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과 수필의 의미화 과정
1. 변증법이란
변증법의 유래 : 변증법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 본래의 뜻은 '대화술·문답법'
제논이 창시 칸트, 그리고 헤겔의 변증법으로 발전
- 제논 변증법의 창시자 '상대방의 입장에 어떤 자기모순이 있는가'를 논증함으로써 자기입장의 올바름을 입증하려 했다.
- 소크라테스에 의해 훌륭하게 전개되었으며
- 플라톤이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중시됨
- 칸트는 근세에 변증법의 중요성에 무게를 더함. 이성이 빠지기 쉬운, 일견 옳은 듯하지만 실은 잘못된 추론, 즉 '선험적 가상'의 잘못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가상의 논리학'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변증법이란 '어느 경우에서나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직·간접 적으로 유효한 기술 및 방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로 생각되지는 않았음
- 헤겔은 사물과 인식은 모두 '정·반·합' 의 3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3단계를 변증법이라고 생각했다.
2. 헤겔의 변증법 단계
正 :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
反 :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
合 : '정'과 '반'이 종합 통일된 단계. 자각된 모순이 부딪히며 나타나는 단계로서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규정이 함께 부정됨과 동시에 함께 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이 존재에 관해서도 변증법적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존재 그 자체에 모순이 실재한다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변증법은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변증법은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헤겔의 역사의 변증법적 진행 과정
주관적 정신의 단계[正] → 객관적 정신의 단계[反] → 주관과 객관을 동일화하는 절대정신의 단계[合]
절대 정신 : 변증법에서 주관과 객관을 동일화하는 단계[합]에 이른 정신을 가리킴 → 자신의 완전한 자기 인식의 단계에 도달함
이성 헤겔의 이성은 인간과 역사와 자연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 능력
3. 수필의 의미화 과정과 변증법
(1) 의미화 과정의 필요성
수필은 체험과 사실의 기술(記述)이란 말을 많이 한다. 체험의 기술이라면 서사가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수필은 체험을 기술하는 서사성과 문학성을 다지기 위한 시적 미학을 겸비해야 한다. 또한 수필적 체험은 철학적 진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필이 수필다우려면 수필의 서사성과 서정성에 철학적 사고과정을 거쳐야 한다.
흔히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라고 한다. 수필의 주관적 인식과 주관적 정서를 강조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수필이 지향하는 인생관은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보편적 진실을 주관적 정서와 개성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다. 독창적으로 인식하여 보편화 객관화하여 형상화할 때 수필의 문학적 미감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밝힌 것과 같이 칸트는 진리는 인식과 대상의 일치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을 계승한 헤겔은 인식의 대상은 반드시 모순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떤 존재에서 모순을 발견하여 그것을 드러내어 인정함으로써 정과 반이 함께 통일된 진리를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통일된 진리를 절대 정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존재 자체의 구성요소와 구조적 법칙이다.
인간이 대상을 인식해 가는 과정은 감각적 인식(眼 耳 鼻 舌 身), 지각(知覺), 오성(悟性사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인 인식능력)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곧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지식을 발전하면서 통합해 간다. 이러한 인식의 방법이 헤겔의 변증법적 인식론이다.
변증법은 모순을 해결해 준다. 모순은 자아는 물론 세계의 모든 대상에 존재한다. 모순은 사유의 원동력이다. 모순이 있으므로 인간의 사유는 시작된다. 정반합의 통합과정을 통하여 대상을 의미화할 수 있다.
수필의 의미화도 감각적 확신, 지각, 오성(悟性, Verstand)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수필의 구성법에 도입할 수 있다.
(2) 수필의 의미화 과정과 변증법
수필은 체험의 서술이다.
- 자신의 체험, 다른 사람의 체험을 듣거나 읽은 것
- 체험 서술의 목적은 실재하는 의미의 개념화, 의미의 확산, 개념과 실재의 연결
수필은 사물과 대상이 지닌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본질을 파악하려는 성찰의 일종이다.
칸트의 철학적 진리의 추구 헤겔의 변증법적 개념의 충족
-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접근 절차가 있어야 한다
- 수필이 문학성을 지니려면 감각적으로 파악한 본질을 부정하고, 더 깊은 의미를 모색하고, 이 의미를 부정하여 더 더 심층적인 의미를 찾아내어 뒤집어 생각하는 과정을 드러내야 한다.
<예시 작품>
1. 열 개의 태양//김이경
봉숭아는 이름에 따라 다르다. ‘봉선화’하면 한복을 차려입은 단아한 여인이 생각난다. 그러나 ‘봉숭아’하고 부르면 갈래머리 소녀가 달려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봉숭아’라는 이름이 더 좋다.
