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미래를 보다
화창한 봄날, 다섯 명의 친구가 양재천 벚꽃 길을 걷는다. 한 달 전에 약속했는데, 벚꽃이 만개한 시점과 맞물려서 축복받은 느낌으로. 실내에서 식사하며 놓치기엔 아까운 날이다. 날씨도 좋고 미세먼지도 없는 편이라 야외에서 김밥을 먹자고 하니 모두 좋아했다. 미풍에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돗자리를 펴고 김밥과 과일, 커피를 나누며 웃음꽃을 날린다. 팝콘처럼 터진 벚꽃, 황매화, 천 변의 연두색 실버들이 복숭아꽃과 조화를 이룬 정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언젠가 어둠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일본 항구에서 본 커다란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이 떠오르면서.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무지갯빛으로 감성돔을 표현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자태인데, 가까이 가서 보니 흔히 쓰는 생활용품 일색이다. 갖가지 색의 비닐, 패트병, 우산, 고무장갑, 플라스틱 용기 등의 폐기물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따로 덧칠하지 않고 물건을 비슷한 색끼리 배열해서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했다.
모두 바닷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모아서 엮었는데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물고기 모습이다. 그 옆에는 또 한 마리의 감성돔이 다른 방향을 향해 서있다. 커다랗게 벌린 입안으로 사람들이 올라가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올 수 있다. 그 입구에서 일행이 차례대로 사진을 찍으며 웃었는데, 그 안의 터널을 지나며 생활 폐기물 속에 갇힌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감성돔의 커다란 입을 통해서 어둠을 지나온 것처럼, 무심코 사용한 비닐이나 플라스틱 안에 갇힌 형국이란 걸 깨닫게 된다. 감성돔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두운 색깔의 산을 닮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배 밑(舟低)의 기억’이란 제목이 적혔는데, 배 밑바닥에 깔려 있던 철판 조각을 엮어서 만들었다. 바다의 생물과 공존하는 내가 실감하지 못한 현실, 일본 오카야마현의 우노 항구에서 본 장면이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 바닷가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바닷물에 떠밀려온 쓰레기가 그토록 많이 쌓였다니. 그때만 해도 예술가의 의식에 공감하고 참신한 발상이라 여기며 감상했는데. 그때는 주변 환경의 심각성을 크게 깨닫지 못했다. 화학섬유, 샴푸나 세제 등 헤아릴 수 없는 제품으로 오염된 환경이 우리를 집어삼킬 거란 건 짐작했다.
기후 온난화 현상으로 사람 뿐 아니라 동, 식물이 몸살을 앓고 헤맨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버린 것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 변화를 가져왔다. 막연히 멀게 느껴지던 위기가 당장 눈앞에서 몸을 사렸다. 피부로 절감한 코로나 사태, 그때 비대면의 방편으로 포장 음식을 시켜먹었다. 비닐과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걸 외면하고 안일한 일상을 누리며.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전하길 원하지만, 나만의 편리를 위해 미래를 접는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지만, 생선, 과일, 야채는 비치된 비닐에 담아서 들고 온다. 음식 할 때도 손에 양념이 묻지 않게 하려고 비닐장갑을 애용한다. 환경 문제가 마음에 걸리지만 더 위생적이라 착각하고 쉽게 타협하면서. 내 편리함을 위해서 무심코 한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걸 불감증 환자처럼 잊고 지낸다. 번번이 생각과 실천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을 본다. 그때마다 어둠의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친구들과 담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돗자리를 걷고 남은 쓰레기를 모은다. 일회용 컵과 비닐 포장이 즐비하다. 김밥을 포장한 건 종이상자였지만, 분리수거를 위해 쓰레기를 담은 건 커다란 비닐봉지였다. 쌓이는 비닐을 통해서 다가올 미래가 투명하게 보인다. 입 벌린 감성돔의 어둠 안에 갇힌 것처럼 우리가 버린 폐기물에 갇혀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모습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내가 주인이란 마음으로 각성하며 주변을 살피고 실천해야겠다. 우리의 후손에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하겠다는 사명감을 안고서.
첫댓글 바다 쓰레기로 만든 감성돔과 배 밑의 기억이란 조형물로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교훈적으로 나타내 주셨네요. '투명한 미래를 보다'라는 제목도 상징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