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황궁으로 잡혀온 목소저 위소보는 서재로 가서 강희제를 배알한 후 오후가 되어 다시 주방으로 갔다. 얼마 후 전노반이 네 명의 사환을 데리고 깨끗이 껍질을 벗기고 씻은, 커다랗게 살이 찐 돼지 두 마리를 떠 메고 들어왔다. 한 마리의 살코기만 하더라도 삼백여 근은 나갈 것 같았다. 전노반은 위소보에게 말했다. "계공공, 어르신게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이 복명화조저를 잡수시면 몸에 가장 좋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잘라 구 워야 하는 것입니다. 소인이 한 마리의 돼지를 어르신의 방으로 옮겨 놓을터이니 내일 이른 아침에 어르신께서 고기를 잘라 구워서 잡수십시 오. 그리고 다 먹지 못하면 주방에 명하여 소금에 절여 놓도록 하십시 오." 위소보는 그의 이런 수작에는 반드시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 했다. "꽤 생각이 치밀하시구려. 그렇다면 나를 따라오시오." 전노반은 한 마리의 돼지를 주방에 남겨놓고 다른 한 마리의 돼지를 떠 메고서 위소보의 거실로 갔다. 상선감을 돌보는 태감의 거처는 주방과 가까웠다. 그 돼지를 방 안으로 떠메어 들어간 이후 위소보는 소태감에 게 명하여 돼지를 메고 온 사환들을 주방에 데리고 가서 기다리도록 했 다. 그리하여 세 사람이 나간 이후 문을 굳게 닫았다. 전노반은 나직이 물었다. "위향주, 방 안에 다른 사람은 없겠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노반은 몸을 굽히더니 가볍게 그 돼지 를 뒤적였다. 그러고 보니 그 돼지의 배를 갈라 놓은 곳을 몇 조각의 돼지껍질로 가로 붙여서는 봉해 놓고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돼지의 배속에 무슨 이상한 물건을 숨겨 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혹시 무기가 아닐까? 천지회에서는 황궁에서 사람을 죽여 큰 소란을 피 우려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가슴이 두근 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전노반은 봉해 놓았던 돼지껍질을 벗겨내더니 두 손으로 돼지의 배를 열어 젖히 고 가볍게 무엇인가를 안아서 꺼내 놓았다. 위소보는 '어!'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안아낸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전노반은 그 사람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사람의 체구는 매우 수척 하고 적으나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열 너댓 살의 소녀였다. 그녀 는 몸에 엷은 속옷을 입고 있었는데 두 눈을 꼭 감고서 꼼작도 하지 않 았다. 다만 가슴이 숨을 쉬느라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을 뿐이었다.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여 나직이 물었다. "이 소저는 누구시오? 왜 데리고 왔지?" 전노반은 말했다. "이 여자는 목왕부의 군주(君主)입니다." 위소보는 더욱더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목왕부의 군주라고?" 전노반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목왕부 소공야(小公爺)의 친 누이동생이랍니다. 그 들이 서 세째형을 사로잡아 갔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군주를 인질로 사 로잡아 그들로 하여금 세째형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한거죠." 위소보는 놀람과 함께 기쁨을 느끼고 말했다. "그것 참 잘했군. 잘했어. 그런데 어떻게 잡아왔소?" 전노반은 말했다. "어째 서천천 형이 잡혀 가고 위향주께서 뭇형들을 데리고 두번째로 양 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따지게 되었을 때 속하는 바로 나가서 수소문을 했죠. 목왕부의 그 사람들이 양류 골목 안에 거처하고 있는 곳 이외에 도 달리 머무는 곳이 없는가를 알아본 것입니다. 서 세째형을 혹시나 그들이 다른 처소에 감금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경성에 그들 패거리 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가를 알아 내려고 했읍니다. 그렇게 알아내야만이 정말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읍니까?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 정말 목왕부의 사람들은 적지 않게 북경에 들어와 있던군요. 목 씨 집안의 소공야를 우두머리로 해서 한 떼의 고수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겠읍니까?" 위소보는 눈쌀을 찌푸렸다. "제기랄, 경성에 있는 우리 청목당의 형제들은 몇 분이나 되오? 열 사 람으로써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소?" 전노반은 말했다. "위향주, 걱정하실 것 없읍니다. 목왕부가 이번에 북경으로 떼를 지어 들어오게 된 것은 우리 천지회와 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매국노 오삼계의 큰 아들 오응웅(吳應熊)이 경성에 왔기 때문이었 읍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왕부에서는 그 오가라는 작은 매국노를 찔러 죽이겠다는 것이오?" 전노반은 말했다. "그렇지요. 위향주는 정말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군요. 큰 매국노나 작 은 매국노가 운남땅에 있으면 좀처럼 손을 써볼 도리가 없게 되죠. 그 리하여 일단 운남에서 떠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해볼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매국노 역시 여간 엄밀하게 방비하고 있 지 않으며 곁에는 적잖은 무공의 고수들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죽인다는 것도 역시 쉬운 노릇은 아니었읍니다. 그리고 목왕부의 사람 들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처소가 있었읍니다. 속하가 그곳으로 가서 살 펴본 결과 그 사람들은 모두 집에 없었으며 집안에서 세째형의 종적도 찾아 볼 수 없었읍니다. 다만 이 계집애와 두 시중을 드는 여인네만이 남아 있잖겠읍니까. 이야말로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 고..." 위소보는 그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그대는 바로 슬쩍 그녀를 잡아온 것이오?" 전노반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이 나이 어린 소녀를 목왕부에서는 마치 봉황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죠. 이소군주가 우리 손에 있는 이상 서 세째형은 끄덕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들로써는 서 세째형을 받들어 모시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전형의 이번 공로는 퍽 크다고 할 수 있소." 전노반은 말했다. "위향주께서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런데 이 소군주를 잡아다 어떻게 할 참이오?" 그러면서 그는 땅바닥에 눕혀져 있는 소녀를 몇 번 바라보며 속으로 생 각하였다. (이 계집애의 얼굴은 참 예쁘구나!) 전노반은 말했다. "이 일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지요. 위향주의 뜻에 따라 처리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위소보는 생각해 보고 나서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할 참이오?" 그는 천지회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성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입으로는 자기를 향주 라고 존칭하고 향주의 분부대로 어쩌구저쩌구하지만 기실 각기 배속에 는 따로 꿍꿍이속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기 의 찬성을 듣게 된다면 모든 책임을 바로 위향주 자신에게 돌릴 수 있 어 이후 어떤 책을 잡힌다 하더라도 그들이 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수작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상대하는 요령으로는 되묻는 방법을 썼다. 그것은 '그대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라는 한 마디였다. 전노반은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이 나이 어린 군주를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아서 목왕부의 사람들이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목씨 집안에서 경성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적지 않읍니다. 무론 작은 매국노인 오응웅을 죽이기 위해서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사람을 죽이지 않았읍니까. 