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종(1397~1450)과 같은 시대 인물로, 중앙아시아 티무르제국의 제4대 술탄, 울루그벡(1394~1449)이 있습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겠지만 천문(天文)에 관한 두 분의 업적은 가히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너무나 먼 두 나라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혼천의’를 두고서는 더욱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됩니다.
‘혼천의’는 일종의 천체 관측 기구로, 시간을 재는 장치와 해·달·별의 움직임을 재는 장치, 그리고 동서남북 방위를 재는 장치가 함께 어울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혼천의’에 달린 물레바퀴를 돌리면 지금이 몇 시쯤이고, 별자리는 어느 위치에 와 있으며,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 뒷면에도 그려져 있는 ‘혼천의’를 우즈베키스탄 실크로드, 사마르칸트 교외에 있는 울루그벡 천문대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설명문에는 1432년 코리아의 왕 Yi Do(Sejong 李祹)가 천문과학자들을 중국으로 보내 한문으로 된 많은 천문학 관련 서적을 가져갔고, 이후 코리아에서도 울루그벡 학파의 전통이 많은 진전을 보았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선 측 기록에도 장영실이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을 받고 천문학 관료들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천문관측시설, 과학문물 등의 서적을 수집하고 이듬해인 1422년에 귀국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장영실이 수집해 온 책 중에는 중국의 역대 「천문지」와 1206년에 아랍의 알 자자리가 쓴 「정교한 기계장치의 지식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7~8세기경부터 발달한 아랍천문학(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역)은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쇠퇴하였으나 15세기 울루그벡이 사마르칸트 교외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천문학 관련 문헌과 자료들을 모아들이면서 다시 아랍천문학의 명맥을 이어갑니다. 1447년 편찬한 《울루그벡 천문표》에는 모두 1,018개의 별의 위치를 밝히고 있는데 이는 사마르칸트 천문학자들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울루그벡 학파의 천문학 관련 자료들이 동방으로는 세종의 천문학 관련 업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면, 서방으로는 《울루그벡 천문표》가 전해진 이후 이를 바탕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서양천문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여 줍니다.
창의는 모방에서 나온다고들 하지요. 세종시대 천문 관련 수많은 발명품들도 중국과 아랍의 선진 천문학 지식들을 직·간접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룰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 온갖 과학품들이 세종 장영실로만 기억된 몹쓸 머리 속 창고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기회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