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송승훈 국어 선생이 건축가 이일훈에게 보내 편지에서)
거기서 제가 건축에서 전통 계승을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맞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첫째는 전통의 형태를 계승하는 경우,
둘째는 재료를 계승하는 경우,
셋째는 공간을 계승하는 경우로 나누었지요.
형태 계승은 기와를 얹는 것을 말하고, 재료 계승은 흙과 나무로 짓는 것을 말하고, 공간 계승은 방-마루-마당이 홑집으로 이어져 있는 구성을 계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분에 대해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일훈, 송승훈, 2012, 제가 살고 싶은 집은, 306∼307쪽, 서해 문집)
(건축가 이일훈이 건축주 송승훈 국어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통 계승의 방법은 사실 정답이 없어요. 전통이 무엇이라는 정의가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전통을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거나 느리게 변하는, 자기도 잘 모르는 유전자 같은 특질이라고 봐요. 재료가 변하면 구조 방식이 변하고, 그러면 형태는 저절로 변하기 때문에 계승할 가치가 우선된다고 보질 않아요. 건축 형태란 구축 방법의 당위성이 사라지면 의미가 없어요. 재료도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어서 이어갈 가치가 적다고 봐요. 목재나 황토가 한반도에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공간은 달라요.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흔적은 공간에 담겨요. 저는 공간의 구성 방식 속에서 전통을 잇고 계발하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넓다고 봐요. 형태나 재료로 잇는 것은 무늬만 전통일 경우가 많지요.(이일훈, 송승훈, 2012, 제가 살고 싶은 집은, 309쪽, 서해 문집)
(병석 생각) 전통 계승에 대한 바람, 또는 욕망은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다는 관심과도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체성은 우리가 온전하게 우리임을, 그리고 자유로운 존재임을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럽 도시에서 수백 년 된 건물들을 실컷 보고 서울에 돌아오면 서울은 너무나 우리 고유의 건물이 없다는 것에 실망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뭘까 안타깝게 고민해 봅니다.
그러나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조심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고1 사회 교과서에서 첫 단원의 첫번째 성취 기준이 자아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현재 개발 중인 통합사회 과목의 교육 과정에 '세계화' 단원의 한 성취 기준으로 또 이 개념이 나옵니다.
- 세계화 시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국제 협력, 세계 시민의식 함양,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방안을 제안한다.
정체성. 좋은 말 같습니다. 주체성과도 연결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 정체성은 변하는 것일까,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변한다고 대답하더군요. 학생들은 자기들이 살아오는 과정에 대해 자아 정체성이 변화해 왔다고 경험적으로 대답한 것 같습니다. 변화를 강조하면 정체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약화될 수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즉 배타주의적 민족주의와 연결될 수 있겠죠? 예를 들면 나치 체제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것과 통할 수 있는 거죠.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을 떠올리니 갑자기 입과 목이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네요. 물론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지나친 정체성과 연결시킬 수 있을 거고요. 보수적인 정부와 권력이, 또 언론이 정체성을 강조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근거 자료는 찾아 봐야 하는데 지금은 제 생각이 그럴 뿐이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에는 '선비 사상'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선비 사상의 좋은 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보면 선비는 지배 계급으로서 민중을 착취한 집단입니다. 21세기 민주주의가 많이 확산되어 있는 지구화(세계화) 시대에 지배 계급이었던 선비 집단의 사상이 어떻게 국제 협력 및 세계 시민 의식 개념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중앙일보에 소개된 이 책의 주인공인 잔서완석루에 관한 기사의 일부입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326251&cloc=olink|article|default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② 교사 송승훈씨의 ‘잔서완석루’
[중앙일보]입력 2011.04.11. 00:17
“안방은 없어도 되겠습니다. 큰 가족 규모에서 가부장이 자리 잡던 방인데, 지금은 집안사람들의 위계관계도 예전 같지 않아 그냥 보통 방과 별 다를 바가 없어진 듯합니다. 방들은 모두 평등해도 좋습니다. 평등한 상태에서 각자 자기 빛깔을 지니면 되겠지요.”(송승훈)
“어떤 사람이 돈을 벌자마자 집을 지었는데 화장실이 안방만큼 넓었답니다. 그이는 셋방살이 내내 줄 서는 공동화장실이 너무 끔찍해 대궐만 한 화장실을 평생 꿈꾸었다지요. 이렇게 아주 특별한 해석이 주택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이일훈)
“집이 병원 분위기가 안 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원에 계실 때 저는 병원의 하얀 색을 보기만 해도 피로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하얀 벽을 보면 힘이 빠집니다. 하얀 형광등도 불편합니다.”(송)
“집이 얼마만큼 불편해도 될까요. 불편하게 사는 것을 어디까지 참을 수 있으신가요.”(이)
“아마 제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이런 것일 듯싶어요. 봄비가 오는 소리가 참 좋아서 잠에 빠지면서도 듣고 싶은데 창을 열 수 없을 때, 아아 신음하겠고요. 여름에 비가 와서 후텁지근할 때 창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싶은데 비가 들이쳐서 답답할 때, 아아아 신음할 듯싶어요. 또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빛에 따라 책을 읽고 싶은데 빛이 얼마 없어 전깃불을 켜놓아야 하면 아쉽겠지요.”(송)
첫댓글 지통팀에서 최근 제가 맡은 부분 글을 쓰다가 선생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리적 정체성을 지리가 키워주는 것이라면 지리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관련하여 철학자 탁석산씨가 쓴 '한국인의 정체성', '한국인의 주체성' 이라는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에서도 정체성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요?
네. 정세성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탁석산씨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정체성의 요건중에 첫째로 꼽은 것이 현재성입니다. 따라서 그는 '조선시대 사람을 유전적으로 우리의 선조가 될 수는 있느나 그 사람과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은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를 주장합니다. 만약 그 시대의 것 중에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말이죠. 따라서 정체성은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결론이 지어집니다.
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