그리고 서형이 그들에게 사로잡혀 갔으니 지금쯤 우리 천지회의 모든 연락 장소를 그 들은 반드시 알아내어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우 오 줌을 싸거나 방귀를 한번 뀐다고 하더라도 아마 목왕부의 사람들은 그 것마저 모두 알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빈정거리듯 웃었다. 그러나 이 전노반의 이야기하는 투가 퍽 이나 자기의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하여 그는 웃으면서 말했 다. "전형, 우리 앉아서 천천히 상의하도록 합시다." 전노반은 말했다. "예, 예. 향주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아서 계속해서 말했다. "속하가 이 소군주를 돼지 배속에 숨기고서 궁안으로 들어온 것은 첫째 로 궁문을 지키는 시위들의 검색을 피하자는 것이고, 둘째로는 목왕부 뭇사람들의 이목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제기랄, 목공야의 휘하에 정말 무서운 인물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방비하지 않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소군주를 이 궁 안에 옮겨놓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 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는 이 소군주를 궁에 숨겨 놓을 작정이오?" 전노반은 말했다. "속하가 감히 그렇게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 없읍니다. 모든 것은 위향 주님께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궁 안에 숨겨 놓는 것은 그야말 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적절한 조처라고 할 수 있읍니다. 목왕부의 고수 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대궐 안 시위들을 당해낼 수는 없읍니다. 소 군주가 황궁 안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알아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무슨 능력이 있어 황궁으로 들어와 사람을 구하겠읍니까. 만약 그들이궁안으로 들어와 사 람을 구출해 나갈 정도라면 오랑캐의 황제까지도 잡아갔을 것입니다. 천하에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속하는 당돌하게도 사전에 위향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멋대로 소군주를 궁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위향주에게 적지 않은 위험을 안겨 드리게 되고 또 적지 않게 귀찮은 일들을 안겨 드리게 되었으니 실로 죽을 죄를 졌다 하겠읍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놓고서는 죽을 죄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 멀쩡해 있지 않는가? 소군주를 궁안에 숨기는 것은 정말 좋은 계책이긴 하다. 목왕부의 사람들은 첫째로 생각해 내지 못할 것이고, 둘째로 구출해 내 지 못할 것이다. 전노반 네가 그토록 대담한 짓을 했다면 나라고 해서 담이 적다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그리하여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의 계책은 매우 좋소. 소군주를 이곳에 숨겨 두도록 하시오" 전노반은 말했다. "예, 예. 위향주께서 된다면 틀림없이 될 것입니다. 속하는 또 장래 일 이 해결된 이후 소군주를 어쨌든 그들에게 되돌려 보내 주어야 하는 문 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군주께서 이 며칠 동안 궁 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면 그녀의 신분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희 가게의 돼지 잡는 도살장 격인 지하실에다 감 금하여 소나 돼지의 피비린내를 맡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미안한 일이 요."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매일같이 그녀에게 복령, 당삼, 화조, 계란 등을 먹이면 될것이 아니 겠소." 전노반은 헤헤 웃고 말했다. "더군다나 소군주는 나이가 아직 어리나 어쨌든 여자입니다. 우리 이와 같이 못난 남자들과 함께 머문다는 것은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 수 없 읍니다마는 위향주와 함께 있으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건 또 어째서요?" 전노반은 말했다. "위향주께서는 나이가 젊으시고 더군다나 또...또 궁에서 일을 하고 계 시니 자연... 자연 아무 일도 없지 않겠읍니까!" 말하는 게 우물쭈물하는 것이 약간 그대로 말하기는 거북한 모양이었 다. 위소보는 그의 표정이 겸연쩍어하는 것을 보고 생각해 본 이후 그제서 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래 당신은 내가 태감이니까 소군주를 나에게 맡겨도 그녀의 명성에 장애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군. 하지만 당신은 이 태감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바로 그가 진짜 태감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해 본 후에야 깨달은 것이 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노반의 한 마디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전노반은 물었다. "위향주의 침실은 바로 안쪽에 있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노반은 몸을 굽히더니 소군주를 안고서는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눕혔다. 방 안에는 본래 커다란 침대와 자 그마한 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해대부가 죽은 이후 위소보 는 작은 침대를 내가도록 한 것이다. 그는 남에게 숨길 일이 많기 때문 에 소태감을 불러 자기의 방에서 거처하면서 시중들게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전노반은 말했다. "속하가 소군주를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의 등심에 있는 신 당혈(神堂穴), 양강혈(陽綱穴)과 그녀의 뒷 목에 있는 천주혈(天柱穴) 을 짚어 그녀로 하여금 꼼짝 못 하도록 했으며 또한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읍니다. 위향주께서 그녀에게 밥을 먹이실 때 그녀의 혈도를 풀 어 주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먼저 그녀의 다리에 있는 환도혈(環跳穴) 을 짚어서 그녀가 도망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목 왕부의 사람들은 무공이 무척고강하나 이 나이 어린 소저는 무공이 대 단치 않읍니다. 하지마는 방비는 해야겠지요." 위소보는 그에게 신당혈과 환도혈이 무엇이며 어떻게 혈도를 짚고 어떻 게 혈도를 푸느냐고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자기 는 청목당의 향주이고 또한 총타주의 제자인데 혈도를 짚는 법과 푸는 것도 모른다면 부하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었다. 어쨌든 일개 소녀를 다룬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소." 전노반은 말했다. "위향주께선 한 자루의 칼을 빌려 주십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칼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지?) 그러면서 그는 신발목에서 비수를 꺼내 건네 주었다. 전노반은 그 비수 를 받아서는 돼지 등을 그었다. 뜻밖에도 그 비수는 예리하기 이를데 없어 돼지고기가 마치 두부처럼 갈라지면서 칼자루 있는 곳까지 푹 들 어갔다. 전노반은 놀라서 칭찬해마지 않았다. "훌륭한 검이군요." 그리고 등골의 살을 두 조각 잘라 내고 앞발을 잘라내더니 말했다. "위향주께서는 남겨서 구어 잡수시도록 하시고 나머지는 소공공들에게 분부하여 주방으로 떠메 가도록 하십시오. 속하는 이만 물러가겠읍니 다. 회(會)에 어떤 사정이 있게 되면 속하는 수시로 위향주에게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위소보는 비수를 받아들고 말했다. "좋소" 그리고 침대 위에 눕혀진 소군주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이 계집애는 잘도 자는군." 그는 본래 한 마디를 하려고 했다. (이 소저가 궁안에서 오래 지체하게 된다면 너무나 위험하오. 만약 다 른 사람에게 발각된다면 그야말로 야단날 일이외다.) 그러나 천지회의 영웅호걸이 어찌 위험을 두려워하랴 하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말을 한다면 상대방에게 무시당하리라고 판단하고 말 하지 않았다. 전노반이 부엌으로 돌아간 이후 위소보는 문의 빗장을 지르고는 창문을 살폈다. 아무런 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침대가에 앉아 그 소군주 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니 그녀는 동그란 눈을 뜨고 침대 위 천정 쪽 을 바라보고 있다가 위소보가 다가서자 재빨리 눈을 감았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편안하게 누워 계시오. 그게 가장 편안할 것이오."