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오는 comix park 오리지널 글.
쟁점_우리나라 작가 양성 시스템의 문제점
오늘의 이슈는 우리나라 만화작가 양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민해 보는 것이나.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작가 양성 시스템'의 한 축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학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만화평론가로 만화비평을 했으니 이러저러한 입장에서 비판과 대안 제시가 가능할 것 같다. 블로그에서 이런 류의 글을 몇번 쓰기도 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뒤져보시기를.
일본과 우리나라의 전통적 만화작가 양성 시스템은 만화가 지망생이 스승의 작업실에 입주해 잡일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는 도제식 교육 시스템, 즉 문하생 시스템이었다. 이 문하생 시스템은 60년대 장르만화가 발전하며 본격화되기 시작해 90년대까지 만화작가를 양성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데뷔한 만화가들은 자신의 스승을 존경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 예로 박기정 선생님같은 경우 이두호, 김마정, 박흥용 등의 작가가 문하생으로 있었는데, 이두호 선생님이나 김마정 선생님은 여전히 박기정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신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그런데, 이 안정적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당시 급격하게 도입된 일본만화를 보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롤 모델'을 '한국의 작가'대신 '일본만화'로 삼은 것이다. 그들은 스승 밑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모여 동인를 결성해 함께 공부하며 좌충우돌 만화를 그렸다. '프로지향 동인'의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러한 프로지향 동인-만화잡지 공모전을 통해 90년대 중반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데뷔하고 나서도 함께 작업하는 문하생을 필요로 했고, 문하생 제도는 60~80년대의 엄격한 도제식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무릎을 맞대고 작업의 기술을 전수받은 특징은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다.
즉, 90년대 중반 이후 만화문법이 교체되면서 신진 작가진이 프로지향 동인-만화잡지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지만, 신진작가진과 함께 작업하는 문하생 제도라는 작가양성, 교육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는 말이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만화계는 가장 시장이 활발했던 시기였고, 패러다임이 극변하던 시기였다. 당시 만화계는 몇개의 대척점을 만들었는데 <만화방 공장만화 vs 작가주의 만화>라는 대척점과 <망가 vs 우리만화>라는 대척점이 그것이었다. 당시 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활동했던 진보진영(민족예술진형이나 민중예술 진영 모두)의 몇몇 사람들은 '만화'에 주목해 작품활동과 평론활동을 시작하며 만화에 대한 비평이 처음으로 제출되기 시작할 때였다. (70년대 <뿌리 깊은 나무> 등을 통해 활동한 오규원, 김현과 같은 몇몇 선구적 사례를 제외한다면)
이 젊은 진보적 비평가들은 <만화방 공장만화 vs 작가주의 만화>, <망가 vs 우리만화>라는 전투적 전선을 형성했는데, 그 와중에 전통적 도제식 작가 양성 시스템이나 90년대 등장한 젊은 만화가들의 망가풍 만화(와 그것을 전수하는 문하생 시스템)들은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이 문제는 '문화를 대하는 선명성 투쟁'의 영역이기도 해다. 한편으로 이런 흐름 속에 새로운 만화를 고민하는 그룹이 등장했다. 이들은 김형배, 이희재, 이두호 등 전통적 작가군들 속에서 작가주의적 작품 성향을 보여주는 작가들과 함께 만남을 갖기 시작했고, 조직으로는 우만협, 교육기관으로는 만화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만화교육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만화학원은 있었으나 그 운영 수준이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지닌 정도는 아니었고 주로 기초 정도를 가르쳐 주는데 그쳤었다. 만화아카데미에 이르러 만화 커리큘럼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김영삼 정부시절 <쥐라기 공원 vs 현대자동차>라는 불멸의 수사가 등장하며 문화산업이 대두되었고, 공주전문대학이 전국에서 최초로 '만화'를 가르치는 과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만화가 정규교육과정에 편입된 것이다. 이러면서 작가 양성 시스템에 '정규교육과정'이 등장했다.
90년대 후반 정부는 대학설립을 대폭 완화해 지방에 많은 대학(전문대학)들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교육자원(고교 재학생)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대학은 많고 대학에 갈 사람은 적은 시대가 된 것이다. 위기는 전문대학과 지방대학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전문대학과 지방대학은 위기를 탈출할 방도를 찾았는데, 그것은 '장사가 되는 과를 신설'하는 것이었다.
이 때 여러 과가 신설되는데 최고의 상종가를 친 것이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과다. 여기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장르적 구분이나 교육 커리큘럼에 대한 차별성없이 초반(물론 지금도) 하나의 과로 혹은 유사한 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경향 때문이다. 과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결정적 문제가 발생했다.
도대체 누가 가르치지?
대학의 교수 임용기준은 여전히 완고했다. 석, 박사라는 타이틀이 필요했고, 기존 대학 교수들(미대 교수들) 자기 인맥으로 후배들을 심으려고 했다. 교수 임용이 적체되어있는 미대에서 만화전공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과의 신설은 그야말로 '엑소더스'였다. 어차피 그림으로 그리는 것, 과를 신설할 때 미대 교수가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만화가들은 학력이 안되고 가르쳐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이야기하며(게다가 만화가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었고, 관심도 없었다) 자기 출신 대학의 후배들을 시간강사로 데려다 썼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대학에 온 학생들에 만화를 그리면 '너 왜 만화를 그리냐'며 힐난하는 웃기 못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웃지 못한 상황은 지금도 상당 부분 반복되고 있다.
