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목적
충실하고 끈기 있게 기도하려면,(이것이 기도가 치르는 싸움의 주된 목적이며 근본적으로 확고히 해야 할 점입니다.) 분명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기도의 여정이 항상 쉽지는 않아도 시도해 볼 만하다는 것과, 기도생활에서 만나게 마련인 수고나 어려움에 비해 충실한 기도의 결실은 말할 수 없이 풍요롭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이 첫 장에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루카 18,1)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16세기 프란치스코회 수사이며,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수도회 개혁에 중대한 도움을 준 피에르 달칸타라성인이 쓴 [기도와 묵상에 관하여]에서 언급한 내용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기도 안에서 영혼은 죄에서 정화되고 애덕이 자라며 믿음은 깊어지고 희망은 강화된다. 영은 용약하고 영혼은 상냥함으로 부드러워지며 마음은 정화되고 진리가 드러나며 유혹은 극복된다. 슬픔은 사라지고 감각은 새로워지며 미지근한 마음이 사라지고 악덕의 녹은 불살라진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하늘에 대한 불타는 갈망이라는 찬란한 섬광들이 생겨나고, 이 섬광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른다.>
저는 이 내용을 논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기도라는 온전한 신뢰할 만한 경험에 대한 고무적인 증언이기에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위의 내용과 똑같은 경험을 매일 감각적으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실하다면, 이 아름다운 글에서 약속하는 것이 모두 사실임을 차츰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입니다. 이러한 성덕의 훈련에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특성이 앞서는 그리스도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희년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 더욱 열렬히 기도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여,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하고 말하였던 초대 제자들처럼, 스승이신 예수님께 직접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나누는 대화를 더욱 깊이 있게 하며 우리를 그분의 절친한 친구로 만들어 줍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요한 15,4)
이러한 상호 관계는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이고 정수이며, 모든 참된 사목활동의 조건입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작용으로 이러한 상호관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모습을 띤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배우고, 무엇보다도 교회 생할의 정점이며 원천인 전례에서뿐 아니라 개인 생활에서도 이를 온전히 실천함은 참으로 생명력 넘치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은 끊임없이 원천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새 생명을 발견하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글을 통해 교황님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점 몇가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이고 참된 사목 생활의 전제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과 친구가 됩니다.
기도를 통해 그분 생명의 풍성함과 친밀함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시게 됩니다.
기도로 실현되는 이러한 상호관계와 사랑의 교환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속 빈 형식주의에 지나지 않고, 복음 선포는 선전 활동일 뿐이며, 인간 구원을 위한 투신은 인간 조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자선사업일 뿐입니다.
이어서 교황님은 오늘날 세상에 뚜렷이 드러나는 영적 목마름에 대해 언급하면서 교회 전통은 이 목마름에 어떻게 성실히 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위대한 신비주의 전통은 이에 대하여 할 말이 많습니다. 신비주의 전통은 참된 사랑의 대화인 기도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곧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성자께 온전히 속하게 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성부의 품안에서 자녀로 쉴 수 있습니다.
이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요한 14,21)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생생한 체험입니다.>
교황님은 계속해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를 배우는 교육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참된 기도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나누는 만남은 도움의 간청뿐 아니라. 감사와 찬미, 경배, 관상, 경청, 열렬한 신심을 통하여 표현되며, 마침내 마음은 진정 '사랑에 빠집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열게 함으로써 형제 자매들까지 사랑하게 하며,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으십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피상적인 기도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삶 전체를 충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에 직면하여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피상적인 기도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위험에 놓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교육이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목 계획의 핵심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