 추궁과혈을 해야만 하겠는데……그래야 굳어진 혈맥에 피가 흐르게 할 수 있거든."
"해주세요! 맘껏 주물러도 좋아요. 어차피 살아난다면 저 아이의 목숨은 지존의 것이니까요."
거리낌이 없게 되었다.
"그럼……"
마음 놓고 여자의 몸을 주무른다.
팔 다리로부터 시작하여, 온몸을 떡 주무르듯이 압박한다.
(마님보다도 더 탄력적이고 큰데……?)
어느 부위를 압박하면서 능비헌의 내심은 놀람의 경지를 넘어선다.
유방이었다.
비록 옷 위로 만지는 것이긴 하지만 충분했다. 그 크기와 질감을 느끼기에는 말이다.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던 하미홍의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식어가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오그라들었던 혈관이 서서히 팽창되기 시작했다.
"살아야 하오. 이토록 허망하게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소?"
능비헌은 내공을 끌어올려 하미홍의 혈맥으로 쏟아부으며 싱글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거의 한시진을 그렇게 추궁과혈했을 것이다.
"이젠……마지막으로 기운을 불어넣어야겠는 걸?"
능비헌의 손이 여자의 하체로 옮아갔다.
한손은 단전(丹田)을 누르고, 다른 손은 아랫배 밑의 회음부(會陰部)에 대었다.
장강대하 같은 내공의 기운이 여인의 몸 안으로 투입되었다.
"지, 지존……"
신비검후 하여옥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어림잡아도 내공력의 십분지일은 소실되어버릴 정도로 능비헌은 내공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비헌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공짜는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라구요. 나중에 치료비를 단단히 청구할 테니까!"
그의 장난스런 말에 하여옥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잡았다. 젖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젖꼭지가 오똑하게 솟수쳐 오름을 느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치료비로 지불할 것이옵니다. 지존……)
신비검후 하여옥은 점차 여인의 자각을 이루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사내는……자신보다 나이만 어렸지 그 이외의 모든 것에서 컸다.
마침내 기적(奇蹟)은 일어났다. 얼음장같이 차갑던 하미홍의 몸이 불에 데인 듯 뜨겁게 달아오르며 붉어졌던 것이다.
비록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하미홍의 몸은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살았다……"
능비헌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미홍을 반듯이 눕힌 후 조심스럽게 그녀의 심장에 박혀 있는 단검을 빼내었다.
그는 단검을 하여옥에게 던져주면서 난처한 기색을 띄었다.
"문제가 생겼소. 검후."
"예? 무슨……"
하여옥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음을 던졌다.
"피흐름이 멈춰져 있었던데다가 무슨 일인지 심적 타격이 컷던 것 같소. 동생분은 죽음 직전에 주화입마의 초입단계에 들어가 있었소이다. 그것을 강제로 해제시키다 보니 몸 안의 기운행이 역류를 하고 있는 중이오."
"그럼……음기와 양기가 뒤섞여……?'
"그렇소. 미리 알았다면 예방했을 텐데……회음부에 불어넣은 양기가 단전에 있던 본신의 음기를 자극하여 온몸으로 번져갔소."
"그럼……욕정이 일어나겠군요?"
신비검후 하여옥은 오히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호호. 자존께서 손을 댄 일이니 지존이 마무리도 지으셔야겠네요? 첩신은 문밖에서 망을 보지요. 막내가 돌아오다가 보면 안 될 테니까요."
하여옥은 능비헌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방에서 나갔다.
"이거야 원……"
난감해하지만 싫은 기색은 결코 아니다.
"주는 걸 못 먹는데서야 사내 대장부가 아니지."
손을 대기 시작한다.
능비헌의 손 끝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나씩 한 겹씩, 옷자락이 떨어져 나가자 눈부신 살결이 노출되었다.
청동빛 나신이 뽀얀 신비를 벗고 있는 것이다.
실로 숨이 막히도록 뇌살적이 피부였다.
강인하기 이를 데 없는 피부였지만 불면 터져버릴 듯이, 만지면 꺼져버릴 듯이 완벽한 여인의 나신이 서서히 드러났다.
동그란 두 어깨에서 뻗어내린 두 팔과 가슴에 웅장하게 솟아난 풍만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육감적인 두 개의 탱탱한 탄력감이 흐르는 유방과 그 정상에 수줍은 듯 달려있는 두 알의 작은 포도송이.
강인한 아랫배로 흐르는 감미로운 선과 매끈하게 흐르는 선정적인 잘록한 허리의 굴곡.
하미홍은 완전히 나체가 되고 말았다.
실로 이같이 기가막히고 눈부신 뇌살적인 몸매가 또 있을까?
하미홍의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은 너무도 아름답고 육감적이었다.
얼굴은 차갑고 강인해보였지만 벗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은 농익어 터져 나갈 것 같았으며 잘록한 허리는 자극적으로 가늘었다.
특히나 하미홍의 거대하고 탐스런 유방은 손을 댄다면 그대로 튕겨져 나올 것같이 탱탱한 탄력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두 허벅지 사이의 삼림은 무성하여 사나이로 하여금 미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만들었다.
"흐응……하아아……!"
도도하며 강인한 하미홍이 알몸을 비비꼬며 야릇한 교성과 뜨겁고 가쁜 숨을 토해내며 헐떡이고 있었다.
능비헌은 고개를 돌렸다. 적나라한 알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길 역시 화끈거림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나, 나좀……"
하미홍은 마구 몸을 꼬며 야릇한 교성을 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눈은 더욱 충혈된 채 사내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능비헌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하미홍의 상세를 모를 리가 있는가?
