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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대종주 제1구간
영취산~장안산~밀목치~사두봉~수분치 18.2km
뵬빛은 쏟아지고 눈길은 사무치던 섬진강 첫 산두령
0.4 2.6 3.5 3.8 0.7 2.8 1 0.7 2.7
영취산-----무령공재-----장안산-----947.9봉-----960봉----->밀목치-----사두봉-----882봉-----바구니봉재-----수분치
△1075.6 A ――――――― A △1236.9 B,C △947.8 A △960 ―――――― A,B △1014.8 A,B 882△° ---------- A ======
830 750 530
(19번국도)
*산행거리표 보는 법
1. 지명 아래 표시 중 ▲는 확인한, △는 미확인 삼각점, △°는 비껴가는 봉우리, ====는 포장국도, ―――는 포장지방도, -----는 소로 또는 등산로를 뜻한다. 이번 종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했다.
2. 화살표 위의 숫자는 구간 도상거리(km)이며, ( )안에 걸린 시간을 표기할 예정이다. 이번 종주에서는 눈이 많아 시간을 잴 수 없었다.
3. 화살표 아래 알파벳은 구간 등산로의 상태를 나타낸다. A는 가장 좋은 상태, C는 가장 나쁜 상태.
*산행길잡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는 영취산에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령공재까지 차량을 이용해 오르는 것이다. 장계에서 육십령으로 오르는 26번 국도를 따라가다 논개 생가가 있는 대곡리를 지나 무령공재 정상까지 2차선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고개 정상에는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 야영장 등이 있으며, 간이 매점이 있다(겨울철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고개 정상에서 번암면 지지리로 이어지는 도로는 비포장 상태다. 이곳에 배낭을 두고 영취산에 올랐다가 오면 된다.
무령공재에서 장안산까지의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장안산 정상은 첫번째 구간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는 곳이다. 남쪽으로 지리산 능선이, 동쪽으로는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큰 산줄기가 흐르고, 서쪽으로는 금남,호남정맥 두번째 구간이 될 팔공산에서 진안 성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잘 조망된다. 북쪽으로는 육십령 너머 우뚝 솟은 장수덕유와 남덕유산이 두 개의 삼각형으로 우뚝 솟아있다. 또 아래로는 장수읍과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장안산을 지나면정맥의 줄기는 서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구간에는 짧은 바위와 우거진 산죽밭으로 인해 여름철에도 긴소매 옷을 입어야 할 듯싶다. 장안리와 덕산리를 오고가던 몇 개의 고갯길을 건너야 하며, 크고 작은 오르막이 계속 나타난다.
947.9봉에서 산줄기는 다시 남서방향으로 고개를 튼다. 이곳에서부터는 다시 길이 좋아진다. 측량용 겨냥대가 세워져 있는 960봉에서는 서쪽 산줄기를 따라야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 끝 지점부터는 댐 공사로 인한 벌목 현장과 개간지가 나온다. 밀목치 고개에는 수몰지가 될 덕산리 주민의 이주를 위해 새로 조성한 마을이 있는데 2월 현재 공사 중이었다. 차후 이곳에 매점이나 민박, 음식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밀목치 마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장수읍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전북 산사랑회가 세운 스텐레스 정상 표시가 있는 사두봉에는 위 아래로 나란히 묘 2기가 자리잡고 있다. 묘 바로 아래에는 작은 돌탑이 서 있는데 전북 체신청 봉수대 탐사반이란 표지목이 있다.
사두봉에서 산줄기는 다시 서쪽으로 한참을 이어진다. 송계재와 바구니봉재를 지난 후 임도가 지나는 당재를 올라서면 바로 아래로 수분치가 보인다. 수분치 직전에서는 사과밭과 묘목재배장을 지나야 한다.
길 찾기 주의할 곳
이번 구간에서는 특별히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는 구간은 없다. 산줄기가 크게 방향을 바꾸는 곳마다 표지기가 잘 설치되어 있다. 다만, 947.9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며, 960봉에서도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사두봉 지나 바구니봉재에서도 직진하지 말고 서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물론 이 지점에도 표지기가 붙어 있으나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염려가 있는 곳이다.
