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는 좀 이상한 인연으로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가든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가 내겐 약간 불편했다. 다른 게스트들이 유쾌하지 않거나 상냥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파티를 주최한 그레이엄 신부도 더없이 정중하고 매력적인 호스트였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레이엄 신부가 나에게 다가와 분수대 가까운 곳에 내가 만나고 싶어 할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레이엄 신부가 변호사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말쑥한 차림의 젊은 여자였다. 그레이엄 신부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변호사이지만 사회운동도 하고 있어요. 런던의 빈곤퇴치집단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재단을 위해 일하고 있어요. 두 분 사이에는 아마 함께 대화할 소재도 많을 거예요.”
우리는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도 그녀에게 몇 년 동안 글로벌 정의 운동에 관여한 바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도 당연히 시애틀이나 제노바, 최루탄, 거리투쟁 같은 것에 관한 기사를 자주 읽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해서 진정으로 이룬 것이 뭐죠?”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사이에 성취한 것을 돌이켜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예를 든다면요?”
“IMF를 거의 파괴하다시피 했지요.”
놀랍게도 그녀는 IMF(국제통화기금)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IMF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부채 회수 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이 빚을 갚지 않는다고 당신의 다리를 부러뜨리러 오는 사람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복잡한 금융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서 그 역사적 배경을 이런 식으로 설명해주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 때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이 새로 얻은 부(富)를 서구의 은행으로 쏟아 부었다. 그 돈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은행들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티뱅크와 체이스뱅크는 전 세계에 직원들을 보내 제3세계의 독재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대출을 쓰도록 권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주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 때문에 이율이 20%로 치솟았다. 이것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제3세계의 부채위기로 이어졌다. 이때 IMF가 개입했으며, 그 때문에 빈국들은 융자를 다시 얻기 위해 기본 식료품에 대한 가격안정정책을 포기하고 심지어 전략식량을 비축하는 정책과 무료건강보험과 무상교육까지 포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하고 취약한 사람들 일부를 지원하던 시스템이 붕괴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빈곤과 공적자원의 약탈, 사회 붕괴, 만성적인 폭력, 영양 결핍, 절망, 깨어진 삶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그 변호사가 “당신의 입장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IMF에 대한 입장 말씀입니까? 폐지해야 한다는 거죠.”
“아뇨, 제3세계의 부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아, 그것 역시도 폐지하길 원한답니다. 지금 당장은 IMF가 구조조정정책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책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어요. 그 목적이 빨리 성취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보다 장기적인 목표는 부채 탕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의 정신’을 따르자는 것이지요. 30년 동안이나 최빈국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돈이 흘러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녀는 나의 의견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국가들은 돈을 빌렸잖아요!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당연하죠.”
바로 이 시점에서 나는 둘의 대화가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 대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어떤 식으로 그 융자들이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독재자들의 손을 거쳐 대부분 스위스의 은행 구좌에 예치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런 다음에 그녀에게 독재자 또는 그의 일당에게 돈을 상환하라고 하지 않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이들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빼앗아 상환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깊이 생각해보라고 부탁하면 될 것이었다. 아니면 그 빈국들 중 많은 국가들이 이미 차입금의 서너배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했는데도 복리(複利)의 ‘마법’ 때문에 아직도 원금을 그다지 갚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또한 융자기간을 연장해주는 것과, 빈국들이 기간 연장을 위해 워싱턴이나 취리히에서 설계한 자유시장경제 정책 일부를 따라야 한다는 조건은 별개의 문제여야 한다는 점을 설득시킬 수도 있었다. 그 경제정책들은 빈국의 시민들이 동의한 적도 없고 결코 동의하지도 않을 것들이지 않는가. 국가들이 민주적인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선출된 지도자들이 자국의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니면 IMF가 강제하는 경제정책들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부채란 반드시 상환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바로 그 문제이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전제를 엄격히 따지고 들면 정통 경제 이론을 따른다 하더라도 그 말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대출이라 할지라도 대출이 언제나 상환 받을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예를 들어 파산법 같은 것이 전혀 없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대출업자가 어리석은 대출을 해주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들린다는 것을 나도 알아요. 하지만 대출이 실제로 그런 식으로 이뤄지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요. 금융기관들은 자원을 수익이 남을 만한 투자 쪽으로 돌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만일 은행이 원금을 언제나 이자와 합쳐 돌려받는다는 보장을 받게 된다면,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근처의 은행에가서 ‘지금 경마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들었는데 나에게 100만 달러를 빌려주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은행 직원들은 아마 나를 보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내가 찍은 말이 우승하지 못할 경우 돈을 돌려받을 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경마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은행이 나에게 빌려준 돈을 반드시 돌려받도록 정한 법률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회수가 나의 딸을 노예로 팔거나 나의 장기를 파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럴 경우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자동세탁기 같은 것을 설치할 건전한 계획을 갖춘 사람을 굳이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IMF가 글로벌 차원에서 구축한 상황이 기본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은행들이 사기꾼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으려드는 것이지요.”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 즈음에 술에 얼굴이 불쾌해진 금융업자가 우리 두 사람이 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모럴 해저드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가 본류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금융업자는 어느새 섹스에 관한 모험담을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후 며칠 동안 그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거예요.”
