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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네트웍스지부와 철도고객센터지부를 위해 4월 29일과 5월 13일 두 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을 통해 각각 30분 분량으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풍요로운 평등사회(1)
1. 재앙의 뿌리
1. 1. 이번 총선은 검찰독재와 민주당내 기득권세력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의회권력은 민주당쪽으로 확연히 기울었습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차기정권 또한 민주당이 장악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오늘 노동자민중이 직면하고 있는 재앙들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고통이 일시적으로 조금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과학기술과 생산력 발전에 따른 무인화⋅자동화, 이로 인한 노동력 절약이 대량실업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소액의 기본소득이나 복지 확대 따위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극단적 경제양극화, 환경재앙, 제국주의 전쟁 등과 같이 인류문명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근본문제들은 일국의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들입니다.
1. 2. 이 근본 문제들의 뿌리는 착취⋅경쟁⋅독점을 통한 무한증식이라는 자본의 원리입니다. 개별 자본들은 특별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합니다. 이로써 가변자본(임금) 대비 불변자본(기계, 원료 등)의 비중(유기적 구성)은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일반적 이윤율은 저하하는 경향을 띠며, 경쟁은 격화됩니다. 제국주의 단계 독점자본들 간의 경쟁은 저개발 종속지역의 싼 노동력과 원료를 차지하고 시장을 넓히는 과정에서 수시로 충돌하며, 이는 언제라도 전쟁으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코앞의 기후온난화만 문제가 아닙니다. 제2, 제3의 후쿠시마가 없으리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환경재앙의 뿌리 역시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 아니겠습니까.
1. 3.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을 이성적으로 사회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한, 결국 인류의 문명 자체가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문명 파국의 위협은 생산력 발전과 더불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증대했고, 누구라도 절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앙으로 인한 고통을 자본권력이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려 드는 것은 필연입니다. 이는 단기적인 조건 개선 운동으로 해소될 수 없는 지속적인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대안질서를 만들어낼 필요성은 절박한데, 이를 위한 운동의 주체적 조건은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 또한 오늘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자본의 지배방식
2. 1. 자본은 사회적 권력입니니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자본권력은 국가권력까지 좌우합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온갖 제도와 기술들이 구비되더라도 자본권력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자본독재체제를 구축합니다. 20세기 초에 레닌은 민주공화국이 자본주의로서 가능한 최선의 정치적 외피이며 자본이 이 최선의 외피를 획득하고 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아무런 동요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레닌은 국가권력의 핵심부와 노동자들을 직접 간접으로 매수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2. 2. 레닌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국가권력의 핵심부에 대한 직접적 매수의 고전적인 예로는 삼성 X파일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를 표방하는 참여정부는 이 문제를 덮어버렸고 그 와중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항복선언까지 나왔습니다. 삼성장학생들이 국가기구 속에 얼마나 널리 포진하고 앉아서 합법적으로 자본의 지속적 증식가능성 내지 착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있는지는 일일이 확인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삼성공화국’은 그냥 붙은 별명이 아닙니다. 현대나 SK 혹은 한화 등이라고 장학생을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들 장학생들의 핵심업무는 자본권력의 신성불가침성을 전파하고 굳히는 일입니다.
2. 3. 간접적 매수에는 노동자계급 상층부, 특히 지식노동자들에 대한 매수도 포함됩니다. 이들의 역할은 자본권력을 직접⋅간접으로 옹호하는 사고방식⋅지각방식⋅욕구체계를 노동자민중의 몸속에 반복해서 새겨 넣는 데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 효과는 극심한 경쟁 및 서열체계를 확립하고, 노동자민중을 분열⋅파편화시키며, 각자도생을 일반화한 것입니다. 노동자⋅노동자계급⋅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자본⋅자본권력⋅자본독재 등의 주요 개념들을 금기어로 만든 것도 매수효과에 포함됩니다. 노동자민중이 자본독재 너머의 대안사회를 꿈도 꾸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자본독재에 순응하도록 만들어온 것이 그 주요 성과입니다.