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는 옷자락은 전혀 더렵혀져 있지 않았다. 아마도 전노반이 그 돼지 배속을 매우 깨끗하게 씻어서 핏자국을 조금도 남기 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불을 끌어당겨서는 그 녀를 덮어 주었다. 헌데 그녀의 뺨은 눈처럼 희었으며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기다란 속눈썹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마음속으로 무척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웃으면서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소.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며칠 후 그대를 놓아주리다." 소군주는 눈을 떠서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재빨리 눈을 감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 목왕부는 강호에서 굉장한 위풍을 떨치고 있는 셈이지. 그 날 강 소성 북쪽 길에서만 하더라도 그대 집의 백한풍인가 하는 자는 매우 거 드름을 피웠고 전혀 나를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나의 아래 사람에게 맞아 죽었지 않았는가 말이야. 제기랄....!) 이와 같은 생각이 들어 그는 손목을 들고 바라보았다. 손목에는 아직도 시퍼렇게 멍이 든 자국이 남아 있었고 은연중 아픔을 느낄 수 있어 속 으로 생각했다. (그 백한풍은 형이 죽자 화풀이를 할 데가 없으니까 하마터면 나의 뼈 를 분지를 뻔했지. 그런데 뜻밖에도 목왕부의 군주께서 나의 손 안으로 굴러 들어오게 되었으니 내가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을 하고 싶으면 욕을 해도 너는 꼼짝도 할 수 없을 것이야. 하하하하!) 그는 그만 의기양양해진 끝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냈다. 웃음소리에 놀란 소군주는 눈을 뜨고 왜 그가 웃는지 알아 보려고 했 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군주마마이니 대단하시겠지. 제기랄, 하지만 나는 그대를 안중 에도 두지 않아." 그리고 다가가서는 그녀의 오른쪽 귀를 세 번 잡아 당겼다 놓았다. 그 리고 다시 그녀의 코를 잡고서는 두 번 비틀고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 다. 소군주의 감고 있는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줄기의 눈물 방울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울지ㅏ라. 내가 울지 말라고 하면 울지 말아야 해." 소군주는 눈물을 더욱더 많이 흘렸다. 위소보는 욕을 했다. "빌어먹을 계집애가 고집이 세기는, 빨리 눈을 떠서 나를 봐!) 소군주는 두 눈을 더욱더 감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너는 아직도 여기가 목왕부인 줄 아느냐? 빌어먹을, 그대 집안의 유백 방소(劉白方蘇) 사대가장(四大稼蔣)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언젠가는 나의 손에 걸리게 되면 하낙ㅌ이 박살이 나고 말텐데." 그리고는 다시 호통을 내질렀다. "그래도 눈을 뜨지 못하겠어?" 소군주는 다시 힘주어 눈을 감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눈을 뜨지 않겠다면 그 한쌍의 눈동자를 남겨 두었다 어디다 쓰 겠어. 차라리 뽑아 내어서는 술안주를 삼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 그는 비수를 들고서는 칼날이 수평으로 놓여지게 하고 그녀의 눈꺼풀 위에 살짝 갖다 대고 몇번 당겼다 밀었다 했다. 그러자 소군주 는 몸을 흠칫 떨었으나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위소보는 그녀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서 말했다. "그대가 눈을 뜨지 않으려고 한다면 더욱더 나는 꼭 그대의 눈을 뜨도 록 만들어야겠다. 어디 우리 한 번 실험해 보자. 도대체 그대 군주마마 께서 무서운지 아니면이 조그만 건달이며 거렁뱅이인 내가 무서운지 두 고 보자. 우선은 그대의 눈동자를 뽑지 않기로 하지. 눈알을 뽑는다면 그야말로 그대가 이기는 것이 되고 영원히 나를 바라볼 수 엇게 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대의 얼굴에다가 칼 끝으로 뭔가 모양을 새겨 놓아야겠어. 왼쪽 뺨에다가 한 마리의 조그만 자라를 새겨 놓고 오른쪽 뺨에는 한 무더기의 쇠똥을 새겨 놓아야 되겠다. 그리하여 상처에 딱지 가 않게 되었을 때 그대를 거리로 끌고 나가겠다. 그러면 수천 수만의 사람들은 그대를 에워 싸고는 하나같이 말하겠지. '아름답군, 아름다 워. 목왕부의 소미녀(小美女) 왼 쪽 뺨에는 한 마리의 자라가 그려져 있고 오른 쪽에는 한 무더기의 쇠똥이 그려져 있군.' 그래도 눈을 뜨지 않겠소?" 수군주는 전신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저 눈을 뜨거나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인데 위소보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더욱더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위소보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원래 이 계집애는 자기의 얼굴이 못난 것을 알고 나에게 얼굴을 좀 다 듬어 달라고 하는 수작이군. 좋아. 그러다면 먼저 한마리의 자라를 그 려 놓도록 하지." 그리고 그는 탁자 위의 벼루에다 먹을 갈아 붓으로 먹을 찍었다. 이 붓 과 먹, 그리고 벼루는 해로공의 물건이었다. 위소보는 여지껏 한 번도 붓이라고는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붓을 마치 젓가락 쥐듯 하고서는 소군주의 왼 쪽 얼굴에 한 마리의 자라를 그렸다. 소군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곧장 흘러 내렸고 자라를 그려놓은 곳으로 흐르게 되자 한 가닥 먹물자국이 되어 흘려 내리게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먼저 붓으로 모양을 그린 이후 칼로 새기게 된다면 그야말로 도장을 색득 하겠지. 맞았어. 군주마마 우리가 다 새기게 되었을 때 내가 그대 를 끌고 장안문(長安門)큰 거리로 나가 큰 소리로 부르짖을 것이야. ' 누구든지 자라모양을 찍을 사람은 앞으로 ㅏ오시오! 삼문(三文)에 한장 을 찍어 드리겠소.' 어떤 사람이 삼 문의 돈을 내놓으면 내가 검은 먹 으로 그대의 얼굴에 칠을 하고 한장의 백지를 가지고 그대의 얼굴에다 꼭 누르게 되면 한 마리의 자라가 종이 위에 선명하게 찍혀지겠지. 아 마 하루에 한 백 장정도는 찍어낼 수 있을거야. 그렇다면 삼백 문이라 는 동전이 생길터이니 용돈으로서는 충분한 것이군." 그는 한편으로 엉터리 같은 말들을 줏어 대면서 한편으로 소군주의 안 색을 살폈다. 그리고 보니 그녀의 속눈썹이 연신 바르르 떨고 있었다. 아마 매우 화가 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는 매우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오른 쪽 얼굴에다 한 무더기의 쇠똥을 그리게 된다면 돈을 내서 쇠똥 모양이 찍힌 종이를 사려는 사람은 없겠지. 차라리 한 마리의 통통한 돼지를 그려 놓게 된다면 장사가 틀림없이 잘 될거야." ㄱ고 그는 붓을 들어 그녀의 오른 쪽 얼굴에다가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 렸다. 그려진 것은 네발에 하나의 꼬리가 달린 것인데 고양이를 닮은 것인지 아니면 개를 닮은 것인지 자기 자신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 는 붓을 내려 놓고는 은자를 잘라내는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 위 끝을 가볍게 소군주의 왼쪽 뺨에 갖다대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새기겠소. 먼저 자라를 새기되 통통한 돼지는 서두를 것도 없겠지." 소군주는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았다. 위소보 는 어찌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가 졌다는 것을 시인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가위 끝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대고 가볍게 이리저리 그어 댔 다. 그 가위의 끝은 매우 둔했다. 소군주의 살결이 보드랍기 이를데 없 었지만 조금도 상처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이 조그맣고 못된 사람이 정말로 칼을 가지고서 자기 얼굴엥 자라 모양을 그리는 것 으로 생각한 나머지 다급해서 어쩔줄 모르다가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 다. 위소보는 그녀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고 혹시 놀라 죽은 것이 아닌가 싶어 겁이 더럭 났다. 재빨리 손을 뻗쳐서는 그녀의 코끝에 갖다 댔다. 다행히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지라 말했다. "이 계집애가 죽은 척하고 있군." 그리고 생각했다. (죽어도 눈을 뜨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너에게 질 수 있을 것 같아? 어디 우리 두고 보자. 이 위소보는 결코 너와 같은 조그만 계집 애한테 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소보는 물에 젖은 베 조각을 들고서 그녀의 두 뺨에 그려진 먹물을 닦았다. 