그 말이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그것이 경제적인 진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덕적 진술이다. 어쨌든, 도덕적으로는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것을 갚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도 당신에게 의무를 이행하길 원하는 것과 똑같이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거야말로 도덕적으로 너무나 당연하다. 책임 회피의 명백한 예로 약속을 어기거나 빚을 갚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
그 진술이 음흉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그 문장은 무시무시한 것을 부드럽고 눈에 두드러지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말은 아주 강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을 확인하기만 하면, 그 말의 강력한 영향력에 아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거의 2년 가까이 마다가스카르의 산악지대에서 살았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 그곳에는 말라리아가 유행했다. 마다가스카르의 산악지대에서도 수년 전 말라리아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대한 면연력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유행이 특별히 위험했다. 문제는 모기 박멸 프로그램의 운용에 돈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말라리아모기들이 다시 번식을 시작했는지 여부를 정기적으로 테스트하고, 번식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모기약을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IMF가 강요한 긴축 프로그램들 때문에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모니터 프로그램을 축소해야 했다. 1만 명이 죽었다. 나도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젊은 엄마들을 만났다. 시티뱅크가 자사의 대차대조표에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무책임한 대출로 인한 손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1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날 그 파티 자리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선단체를 위해 일하는, 상당한 신분의 여자가…. 어쨌든 마다가스카르의 국민들은 빚을 지고 있었고, 그런 경우엔 반드시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도덕적으로 헷갈리게 만드는 경험
그 다음 몇 주 동안 그 말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부채는 왜 생기는가? 부채라는 개념을 이상하리만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소비자 부채는 우리 경제의 피다. 모든 민족국가들은 적자지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부채가 세계정치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도 부채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니면 부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부채의 파워는 우리가 부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부채라는 개념 자체의 유연성에 있다. 만약 역사가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폭력에 근거한 관계들을 정당화하고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 관계들을 부채의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채를 바탕으로 할 경우 폭력의 희생자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피아 단원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정복군의 지휘관들도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폭력적인 사람들은 폭력의 희생자들이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희생자들은 “정복군들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오늘날엔 군사적 침공은 인류에 대한 범죄로 정의되며, 그 문제가 심판의 대상이 될 경우 국제재판소들은 보통 침략자들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이라크는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배상금을 지금도 쿠웨이트에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다가스카르와 볼리비아, 필리핀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는 그와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제3세계의 채무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때 유럽 국가들의 공격을 받았거나 점령당한 국가들이다.
그런데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를 보면 자국을 공격했거나 점령했던 국가에 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에컨대 프랑스는 1895년에 마다가스카르를 침공하여 당시 라나발로나 3세 여왕의 정부를 해제하고 그 나라를 프랑스 식민지로 선언했다. 프랑스의 갈리에니 장군이 그들의 표현대로 마다가스카르를 ‘평정’한 뒤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그곳 주민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마다가스카르에 ‘침공당한’ 비용을 물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 식민지들이 예산상 자립을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건설하기를 원한 철도와 고속도로, 교량, 플랜테이션 등의 건설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다가스카르의 납세자들에게 철도와 고속도로, 교량, 플랜테이션을 원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지을 위치와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와 정반대로, 반세기가 넘는 동안에 프랑스 군인과 경찰은 그런 정책에 격렬히 반대한 마다가스카르 주민 상당수를 학살했다.(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에 일어난 반란에서만 50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가 프랑스에 그에 버금가는 피해를 안겨준 까닭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프랑스에 빚을 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이날까지도 프랑스에 그 빚을 그대로 지고 있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이런 식의 합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국제공동체”가 도덕적 이슈를 들고 나온다면, 그것은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부채상환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느낄 때뿐이다.
