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1코스-1
제주 생태계의 보고, 곶자왈 숲길을 걷다
제주행 항공요금이 파격적으로 싸게 나와 곧바로 예약을 했다.
주말요금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 편도요금으로 두 사람 왕복티켓을 확보하였다.
물론 왕복 모두 주말을 피한 평일의 손님이 적은 시간대이지만 직장에서 퇴직을 한 상태라 우리에게는 문제될 게 없었다.
일단 표부터 확보하고 그동안 걷지 못한 제주올레 중 11, 12, 13코스를 걷기로 했다.
마침 모슬포에서 가까운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아내와 형제처럼 지내는 후배가 있어 그 집의 빈방을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후배도 만나고, 걷고 싶은 올레길도 걷게 된 셈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계속해서 내리던 비가 아침에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그쳤다.
승용차로 데려다주겠다는 후배의 호의도 뿌리치고 버스를 타고 모슬포까지 이동했다.
그동안 제주시와 가까운 북쪽 코스만 주로 걸었던 터라 오랜만에 서귀포시 땅을 밟는다.
모슬포하모체육공원 앞에서 제주올레 11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체육공원에서 도로를 건너자 오좌수의거비(五座首義擧碑)가 눈길을 끈다.
오좌수의거비는 1995년 6월 17일 서귀포시 모슬포청년회의소가 다섯 의사의 행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세웠다.
다소 생소한 오좌수의거비의 내용을 보니 이렇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이후 일본어민의 제주연안 어업침탈이 가속화되었다.
1887년 8월 가파도에 6척의 일본 잠수기선이 정박하여 어로작업을 하던 중 식수를 찾아
대정읍 하모리 신영물에 온 일본인들이 노략질을 하고 부녀자들을 능욕하였다.
이에 격분한 이 마을 출신 이만송·이흥복·김성만·정종무·김성일 등 5명이 주동이 되어 청년들을 이끌고 일본 어부와 격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 이만송은 일본인의 칼에 참수당하고, 김성일은 손이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조정에서 다섯 의사의 의협심에 감복하여 좌수(座首)의 직을 내렸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올레길은 도로에서 모슬포항 쪽으로 이어진다. 모슬포항에는 주로 어선들이 드나들고,
가파도와 마라도를 가는 여객선은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운진항에서 출발한다.
여객선터미널만 운진항에 있고, 어항으로서의 기능은 모슬포항이 수행하기 때문에
모슬포항 근처에는 횟집 같은 식당이 밀집돼 있고, 활어직판장도 여기에 있다.
모슬포항은 제주도 남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항구로,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 오사카 항로가 개설되기도 했고
목포를 오가는 정기여객선도 있었다. 주변 바다는 방어·도미·옥돔·감성돔·삼치·우럭·전갱이 등 다양한 어족이 서식하여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국내최대의 방어 생산지로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마라도를 중심으로
방어어장이 형성된다. 해마다 11월 하순에는 모슬포항 일원에서 ‘최남단 방어축제’가 열린다.
올레길은 모슬포항 북쪽 끝자락을 지나게 된다.
대정오일시장 쪽으로 가는데, 제주도 전통가옥을 그대로 살린 ‘나비정원’ 커피숍이 운치 있다.
끝자리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 대정오일시장은 농·수·축산물과 가공품, 의류 및 신발, 기타 가공품 등 다양한 품목이 판매된다.
마을 중심가와 모슬포항이 인접해 있어 모슬포 주민들은 물론 가파도·마라도 주민들,
항구에 정박 중인 어선의 선원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에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장날이면 주변 도로에 주차하기 힘들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은 오일장이라는데,
오늘은 장날이 아니라서 사람 한명 찾아볼 수 없다.
대정오일시장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곧바로 바다가 나오고, 바닷가에 철모와 해녀상을 형상화하여 만든
‘삼다도 소식’이라는 노래비가 서 있다. 노래비는 제주 근대 노래의 발상지였던 옛 군예대(軍藝隊) 건물터에 세워졌다.
‘군예대’는 한국전쟁 당시 국내 유명작곡가와 연예인 160여명이 모슬포에 주둔한
육군 제1훈련소 훈련병의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위문공연과 군가를 보급했던 곳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삼다도소식’ 노래는 어렵고 힘든 시절에 이곳 바닷가에 있었던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건물에서 모슬포 앞바다를 배경으로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만들어졌다.