3. 문제 극복의 주체
3. 1. 자본독재가 만들어내고 있는 근본문제들을 자본권력 스스로 해결하여 노동자민중이 평등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것은 무한증식이라는 자본의 본성 자체를 포기하는 것, 즉 자본이 자본이기를 그만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권력은 기껏해야 착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개선책들을 찾아내고, 노동자민중의 투쟁 정도에 따라 부분적⋅일시적으로 양보하거나 그것을 다시 회수할 뿐입니다. 자본독재가 초래하는 근본문제들을 해결하고 대안사회를 건설할 중심적 주체는 자본의 출발부터 종말까지 자본가계급과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노동자계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운동은 당면 일상과제들에 머물 수 없고, 자본독재 너머의 대안사회 건설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3. 2. 물론 서열체계 속에서 경쟁으로 분열된 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는 노동자민중이 의식적으로 자본독재 극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노동자민중은 자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살만하다’는 시한부 환각과 서열의 사다리에서 한 계단 올라서려는 욕구에 따라, 또 서열구조를 매일 매순간 체화시키는 상품들의 안내에 따라, 자본독재를 절대원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자본독재 극복 운동에 적극 나서는 소수, 이른바 전위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3. 3. 전위는 어떤 권위 있는 기관에서 특정한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야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본독재의 근본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위해 적극 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전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위의 과제는 자본독재 너머의 대안사회를 위한 구체적 정책과 사상의 개발에 기여하고 이를 널리 공유하는 데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대안사회 건설 운동의 분열 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전위의 주요 과제입니다. 자본독재의 극복과 대안사회 건설은 특수한 천재적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아니라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4. 대안질서의 요체
4. 1.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한동안 미국의 단일 패권 속에서는 자본독재가 영생을 누릴 것 같은 착각이 범람했습니다. 이른바 진보이론들조차 흔히 자본독재에 어떻게 잘 적응하며 그 부작용을 줄이느냐에 관심들을 쏟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미제국주의를 중심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란과 이스라엘 등지에서 계속되는 전쟁, 코로나 팬데믹, 반복되는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절대신앙에 금이 갔습니다. 과학기술의 불균등발전으로 인한 제국주의적 경쟁과 갈등도 격화되어 왔습니다. 후쿠시마는 언제 핵재앙으로 인류문명이 끝장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대안사회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이기주의를 넘어선 전 인류의 절박한 당면과제가 되었습니다.
4. 2. 대안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기본이념과 정책 차원에서 그려내는 것은 노동운동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이 일은 아직 출발단계에 있으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공동의 생산작업과 검증을 거쳐 대중적 공유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대안질서의 요체를 원론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사회적 생산의 성과를 독식하며 사회구성원들 위에 군림할 수 없는 평등사회, 누구나 생존권을 위협받지 않고 자연의 혜택과 인류의 문화유산, 그리고 생산의 결과물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 즉 풍요로운 평등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3. 이에 도달하는 과정은 자본권력의 결사적인 저항에 맞선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쟁을 의식적으로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자본권력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한 최선의 현실적인 방법은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인 실질적 민주국가, 즉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국가의 본질적 역할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부와 권력의 독점체제, 즉 자본독재를 폐기하는 것입니다. 이로써만 지금 노동자민중이 매일 겪는 차별과 착취만 아니라 인류문명 공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공영의 발판을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노동자국가
5. 1. 노동자국가는 자본증식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생산력 증대를 통한 노동력의 절약은 대량실업과 절대빈곤의 양산이 아니라, 노동일의 단축과 자유시간 확대 내지 삶의 질 향상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하루 평균 4시간노동제를 보편적으로 실현하고 실업에 대한 걱정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따위는 역사책에서만 찾아보도록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산과 분배의 계획부터 실행과정 전체에 노동자민중이 적극 참여할 수 있고, 소외된 강제노동을 강요할 수 없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만드는 것이 노동자국가의 주요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노동자민중이 자본독재 하의 궁핍과 고통으로 인해 체화한 사고방식, 지각방식, 욕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공간을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2. 국가는 본질적으로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성격을 지닙니다. 자본독재국가에서는 형식적 민주주의 아래 소수 자본가들이 다수 노동자민중을 지배합니다. 반면에 노동자국가는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인 실질적 민주주의국가로서, 자본권력의 저항을 억압합니다. 궁극적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권력의 저항을 제압하게 된 단계에서는 계급지배의 도구로서의 국가가 불필요해질 것입니다. 노동자국가는 국가사멸에 이르기까지의 과도단계입니다. 그러나 이 과도단계에서도 이미 자본독재국가와는 질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이는 파리코뮌을 모델로 맑스⋅엥겔스⋅레닌 등이 명확히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요체는 국가기관들이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막을 ‘절대 확실한 방책들’을 마련하는 데에 있습니다.