그러나 부채는 승리자의 정의(正義)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승리를 해서는 곤란한 승리자를 처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아이티의 역사이다. 부채상환의 짐을 영구히 져야 했던 첫 빈국이 바로 아이티이지 않는가. 아이티는 옛 플랜테이션의 노예들이 세운 나라였다. 이 노예들은 보편적 권리와 자유의 선언이 나오는 가운데 반란을 일으킬 용기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다시 속박하기 위해 파병된 나폴레옹 군대를 격퇴한 결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즉각 아이티의 새로운 공화국이 프랑스의 실패한 군사 원정 비용만 아니라 몰수된 플랜테이션에 대한 배상으로 1억5천만 프랑의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미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국가들도 아이티가 그 돈을 지급할 때까지 아이티와의 통상을 중단하기를 결정했다. 그 금액(약 180억 달러)은 고의로 상환이 불가능한 규모로 정해졌으며, 그에 따른 통상 중단은 “아이티”라는 이름을 부채와 빈곤, 인간의 불행과 동의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한편으로 부채가 그와 정반대를 의미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1980년대를 시작으로, 제3세계 부채상환에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던 미국이 제3세계의 부채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부채를 쌓았다. 주로 군사비 지출의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도 미국의 외채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는 국가들(독일, 일본, 한국, 대만, 태국, 걸프만 국가들)의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재무부 채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오늘날엔 조금 변했다. 중국이 그 게임에 끼어든 것이다(중국은 나중에 설명할 이유들 때문에 특별한 경우이다). 하지만 그다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심지어 중국까지도 자국이 미국 재무부 채권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기보다 미국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재무부로 지속적으로 흘러들어가는 이 모든 돈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출인가? 아니면 공물인가? 과거엔 자국 영토 밖에 수백 개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군사 강국들은 보통 “제국”으로 여겨졌으며, 그 제국들은 정기적으로 해당 국가로부터 공물을 요구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제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 돈을 “공물”이 아닌 “대출”이라고 우기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특별히 널리 대접받는 부채와 채무국이 늘 있어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1720년대 영국에서 채무자 감옥의 실태가 대중매체에 폭로된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 대중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 감옥들이 거의 예외 없이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플리트 감옥이나 마샬해 감옥에 짧은 기간 갇히는 것을 유행 비슷한 것으로 여겼던 귀족 수감자들에겐 제복을 입은 하인들로부터 포도주와 저녁 대접을 받고 매춘부의 방문을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런 반면 평민들이 갇힌 구역에서는 가난한 채무자들이 좁은 감방에 여럿이 족쇄에 채워져 있었으며, 어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이 오물과 빈대로 뒤덮인 가운데 기아와 티푸스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현재의 세계경제 질서를 보면 당시 감옥의 상황을 확대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경우는 ‘캐딜락’ 채무자인 반면, 마다가스카르는 그 옆 감방에서 굶주리고 있는 극빈자 채무자이다. 그 사이에 캐딜락 채무자들의 하인들이 가난뱅이 수감자에게 그의 문제가 순전히 그 자신의 무책임 때문인 이유에 대해 강의한다.
여기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철학적인 문제이다. 갱단원이 당신에게 총을 들이대며 “보호금”으로 1천 달러를 요구하는 행위와, 똑같은 갱단원이 권총을 들이대며 1천 달러의 “융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행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점이 전혀 없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진 부채의 경우처럼, 세력 균형이 어느 시점에 이동하거나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상실하게 되면, “융자”는 아주 다르게 취급될 것이다. 진짜로 갚아야 할 부담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소는 여전히 권총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와 똑같은 상황을 우아하게 표현한, 오래 된 개그가 있다. 미국 코미디언 스티븐 라이트가 현대에 맞게 개작한 내용을 보도록 하자.
일전에 친구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좁은 길에서 권총을 든 녀석이 뛰어나오더니 “손들어!”라고 외치더군. 그래서 지갑을 끄집어내는데 불쑥 “몽땅 빼앗길 수는 없지”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내가 돈 일부를 빼내 친구에게 주면서 “프레드, 너에게 꾼 50달러야”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강도가 화를 버럭 내며 자기 지갑에서 1천 달러를 뽑아 프레드에게 주면서 강제로 나에게 빌려주게 하더군. 그래 놓고 강도는 그 돈을 빼앗아 가던데.