㉮봉숭아는 화려하지도 꽃밭 한가운데 서 있지도 않는다. 장미처럼 정염을 사르며 화려함을 뽐내지도 않고, 해바라기처럼 크지도 않다. 그저 꽃밭 가장자리나 뒤편에 피어 있다가 자기를 눈여겨보는 사람에게만 다소곳이 눈인사를 보낸다. 그러나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온몸에 가득 품어 안은 꽃이기도 하다.
㉰동백처럼 모가지째 뚝뚝 떨어지는 꽃. 떨어져서도 떨어져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 꽃. 그 꽃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 뜨거운 태양을 제 안에 몰래 품는다. 수수한 촌부처럼 서 있는 그 꽃이 정말 그렇게 뜨거운 것을 숨겨 놓았을지 고개를 갸웃할 필요는 없다. 그 씨방을 살며시 건드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손끝만 당하도 폭발하는 열정. 안으로만 다스리기엔 너무 뜨거운 태양의 열기. 나는 그 뜨거움으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
입추가 지나고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일 즈음이면 봉숭아꽃을 딴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듯 정성스럽게 꽃잎을 따 모은다. 여린 이파리도 몇 개 더한다. ㉱-①천연덕스럽게 푸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봉숭아 잎을 조금만 으깨보면 그 속의 뜨거움을 금방 알 수 있다. 비볐던 손가락이 덴 자국처럼 벌게진다. 그러니 함부로 으깨서는 안 된다. 꽃과 잎을 조심조심 모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다.
봉숭아 꽃잎을 따라 내 안에서 갈래머리 일곱 살 소녀가 걸어 나온다. 아득한 추억의 통로에서 걸어 나온 아이는 널찍한 대나무 평상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을 펴서 내민다. 다정하게 눈웃음 짓는 고운 여인이 손톱 위에 곱게 찧은 봉숭아를 올려놓는다. 조심조심 피마자 잎으로 싼 다음 굵은 무명실로 동여맨다. 아이는 손가락을 가슴에 모으고 꽃빛 꿈을 꾼다. ㉱-②흑백영화 같은 그림 속에 아이의 손톱만 발그레하게 물들어가는 꿈을 엿보며 꽃상을 차린다. 수라상을 차리는 궁인처럼.
맨 먼저 꽃과 잎 속의 햇살을 불러내야 한다. 막자사발에 넣고 찧는다. 막자가 부딪쳐 울리는 맑은 소리는 제례악을 삼는다. 사기가 부딪치는 맑은 소리, 굳이 막자사발을 고집하는 것은 그 소리 때문이다. 그러나 밤이 늦은 시간이라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술의 묘약 명반과 왕소금을 함께 넣는다. 그때 나는 제물을 준비하는 제관이다.
㉱-③다음은 방을 만든다. 밀가루를 말랑하게 반죽하여 손톱 가장자리에 벽을 쌓는다. 공들여 쌓아야 한 오리의 햇살도 흩어지지 않는다. 자칫 허술한 벽 틈이 있으면 햇살이 새 나가 덴 자국이 흉하게 남는다. 잠시 말리면 벽이 단단해지고 아늑한 방이 만들어진다.
막자사발에 곱게 담긴 햇살을 손톱 방 하나에 담길 만큼 길어 올린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손톱 위에 정성껏 다독여 방을 채운다. 새는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때는 끝이 가는 핀셋을 제구로 삼으면 좋다.
어머니는 피마자 잎으로 감싸고 굵은 무명실로 묶어주었지만 혼자서 치르는 의식이라 일회용 비닐장갑을 쓴다. 비닐장갑의 자잘한 무늬 속에 피마자 잎맥을 더듬어 보며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들어가게 잘라서 손가락마다 조심조심 깨운다. 햇살은 비로소 손톱과 은밀하게 마주한다.
㉱-④그때부터는 태양의 정기를 이식하는 비밀한 의식이다. 그것은 꿈나라에서 치르는 것이 좋다. 손톱은 스며드는 햇살에 초야를 치르는 신부처럼 몸을 연다. 열락과 고통이 엇갈리듯 들뜨고 열기로 욱신거린다. 숨이 막히지만 제의를 성스럽게 마칠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햇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아침을 맞아야 한다. 일곱 살 소녀처럼 손을 모으고 잠이 든다.
제의를 마친 아침, 태양의 정기에 흠뻑 젖은 손톱은 다홍색으로 성장盛裝한다. 손을 펴면 손가락마다 떠오르는 열 개의 태양.