5. 3. 노동자국가는 일국 차원에 고립되어서는 국제적인 자본권력의 저항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이 필요합니다. 노동자국제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노동자국가의 사활이 걸린 과제이며, 이를 위한 현단계의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자본독재가 강요하는 분열과 각자도생의 덫에서 벗어나, 인류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해방전쟁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자본독재의 노예로서 공멸의 길로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국가를 거쳐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성적 존재에게는 그 답이 자명할 것입니다. (계속)
풍요로운 평등사회(2)
1. 주체적 조건
1. 1. 오늘날 자본독재로 인해 노동자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과 문명파국의 위기를 직시하면 대안사회 건설은 절박한 과제입니다. 건설의 주체는 자본독재에 맞서 단결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민중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다수 노동자민중은 단결투쟁에 적극 나서기보다 서열화된 구조 속에서 분열된 채 각자도생의 길에 머물고 있습니다. 자본독재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재앙이 가시화되더라도, 대안사회 건설의 주체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즉 문제의 근본원인을 명확히 인식하고 분열을 극복한 조직적 힘이 성장하지 못하면, 문제 해결과 동떨어진 민족적⋅성적⋅종교적⋅지역적 혐오 등의 야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주체적 조건의 형성은 대안사회 건설에서 필수적입니다.
1. 2. 주체적 조건의 형성에는 사고방식을 비롯한 의식의 획기적 변화, 이에 따른 감각과 욕구체계의 재구성 및 조직적 단결의 확대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 그 가운데 무엇부터 시작해도 무방하겠지만, 그 첫걸음은 사유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지배적 사유방식을 바꾸는 데에는 특히 변증법적 사유방식을 익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변증법적 사유방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공식들을 절대화하지 않고 대상의 변화⋅발전을 중요시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맑스는 변증법의 ‘제약 없는 혁명적⋅비판적 본질’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1. 3. 변증법적 사유방식을 익혀 대상의 변화⋅발전을 중요시한다면, 오늘의 자본독재를 불변의 지배질서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자본의 무한증식을 경제의 철칙으로 신봉할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또 자본독재에 붙어다니는 극단적 양극화와 온갖 형태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경제학 원론 첫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라는 미신을 깨고, ‘사회구성원 모두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물적 조건 창출’을 경제활동의 목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만인을 불행으로 내몰고 있는 무한경쟁⋅승자독식⋅약육강식이 아니라, 만인의 공존과 공영이 사회생활의 기본원리로 존중받는 대안체제를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대립물의 통일
2. 1.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이래 변증법은 이론가들마다 강세를 달리하며 발전해 왔고, 헤겔에 이르러 관념변증법의 형태로 집대성되었습니다. 맑스⋅엥겔스⋅레닌 등의 유물론자들도 헤겔 변증법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맑스는 헤겔의 관념변증법에서 합리적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그것을 유물론적으로 바로세우고자 했습니다. 레닌 역시 헤겔의 변증법을 검토하며 변증법의 핵심을 ‘대립물의 통일에 관한 학설’이라고 규정합니다. 또 그는 ‘대립물의 통일만 아니라 각각의 규정⋅특징 등의 대립물로 이행’, ‘분석과 종합의 통일’, ‘고찰의 객관성’, ‘인식의 무한한 심화 과정’ 등을 포함한 변증법의 주요 요소들 16가지를 열거합니다. 