어쨌든 권총을 든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해도 된다. 그러나 폭력에 바탕을 둔 시스템일지라도 그것이 효과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선 누군가가 일정한 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때 규칙은 완전히 독단적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규칙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처음에는 그 규칙이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군가가 세상사를 부채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부채를 둘러싼 논쟁은 적어도 5천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 동안에, 적어도 국가들과 제국들의 역사 동안에 대부분의 인간 존재들은 자신이 채무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역사학자들과 관념사학자들은 이상하게도 부채가 인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길 꺼려왔다. 특히 부채가 지속적인 분노와 폭력의 원인이 된 이후로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사람들에게 열등한 존재라고 말해봐라. 그러면 사람들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무장폭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동등한 능력의 소유자였는데 실패한 사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갖고 있는 것까지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것도 그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해봐라. 그 사람들이 격분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역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수천 년 동안 부자와 가난한 자의 투쟁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갈등의 형식을 취했다. 이자 지급과 부채 상환을 위한 노역, 특별사면, 회수, 상환, 양(羊)의 복수, 포도밭 압류, 채무자의 자식들을 노예로 파는 행위 등이 옳은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진 것이다. 그 증거로는 지난 5천년 동안 민중폭동이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제시될 수 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부채에 관한 기록들을, 말하자면 서판(書板)이나 파피루스 등을 의식이라도 치르듯 파괴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 반역자들은 보통 토지소유와 과세기록들을 찾아 나선다.) 고대 그리스·로마 연구의 대가였던 모지스 핀리가 종종 말했듯이 고대 세계에선 모든 혁명 운동들이 단 하나의 목적 즉, “빚을 탕감하고 토지를 재분배하라”는 요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쓰이고 있는 도덕적, 종교적 언어들이 이런 투쟁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려 드는 경향이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고대의 금융 언어에서 직접 나온 ‘reckoning’(응보) 또는 ‘redemption’(구원) 같은 단어들도 두드러진 예에 지나지 않는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guilt’(범죄), ‘freedom’(자유) ‘forgiveness’(탕감) 그리고 심지어 ‘sin’(죄악)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렇듯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옳고 그른 것을 뜻하는 기본적인 어휘의 형성에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이 언어들 중에서 아주 많은 것들이 부채에 관한 논쟁 중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부채라는 개념을 이상하리만큼 일관성이 부족한 개념으로 만들어버렸다. 여하튼 왕과 언쟁을 벌이기 위해선 왕과 평민의 구분이 말이 되든 안 되든 불문하고 누구든 왕의 언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부채의 역사를 돌아볼 경우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심각한 도덕적 혼동이다. 거의 모든 곳에서 과반수의 사람들이 빌린 돈을 갚는 것은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누구나 사악한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혼동이 가장 극명하게 보인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사악한 존재라는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프랑스 인류학자 장 클로드 갈레이가 동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목격한 상황이 될 것이다. 1970년대까지도 낮은 계층 사람들의 경우 영원히 빚에 의존하는 상태에서 살던 지역이었다. 하층민들은 “정복당한 사람들”로 불리었다. 그들이 수 세기 전에 현 지주계층의 선조들에게 정복당한 사람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땅도 없고 돈도 없는 하층민들은 단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지주에게 융자를 간청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금액이 하찮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결코 돈 때문에 그런 처지로 전락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이자였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가난한 채무자들이 노동의 형태로 이자를 상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는 곧 가난한 사람들이 채권자들의 변소를 청소하거나 오두막의 지붕을 이는 동안만은 적어도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세상의 사람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복당한” 사람들에게도 결혼과 장례가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대사였다.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르려면 언제나 돈이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그때마다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갈레이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경우 상류층의 대출자들이 차입자의 딸들 중 하나를 담보로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딸의 결혼을 위해 돈을 빌릴 때, 신부 본인이 담보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신부는 결혼 첫날 밤 이후 대출자의 가족을 찾게 되며, 그 대출자의 첩으로 몇 개월을 지내게 된다. 그러다 대출자가 노리개에 싫증을 느끼게 되면, 그녀는 가까운 곳의 벌목장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 2년 정도 매춘부로 활동하면서 아버지의 빚을 갚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빚을 다 청산한 다음에야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돌아가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런 사실은 충격을, 아니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그러나 갈레이는 그 지역에 불공정하다는 감정이 팽배하다는 식의 보고를 하지 않는다.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사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현지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중재자들인 브라만(최고 계급의 승려계급) 사이에도 그런 현실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대출자들이 브라만 계급인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공간 안에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만일 모택동주의자 반군들이 갑자기 그 지역을 점령하여 현지의 고리대금업자를 재판에 회부하게 된다면, 우리는 주민들이 진심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갈레이가 묘사한 내용은 극단적인 한 예이다. 고리대금업자 자신들이 도덕의 종국적 권위자인 경우다. 이곳과 중세 프랑스를 비교해보자. 중세 프랑스는 대금업자들의 도덕적 지위가 문제로 진지하게 논의되던 곳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언제나 금지했다. 그러나 그 규칙이 현실에 적용되지 않게 됨에 따라 교회의 상부 조직들이 설교 운동을 허용했다. 탁발수도사들을 보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깊이 회개하며 희생자들에게서 받은 이자를 모두 내놓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게 한 것이다.