㉲열 개의 태양에 여름의 정령을 간직한 나의 겨울은 올해도 춥지 않을 것이다. 아니, 열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동안 나의 노년은 언제나 따뜻할 것이다.
※ <열 개의 태양> 변증법적 개념화 과정
㉮ 감각단계 : 다른 꽃밭에 있는 봉숭아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인식한다.
㉯ 지각단계 : 뜨거운 태양을 품어 안은 꽃
㉰ 오성 단계 : 지각된 봉숭아에 대한 인식의 수정 ‘미미한 존재, 미력한 존재’에서 ‘뜨거운 열기’ ‘폭발하는 열정’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받아들인다. (봉숭아→붉은 동백→ 촌부→작가)
㉱-① 모순의 부정 모순의 변증법적 일치 (잎과 꽃의 일치, 봉숭아와 태양, 태양과 촌부의 일치)
㉱-②, ㉱-③, ㉱-④ 종교적 신성성과 신화의 신비감, 혼례의 성애性愛, 궁중의 예법이 합해진 의식으로 일치한다. 봉숭아로 손톱에 물들이는 과정을 태양과의 뜨거운 섹슈얼리티가 깔려 있는 초야로 표현했다.
㉲ 절대 정신 단계 : 태양의 정기, 밤의 신부, 열락과 고통, 숨막히는 행위, 아침맞이라는 의미소가 손톱 봉숭아물 들이기와 신혼 초야와 일치시켜 준다. 손을 펴면 손가락마다 떠오르는 열 개의 태양을 볼 수 있다. 봉숭아와 태양의 일치이다. 그래서 겨울도 춥지 않고 노년도 언제나 따뜻할 것이다.
태양신의 부활 의식이고 성性과 성聖의 모순된 개념을 상호 결속시켜 일치시키고 있다.
2. 원본대조필 //이애현
화장대 앞 슈틀을 꺼내어 앉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최소한 같이 마주하여 오랜 시간 동안 겪지 않으면 알 길 없는 내면은 모두 배제하고 외양만 하나하나 뜯어본다. 썩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구석이 없다. 뜯어보아 이런데 조합하여 보면 구조도, 배열도 이처럼 개성적으로 생긴 얼굴도 흔치 않으리라.
㉮ 하지만 ㉠눈을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고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시력은 정상이다. ㉠코 살짝 납작하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몫이고 ㉡호흡하는 데 전혀 지장 없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애들이 통닭을 주문해 먹었는지,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구분이 확연할 정도니 이도 문제없다. 무엇보다 비가 쏟아질 때 납작하다 하여 빗물이 코로 들이칠 염려 없으니 말이다. ㉠입술도 예쁘지만 않을 뿐이지 ㉡음식을 먹을 때 흘림을 막아주고, 특이하게 생겨 발음이 부정확한 것도 아니니 이도 기본은 통과된 듯하다. 문제는 보는 사람이 살짝 불편해할는지 모를 뿐.
어찌하리.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 反 ㉡ 正 ㉢ 合
거울에서 눈을 거두고 동창 모임이 있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하신 어떤 분은 이런 작업을 ‘분탕질’이란 말로 폄하도 하신다. 나이를 속인다기보다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자신 없어져 가니, 보는 이로 하여금 좀 덜 불편하게 하고 싶어 화장품도 사고, 화장대 앞에 앉아 이렇게 시간도 할애한다.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지만 어느 달은 내가, 어느 달은 다른 애가 참석지 못하여 더러 반년에 한 번 보는 예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인들 모아 앉혀 놓으니 시끌벅적하다. 주위를 살피다 목소리를 한 톤 내리자고 누군가 제의하여 그러는 듯하더니,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보면서 살았어야 그도 좀 오래가지, 이내 같은 높이로 다시 돌아왔다. 그중에 본 듯도 한데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있었다. 알아보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자주 참석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섞여 말꼬리를 적당히 내리며 물었다. 옆에 앉은 경숙이가 거든다. “정민이잖아. 모르겠지? 호호호.” 대답을 하는데 주변으로 야릇한 그 기운이 번지면서 킥킥거린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뜯어고치기로 바뀌어 갔다.
㉯ ‘그것 봐라. 돈 들이니 동창도 잘 몰라보잖냐.’는 식의 분위기 맞추느라 거드는 품 또한 살짝 오버된 행동이라 웃겼다. 오십 줄에 들어서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편들은 일정 위치에 있지, 애들은 상아탑이라 말하기엔 빛바랜 지 오래지만 어쨌건 교육비 지출의 마지막 단계에 걸쳐져 있지, 시간은 팽팽 남아돌지, 가끔씩 ‘난 뭘까?’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들었다 놨다 의심은 가지, 문득 세월 앞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니 발악하듯 나이를 거스르고픈 행위의 발로였을까?