한 세번 해서야 겨우 다 닦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눈썹은 엷은 편인데 속눈썹은 매우 길었다. 그리고 입은 매우 조그맣고 콧날은 오똑 서 있어서 얼굴을 꽤나 수려한 편이었다. 위소보는 혼잣말 로 중얼거렸다. "그대는 군주마마이시니 마음 속으로 나 같은 ㅅㅎ태감을 업신여기겠 지. 하지만 나 역시 그대를 업신여기고 있으니 피차 일반이군 그래." 잠시 후 소군주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한 쌍의 눈동자가 한 자도 되지 않는 곳에서 배섭게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게 아닌가! 그 만 깜짝놀란 그녀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하하하. 그대는 끝내 눈을 떠서 나를 보았군. 그러니 내가 이겼지." 그는 스스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소군주 가 말을 못하는 점이 재미없게 느껴져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라 입을 열었다. "그대는 혈도를 짚혔는데 만약 풀지 못한다면 밥도 못 먹을 것이고 밥 도 못 먹게 된다면 굶어 죽게 되지 않겠소? 나는 본래 그대의 혈도를 풀어주고 싶지만 혈도를 푸는 방법을 예전에는 배웠으나 지금은 잊어 버리고 말았다오. 그대는 알고 있소? 그대가 모른다면 누워서 강시(강 屍)처럼 꼼짝도 하지 말고 만약 안다면 눈을 세번 깜박거리시오." 그리고 그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수군주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그 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갑자기 그녀의 두눈이 천천히 잇따라 세 번 깜박이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기뻐서 말했다. "나는 목왕부 사람들의 성씨가 목씨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무대가리처럼 멍청하여 아무것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대와 같은 작은 나무토막은 그래도 혈도를 풀 줄 아는구려!" 그리고 그녀를 안아서는 의자 위에 낮힌 뒤 말했다. "잘 보고 계시오. 내가 그대의 몸에 있는 각 부위를 손가락질 하게 되 었을 때 맞으면 눈을 세번 깜박이고 틀리면 눈을 크게 떠서는 꼼짝도 하지 마시오. 내가 혈도를 푸는 부위를 찾는 것은 바로 그대의 혈도를 풀어주기 위해서이오. 알겠소? 안다면 눈을 깜박이시오" 소군주는 세 번 눈을 깜박였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좋소. 내가 가리켜 보지." 그리고 위소보는 소을 ㅃ쳐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손가락질 하며 물었 다. "이곳이 아니오?" 소군주는 대뜸 얼굴이 새빨개져서 한 쌍의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고는 깜박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다시 그녀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이곳이오?" 소군주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 그리고 더욱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러나 뜬 지 오래 되었는지라 그만 참을 수 없어 눈을 깜박이게 되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로군!" 소군주는 황급히 눈을 커다랗게 떴다. 부끄럽고 다급해서 그야 말로 어 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들 두 사람은 다 열 너댓 살밖에 되지 않 았기 때문에 남녀의 일에 대해서는 그저 알듯말듯한 형편이었다. 그러 나 여자애들은 조금 더 일찍 철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위소보로 말하 면 기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소 놀러운 손님과 기녀들의 음란한 행동 거지를 많이 보아 왔는지라 그뜻을 분명히 알 수는 엇었지만 그와 같은 행동이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졌다. 어제 양 류골목길 안에 있는 백씨의 처소에서 받은 수모에 대해 이제는 화풀이 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소군주의 몸이곳 저곳을 가리켰 다. 소군주는 감히 눈을 깜빡이지 못했다. 잘못하여 깜빡이게 되면 큰 일을 그릇치기라도 하는 양 조심을 다했다. 그렇게 되자 얼마 되지 ㅇ 아 그녀의 코 끝에서는 가느다란 땀방울이 맺히게 되었다. 다행히 위소 보는 이때 손가락으로 그녀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혈도를 푸는 곳이 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급히 잇따라 세 번 누을 깜박였다. 따라서 마음을 놓고는 길게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하하하. 과연 이곳에 있었군,.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이 좋지 못해 일시 깜빡 잊엊을 뿐이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게 된다면 그녀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이 계집애가 만약에 손을 써서 나를 때리게 되면 그야말로 귀찮은 노릇 이 아닌가.) 그리고 몸을 둘려서는 두 개의 끈을 가지고 우선 그녀의 두 발을 꼭 묶 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소도 의자 뒤로 돌려서 묶어 놓았다. 소군주는 그가 자기를 얼마나 괴롭히려고 이러는 것일까 생각하고 얼굴 에 그만 놀랍고 두렵기 이를데 없는 빛을 띠었다, 위소보는 싱긋 웃으 며 말하였다. "이제 내가 두려운 모양이군. 그대가 두려워 한다면 내가 혈도를 풀어 주지." 그리고 손을 뻗쳐서는 그녀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 쪽을 가볍게 몇번 근 질었다. 그녀는 간지럽기 이를데 없었으나 꼼작할 수 없는지라 그만 조그만 얼 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혈도를 짚고 푸는 것은 본래 내가 자랑하는 특기외다. 다만 나는 최근 에 너무 일이 바쁘기 때문에 그까짓 조그만 일에 염두를 두지 않았더니 만 그만 잊어 먹고 말았소. 이렇게 푸는 것이 아니오?" 그러면서 그는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 쪽을 몇번 문질렀다. 소군주는 다시 한 번 간지럽기 이를데 없는 느낌을 받아야 했으므로 얼 굴에는 약간 노기를 띠우게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이 나의 최상승의 고심한 해혈(解穴)수법이지. 상승수법은 상등인 (上等人)에게 써야만 효과가 있지. 그대와 같은 소녀는 상등인이 못 되 니 제 일류의 수법을 그대의 몸에 써 봤자 전혀 반응이 없구만. 좋아. 그렇다면 나는 제 이류의 수법을 써서 시험해 보겠소." 그리고 손가락을 뻗쳐서는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 쪽을 몇 번 찔렀다. 소군주는 아프고도 간지러워서 눈물을 글썽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 제 이류의 수법도 통하지 ㅇ는구만. 그렇다면 그대는 삼등(三等) 밖에 되지 않는 계집애인 모양이지. 어쩔 수 없군. 제 삼류의 수법을 쓸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그는 손바닥을 펼쳐서는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 쪽을 몇번 후려 쳤으나 여전히 효과를 볼 수가 없었다. 혈도를 짚는 것은 무학에 있어서의 상승무공이었다. 무공에 상당히 기 틀을 닦은 사람만이 명사의 가르침을 받고도 수년 간 부지런히 연마해 야만 어느 정도 성취할 수가 있었다. 혈도를 푸는 것과 혈도를 짚는 것 은 양족을 겸하는 한 가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즉 혈도를 짚을 줄 알 아야만이 혈도를 풀 수 있는 것이고, 혈도를 제대로 정확하게 알아 봐 야 될 뿐만 아니라 손가락에 반드시 굳건하고도 부드러운 내경(內경)을 아울러 지닐 수 있어야만이 사람의 혈도를 풀 수도 있고 사람의 혈도를 짚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위소보는 내공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혈도 를 짚고 혈도를 푸는 방법을 단 한번도 연마한 적이 없었다. 이와같이 마구잡이로 손을 쓴다고 해서 어찌 소군주의 혈도를 풀 수 있겠는가! 후려쳐서도 되지 않자 그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리고 다른 방법도 안 되자 비틀어 대는 수법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소군주는 화도 치밀었 거니와 다급해진 나머지 뜨거운 눈물을 다시 흘리게 되었다. 위소보는 이때 결코 그녀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나 절을 수고했으나 그녀의 혈도를 풀 수 없게 되었고 자기의 이마에서 땀 이 흐르게 되자 그만 수치가 분노로 변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제 팔류(第八流)의 수법까지 다 써 보았으나 마치 쥐새끼가 자라 를 끌듯 전혀 소용이 없으니 그대는 제 구류의 계집애란 말이오? 나로 말하면 크게 신분이 있고 내력이 있는 사람이라 제구류의 무공은 결코 쓸 수 없다고 생각하오. 아마도 그대 목왕부의 사람들은 모두들 썩은 나무토막처럼 멍청할 뿐만 아니라 지각이 없는 모양이외다. 