이때의 설교 중 많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하느님이 회개하지 않는 대부업자들을 심판하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또 부자들이 미치거나, 무서운 병에 걸리거나, 임종의 자리에 누워 곧 자신의 살점을 찢거나 먹어치울 뱀이나 악마에 관한 악몽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런 운동이 절정에 이른 12세기에는 더욱 직접적인 처벌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교황이 지방 교구에 모든 고리대금업자들을 파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리대금업자들에게는 성사를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시신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신성한 곳에 묻힐 수 없었다. 프랑스 추기경인 자크 드 비트리는 1210년 경에 글을 쓰면서 영향력이 특별히 강했던 어느 대부업자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 대부업자들의 친구들은 교구 성직자에게 규칙을 무시하고 친구를 교회의 묘지에 묻게 허용하도록 압력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죽은 고리대금업자의 친구들이 매우 집요하게 나오자, 성직자는 그들의 압박에 굴복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신을 당나귀에 태워 하느님의 뜻이 어떠한지, 하느님이 그의 시신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를 보도록 하죠. 당나귀가 시신을 데리고 가는 곳에, 교회든 공동묘지든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이든 불문하고 묻도록 하죠.“ 그런 다음 시신을 당나귀 등에 얹었다. 그러자 당나귀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곧장 마을을 빠져나가 도둑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던 형장으로 가 교수대 밑에 똥이 쌓여 있던 곳에다가 시신을 처박아버렸다.”
세계 문학을 두루 살피다 보면, 대부업자에게 동정적인 내용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 이자를 물리는 전문적인 대부업자에게 동정적인 작품이 없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처럼 일관되게 나쁜 이미지를 풍기는 직업이 달리 있는지 모르겠다(혹시 사형집행관?). 고리대금업자들이 사형집행관들과 달리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막강한 사람들 축에 든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런 현상은 특별히 놀랍다. “고리대금업자”라는 명칭 자체가 피에 굶주린 상어나 피 묻은 돈, 살점 덩어리, 영혼을 파는 사람, 금전출납부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그런 오명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2가지뿐이었다. 책임을 제3자에게 떠넘기든지 아니면 돈을 꾸는 사람이 더 사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에서는 지주들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하며 유태인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많은 지주들은 심지어 “우리의 유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그 유태인이 개인적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보면 지주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 외에 다른 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정기적으로 유태인들을 나쁜 인간들이라고 공격해 그들의 돈을 챙기곤 했다. 당연히 두 번째 방법이 더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대체로 융자 당사자 모두가 똑같이 죄인이라는 결론을 낳는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 자체가 비열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 당사자 모두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들은 이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중세 힌두교 법전을 보면, 이자를 부과하는 대출이 용납 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중요한 조항은 이자가 원금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는 채권자 집안의 노예로 다시 태어난다고, 더 훗날의 법전에는 말이나 소로 다시 태어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대출자에게 관대하고 차용자에게 인과응보적인 보복을 경고하는 태도는 불교의 많은 갈래에도 나타난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리대금업자가 지나치게 심하게 구는 순간 유럽의 이야기와 똑같은 것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중세 일본의 한 작가는 실화라고 강조하면서 A.D.776년경 부유한 지방 총독의 아내인 히로무시메의 무서운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탐욕스럽기 짝이 없던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파는 사케에 물을 타서 엄청난 이문을 챙기곤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빌려줄 때는 작은 되로 양을 쟀다. 그래놓고는 회수할 때는 큰 되로 양을 쟀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양의 쌀을 꾼 사람도 갚을 때는 엄청난 양의 쌀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가 강제로 징수한 쌀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원래 양의 10배, 많은 경우에는 100배를 거두기도 했다. 그녀는 빚을 회수하는 데도 엄격했다. 조금의 자비도 베풀 줄 몰랐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도탄에 빠져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타향을 떠돌곤 했다.”
그녀가 죽은 뒤 이레 동안 스님들이 그녀의 관 앞에서 염불을 외웠다. 이레째 되는 날, 신기하게도 그녀의 시신이 갑자기 살아났다.
“그녀를 보러 온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악취에 시달렸다. 그녀의 허리 위쪽은 이미 소로 변해 있었으며 이마에는 10cm나 되는 뿔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두 손은 소의 발굽으로 변했으며, 손톱은 소의 발굽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허리 밑으로는 인간의 몸 그대로였다. 그녀는 밥을 싫어하고 풀을 더 좋아했다. 되새김질까지 했다. 발가벗은 몸으로 자신의 배설물에 눕곤 했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녀의 가족은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고 용서를 구하려고 애썼다. 아울러 부의 상당 부분을 종교단체에 기부했다. 그러고 나자 마침내 그 괴물이 죽었다.