이것으로 변증법이 모두 해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확실히 변증법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2. 2. 이 개념들은 극소수 철학 전공자들만의 관심거리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직결됩니다. 예컨대 대립물의 통일과 아울러 각 규정들의 대립물로의 이행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고정된 도표나 도식 속에 대상들을 분류해 넣는 데에 만족하고 더 이상 대상들의 변화⋅발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습관을 고수하기 어렵습니다. 변증법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은 흔히 그런 습관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을 우등생/열등생, 주류/비주류, 외국인/내국인, 남성/여성 등으로 나누고 그에 따른 차별과 혐오를 의무로 여깁니다. 물론 아무것도 분류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분류와 혐오 속에서 노동자민중 사이의 분열이 고착되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우리를 옥죄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이 은폐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2. 3. 비변증법적 분류법적 사유방식은 자본독재에 맞선 해방운동의 분열상태를 극복하는 데에도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운동⋅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담벽을 쌓고, 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단절은 심지어 노동자정치운동 내부의 정파나 조직들 사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주의니 계급환원주의니 하는 부정적 언사나 차이의 존중이라는 포스트모던 형이상학과 공생하면서, 노동자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반자본독재 운동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습니다. 기계적 분류법을 거부하고 대립물의 통일⋅이행⋅전도를 중요시하는 변증법적 사유방식은 대안사회 건설 운동의 분열과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3. 분석적이며 종합적인 사유
3. 1. 노동자정치운동이 분열을 겪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한 가지로는, 각 정파나 조직들이 대안사회의 배타적 모델들을 고수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소련⋅중국⋅북한⋅쿠바 혹은 스웨덴 등을 미래 사회의 우월한 모델로 설정하고, 그와 다른 모델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비하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또 이 이론적 차이는 조직적 실천에서도 단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그 우월한 특정 모델에 누구나 흔쾌히 동의할 만한 상황도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 이제까지의 어떤 대안 모델도 완벽하지는 못하며, 또한 적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 가지 모델을 일괄해서 받아들이거나 그것을 거부하기보다 비판할 요소와 받아들일 요소들을 분석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3. 2. 그러나 분석에 그쳐서는 모델들의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의의, 특히 제국주의세력들과 끊임없이 대결해야 했던 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로 인한 부정적 요소들을 과장하는 짓을 피하기 위해서는 종합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와 관련해서도 대안사회 건설에서 활용해야 할 긍정적 요소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 발전을 도외시할 수 없지만, 그 파괴적 측면들을 함께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극복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분석을 통한 비판적 수용과 아울러 이러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 기존 대안 모델들의 역사적 의의와 가능성을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평가의 척도는 기존 모델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 조건 및 실천적 필요성입니다.