이제 그대 에게 미리 말해 두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내 자신도 자기의 신분을 돌볼 수가 없게 되었소. 제 구류의 무공을 사용하여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 소이다." 그는 중지를 구부리고 엄지손가락에 갖다 대었다가 힘주어서는 소군주 의 겨드랑이 아래 쪽을 튕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것은 탄면화(彈棉花)라는 것이외다." 그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퍽퍽퍽! 손끝을 튕기네. 손끝을 튕기면서 검은 콩알을 볶네. 검은 콩알이 터지면 후추가루를 섞네. 후추가루가 맵게 되면 보탑(寶塔)을 세우게 되네. 보탑 끝은 뾰족하고 하늘을 마구 찌르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바닥이 꺼지게 되고 그 땅바닥은 바로 그대 목씨 집안의 멍청하고도 나무토막과 같은 십 팔대 선조의 머리 위로 무너지게 되지. 그는 한 마디를 하고는 한 번씩 튕겼다. 잇따라 십여 번을 튕기고 막 무너지게 되리라고 말했을 때 소군주는 갑자기 어! 하더니 울음을 터뜨 리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뻤다. 그는 몸을 펄쩍펄쩍 뛰며 웃었다. "그렇다니까. 원래 목왕부의 계집애는 정말 제 구류의 잡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반드시 제 구류의 무공으로 상대해야 하는구나." 소군주는 울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이야말로 제 제.... 제 구류예요." 그 음성은 맑고 부드러웠으며 부드러운 운남성 말투가 섞여 있어서 정 말 듣기에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위소보는 목구멍을 잔뜩 움츠리고 그녀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야말로 제 제 .... 제 구류예요." 그리고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그는 손가락을 뻗쳐 마구잡이로 튕겼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다 소군주 의 겨드랑이 아래의 액연혈(腋淵穴)위를 맞히게 되었다. 액연혈을 족소 양담경(足少陽膽經)에 속하며 겨드랑이의 아래 세 치쯤 되는 곳에 있 다. 사람의 머리 부분에 있는 여러 가지 혈도들, 즉 예를 들자면 사공 죽(絲空竹), 양백(陽白), 임읍(臨泣) 등 혈도는 모두 다 이 경맥에 속 했다. 그런데 위소보가 그녀의 액연혈을 잡고 비틀고 때리고 튕기게 되 자 손에 실린 힘은 부족한 것이었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보니, 소군 주의 머리 부분의 여러 혈도가 일제히 유통하게 되고 그만 정체함이 없 어지게 됨에 따라 풀리게 된 것이다. 위소보는 소군주의 혈도를 풀 수 있게 되자 기쁨을 참지 못했다. 따라 서 목왕부의 원한 같은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배가 고픈 것을 보니 그대 역시 배가 부르지는 않을 것 같군. 내 가 먼저 그대에게 음식을 먹여 드리지." 그는 본래 개걸스러운 사람에 속했다. 그가 상선감의 우두머리이니 부 하인 뭇태감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매일 부엌에 분부하여 갖가지 신선한 간식용 음식을 갖다 주곤 했다. 그리고 그는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거리에서 모든 밀전과와 당과류를 보게 되면 사곤 했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방안에는 병이고 옹기 그릇이고 상자고 조그 만 대바구니고 할 것 없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열돼 있는 거기에는 모두 다 군것질할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한 십여 세의 소년 이, 수중에 수십만냥이라는 은자가 들어오게 되었고 또 타고난 성격이 함부로 마구 돈을 쓰는 사람이니, 어찌 군것질할 것을 골고루 갖추어 놓고 먹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는 그러한 당과류를 모조리 꺼내고 말했다. "이건 메괴녹두(메塊綠豆)인데 한 조각 먹어 보시오." 소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다른 한 상자를 집더니 뚜껑을 열고 말했다. "이것이 북경성에서 유명한 완두황(豌豆黃)이란 것이오. 당신네들의 운 남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테니까 한조각 먹어 보시오." 소군주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자기의 돈 씀씀이를 자랑하기 위해서 모든 간식용 빈과와 밀 전류를 탁자 위에 가득히 쌓아 놓고는 말을 했다. "자 이것 보시오. 나에게는 먹을 만한 음식들이 많지 않소? 설사 그대 가 왕부의 군주라 하더라도 십중팔구 이와 같은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 을 걸. 그대가 만약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방에서 만든 총 유박취(총油薄脆)를 먹어 보시오. 구수하고도 바삭바삭한 것이 이 세상 에서 보기 드물다오. 황상께서도 잡수시기 좋아한다오. 그대는 한 조각 시식해 보구려. 틀림없이 맛이 좋을 것이오." 소군주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잇따라 가장 좋은 예닐곱 가지의 빙과류를 꺼냈으나 소군주는 역시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는 그만 울화가 치밀어 욕을 했다. "이 계집애. 주둥이가 그렇게 지랄 같아 이것도 먹지 않고 저것도 먹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먹겠다는 것이냐?" 소군주는 말했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그 한 마디를 하고는 다시 흑흑거리며 흐느껴 울었다. 위소보 는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금방 마음이 누그러져서는 말했다. "음식을 먹지 않겠다면 굶어 죽자는 것이 아니요?" 소군주는 말했다. "저는... 차라리 굶어 죽겠어요." 그러자 위소보는 "나는 그대가 차라리 굶어 죽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걸?" 바로 이때였다. 바깥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소보는 소태감이 밥 을 가져온 것을 알았다. 혹시나 소군주가 소리를 지르게 되어 남들가지 도 놀라게 될까봐 한 조각 수건을 찾아서는 그녀의 입을 묶었다. 그리 고는 문을 열고 소태감에게 일렀다. "나는 오늘 운남의 음식을 좀 먹고 싶구나. 부엌에 가서 즉시 만들어 달라고 해라!" 소태감은 조금 후 음식을 가지고 왔다. 위소보는 밥과 찬을 안방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소군주의 입을 가린 수 건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 편에 앉으면서 웃었다. "그대가 먹지 않겠다 하더라도 나는 먹어야만 하겠소. 이것은 장폭우육 (醬爆牛肉), 이것은 조류어편(糟溜漁片), 이것은 산니백절육(蒜泥白切 肉), 거기다가 진강효육(鎭江효肉)에다가 청초하인(淸炒蝦仁)도 있고 이 그릇에는 구마계각탕(口磨鷄脚湯)이 담겨져 있군, 정말 구수하기 이 를데 없는 음식들이군. 맛이 좋군, 정말 맛이 좋아." 그는 국을 떠서 마시면서 일부러 쩝접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몰래 소 군주를 훔쳐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눈물만 한 방울 두 방울씩 흘리고 있을 뿐 전혀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는 그만 재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알고보니 제 구류의 계집애는 그저 제 구류의 썩은 물고기, 썩은 고 기, 썩은 오리알만 먹기 좋아하는군. 나의 이 훌륭한 음식들은 원래 제 일류의 상등인이 먹는 것이지. 나중에 내가 사람을 시켜 썩은 물고기와 썩은 고기, 그리고 썩은 오리알, 썩은 두부를 그대가 먹도록 갖다 드리 지." 소군주는 말했다. "그대는 그저 터무니 없는 소리만 하기 좋아하는 군요. 나는 썩은 물고 기도 썩은 고기도 먹지 않아요." 위소보는 몇 젓가락의 새우를 집어 먹고 또 한 조각의 효육을 먹은 후 감탄한듯 말했다. "정말 맛이 좋구나." 그러고 보니 소군주는 시종 음식을 들 생각은 하지 ㅇ고 있는지라 젓가 락을 놓고 속으로 어떻게 하면 그녀로 하여금 자기에게 밥을 빌어 먹도 록 할까 하고 생각했다. 잠시 후 소태감이 다시 음식을 가져왔다. "계공공, 부엌의 요리사가 소인에게 당부하며 공공에게 말씀을 잘 드리 라고 했어요. 이 과교미선의 국물은 무섭게 뜨겁대요. 보기에는 한 가 닥 뜨거운 김초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뜨겁게 한량없대요. 그리고 이 선위화퇴는 밀전연자로 삶은거예요. 너무 급히 삶는 바람에 그렇게 부드럽게 삶아지지 않은 모양이니 공공께서 양해하시라고도 했어요. 그 리고 이것은 운남의 흑색대두채예요. 그리고 이 한접시는 대리의 이해 에서 난다는 공어건이예요. 생선이 아니고 절인 고기지마는 여전히 명 귀한 것으로서 운남의 홍화유로 볶은 것이예요. 그리고 주전자의 것은 운남보이차래요. 그리고 요리사는 운남의 유명한 찬인 기과계는 두 시 진이 걸려야만 제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오늘밤 계공공 어르신에게 로 갖다 드린다고 했어요." <--빼낀이 주:음식 이름의 한자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너무 많아 서...) 죄송해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소태감이 물러간 이후 찬을 방안 으로 옮겼다. 