하미홍은 점점 더 기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몸은 불덩어리 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이 방법 밖에는……)
능비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하미홍의 불같은 나신을 끌어안았다.
하미홍은 마치 발정한 뱀처럼 그에게 매달려갔다.
능비헌이 하미홍의 몸을 탐해가자 그녀는 열락과 고통의 교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몸이 활처럼 뒤로 휘어졌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은 채 마구 그녀의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뜨거운 입김……
드디어 그녀의 영혼과 육신 그리고 모든 의식까지도 사내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고 말았다.
능비헌은 난폭한 군왕이었다.
"어서!"
타오르는 화산처럼 터질 것만 같은 육신을 주체하기엔 그녀의 정신은 너무너무 몽롱해 있었다.
두 남녀의 나신은 극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마침내 여인의 의식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질퍽한 늪지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깨끗하게 말려버릴 듯 열락과 함께 진입하기 시작했다.
하미홍은 격렬하게 몸을 떨며 능비헌에게 매달렸다.
엄청난 고통과 화끈한 열기에 온몸을 뱀처럼 꿈틀거리며 사내의 몸을 끈적하게 휘감았다.
능비헌은 거친 숨을 내뿜어야 했다. 하미홍의 뜨거운 욕정이 그를 미친 말처럼 마구 채찍질 했던 것이다.
미친 듯한 열기와 격렬한 폭풍이 두 남녀를 엄청나게 달구어진 용광로에 집어넣은 채 욕망의 나락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격렬한 남녀교합이었다.
두 사람의 알몸은 한 올 만큼의 공간도 없이 밀착된 채 한없는 세계를 향해 치달아갔다.
끝없이, 격렬한 몸부림과 함께 가쁜 숨결이 실내를 뜨겁게 달구어갔다.
"이제……끝나셨군요? 수고하셨어요."
문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신비검후 하여옥이 방안으로 돌아온 것은 삼각이나 지난 후였다.
능비헌은 질겁하면서 얼은 이불로 하반신을 가렸다.
"거……검후! 이렇게 그냥 들어오면……"
신비검후 하여옥은 생긋 웃으면서 그런 그의 앞에 섰다.
능비헌은 급히 옷을 걸치며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저……저렇게 크다니……!)
힐끗 능비헌의 하초를 훔쳐보던 신비검후의 가슴이 물레방아처럼 두근거렸다. 마치 또 하나의 다리가 달려있는 것 같은 능비헌의 장대한 일부를 본 때문이다.
그 엄청난 것이 동생의 몸 속을 드나들었을 것을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뜨거워지는 신비검후였다.
그때 옷을 다 걸친 능비헌이 물음을 던졌다.
"검후의 막내 동생은 어디로 간 것이오?"
"그게 이상하군요.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설마 그 아이도 나쁜 일을 당한 것은……?"
하여옥은 침상에 누워 있는 철혈염희 하미홍을 바라보며 불안한 기색을 띄었다.
하미홍은 포만감이 깃든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은 그렇게 잠자면서 기력을 회복할 것이다.
"음…… 어쩐다?"
능비헌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질문을 던졌다.
"어떡하시겠소? 여기서 조금 기다리겠소. 아니면 그냥 가시겠소?"
"글……쎄요"
신비검후 하여옥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이내 떠듬떠듬 대답했다.
"동생들은 제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혈육들입니다. 죄송스럽습니다만 잠깐 찾아보면 어떠하실는지?"
능비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다.
"좋소. 좀 찾아보도록 합시다."
능비헌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철혈염희 하미홍의 알몸에 옷을 입혀 주었다. 신비검후가 해도 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여자이니 거리낄 것은 없었다.
"자……가봅시다."
능비헌은 하미홍의 거구를 등에 엎은 뒤 이불자락으로 단단히 동여맨 후 방문을 나섰다.
헌데 전각을 나서던 능비헌의 두 눈이 돌연 빛을 발하며 좌측을 향해 쾌속하게 일지를 퉁겼다.
쐐액!
홍색의 한 가닥 지력은 여지없이 좌측 석벽을 관통시키며 뿌연 황진과 주먹만한 돌 자갈들을 허공에 날렸다.
"호호호! 역시 검벌의 지존답군요. 귀식대법을 펼쳤음에도 발견하다니……"
요요로운 웃음과 함께 한 인물이 나타났다.
소수신녀 하미란이었다.
"응? 막내! 어디갔다 온 거야? 둘째가 목숨이 위험했다고."
소수신녀 하미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전 산책갔다가 오는 길인데요? 둘째 언니는요?"
그녀는 능비헌의 등에 업혀 있는 하미홍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정신은 차리지 못했지만 지존께서 치료해주셔서 살았어!"
하여옥의 말에 하미란의 봉목에서 격한 흔들림이 일어났다.
능비헌은 그녀들의 말을 끊었다.
"검후! 우선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미홍을 해친 범인은 결코 모르는 사람이 아니오."
능비헌의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소수신녀 하미란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후! 만사란 때때로 모르고 지나갈 때 약이 되고 독이 될 때가 있소. 지금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시오."
능비헌의 시선을 받은 소수신녀 하미란은 내심 흠칫했다.
(저놈이 혹시 낌새를 채고……?)
그는 곧 내심으로 그 생각을 강력히 부정했다.
(아니야! 내가 둘째 언니를 헤칠 때는 주변 백 장 이내는 아무도 없었어. 저놈이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알 수 있겠어?)
생각이 그렇게 결정되자 그녀는 편안한 심정이 되었다.
(호호. 둘째 언니가 정신이 들기 전에 한 번 더 죽여주면 돼.)
그녀가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능비헌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전신 곳곳을 예리하게 훑고 있음을……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