3. 3. 종합은 대안 모델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의 실천적 필요성에 비춰 주체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대안 모델은 현실사회주의운동을 포함한 인류사적 해방전쟁의 유산들, 인류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켜온 생산력, 그리고 현재의 사회적 지배관계와 자연적 조건들을 고려하여, 비판적⋅분석적으로 받아들인 유용한 요인들을 대안사회, 즉 노동자국가를 발판으로 하는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종합함으로써 생산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다양한 노선과 입장들이 모델 생산에 참여하여 각 분야와 요소 별로 타당성을 놓고 논쟁하며 더 합당한 것들을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운동의 통일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고찰의 객관성과 내재비판
4. 1. 대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주체적 종합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공식에 꿰어 맞추거나 미리 거부해서는 곤란합니다. 변증법은 무엇보다 고정관념에 의존하지 않고 대상 자체의 역동성과 복합적 관계들을 충실히 파악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른 인식의 변화⋅발전은 주관적 변덕이나 궤변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닌은 고찰의 객관성을 강조하며, 아도르노는 ‘대상에 다가갈 자유’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유물변증법은 가변적 대상의 무궁무진한 속성들과 관계들을 염두에 두고, 인식의 무한한 심화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며 특정 인식의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을 인식의 척도로 삼는 상대주의와 달리, 구체적 조건 속에서 대상 자체에 최대한 접근하는 인식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4. 2. 대상에 다가가고자 최대한 노력하는 변증법적 사유는 대상을 비판할 때에도, 대상과 무관한 척도를 적용하는 ‘초월적 비판’보다 대상 자체의 논리나 주장에 근거해 대상을 비판하는 ‘내재적 비판’을 중요시합니다. 예컨대 검찰독재정권이 자유의 깃발을 흔들어댄다고 해서 자유의 이념 자체를 경멸하거나 폐기처분하는 것보다는, 언론출판과 사상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근거로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노동중심성이나 사회주의운동을 거부하여 자본독재에 기여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을 상대할 때에도, 그것들을 일괄해서 도외시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의 논리를 면밀히 따라가는 가운데 문제점이나 모순을 밝힘으로써 그것들을 비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3. 내재비판의 활용은 정치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레닌은 민주주의가 자본독재의 주요 무기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를 폐기해야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부르주아 혁명이 철저하게 민주주의를 구현할수록 그것은 부르주아지보다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또 그는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단 승리한 후에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으면 승리를 굳힐 수도, 국가사멸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에도 사회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노동자국가야말로 실질적 민주국가라고 주장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5. 의식적 자발성
5. 1. 사유방식 내지 의식의 변화는 감각과 욕구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본독재가 초래하는 재앙들을 근본적으로 인식할 때, 서열체계에서 한 계단 상승하려는 욕구에 맹목적으로 끌려다니며 영혼을 팔기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 경우 풍요로운 삶의 의미도 변하며,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감각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평등을 실질적으로 존중하고 구현하는 문화가 지배적일 때, 사회생활의 전영역에서 근본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때, 또 ‘인간에게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큰 부’라는 인식이 확산될 때, 그동안 자본독재가 우리 몸에 새겨넣은, 부와 권력의 독점을 선망하는 욕구와 감각도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기관으로 퇴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전략적 핵심과제는 노동자국가 건설입니다.
5. 2. 레닌의 전위당 노선과 룩셈부르크의 대중노선은 서로 대립하면서 각각 정당성을 지닙니다.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본독재가 압도할 때 노동자민중이 의식적으로 자본독재에 맞선 전쟁에 적극 뛰어들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문제를 앞서 인식하는 전위들의 조직적 헌신적 역할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전위만으로 지배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며, 노동자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승리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이때 목숨을 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위의 주업무는 이 인식을 노동자민중과 널리 공유하여, 자발성의 의미를 새로이 규정하는 것, 노동자민중의 의식적 자발성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5. 3. 의식적 자발성을 갖추고 해방전쟁의 주체로 나서는 노동자민중에게 당조직은 그들 위에 군림하며 일일이 업무를 지시하는 권력기구라기보다 전략적 효율을 위해 필요한 역동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전사들에게 관료주의가 스며들 빈틈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들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어 새로이 건설할 민주적 노동자국가에서는 ‘사회의 심부름꾼이 사회의 주인으로 변신할’ 가능성 따위는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입니다. 또 제국주의세력을 제압해감에 따라 계급지배 장치로서의 국가는 궁극적으로 사멸의 길에 들어서며, 오늘날 산발적으로 출몰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이 점차 전면화될 것입니다. 아울러 역사의 퇴행을 차단할 견고한 장치들을 통해,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지속적 재생산을 위한 후속 주체 양성에도 즐거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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