주방에서 삽시간에 네 가지 상품인 운남땅의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 은 역시 대단한 정성을 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오삼계는 운 남에서 평서왕 노릇을 하면서 날뛰는 형편이었고 매년 설을 지내거나 명절을 맞게 되었을 때 황실에 대한 조공이나 뭇황궁대신들에게 하사하 는 선물을 풍성하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다른 성에서 보내는 것보다 십 배는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그를 대신하여 그를 좋게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오삼계가 황제에게 매년 바치는 공물은 금은주보, 상아, 시각(屎角)등 등 진기한 물품 외에도 운남의 뭇토산품도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그 렇기 때문에 황궁 주방에서도 삽시간에 몇 가지 운남식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소군주는 본래 배가 고팠다. 거기다가 몇 가지 고향땅의 음식을 대하고 보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위소보에게 너무 나 업신여김을 당한 터라 이대로 굴복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하나의 계획을 결심한 바 있었다. (이 조그마한 악인이 아무리 나를 유혹한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먹지 않을 것이다.) 위소보는 젓가락으로 한 조각 빨갛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선위하퇴를 들어서는 소군주의 입가로 가져다 웃으면서 말했다. "입을 벌리시오." 소군주는 입을 꼭 다물었다. 위소보는 하퇴를 그녀의 입술에 대고 이리저리 닦았다. 그 바람에 그녀의 입은 기름칠을 하게 되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순순히 받아 먹어요. 그러면 내가 그대 손에 짚힌 혈도를 풀어 드리 지." 소군주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흔들었다. 위소보는 화채를 내려놓고 그 뜨거운 국을 들어서는 매섭게 말했다. "이 국은 뜨겁기 그지 없소. 그대가 만약 마시겠다면 나는 국이 약간 식기를 기다려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천천히 먹여 주겠소. 하지만 마 시지 않겠다면, 흥 흥." 그는 왼손을 뻗쳐서는 그녀의 코를 틀어막았다. 소군주는 이에 숨이 막히게 되자 부득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소보는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는 그녀의 입안에다 집어 넣으며 말했 다. "이 뜨거운 국을 나는 이렇게 떠밀어서 그대의 위장도 뜨거워져 익어 버리도록 하겠소." 그리고 소군주로 하여금 몇 번 할딱이는 숨을 쉬도록 한 이후 그는 숟 가락을 그녀의 입에서 뽑고 왼손을 놓아 주었다. 소군주는 과교미선이 라는 국의 반은 기름으로서 여늬 국보다 몇 배나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와 같이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정말 위장이 모조리 삶아지게 되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울면서 말했 다. "그대는 나의 얼굴에 마구 그림을 새겨놨지 않아요. 나는.... 살고 싶 지 않아요. 이렇게 못난 얼굴을 하고서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녀는 정말 내가 그녀의 얼굴에다 한 마리의 자라를 그린 줄 알고 있구나.) 그리고 미소하며 말했다. "그대의 얼굴에는 조그만 자라가 그려져 있지만 무척 아름답게 그려져 있소. 만약 그대가 거리로 나서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보고는 좋다고 갈채를 보낼걸." 소군주는 울며 말했다. "흉칙해요. 나는... 나는 차라리 죽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조그만 자라를 그대는 마다 하다니, 진작 이 럴 줄 알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그대의 얼굴에다 새기 지도 않았을 것이오." 소군주는 말했다. "무엇을 새긴단 말이예여. 나는.... 나는 나무토막이 아니란 말이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분명히 목씨가 아니요? 그런데 어째서 나무가 아니라지?" 소군주는 말했다. "우리 집안의 목씨 성은 물수 변의 목(沐)씨 성 자란 말이예요. 나무 목 자가 아니예요" 위소보는 물수 변의 목과 나무 목 자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 말했다. "나무를 물에 담궈 두면 그저 한 조각의 썩은 나무 토막밖에 더 되겠 오?" 소군주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런데 그까짓 일때문에 왜 울고 야단이오? 그대가 나를 세번만 멋진 오라버니, 멋진 오라버니라고 불러 준다면 나는 즉시 그대의 얼굴을 고 쳐 놓겠으며 조그만 자라를 긁어 없애고는 전혀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해드리겠소." 소군주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떻게 지울 수 있어요. 그렇게 긁어낸다면 저의 얼굴이 무슨 모양이 되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에게는 영단묘약이 있소. 제 일류의 영웅호걸이 아니고는 그야말로 회복시키기가 어렵지. 그러나 그대는 제 구류의 여자애이니 그대의 얼 굴쯤 고쳐 놓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쉬운 일에 불과하오." 소군주는 말했다. "나는 믿을 수 없어요. 그대는 그저 비웃는 말만 하기 좋아하는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나를 멋진 오라버니라 부르겠소 안 부르겠소?" 소군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모양을 보고 약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조그만 자라는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쳐 놓으려면 매우 쉬운 노릇 이오.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어서야 다시 고쳐 놓으려면 어렵거니와 더 구나 한가닥 자라의 꼬리를 지우지 못하게 된다면 그대는 장래 후회하 게 될걸?" 소군주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한 번 시험해 보 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정말 그의 말처럼 장래 얼굴에 자라 의 꼬리라도 남게 된다면 그야말로 보기 흉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이 아 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절 속이는 게 아니죠?"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왜 그대를 속이겠소. 그대가 일찍 부른다면 내가 그만큼 일찍 손 을 쓰게 되는 것이오. 그리고 그대의 얼굴도 더욱 빨리 회복될 것이 아 니겠소. 그러니 안전하게 빨리 불러 보도록 하시오." 소군주는 말했다. "만약에 내가 부른 이후 그대가 제대로 못 고쳐 놓는다면?"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배로 해서 보상을 해드리지. 잇따라 그대를 여섯 번 멋 진 누이동생이라고 불러 주겠소." 소군주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나빠요. 저는 싫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대가 안심할 수 없다면 나누어서 부르도록 합시다. 먼저 그대 가 나를 멋진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얼굴을 고친 이후 그대는 두번째 부르도록 하고, 다시 내가 그대에게 거울을 주어 정말 아무런 흔적도 없게 되고 그대가 매우 만족을 느꼈을 때 다시 세번째를 부르도록 하시오. 어쩌면 그대는 너무나 기뻐서 잇다라 열 번을 부를지 도 모르지." 소군주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대는 세 번이라고 말했는데 어찌 또 늘려서 말 하는거예요." 위소보는 미소했다. "좋소. 세 번이면 세 번만 부르기로 하지. 발리 불러 보시오." 소군주는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끝내 부르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멋진 오라버니라 말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오. 그렇다고 해서 그 대에게 멋진 낭군이니 또는 다정한 낭군이니라는 말을 부르도록 한 것 도 아니잖소? 그대가 다시 부르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더 값을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오." 소군주는 정말 그가 자기에게 낭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시케게 될 까봐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가 먼저 한 마디를 부르겠어요. 그래서 그대가 정말 얼굴을 회복시 켜 준다면 저는 다시 아래의 한 마디를 부르도록 하겠어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 그대는 정말 흥정을 잘하는군. 먼저 돈을 주나 뒤에 돈을 주는 것 이나 똑같은 것 아니오? 