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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내 첫사랑은 멍하니 찾아왔다
유독 바쁘셨던 울 엄니는 그당시 대구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치원에 나를 던져놓았다
아직도 생생한 졸업식 행사...
한복을 곱게 입은 동기생 둘이
피아노 앞에서 연탄곡을 치는것이였다~
나는 그때
머리에 쇠망치를 맞는 기분이였다.
7살배기 얼라~들이 치면 얼마나 치겠는가!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듬어진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쇼크라는게 그런건가~~~~~~~!
난 다음날 부터 엄마를 졸랐다
큰언니 작은언니 전부 두달도 안되서 그만두었던 피아노 교습소를
허락하시지 않았다
허나
우여곡절끝에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동네에 교습소를 다니게 되었다
그당시만 해도
볼펜이나 대자로 손등을 맞으면서 배웠었다
요즘 그렇게 가르키다가는 학원 망한다 ㅡ,.ㅡ;;;;;
초등학교 1학년 음악시간에
남들 노래부를때 나는 책상위에서 양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당시 국민학교는 풍금조차도 귀했다.
집에 와서 또 졸랐다
이번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한달쯤 뒤에~
드뎌!~
집에 피아노가 들어온다
내 첫사랑 융창이~~~~~~~~~~~~~~~~~~(yung chang)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걸로 밥벌어먹고 살아라~(전형적인 장사꾼 집안의 분위기다 ㅡ,.ㅡ;;;;)"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은 우리 융창이가 밥값을 톡톡히 한다
난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융창이랑 놀았다
게으름 부리고 싶을때는 아버지의 호통을 면하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서 발가락으로 똥똥거리기도 했다 ㅠ,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잠도 피아노 밑에서 잤다
아시는가~
졸면서도 영어 단어 외우는거.
나는 졸면서도 손가락이 돌아갔다.
당연히 스승님 역시 무시무시한 분이였다
고3때는 학교가서 출석만 부르고
선생님집으로 가서 하루종일 퍄노만 쳤다....
졸면서도 쳐야했었다... 소리 안나면 바로 선생님 뛰어오신다 ㅡ,.ㅡ;;;
집에오면 12시 ^^파김치가 되었다
두마디.네마디를 수천번씩 쳤다
대학교를 시험도 안보고 들어갔다......
4년동안 낸 돈은 아마 만원도 되지 않았을꺼다.
영창 장학금을 받았다
언젠가부터는 우리 융창이가 영창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young chang)
이름은 멋있어졌는데 난 여전히 융창이가 사랑스럽다. *^^*
대학원을 다니다 변심하기 시작했다
왜 음악을 해야하나. 음악은 좋은데...
클래식 음악동네가 짜증난다는 이상한 이유로 인해..
갑자기 학교를 때려친다
유학갈려고 모아두었던 비자금으로
씬써2개.드럼.퍼커션.키타..베이스의 스피커 사버리고
자그만한 연습실을 만들었다
운동권 음악판으로 들어간다
문학..현대미술..현대음악..칸트. 헤겔. 다다이즘.. 미니멀리즘..아우라..
재미있었다
가난하지만 정신이 미세혈관처럼 살아있는
20대가 누리는 지적 허영심은 거기서 다 채웠다고 해야하나~
이현공단 논공공단 침산공단 많이 돌아다녔다
그당시 파업이다 하면
여지없이 우리 공연단이 들어갔다
공장이 이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아니~일부가 되고싶어 몸부림 쳤다.
그때도 융창이는 내방안에서 나를 물끄럼히 보고 있었다
결혼생활 순탄치않았지만
단 한번도 남편과 싸워본적이 없다.
지적 허영심 때문에 ~
이혼하러 갈때도 담담히 갔었다.
지적 허영심 때문에......
그때도 우리 융창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그뒤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서울 진관외동 .....
이제 백발이 허연 70대 할아버지 선생님을 다시 모셨다
가난한 동네라 장마때면 문턱에 앉아서 걸레를 짜면서
들어오는 물을 막아야 했다
jazz
서른 여섯이 될때까지 공부하다가 두손두발 다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20대처럼 공부할수가 없었다
이제는 생활인으로써 사회인으로써
요구하는게 너무 많아진 탓이다.
그런거 다 무시하고 공부할수 있어야 하는데
걸레 짜면서 너무 많이 운 탓이기도 하다
재즈 동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재즈 마인드는 따로 있다~"
어제는 단골 손님이 와이프를 모시고 왔다
정말이지 너무 감사하다
안면트고 이제 막 친해진다
같이오신 동행분이 웃으면서 여쭤본다.
" 저 피아노 영창 짝퉁이에요?"
융창이를 가리키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38년전
피아노 제조기술이 열악하여
그당시 일본 야마하에서 알맹이 다 들여와서
겉만 만들어 yung chang이라 판 제품이였다
80년대부터인가? 정확치는 않지만 스펠도 young chang이라 바꼈는데
그때부터는 한국 기술로 만들어져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리라.
지금도...
내사랑 융창이는 아직도 나를 지키고 있다
이제는 긁히고 얽힌 자국이 여간 아니다
8살 철부지 나를 만나서
이제 50이 되어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조율하러 오시는 분들 한결같은 말씀이
"이제품 넘 좋은데 주인도 잘 만났네요... 상태가 너무 좋아요
파실마음은 없으세요?"
안팔꺼 뻔히 알면서 걍 물어보는거다.
당연히......
내사랑 융창이는 아마 나와 같이 환갑을 맞을 것이다 .. |
첫댓글 희숙이 언니 ....너무 보고싶어요....언니를 생각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우스운 일하나....언니집 밥통은 제일 마지막에 먹은 사람이 누구라도 밥을 한다...는 90년에 나에게는 조금 충격인 언니집 주방모습.....언니의 지금 사는 모습을 그 밥통의 철학에서 미리본듯....너무 보고싶어요.
ㅋ.지난번모임동영상에서모두들봤다^^ 그때우리집은거의하숙집이였지~
그래! 니얘기를 들으니 아직도 나는 지적 허영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누규?ㅋㅋ
지적허영심이 강한 사람은 태숙형이랍니다. ㅋㅋ
언니 반가워요 언니 글 읽다가 내 피아노로 달려가 당장 두껑을 열어보았어요. 삼익이네요^^ 융창이, 언니하고 꼭 닮은 놈이네요. 하~~ 언니 향기 좋네요~~
진혁이통해서조금씩소식듣습니다~
융창이란 놈! 형이랑 질긴 끈으로 맺어진 그놈! 카페가면 그놈은 언제나 시커먼 모습으로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음악을 오래해서 내공이 많이 쌓인 것 같네요.. 글도 좋네요.
칭찬 전달해 드릴께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