야영지와 샘터
무령공재에 넓은 야영장, 주차장, 매점 등이 있다. 무령공재와 장안산의 중간지점에는 등산로 약 20m 아래에 작은 샘터가 있다. 또 897봉과 960봉 사이 중간지점에도 작은 샘터가 하나 있으나 수량이 많지 않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밀목치와 수분치 사이에는 샘터가 전혀 없다.
영취산에서 수분치까지 18.2km를 하루에 운행하기에는 다소 벅차다. 무령공재를 출발해 밀목치에서 운행을 마치는 것이 좋다. 밀목치에서 수분치까지는 7.2km로 하루 운행으로 넉넉하다.
교통과 숙박
장수나 장계가 기점이다.
무령공재 장수나 장계에서 택시를 타고 오르거나, 군내버스가 다니는 계남면 괴목동이나 논개 생가지가 있는 대곡리에서 오르면 된다. 무령공재 정상에는 넓은 야영장과 주차장, 화장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논개 생가지가 있는 대곡리에도 민박집이 여럿 있다.
밀목치 장수와 장계에서 덕산계곡까지 군내버스가 다니며, 장수읍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또 민박집과 식당, 매점 등이 곧 들어설 예정이다.
수분치 장수나 장계에서 남원이나 번암을 오가는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수분치에는 한 쪽 처마 물을 금강으로, 다른 처마의 물은 섬진강으로 나뉜다는 뜸봉샘기사식당(063-352-5533)이 19번 도로변에 있으며, 도로 건너에 위치한 약수터가든(352-3595)에서는 숙식이 가능하다. 수분령가든(353-0041)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다.
장수와 장계 읍내에는 모텔과 음식점이 많다. 장수는 어느 곳이나 한우고기와 돼지고기가 맛있다.
설이 지난 지 사흘. 절기는 어느새 입춘. <사람과산>호남정맥 종주대는 입춘인 정월 초나흗날(2월4일) 호남정맥의 첫 고을 장수를 향해 첫 등짐을 꾸렸다. 무릇 거사에는 항시 택일이 필요하다. 천백오십오리 대장정을 시작하는 첫날로 입춘을 선택한 것은 물론 <입춘대길>이란 말 때문이다.
현명한 선택에 힘 입은 호남정맥 종주대는 틀림없이 백운산까지 아무런 사고나 고난도 없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매번 쾌청한 날씨와 즐겁고 유쾌한 산행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대길의 조짐은 서울을 벗어나기 전부터 벌써 시작되었다. 언제나 인내력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던 서울의 교통체증이 영험한 '입춘대길' 이란 입춘축(立春祝) 앞에서 오늘은 영 힘을 쓰지 못한다. 퇴근시간이었는데도 우리는 너무나 수월하게 서울을 빠져 나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아마 이런 즐거움은 일년동안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 역시 거사에는 신중한 택일이 꼭 필요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3시간 동안 속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되뇌였다(지난 7개월 동안 기자의 취재산행 중 한 번도 비나 눈이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 영취산
그러나 물(水)이 길(長)다는 고장 장수에 도착하자마자처음 깨달은 것은 물이 길면 산이 길다는 것과 신중한 택일이 아니었다는 사실. 평균 고도 430m에 이르는 장수군은 그 속으로 흐르는 긴 물줄기만큼이나 높고도 긴 산줄기 사이에 둥지를 틀었고, 길고도 높은 산줄기처럼 그만큼 길고도 추운 겨울이 진행중이었다. 산을 물을 가르고 산줄기는 물줄기의 울타리가 되는 이 땅 산경의 원리가 이곳 장수처럼 오롯한 곳이 또 있을까?
이 나라 백성들의 주된 양식을 생산하는 곡창을 만든 두 개 커다란 강물이 바로 이곳 산줄기에서 비롯되었으니, 큰 물줄기는 큰 산줄기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높고 깊은 장수의 산줄기 사이에 스며든 겨울은 입춘대길이란 영험한 입춘축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장계면 대곡리 논개 생가지를 지날 무렵 도로에 쌓인 눈은 이번 산행이 결코 대길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결국 차는 대곡리 지승마을을 겨우 지나 눈밭이 되어버린 포장도로 위에서 자신의 임무를 내팽개쳐 버리고 말았다. 포장도로 위에 텐트를 치고 대장정 첫날밤을 맞이했다. 겨울 밤하늘에 쏟아질 듯 가득한 별만이 그나마 입춘대길의 마지막 영험 인양 빛났다.