그러니 부르도록 하시오." 소군주는 눈을 감더니 나직이 속삭이듯 말했다. "멋진...." 그런데 그 멋진이라는 한 마디를 정말 모기소리처럼 작고 가늘어 어지 간한 청각력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부른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위소보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그와 같이 부르다니 정말 형편없는걸. 칠 할이고 팔 할이고 에누리를 하게 된다면 뭐가 남겠소? 그리고 또 그대의 마음속으로 멋진이라는 한 마디 아래에 무슨 말을 붙이고 있는지 그 누가 짐작이나 하겠소. 후레 자식이나 좀도둑놈이라고 불려도 나는 모를 것이 아니겠소?" 소군주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예요. 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바로 그 한 마디였어요. 거짓말 아니예요. 정말이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무슨 한 마디란 말이오? 후레자식이란 말이오 아니면 좀도둑이란 말이 오?" 소군주는 말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오라버니...." 그리고 그녀는 또 급히 말문을 닫았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매우 좋소. 그대에게 양심이 있는 셈이니 내가 그대의 얼굴을 고쳐 주 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한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겠소. 흙일을 아는 일꾼 에게 시켜 담장에 난 개구멍을 고치도록 하면서 제 일류의 값을 내 놓 는다면 바로 제 일류의 방법을 사용해서 고치게 되고 만약 가격이 너무 싸다면 몇 조각 벽돌로 구멍을 막고서 얼렁뚱땅 해치우고 석회도 한번 바르지 않을 것이니 그 어찌 보기 흉하지 않겠소?" 소군주는 말했다. "저는 이미 불렀는데도 그대는 여전히 나를 개구멍이니 썩은 벽돌이니 하면서 비웃고 있군요." 위소보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을 했다. "하하핫! 그것은 비유에 지나지 안쏘." 그리고 그는 해로공의 상자를 열고는 약상자를 꺼냈다. 그리고는 약상 자 안의 수십 가지나 되는 약병을 탁자 위에 늘어 놓았다. 그리고는 약 상자 안의 수십 가지나 되는 약병을 탁자 위에 늘어 놓았다. 그리고는 매 한 병마다에서 약간의 약가루를 쏟아서는 그럴싸 하게 정신을 가다 듬고 생각하는 척하면서 약가루를 배합했다. 소군주는 본래 위소보의 말을 거의 믿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약병이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는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약가루를 약발(藥鉢)안에 넣고는 바깥 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 가루약을 종이에 쏟아서는 싸서 품 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약발을 깨끗이 씻어 약가루를 조금도 남지 않도록 한 이후 한 조각의 녹두고와 한 조각의 완두황, 그리고 다시 광동의 월병(月餠)에서 한 조 각의 연용(蓮蓉)을 파내어서는 으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두 숟가락의 경밀당(경蜜糖)을 섞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한 두번 침을 탁탁 뱉어서는 골고루 으깨어 안방 으로 들고 들어가 말했다. "이것은 살이 돋아나게 하는 영묘한 고약이요. 이 가운데는 영단묘 약이 무수히 들어 있지."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대 얼굴은 내가 자라를 새긴 것이라 설사 회복시킨다 하더라도 옛날 처럼 되는 데 지나지 않소. 그대는 나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오." 이어 그는 어제 보석상에서 모자에 박은 네 알의 명주구슬을 모조리 떼 어네 왼쪽 손바닥에 올려 놓고는 소군주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어떻소?" 소군주의 조상은 대대로 왕에 봉해졌던 신분이 아닌가! 그녀가 이 세상 에 태어나게 되었을 때 목씨 집안은 이미 망한 셈이었으나 역시 그와 같은 집안에서 태어난 신분이라 견식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네 알의 명주가 모두 손가락끝 크기만 하고 빙글빙글 그의 손바닥에서 구를 때 부드러운 광채를 내뿜는데 둥글둥글한 것이 전혀 티가 없는 것을 보고 는 칭찬의 말을 했다. "그 구슬은 매우 훌륭하군요. 네 알의 크기가 똑같으니 정말 보기 드문 거예요." 위소보는 매우 의기양양해서 말을 했다. "이것은 어제 내가 이천 구백 냥의 은자를 주고 산 것이오. 매우 비싸 지 않소?" 이 네 알의 구슬이 진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천 구백 냥이나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구백 냥밖에 되지 않는데 그는 이천냥이란 돈을 더 불려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다시 하나의 약발을 꺼내서는 구슬을 약발에 넣고 빙글빙글 돌려 구슬과 약발이 마주쳐서는 맑은 소리가 나도록 했다. 그리고 위소보는 돌로 만들어진 약절구를 내 려쳤다. 소군주는 아! 하고 부르짖더니 물었다. "뭣하는 것이죠?" 위소보는 그녀의 얼굴빛이 심각할 뿐만 아니라 조그만 얼굴에 가득 의 아한 빛을 띠우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더 신명이 났다. 그녀를 그토록 놀라고 의아해 하도록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약절구 를 움직여서 구슬이 가루가 되도록 만들고 말했다. "만약 내가 그대의 얼굴을 그저 옛날 모양으로 회복만 시켜 놓는다면 이 위... 아니 이 소계자 공공의 재간을 드러내게 되지 못하게 되는 셈 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그대의 얼굴을 원래보다 십배나 더 아름답도록 만들 참이오. 그래야만 그대는 열 번이라도 멋진 오라버니라고 기꺼이 불러줄 것 아니겠소." 소군주는 말했다. "세 번이라고 했잖아요. 어째서 또 열 번이지요?" 위소보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구슬가루를 녹두고, 완두황, 연용, 밀당에다가 침을 섞어 으깨어 놓은 풀에다 섞었다. 그리고는 약절구로 고르게 섞이도록 휘저었다. 소군주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위소보가 네 알의 명주 구슬을 가 루로 만들어 넣는 것을 보고 이 고약의 진귀함을 가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때 위소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네 알의 구슬이 비싸기는 하지만 값을 매길 수 없는 약가루에 비교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오. 그대의 얼굴 모습은 본래 그럴싸 하지만 천 하제일류라고 할 수는 없소. 나중에 나의 고약을 바르게 된다면 십중팔 구 한 분의 천하무쌍의 미녀가 될 것이고 수월폐화(羞月閉化)....!" 이때 소군주가 말을 가로막았다. "수화폐월(羞化閉月)이라고 해요." 그녀는 위소보가 틀리게 말한 것을 보고 생각할 여지없이 고쳐주기는 했으나 말을 하고 보니 미안했다. 위소보는 단어 숙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밥 먹듯 흔한 일이라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맞았소. 그야말로 수화폐월의 소미녀가 될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좋은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그는 자기가 만든 고약을 그녀의 얼굴에다 바르기 시작했다. 소군주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삽시간에 눈과 귀, 코, 입 이외의 온 얼굴에다가 위소보는 떡칠하듯 그 자신이 만득 약을 발라 주었다. 소군주는 그 고약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매우 짙으 며 흔한 약들이 내풍기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지라 전혀 거북한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그녀가 자기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는 죽어라고 나오 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고약에다가 내가 오줌을 싸지 않은 것만 해도 내가 상당히 양보한 거야. 그야말로 그대의 조상이신 목영 목왕야의 체면을 본것이지. 그는 개국공신이니까 위소보가 삼 푼 정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지.) 위소보는 고양을 다 바르고 난 이후 손을 씻고 말했다. "이 고약이 마르게 되면 나는 다시 기묘한 약가루로 그대의 얼굴을 씻 어 주었소. 세 번 바르고 세 번을 씻는다면 그때는 반드시 수월.... 아 니 수화폐월 하게 될 것이오." 소군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얼굴을 가린다는 식의 말을 반드시 수화폐월 하게 된다니 정말 말하기 거북하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녀는 물었다. "어째서 세번 발라야 하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세 번 바르는 것도 적게 바르는 것이오. 남들은 간장을 끓일때 아홉 번 찌고 아홉번 말리지 않소. 하물며 개고기를 삶을 때에도 세번 끓인 다음....!" 