이렇게 시작된 ‘고치기’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일 뿐 너도나도 보톡스를 맞았느니, 실리콘을 주입했다느니, 찢었다느니, 앞트기니, 뒤트임이니 별별 방송에서나 듣고 보던 걸 가까이서 확인하며 쉬쉬하다가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이야기는 뭉게구름 피어나듯 허공으로 번진다. 분위기와 헛도는 사람처럼 의아한 내 눈빛은 그 생경스러움에 반짝거리며 사태 확인 차 두리번거렸다.
어쨌건 주름도 나보다 훨씬 덜해 보였고, 피부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보아서 그런지, 사실이 그런지 다림질해 놓은 것처럼 매끈해 보였다.
왼쪽에 앉은 친구가 하마 눈을 찌를 것 같은 동작을 취하며 내게 눈가 쪽 주름을 살짝 좀 당기면 훨씬 예뻐 보이겠다고 말한다. 처지고 나서 하느니 조금 일찍 서두르면 덜 처져 예뻐 보이고 덜 불편하다는 지론이다. 듣기엔 그럴싸했다. 다만 당장 불편함이 없고 그 부분에 생각이 달라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않을 뿐.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인 듯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죽어서 저승에도 가면 요즘은 빨리 일 처리가 안 된다더라. 하도 사람들이 많이 뜯어 고쳐서 그 사람이 맞는지 원본이랑 대조해야 되는데 ‘원본대조필’이라는 고무인을 찍는 사람이 너무 바쁘대.” 그 말에 자리한 모든 이의 웃음은 크게 날아가며 지천명을 넘나드는 여인들의 빵빵한 허리통 같은 곡선을 긋는가 싶더니 이내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어 누군가가 또 말한다.
“그래서 요즘은 며느릿감 고를 때도 고3도 말고 고2 때 사진을 보잔다더라. 졸업반인 고3부터 고치기 시작하면 원판을 몰라서 확인한다는 거지. 다 뜯어 고친 후라서 확인 안 하고 2세를 낳으면 에미, 애비 안 닮아 그제야 이 검사, 저 검사 받으며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니 확실히 하자는 거지.” 이야기는 엉뚱하듯 하면서도 다들 할 수만 있다면 하겠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추해져야 하는 자연현상에 맞서 신의 영역에 칼질이라도 하여 ‘이제 그만!’ 하며 금이라도 긋고 싶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벼움에 씁쓸하면서도 거역하기 힘든 긴 여운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 나이 즈음에서 재확인되는 ‘예쁨표 현실’에 나는 적이 아니 다분히 자위하듯 안도감을 내쉬었다.
‘계란녀’라거나 ‘V라인’ 운운하는 이색 얼굴용어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이어 칼끝의 묘기로 주먹만 한 크기의 계란형 얼굴을 고집하며 뼈를 깎는(?) 생고생은 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나이 오십이면 미모도 평준화된다지 않는가!
※ <원본대조필> 변증법적 개념화 과정
- 화소(개념) : 화장, 성형/ 화장하지 않은 얼굴, 성형하지 않은 얼굴(맨얼굴)
- <원본대조필>의 변정법적 의미화 과정 : 모순의 일체화 → 성형과 맨얼굴의 상호 모순을 극복하고 동일화
- 의미화의 단계
㉮ 감각적 이해단계 : 거울에 비친 얼굴에 대한 감각적 이해, 중년은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없음을 지각한다. 현실과 꿈의 모순
㉯ 오성적 이해 단계 : 중년 여인은 생활의 안정을 가져오긴 했으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점, 사회적으로 다 인정되는 성형을 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 회의를 품고 자격지심을 갖는다. 모순을 해결하는 답이 바로 성형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이런 단계가 오성이다.
㉰ 새로운 개념의 형성(合)
- 맨 얼굴이라는 감각적 확신과 중년 여성의 성형에 대한 보편적 법칙을 합쳐 빚어낸 새로운 개념
- 중년이 되면 늙어가는 것과 추함이 일치한다면 성형으로 예뻐진 얼굴도 추함은 마찬가지라는 항구적인 개념을 형성함
㉱ ㉲ 변증법적 일치
- 예쁨과 추함, 성형과 맨얼굴이라는 모순을 원본대조필이라는 변증법으로 일치시킨다.
- 젊은 시절에는 예쁨과 추함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50이 넘으면 모두가 그게 그것이다. (종합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