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인위(人爲)도 가해지지 않은 무위(無爲)한 자연 본래의 모습, 강원도 홍천 미약골에서 만났습니다.
자연휴식년제로 지난 15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금지됐던 덕분이죠. 멋진 사진은 유창우 기자가 찍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15년 동안 닿지 않은 계곡은 어떤 모습일까? 생태계와 산림 훼손을 막으려고 지난 1997년부터 강원도 홍천 미약골에 내려졌던 자연휴식년제가 지난 6월 해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5년 동안이나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일까, 산에 자주 다닌다는 이들도 미약골을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홍천군 문화관광 웹사이트(www.great.go.kr)를 찾아봤다. 미약골은 홍천군에서 지정한 ‘홍천 9경(景)’ 중 세 번째에 당당히 올라 있었다. 옛날의 한 풍수가가 우연히 계곡에 들어섰는데 학이 울더란다. 더 들어가니 촛대바위가 치솟았고,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을 법한 물웅덩이 뒤로 기기묘묘한 바위와 폭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비경이 이어졌더란다. 신선의 세계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계곡의 풍광에 감탄한 풍수가는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약골은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홍천강 발원지라는 설명이다.
읽고 나니 미약골이 어떤 곳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홍천은 이제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이 됐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서울 한복판에서 미약골까지는 2시간30분. 미약골 입구는 56번 국도 옆으로 나있었다. 계곡 쪽 국도변을 따라 철조망이 쳐 있는데, 작은 아치 모양 입구 위로 ‘미약골 테마공원’이라는 푯말이 있다. 골짜기 입구와 푯말 글씨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아 한 번 지나쳤다가 차를 돌려 돌아와야 했다. 입구에는 차량 너댓 대가 주차돼 있었다. 입구 옆 안내판에는 웹사이트에 나온 내용과 같았으나 ‘계곡을 따라 1.8㎞를 올라가면 폭포가 있다’는 내용이 달랐다.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을 내려가니 짙은 초록빛 나무 그늘 사이에서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캠핑이나 피크닉하기 알맞은 터가 정비돼 있었다. 너댓 가족 정도가 텐트를 치고서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계곡물에 담가둔 수박과 참외를 꺼내러 온 여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한적한데다 텐트 칠 자리도 넉넉하고 돈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캠핑족들을 뒤로 하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캠핑장 바로 뒤 약간 높은 지대에 ‘홍천강 발원지’라는 글씨가 비석처럼 생긴 큰 화강암에 새겨져 있었다. 오솔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떨어진 낙엽이 쌓여 썩고 다시 쌓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긴 폭신한 쿠션감이 발바닥에 유쾌하게 전달됐다. 계곡 물소리가 귀를 시원하게 했다.
얕은 오르막을 올라가니 한낮에도 햇볕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짙어졌다. 산림청이 세운 ‘입산 금지’ 푯말, 그리고 자연휴식년 기간 오솔길을 막는 철조망이 쳐 있었던 구조물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는 여성 둘을 만났다. “폭포를 보았느냐”고 묻자 “있긴 있다는데 조금 올라가면 길이 끓겨서 걸어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솔길이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곧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러곤 길이 뚝 끊겨 있었다. 진짜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데, 징검다리처럼 보이는 돌 몇 개가 보이고 그 뒤 계곡 반대편에 사람 혹은 짐승이 오간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기왕 왔으니 폭포는 보고 가야 할 것 같아 징검다리를 건넜다. 낮은 언덕을 넘자 다시 계곡을 따라서 길이 나왔다.
15년간의 출입통제를 풀고 사람의 발길을 받아들이길 시작한 강원도 홍천 서석 미약골.
들어가는 입구는 길이 잘 나있는 것 같으나 들어갈수록 길은 모습을 감추고 숨박꼭질을 한다.
계곡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로 건너기를 열번정도 하며 가다보니 홍천강의 발원지라는 폭포가 나온다.