차로 오르면 좋을 길을 걸어서 오른다는 것은 세 배의 박탈감을 안겨준다. 5분이면 오를 거리를 세 시간 걸려 오르게 되는 시간적 박탈감, 힘 하나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 올라야 하는 체력적 박탈감, 시간과 체력의 허비로 더욱 크게 작용하는 남은 구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또 하나의 박탈감이다.
무려 세 시간 걸려 무령공재[무룡궁]¹ 에 도착했다. 텅 빈 고갯마루에는 빈 주차장과 빈 야영장, 주인 없는 빈 매점만 세 배쯤 무거워진 배낭을 매고 세 배쯤 더 지쳐버린 일행을 맞이한다.
무령공재 마루에 배낭을 벗어둔 채 영취산을 향해 오른다. 영취산(1075.6m)²은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이라는 막중한 임무에는 걸맞지 않게 그저 평범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그러나 깃대봉(1014.8m)과 백운산(1278.6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상의 평범한 고스락에 불과한 이 영취산이야말로 이 땅을 적시는 헌걸 찬 세 강물 금강, 섬진강, 낙동강의 3수계가 만나는 유일한 곳이다.
이제 천백오십오리 호남정맥의 대장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눈 속에 파묻힌 정상의 삼각점³을 찾아볼 깜냥은 없었다. 영취산을 뒤로하고 구르듯 다시 무령공재로 내려왔다. 무령공재에서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정수리에 흰구름 인 장안산을 향해 출발한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한 발 한 발 걷는 일은 오로지 고행의 연속이다. 무령공재 절개지 위로는 초록색 산불감시초소 하나가 쓸쓸히 서있다.
마루금의 겨울밤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이어 나타나는 옛 무령고개 위에 서있는 팔각정. 수많은 종주자들이 들러 쉬어 갔을 테지만 팔각정까지 100m의 눈길은 우리에게 물리적인 거리 100m가 아니었다. 무령공재를 출발한지 이제 겨우 15분이 지났건만 심정화씨(37세, 도이터코리아 근무)는 어느새 배가 고프다며 배낭을 깔고 주저앉는다. 김석우씨(33세, 봔트클럽) 역시 비지땀을 흘리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우리는 지금 세 배는 더 지치고, 세 배는 더 배고프고, 세 배는 더 무거운 배낭을 진 채 세 배는 더 멀어진 길을 걷고 있다. 하늘에선 한들한들 흰 눈발까지 날리고, 모든 것이 어설픈 택일 탓이다.
남쪽 아득하게 지리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 너머 어딘가에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 백운산ª이 있을 것이다. 가야 할 눈길을 바라보니 심난하기만 하다.
심정화씨의 시동생인 신상길씨(31세, 청암산우회)만이 여전히 씩씩하게 눈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선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은 토끼 발자국 한 줄기. 무령공재에서 1.5km 지점의 샘터에 도착해서 겨우 늦은 점심을 먹는다. 부리나케 다시 출발하지만 역시나 진행은 느리기만 하다. 모두들 거친 숨만 내쉴 뿐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장안산(1236.9m)을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길에서는 가슴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엄치듯 해야했다. 그리고 마침내 장안산에 올랐다. 호남정맥 전구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산에 올랐다. 무령공재를 출발해 무려 4시간 만에 오른 장안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넓은 헬기장 한 켠에 선 우람한 정상석에서 사방을 휘둘러본다. 북쪽 장수덕유와 남덕유산은 구름에 가렸다. 남쪽 지리산 능선도 아득한 구름 사이로 사라져 버렸고, 지척의 백운산 만이 흰 구름에 설핏 몸을 가린 채 우리의 작은 성취를 지켜보고 있다.
벌써 오후 4시. 서둘러야 했다. 밀목치까지 가려던 오늘의 계획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러나 내일 걸어야 할 구간을 생각하면 오늘 조금이라도 더 가야 한다. 장안산에서 북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정화씨는 가파른 능선길에서 연신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찐다. 우거진 산죽밭에서는 그 위에 덮인 눈 때문에 또 한 번 눈헤엄을 쳐야 했다. 간간이 나타나는 표지기가 길을 안내하지만 여전히 길을 안내하는 것은 토끼 발자국이다.