노래는 인기가수 황금심이 불렀다. 이후에도 삼다도소식은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려졌다.
해변길을 걷는데 파도가 거세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해변바위들이 묵묵하게 받아들인다.
해변안쪽으로는 제주의 밭들이 자리하고 있다. 해변길을 걷다가 11코스를 걷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이 퇴직을 하고, 지난봄에는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서 10코스까지 걷고,
오늘부터 3개 코스를 걸을 예정이란다.
나도 올해 퇴직한 처지여서 퇴직 후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퇴직을 하고 나니 오랜만에 자유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어서 좋단다.
나 역시 그렇다. 이렇듯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 올레길의 재미를 더해준다.
해변길을 걷다가 모슬봉을 바라보며 바다와 헤어진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밭담을 따라 가다보면
제주도 전통가옥이 밭가에 자리하고, 밭에서는 마늘들이 겨울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 북동쪽인 제주시 구좌읍이나 성산읍에서는 당근과 월동무를 많이 재배하는데, 남서쪽인 이곳 대정읍에서는
마늘을 주로 재배한다. 11코스는 근래에 코스가 조정되어 기존코스인 대정여고를 거치지 않고,
대정고등학교 앞을 지나 모슬봉으로 곧장 오른다.
모슬봉(180m)은 점성이 적은 용암이 평탄하게 흘러 내려 형성된 완만한 방패 모양의 화산이다.
모슬봉은 평야지대에 솟아 있어 대정읍은 물론 제주시 한경면에서도 오름의 모습을 확연하게 볼 수 있다.
모슬봉으로 오르다보니 대정읍내와 넓은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육지의 다른 평야는 겨울철이면 농작물 수확이 끝나고 텅 빈 채 휴식을 취하는 곳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마늘을 비롯한 양배추, 부루커리 같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어 여전히 푸르다.
평야 뒤로는 송악산과 산방산 사이에서 형제섬이 손짓한다.
형제섬은 제주올레 10코스가 지나는 사계해변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모슬봉으로 다가오는 풍경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산방산과 단산(바굼지오름)이다.
산방산(395m)은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모양의 화산으로 분화구가 없고 사방이 절벽을 이룬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모슬봉이 종을 엎어놓은 것 같다면 앞쪽으로 보이는 단산(바굼지오름·158m)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봉우리가
박쥐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다. 오름의 형체가 박쥐를 닮았다고 해서 바굼지오름이라 불렀다.
바굼지오름은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주는 여느 오름과는 달리 날카로운 모습이다.
길은 모슬봉 정상을 거치지 않고 북쪽 자락으로 내려선다. 모슬봉 자락에는 유난히 공동묘지가 많다.
한 생애를 열심히 살다간 선조들의 영혼이 이곳 묘지에 스며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묘지 옆에서는 억새가 흔들리며 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모슬봉에서 내려와 밭담길을 걸을 때는 고향 길처럼 푸근하고 편하다.
밭에서 풍겨주는 흙냄새는 고향의 향기 같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밭에는 감자가 심어진 곳도 있는데, 11월에 감자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성모마리아상과 십자가가 세워진 천주교묘지를 지나 천주교대정성지-정난주마리아묘에 도착했다.
성지에 들어서니 검은색 현무암으로 쌓은 아치형 문 앞에 아기를 안고 있는 정난주의 조각상이 있다.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 황사영의 부인이었던 정난주는 명문가의 장녀였다.
16세에 급제해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편 황사영은 중국으로 천주교박해 상황을 전하는 편지를 썼다 발각돼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황사영의 어머니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도에 각각 관노비로 보내졌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아들 황경헌은 제주도 가는 길에 들른 추자도에 홀로 남겨졌다.
1801년 제주도에 도착한 정난주는 1838년 숨질 때까지 제주에서 살았다.
“제주목 관노로 정배된 정마리아는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냈으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켜 노비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서울 할머니’라 불리며 이웃들의 칭송 가운데 살아갔다.”
묘 입구에 써진 글이 그의 삶을 알려준다.
이맘 때 올레길을 걷다보면 노랗게 익은 귤밭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오늘 역시 곳곳의 귤밭들이 제주의 늦가을을 풍성하게 장식해준다.
주렁주렁 매달린 귤들은 길손들에게도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