승려였던 저자는 이 이야기가 이승에서 죄를 많이 저지른 사람의 환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다. 그 여인은 “합리적이고 옳은 일들”을 팽개친 대가로 처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저자가 느낀 문제는 불교 경전들이 고리대금에 관한 예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보통 소로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는 사람은 채무자이지 채권자가 아니었다. 그 결과 그 이야기의 도덕성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저자의 해설이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경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빌린 돈을 갚지 않은 자는 그 빚 때문에 말이나 소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채무자는 노예와 같고, 채권자는 주인과 같다.” 아니면 이런 식이다. “채무자는 꿩이고, 채권자는 매이다.” 당신이 융자를 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채무자에게 돈을 상환하라고 지나치게 닦달하지 않도록 하라. 만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말이나 소로 환생하여 당신에게 빚을 진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게 되어 그 몇 배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채권자와 채무자 둘 다 서로의 외양간에서 짐승으로 환생할 수는 없다.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이 곤경에 이런저런 형식으로 대처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 보면 모든 종교들은 부채와 관련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도덕적으로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마 양 당사자는 그런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미 어떤 죄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상환이 지체될 경우에는 죄를 짓게 될 위험을 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아무에게도 빚진 게 없다”는 식으로 행동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미덕의 화신으로 보지 않는다. 세속의 세계에서 도덕성은 주로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런 의무들을 빚으로 상상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아마 승려들은 자신을 세속과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그 딜레마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나?
히로무시메의 이야기는 빚쟁이를 욕하고 싶은 충동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죽은 고리대금업자와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에서 배설물과 짐승, 창피를 강조한 것이 정의를 의미하는 것과 똑같이, 채권자로 하여금 채무자가 늘 느끼는 망신과 굴욕감을 그대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누구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더욱 생생하고 더욱 노골적으로 묻는 방법이다.
또한 그것은 누군가가 “누가 누구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순간, 어떻게 하여 그 사람이 채권자의 언어를 채택하게 되는지를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빚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빚이 말이나 소로 환생할 빚이 되는 것”과 똑같이, 당신이 악랄한 채권자라면 당신 역시 무엇인가를 “갚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경전 속의 정의조차도 상거래의 언어로 압축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도덕관념과 정의감이 상거래 언어로 압축된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도덕적 의무를 부채로 환원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적 의무가 부채로 바뀔 때 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시장에 의해 다듬어질 때, 우리는 도덕적 의무와 부채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하게 되는가? 어떻게 보면, 의무와 채무의 차이는 간단하고 명백하다. 채무는 일정 액수의 돈을 지급할 의무이다. 그 결과 채무는 다른 형태의 의무들과 달리 정확히 양이 정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채무는 단순하고,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성격이 부채를 이전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빚지고 있다면, 그 빚은 구체적으로 그 사람에게 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12%의 이자로 4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면, 채권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양 당사자가 상대방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그렇지 않고 만약 빚진 것이 호의나 존경, 감사라면 양 당사자는 상대방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양 당사자는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오로지 원금과 이자율, 벌금과 차감잔액만 따지면 된다. 만일 당신이 가정을 포기하고 다른 지방을 떠돌아야 한다면, 그리고 당신의 딸이 탄광촌에서 매춘부로 일해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채권자에게는 지엽적인 일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돈은 돈이고, 거래는 거래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며 또한 이 책에서 길게 탐험할 주제는 도덕성을 객관적인 산수로 바꾸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도(無道)한 것으로 보였을 것들을 정당화하는 돈의 능력이다. 내기 지금까지 강조해온 폭력의 요소는 어쩌면 부차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부채”와 단순한 도덕적 의무의 차이는 채무자의 소유물을 압류하거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함으로써 그 의무를 강제할 사람의 존재 여부에 있지 않다. 그 차이는 단지 채권자의 경우 채무자가 갚아야 할 금액을 정확히 책정할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소들을 조금만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요소들 즉 폭력과 양적 계산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요소가 따로 떨어져 있는 예를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프랑스 고리대금업자들은 심지어 교회까지 협박할 수 있는 권력자들을 친구로 두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인 부채를 돌려받을 수 있었겠는가? 히로무시메도 자신의 채무자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 매정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총독이었다. 그녀는 자비를 보일 필요도 없었다. 무장한 사람들이 뒤에 버티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 곳곳에서 폭력이 인간관계를 수학으로 바꿔놓는 방법이 거듭 소개될 것이다. 폭력은 부채를 둘러싼 모든 논란에 도덕적 혼란이 일어나는 종국적 원인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딜레마는 인류의 문명 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것 같다. 우리는 인류의 현존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그런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베다’(옛 인도의 경전)에서 처음으로 철학적으로 표현되고, 그 이후의 역사 기록 내내 거듭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제도들의 근본적인 구조의 바탕에도 그것이 버티고 있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자유와 도덕성과 사회성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전쟁과 정복, 노예제도의 역사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그런 전쟁과 정복, 노예제도 등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현대의 제도들을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부채의 역사다