미약골은 더이상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고 폭포에서 멈추라한다.
계곡을 1시간쯤 거슬러 올라갔을 때 나온 조용하고 평온한 지점. 여기까지는 그래도 걸어올라갈
만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후부터 훨씬 험해집니다. 가려고 마음 먹은 분들은 아쿠아슈즈를 단단히
신는 게 안전하실 겁니다. 사진은 유창우 기자가 찍었습니다.
희망 혹은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면 깨끗이 포기할 수 있지만, 희끗희끗 보이는 상황은 포기하지도 못해 가장 괴롭다. 폭포를 찾아 미약골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딱 그랬다. 썩어서 부러진 나무가 나뒹굴고, 도저히 인간이 다닐 수 없을 듯한 길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계곡 이쪽과 저쪽을 여러 차례 왔다갔다했다.
산에서는 해가 일찍 저문다. 오후 3시부터 두 시간여 올랐지만 폭포는 보이지 않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폭포 찾기를 포기하고 계곡을 내려왔다. 미약골 아래쪽에 있는 ‘별빛 흐르는 마을’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저녁 때 펜션 주인과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휴대폰에 저장된 폭포 사진을 보여줬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데, 왜 포기하셨어요.”
다음날 일찍 계곡을 다시 올라갔다. 어제 다녀간 길인데도 낯설었다. 그만큼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계곡이다. 미끄러지고 물에 빠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계곡 위쪽에서 세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내 올라가니 드디어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험악하달 정도로 크고 억센 바위가 3쯤 쌓여 있고, 그 위에서 물이 세차게 떨어졌다. 물이 여기저기로 튀면서 허연 물안개를 일으키고, 그 속에서 햇볕이 반사되면서 작은 무지개가 여기저기 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원초적 자연.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이라곤 오로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벅찼다.
이내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후들후들 떨렸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의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추위를 참지 못하고 이내 폭포에서 몸을 돌려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미약골 그리고 그밖의 홍천 여행수첩
계곡 앞에서 조금 있으니 춥더군요.
미약골: 계곡을 올라갈 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안내판이나 표식이 없고,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거나, 길이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있다시피 한 구간이 대부분이다. 최근 한반도를 휩쓴 태풍의 영향으로 그렇잖아도 탄탄하지 않게 쌓여있던 돌들이 굴러내리거나 불안정해졌을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편이 가장 쉽다. 서석면사무소(033-433-4032)에 현지·현장 상황을 문의하면 가장 안전하다. 캠핑장은 아직 공간이 넉넉한 편이나, 화장실 외에는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다. 미약골 입구 아래 있는 펜션 ‘별빛 흐르는 마을’이 깔끔하다. .
미약골
위 치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은 높은산과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풍수가가 지세를 둘러보고 삼정승 6판서가 나올 명당자리가 있어 학이 울고 촛대바위가 아름답게 치솟았으며 선녀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는 암석폭포 등 바위들이 각기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고 있어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 이름 지었다 하며, 원시림의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서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샘솟아 400리를 흘러 북한강 청평댐으로 유입되는 홍천강의 발원지다.
제5경 가령폭포
위 치 내촌면 와야리 가령폭포는 자연속에 숨겨진 오지의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숨어 있으며 개령폭포라고도 불리운다. 가령폭포는 최근 생태체험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백암산과 더불어 우렁찬 굉음을 토하며 수십미터(50여m)의 낭떠러지를 뒤흔들며 내려꽃는 자태가 웅장하다. 주위에는 수많은 종류의 산나물과 약초,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어 산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해발 950m 어사리덕 작은 산골샘(약용샘물이 나오는 샘)에서 솟은 청정수가 400리 홍천강으로 발원하는 비레올 계곡의 무명담소와 가령 폭포가 시원함을 더해준다.
가령폭포는 숲에 가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폭포로 알려져 있다. 폭포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어, 아직도 깨끗한 폭포수와 자연스런 멋을 간직하고 있는 폭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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