몇몇 만화가들은 초기 과를 만들 때 얼굴마담으로 들러리만 서기도 했다. 만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자 대학에서는 주로 현역에서 은퇴한 선생님들이 시간강사 자리를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런 문제는 반복되었다. 물론 지금도.
90년대 후반 몇몇 만화가들은 학위과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간혹 만화를 가르치는데 너무나 큰 어려움을 느낀 학교에서 학위를 딴 만화가를 교수로 초빙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아주 특이한 경우다. 하지만 이런 특이한 경우, 학위를 딴 만화가들은 주로 비교적 직업이 안정적이었던 시사만화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재에 시달리며 당장 극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대학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만화가가 되고 싶은 지망생들은 고달프고 막막한 도제식 시스템 대신 편안하고 달콤해 보이는 정규 대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 대학의 사정은 서글펐다. 만화가가 아닌 예술가들이 만화과의 교수로 만화를 가르치다 보니 커리큘럼에서 지망생들의 생각과 엇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만화는 만화인데, 그런 만화를 하면 욕을 먹었다.
선생이 상업잡지에 연재하는 것을 보며 상업잡지에 연재하는 감각,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마감을 사수하는 의지 등등을 배워야하는데 마치 회화를 하듯 만화를 그리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진짜 만화를, 장르만화를 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만화과에서 모범생이 되어야할 그들)은 만화과의 열등생이 되기도 했다.
너는 왜 망가를 그리냐?
이런 욕을 먹기도 했다.
몇몇 유명대학의 실기시험에 합격을 위한 일정한 스타일이 생겼다. 모모 대학에서는 유럽의 그래픽 노블 스타일을 선호하고, 모모 대학에서는 김정기 풍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공식이 생겨났다. 유명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만화가'가 아닌 '유명 학원 강사'가 되기도 했다.
만화 관련과에서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을 대거 흡수하다 보니, 전통적 문하생 시장은 찬바람이 불었다. 조금만 힘들어도 그냥 나가버렸다. 심지어 마감 하다가 화실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장르만화 시장에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만화 작가 양성 시스템의 오늘이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은 똑바로 지켜봐야한다. 도대체 내가 되고 싶은게 무엇인지. 만화관련과를 가는 것이 만화가가 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그 내실을 가려보아야한다.
한국만화에 만화 작가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몇가지를 충고한다.
첫번째, 도제식 작가 양성 시스템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지망생들도 문하생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두번째,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는 과들 중 명확하게 <만화>를 가르치는 과와 아니면 <만화와 같은 컨템포러리 예술>을 가르치는 과를 구분해야 한다. (적어도 만화과를 통해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이라면)
세번째, 대학에서 대중예술로 <만화>를 가르치는 과라면, 누가 어떻게 만화를 가르치는지를 잘 가려보아야한다. 선생들(전임 교수진은 물론 강사진들까지)의 경력과 활동 상황을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네번째, 만화가가 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리고 나의 친절하며 존경하는 벗인 어느 작가의 충고를 받아 2개를 덧붙인다.
이건 한국의 장르만화에 종사하는 작가들에게 전하는 조심스러운 충고.
다섯번째, 기존의 작가들도 '저렴한 노동력'으로 문하생을 부려먹거나 스승의 그림체에서 자유롭지 못한 도제식 시스템의 문제해결과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화실에 합리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함께 배우고, 문하생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적절한 선의 평가가 동반되는)
마지막으로 이건 나와 동료들을 비롯해 만화를 가르치는 대학의 만화전공 교수님들께 드리는 충언.
여섯번째, 대학 교육은 도제식과 다른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커리큘럼과 방법론이 제시되어야한다. 현장에서 경험할 다양한 사전경험을 수업을 통해 수행할 수 있고, 지망생이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만화의 공적 교육체계의 수립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현장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선생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많은 만화관련과가 많아봐야 한 명 정도의 만화작가 출신 교수를 임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은 거대한 학교 조직 안에서 외롭고 쓸쓸한 싸움을 하고 계신다. 어느 대학 교수님은 "과목명으로 '만화'라는 이름을 넣을 수 없어 '카툰'이라고 했다"며 씁쓸하게 말씀하신 분들도 계신다. 슬프게도 우리 대학, 특히 예술대학은 줄에 의해 자신의 출신 대학 후배를 끌어주는 방법으로 교수가 임용된다. 그리고 그들은 만화과 교수가 된 뒤, 만화에 관심을 갖는다. 현장성은 떨어지고, 권위는 가득하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학교에 온 학생들과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변화는 대학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강사 임용에서부터 줄과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현장경험과 실력으로 임용해야한다. 갈길이 멀고 험하다. 여전히. 그리고 세상은 진짜 본질은 보기 싫어한다.
*수정하고 스크랩되도록 허용합니다.
*2008년 신년에 신년사를 쓰는 것을 대신해서 박인하 쓰다.
*추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현실의 문제를 아는 사람이 현실을 바꾸어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