부채의 역사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2008년 9월 우리는 금융위기의 시작을 목격했다. 전 세계의 경제를 거의 정지시킨 위기였다. 세계경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를 보였다. 선박들이 대양을 건너는 항해를 중단하고, 건설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크레인들도 해체되었다. 이어 대중의 분노와 좌절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하게 된 부채와 화폐, 금융기관들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의 일로 끝났다. 진정한 대화는 결코 이뤄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러한 대화에 임할 준비를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들어온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은 첨단 금융혁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신용파생상품과 상품파생상품, 주택저당담보부파생상품, 하이브리드증권, 부채스와프 등등. 이런 새로운 파생상품 시장들이 너무 복잡해진 탓에 이젠 유명한 투자기관마저도 거래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천재 물리학자를 고용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 프로그램들이 아주 복잡해서 금융가들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명백하다. 모든 것들을 전문가들에게 맡겨놓으라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 이런 식으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비록 당신이 금융자본가들을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그리고 그들을 좋아할 이유가 많다고 주장할 사람이 거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불가사의할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그 때문에 금융시장을 감시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학자들조차도 금융시장에 홀딱 빠졌다. 나는 2006년과 2007년에 학자들의 모임에 갔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시류를 따르는 사회이론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증권화가 새로운 정보기술과 결합하여 시간과 가능성, 말하자면 현실의 본질까지 바꿔놓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들을 제출했다. 그때 나는 그 논문들을 보면서 “이런 흡혈귀 같은 인간들!”이라고 얼굴을 찡그렸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들은 흡혈귀였다.)
그러다 한껏 늘어졌던 고무줄이 뚝 끊어지자, 그 파생상품들 중 많은 것들이 매우 정교한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상품들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채무불이행이 불가피한 모기지 론(주택저당 대출)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가난한 가족들에게 팔고, 그 모기지 론을 얼마나 오랫동안 떠안고 끙끙거릴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베팅을 하고, 그 모기지 론들을 묶어 기관투자자들(대표적인 예를 들면 모기지 론을 받은 사람들의 은퇴 구좌들)에게 팔고, 그 베팅에 따를 책임을 거대한 보험 회사에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대형 보험회사가 그런 거래에 따른 부채에 짓눌려 침몰하게 되면, 납세자들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해줄 것이다(실제로 그런 대형 기업들이 공적자금을 통해 구제를 받았다). 달리 표현하면, 1970년대 말 은행들이 볼리비아와 가봉의 독재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한 행태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은행들은 무책임한 대출이라는 사실을 훤히 알면서도 그런 대출을 해주었다. 이어 은행들이 그런 대출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나서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융자금에 대한 회수를 보증하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그렇게 하려면 수많은 인간이 희생을 치르게 된다는 따위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는 금융가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그 짓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늘린 부채의 규모는 지구촌 국가들의 GDP(국내총생산)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크다. 그 부채가 세계를 불황의 늪에 빠뜨렸고, 시스템 자체를 거의 다 파괴해버렸다.
군대와 경찰은 폭동과 소요에 대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세계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규정하던 기관들(리먼 브라더스, 시티뱅크, 제너럴 모터스)이 붕괴하거나 휘청거렸고 탁월한 지혜인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리가 부채와 신용기관들의 본질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급진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절대 다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하든 금융기관의 구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불량 모기지 론으로 고통 받는 보통시민들에 대해서는 구제 금융을 실시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였다.
미국에서 이런 현상은 아주 특이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후로, 미국인들은 채무자들에게 동정적이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인들이 채무자들에게 엄격한 것은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미국이란 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도망 온 채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도덕성은 부채를 상환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 더 깊이 뿌리내린 나라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채무자의 귀를 형틀 기둥에 못으로 박는 일도 더러 있었다. 어쨌든 미국은 세계에서 파산법을 가장 늦게 채택한 국가 중 하나였다. 1787년 헌법이 새 정부에 파산법을 제정할 임무를 구체적으로 정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898년까지 파산법을 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도덕적 이유’로 거부되었다.