소군주는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그대는 또 저를 간장, 개고기라고 욕을 하는거죠." 위소보는 웃으면서 말했다. "간장, 개고기라는 말은 없소. 간장으로 개고기를 삶게 된다면 그것은 홍소구육(紅燒狗肉)이 될 것이고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맑은 물로 찐다 면 그야말로 그냥 찐 개고기가 될 것이오." 그리고 그는 젓가락으로 한 조각의 화퇴를 집어서는 그녀의 입가로 가 져가면서 말했다. "잡수시오." 소군주는 첫째로 정말 배가 고팠고 둘째로 그의 비위를 거스리게 된다 면 나중에 정성을 다하지 않아 자기 얼굴에 한 가닥 자라꼬리라도 남길 가봐 두려웠고 세째로는 그가 명주 구슬까지 조금도 아끼지 않고 고약 에 섞어 약을 만드는 것을 보고는 고마운 생각이 들어 약간 주저하다가 는 화퇴를 받아 먹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칭찬의 말을 했다. "착한 누이로군. 이래야만 곱게 봐주지." 소군주는 말했다. "나는.... 나는 그대의 착한 누이가 아니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착한 누님이라고 해주지." 소군주는 말했다. "그것도 아니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착한 우리 어머니라고 해두지." 소군주는 훗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서....!" 위소보는 그녀를 대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의 웃음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는데 이때서야 겨우 듣게 되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 잔뜩 그가 만든 고약을 발라 놓아 꽃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었지 만 그녀의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훨씬 좋아 졌다.위소보가 그녀를 자기의 착한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은 기실 그녀 를 창녀하고 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가 바로 창녀였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소군주가 기분이 좋아 내는 웃음소리는 또한 부드럽 기 이를데 없는 것을 듣고는 약간 자기 어머니에 비유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뭐 창녀가 되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은 없지. 우리 어머니같이 여춘원 에서 돈벌이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제기랄, 나무 토막과 같이 멍청한 목왕부의 군주보다 천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는 다시 몇 조각의 화퇴를 집어서는 그녀에게 먹이고 말했다. "그대가 만약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내가 그대의 손에 짚 힌 혈도를 풀어 주도록 하지." 소군주는 말했다. "내가 왜 도망을 쳐요? 얼굴에 조그만 자라를 새겨 놨는데 도망을 쳤다 가는 남 보기가 부끄러워 죽게 될걸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얼굴에 조그만 자라가 새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도망을 치려고 할걸? 그 전노반은 언제 그녀를 데리고 나가겠다 는 말이 없었다. 궁안에 이와 같은 소저를 가두어 두고 있다가 딴 사람 에게 발견이나 된다면 큰일나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때 갑자기 방 밖에서 그 누가 불렀다. "계공공, 소인 은 강친왕부의 하인입니다. 볼 일이 있어 찾아왔읍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리고는 나직이 소군주에게 말을 했다. "그 누가 왔소. 그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마시오.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대는 알고 있소?" 소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말을 하게 되면 그대는 깜짝 놀랄걸.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대를 해치려고 할 것이오. 다만 나만이 그대를 해치지 않고 잠시 가두어 두 는 것이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면... 흥흥, 흥, 흥....!"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말을 심히게 해주어야 그녀가 가장 두려워할까?) 그리고 재빨리 생각을 굴려 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악인들은 그대의 옷자락을 벗기고 못된 짓을 하며 그대의 엉덩이를 때리게 될 것이오. 아파서 못 견디게 때릴 것이란 말이오." 소군주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두 눈에는 아니나 다를 까 두려운 빛 을 띠우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녀를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문을 나섰다. 문 밖 에는 삼십여 세 되는 내감(內監:친왕부의 내시라는 뜻)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위소보에게 인사를 하더니 공손히 말했다. "소인은 강친왕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왕야께서는 오랫동안 공공을 뵙지 못해 매우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노 래 부르는 사람들을 불렀으니 공공께서 왕부로 오시어 술을 마시며 노 래를 듣도록 하시라는 전갈이옵니다." 위소보는 노래를 듣게 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자기의 거처에 소군주를 숨기고 있으니 그 누구에게 발각될까봐 두렵기도 하 고 그녀가 소리를 쳐서 시끄러운 일을 야기시킬까 봐서도 두려웠다. 따 라서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아 순간 크게 망설였다. 그러자 그 늙은 내감은 말했다. "왕야께서는 반드시 공공께서 왕림해 주십사 하는 분부를 내리셨읍니 다. 오늘 왕부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답니다. 주사위도 던지 고 또 패구(牌九)라는 놀음판도 벌이는 등 골고루 갖추어서 놀게 된답 니다." 위소보는 노래를 듣게 됐다는 말을 듣자 정신이 번적 들 정도였다. 그 러나 노름을 하게 된다는 말을 듣자 그야말로 새 정신이 들었고 크게 기운이 솟아 올았다. 그는 자기가 한 밑천을 잡게 된 이후 은씨 형제 및 평위 그들과 놀음을 하는 제 이미 흥미를 잃고 있었다. 그리고 주사 위를 던지는 것도 그저 무료함을 참기 위한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 런데 강친왕부에서 노름판을 벌인다니 그것이야말로 크게 도박을 하는 것이니 어느 겨를에 소군주니, 대군주니 하는 사람을 염두에 둘 여가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즉시 기꺼이 대답했다. "좋아. 그대는 잠시 기다리시오. 내 곧 그대를 따라가지." 그는 방으로 들어간 후 소군주의 묶인 끈을 풀고는 침대 위에 ㄴ혔다. 그리고 다시 손발을 묶어서는 이불로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 나직이 말 을 했다. "볼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오겠소이다." 그녀는 두 눈에 의혹의 빛을 띠웠다. 위소보는 다시 달래듯 말했다. "명주 구슬이 부족한 편이니 보석상에 가서 좀더 사와 가지고 깨뜨려서 그대의 얼굴에 발라야만 그대의 얼굴이 크게 예뻐지게 될 것이오." 소군주는 말했다. "그대는.. 가지 마세요. 명주 구슬은 너무 비싸지 않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상관 없소. 그대의 멋진 오라버니는 돈이 얼마든지 있소. 그대로 하여 금 수화폐월할 정도로 만들면서 몇 천 냥의 은자를 쓰는 것쯤은 대단치 않아." 소군주는 말했다. "저는.... 저는 이곳에 있기가 두려워요" 위소보는 그녀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약간 못할 짓을 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노름판이 버어진다는 것을 알고도 가지 않 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소군주가 십 배로 더 불쌍한 처지에 놓 여 있더라도 노름판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 젓가락의 공어건을 집어서는 그녀에게 먹이고 네 조각의 팔진고(八 珍고)를 차례로 그녀의 입 위에다 얹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가 입을 살짝 벌리기만 한다면 한 조각의 팔진고가 입 안으로 들 어가게 될 것이오. 그러나 조심하시오. 팔진고가 벼게가로 떨어지게 되 면 먹지 못하게 될테니까 말이오." 소군주는 말했다. "그대는... 가지 말아요." 입술 위에 팔진고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하는 음성은 거의 들 리지 않을 정도록 가늘었다. 위소보는 못들은 척하고 상자에서 한 웅큼의 은표를 꺼내어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는 신이 나 서 내감으 따라 강친왕부로 달려갔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