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되면 국어 선생님은 독서캠프를 준비한다.
올해는 5월 17일(금)~18일(토) 1박 2일간의 독서캠프를 연다.
이번 독서캠프의 큰 주제는 “기후 위기”이다.
국어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 선생님이 달라붙어 시간별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다.
수학과인 나는 코딩을, 기술 가정 선생님은 가죽 지갑 만들기를, 과학 선생님은 별자리 공부 및 관측을, 영어 선생님은 캠핑과 불멍을, 그리고 국어 선생님과 모든 선생님은 밤샘 독서를 함께 한다.
4시 30분 정규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을 불러 텐트, 돗자리, 침낭과 침구류를 나눠준다.
매년 이 행사를 진행하기에 학교에는 학기 말 남는 예산을 모아 캠프 관련 물품을 이미 구매해 놓았다.
학생들은 이를 받아 들고 각 교실로 돌아가 나름대로 낑낑대며 자신이 지낼 오늘의 잠자리를 준비한다.
그사이 가정실에서는 선생님들이 저녁을 준비한다.
학생들을 위해 여러 선생님이 나선다.
영어 선생님은 황금비율을 이용하여 밥을 짓고, 나는 내 전문인 떡볶이를 만들고, 가정 선생님은 제육볶음을 준비한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국어 선생님(교무)의 주도로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된다.
뚝딱~ 30분도 채 안 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 식사가 차려진다.
오늘의 반찬은 떡볶이, 학교 김장 김치, 학교 텃밭에서 딴 쌈 채소, 제육볶음, 달걀부침이다.
학생들은 가정실에 모여 평소 식판에 먹는 급식이 아닌,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선생님이 직접 해준 집밥을 먹는다.
몇 가지 반찬은 없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이 들어가 맛있어서 그런지 학생들은 제육볶음을 얹은 상추쌈이 입안 가득하다.
게 눈 감추듯 어느새 접시가 텅텅 비어있다.
다들 두 번 세 번 밥을 또 담는다.
다음은 내 차례다.
7시부터 과학실에 모여 코딩 실습을 한다.
오늘 할 코딩은 ‘핑퐁로봇’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토카를 제작하고 이를 가지고 축구 경기를 진행한다.
학생들과 선생님은 2인 1조가 되어 기본적인 코딩 수업을 함께한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도와주었지만 어느새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배우고 있다.
배움은 한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다.
요즘은 에듀테크가 강조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코딩 교육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그래서 나는 몇년전부터 코딩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오늘은 그동안 공부한 나의 공부를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코딩 및 사용법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미리 준비해 논 축구 경기장에서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 경기 한판 시작이다.
내 마음대로 조종이 되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축구 경기와는 상관없이 한쪽 구석에서만 빙빙 돌기도, 좌우로는 움직이지 않고 앞뒤로만 움직이기도, 움직이지 않고 골대만 지키지도, 다들 각양각색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생각보다 조종이 잘 안되는지 이를 조종하는 학생들은 힘들어하고 이를 구경하는 이들은 이를 재밌어한다.
결국에는 무승부로 승부가 갈리지 않았지만 다들 즐거워한다.
나도 함께 했는데 조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학생들은 다 나보다 잘한다.
역시 젊음의 힘인가 싶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고 영어 선생님은 이 어둠을 한쪽에서 준비하고 계셨다.
안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 학교 밖 잔디에 텐트를 치고 조명을 이쁘게 꾸며놓으셨다.
캠프파이어 및 불멍의 시간이다.
놀았으니 이젠 좀 쉬어가는 시간.
화로에 불을 지피고 불을 바라본다.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멍을 때린다.
아무 말 없이 조용하다.
가끔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만 들린다.
조용한 이 시간 우리는 타오르는 불만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빠진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과학 선생님의 한마디에 불만 바라보던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진다.
과학 선생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음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별자리 관측이다.
이미 옆에 가져다 놓은 천체 망원경으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별들을 자세히 관측한다.
멀리서만 보던 반짝이는 별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저 반짝이던 것들이 다 이렇더라.
나는 잘 모르는 별자리를 재미나게 설명하는 과학 선생님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학생들은 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의 꿈과 그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고 있겠지?
실내로 들어가 12시 넘어까지 밤샘 독서를 한다.
이 밤샘 독서가 독서 캠프의 꽃이다.
꼭 12시를 경계로 그 전부터 그 후까지 책을 읽는다.
그럼 1박 2일동안 독서한 꼴이 된다. ㅋㅋㅋ
이번에 국어 선생님이 기후환경이라는 주제로 선정한 책은 ‘기후위기인간’이다.
책 참 좋다.
기회되면 꼭 읽어보시길...
학생 교사 모두 모여 같은 책을 읽는다.
엎드려 읽는 사람, 턱을 괴고 읽는 사람, 잠을 깨우며 서서 읽는 사람.
각양각색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날을 세우면서 같이 책을 읽으니 더 친해지고 사제가 아닌 가족이 된 느낌이다.
그렇게 우리의 5월 밤은 깊어만 간다.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도서관에는 읽다 만 책만 남아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잠자리로 향한다.
하지만, 잠 온다며 교실로 올라간 학생들은 웬일인지 왁자지껄하다.
잠 다 깼나 보다.
하긴, 이런 날 잠이 올 리가 있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놀고 싶겠지.
그래 이젠 자유시간이다.
적당히 잘 놀다가 잘 자그라.
내일 아침에 보자.
그렇게 2024학년도 독서캠프의 밤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