1898년 미국 연방파산법 제정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아마도 획기적 변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언론매체와 입법부에서 토론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결정했을지 모른다. 미국 정부는 그 문제에 아주 쉽게 3조 달러짜리 ‘일회용 밴드’를 붙였지만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금융가들은 구제되었고, 소액 채무자들은 극히 적은 수의 예외를 제시하곤 구제를 받지 못했다.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소액 채무자들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구제를 받은 바로 그 금융회사들이 지금 정부를 향해 경제적 곤경에 처한 보통 시민들에게 법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의 신문 ‘스타트리뷴’은 “빚을 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있다”고 보도한다. “미네소타에서 채무자들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이 지난 4년 동안 60% 증가하여 2009년에 845건을 기록했다. 일리노이와 인디애나 남서부에서는 일부 판사들이 법원이 정한 상환액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채무자를 감옥에 가뒀다. 극단적인 예의 경우 채무자는 최저 상환액을 마련할 때까지 수감되었다. 2010년 1월에는 한 판사가 일리노이주 케니의 한 시민에 대해 목재 창고 관련 부채 3백달러를 갚을 때까지 ‘무한정 감금’을 선고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지금 채무자의 감옥과 비슷한 것을 복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사이에 대화는 뚝 끊어졌고, 구제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논리를 잃었고, 우리는 또 다른 금융대재앙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유일한 질문은 다음번 대재앙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가 하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양심으로 다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는 IMF 스스로가 경고를 하고 나서야 할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IMF는 세계가 현재의 코스를 그대로 밟는다면, 다음에는 어떠한 구제 금융도 불가능하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대중도 더 이상 구제 금융을 참아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모든 것이 해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어느 신문 머릿기사는 “IMF, 제2의 긴급 융자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몰론 이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체제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경제체제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듯 행동했던 사람들까지도 곳곳에서 대사건의 조짐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번 경우에는 IMF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지금 우리가 대변화의 고비에 서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아주 많다.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상상하려 할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것으로 보려는 충동이 돈과 관련된 분야에서보다 더 두드러지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가상통화의 도래, 즉 현금을 플라스틱으로 또 달러를 전자정보의 기록으로 ‘비(非)물질화’한 것이 우리를 전대미문의 새로운 금융의 세계로 안내했다는 소리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들었는가? 현대인들이 그런 미답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주장은 물론 골드만삭스와 AIG 같은 금융기관들이 일반인들에게 보통사람들이 새로운 금융 도구들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할 때 자주 들먹이는 이론이다.
하지만 보다 넓은 역사적 차원에서 그 일들을 분석해보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우게 될 한 가지 사실은 가상통화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원래의 화폐 형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신용 시스템, 청구서, 심지어 비용 계산까지 현금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이것들은 인류의 문명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정말이지, 역사는 금과 은을 돈으로 여기던 금은통화주의와 돈을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가상의 계산 단위로 여기던 시기를 번갈아 오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신용화폐가 가장 앞섰으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중세,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전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상식으로 통했던 가설들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역사가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어떤 암시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과거 가상의 신용통화 시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잘못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예방할 제도들을 창조했다. 대출자들이 관료와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지금처럼 사람들의 고혈을 짜내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당연히 채무자들을 보호할 제도도 수반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새로운 신용화폐 시대는 그와 정반대로 시작한 것 같다. 이 시대는 먼저 채무자가 아닌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IMF 같은 글로벌 기관들의 창설로 시작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논하는 그 역사의 길이에 비하면 10년이나 2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파악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부채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역사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인간 사회는 어떤 곳인지, 또 앞으로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곳이 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한 방법으로 이용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까지도 살피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은 일련의 신화들을 깨뜨리는 시도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물물교환의 신화’만 아니라 신(神) 또는 국가에 대한 원초적 부채에 관한 신화들이 타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신화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가 경제와 사회의 본질에 대해 상식적으로 품고 있는 가설들의 바탕에 영향을 미쳤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와 시장은 서로 정반대의 원칙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보면, 국가와 시장은 함께 태어났으며 언제나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 모든 잘못된 생각들의 공통점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를 교환으로 압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와 사회의 관계, 심지어 우주와의 관계도 상거래와 같은 언어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만일 교환이 아니라면 인간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제 4장에서 인류학 분야의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경제생활의 도덕적 근거를 설명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화폐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교환의 원칙이 폭력의 결과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제시될 것이다. 돈의 기원이 범죄와 배상, 전쟁과 노예제도, 명예와 부채, 상환 등에서 발견된다는 말이다. 이는 곧 지난 5,000년 동안 가상의 화폐와 실제의 돈 사이를 오간 부채와 신용의 실제 역사를 시작할 길을 열어준다. 고대의 노예법에서 발견되는 권리와 자유의 근대적 개념의 기원에서부터, 중세 중국 불교에 나타나는 투자자본의 기원,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유명한 주장들 중 많은 것들이 중세 페르시아의 자유시장 이론가들의 저술에서 표절한 것 같다는 사실(덧붙여 말하자면, 이슬람이 갖는 정치적 호소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까지, 이 책에 제시되는 발견들 중 상당수는 예상 밖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제국들이 지배한 지난 5백년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무대를 세워주며, 또 오늘날 아주 중요한 질문들을 던질 기회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던질 ‘중대한 질문들’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갈수록 중대한 질문들을 던지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4~35)
[출처] 부채: 그 첫 5,000년
Debt: The First 5,000 Years(2011)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2021년 재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