어디쯤 왔을까? 길을 안내하던 토끼처럼 그 꼬리가 짧기만 한 겨울 해가 어느새 사라지고 땅거미가 덮치듯 사방을 옥죄어 올 때 오늘의 운행을 마쳤다.
"고마와요. 더 간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요."
운행 중지를 선언하자 가장 반긴 이는 심정화씨. 만 5년만에 다시 겨울산행에 나섰다는 그녀는 출발부터 내내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지만 즐거움보다는 힘겨움을 잊기 위한 노래였다.
북쪽 장안리 지보마을에서 남쪽 덕산리를 오가던 옛 고갯길 마루산죽밭에 겨울 하룻밤을 위한 집을 지었다. 밤하늘에는 날카로운 초승달이 떠올랐고, 주변 하늘에는 송곳 하나 꼽을 자리가 없도록 숱한 별들이 차지했다. 밤하늘만 바라보면 그렇게 나쁜 택일도 아니다.
얼음이 버석거리는 텐트를 접어 배낭에 넣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길고 짧은 오르막 내리막을 무수히 타고 넘어 내리고, 앞을 가로막는 수북한 산죽밭을 헤치고, 오직 걸을 뿐이다. 955봉을 지나고, 947.9봉을 올랐다. 무성한 잡목 탓에 조망이 트이질 않는다.
"야! 땅이다!"
장안산에서부터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정맥은 이곳에서 슬며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능선 오른쪽 아래로 장수읍과 그 사이의 벌판이 드러났다. 897봉을 지날 무렵 어느덧 점심 때가 지나고 있었다. 점심 때 라지만 그저 눈밭에 주저앉아 과자 몇 조각과 커피 한잔이 고작이다. 허리까지 빠져드는 눈 속에서 다시 힘겨운 전진. 오른쪽 아래 동촌리에서 들리는 안내방송이 지척인 듯하다. 우리를 보았다면 필경 이런 안내방송이 나왔을 것이다.
"거시기 그거 산 말랭이에서 뭣들허는 것이요? 요로코롬 눈이 징허게 쌓였는디 뭔 고생들이여. 싸게들 내려와서 막걸리나 한 잔씩 하드라고."
하늘에서 다시 하늘하늘 눈발이 날린다. 지친다. 막걸리 한 잔 생각이 정말 간절하다.
오후 4시. 측량용 겨냥대가 세워진 960봉에 도착했다. 덩치 큰 장안산이 아직도 지척이다. 장안산 남서쪽으로 흐르는 용림천을 크게 돌아온 탓이다. 덕산리 법연동 마을은 지금 댐공사가 한창이었다. 번암면에 있는 동화댐의 보조댐을 건설하는 중이다. 이 보조댐의 건설로 밀목치 부근에는 새로 조성한 이주민 마을이 생겼다. 그림같이 예쁜 집들이 들어섰지만 아직 이주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마을은 썰렁하기만 했다.
"야! 땅이다!"
밀목치에 들어서며 외친 김석우씨의 환호성. 이틀간 눈길만 걸었던 터라 눈 녹아 질퍽한 땅이지만 반가운 모양이었다. 댐 공사 현장에서 밀목치를 넘어 장수로 나가는 트럭의 짐칸을 얻어타고 장수읍으로 내려왔다. 이틀간의 한뎃잠과 무거운 배낭,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러셀로 인헤 모두들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그리고 막걸리 생각이 너무도 간절한 탓이었다.
당초 이번 구간에서 오계재까지 마치려고 미리 천천면 상리 마을회관에 주차해 둔 자동차를 택시를 타고 가서 찾아왔다. 그리고 장수읍의 한 모텔에서 편하고 따뜻한 밤을 보냈다. 막걸리 한 잔씩을 마친 것은 물론이다.
차량 지원을 자청한 신상길의 운전으로 새벽같이 밀목치로 다시 향했다. 밀목치 이주민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다시 마루금을 잇는다. 가풀진 오르막을 헐떡대며 올라서자 장수읍 건너 팔공산의 첨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북쪽으로 이제 가야할 시루봉, 성수산이 줄달이 이어진다. 그러나 지금 취재팀의 눈은 오직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수분치가 어디인지만을 쫓는다. 수분치에 가면 맛좋은 막걸리가 있다고 또 한 번 달래야 했다.
사두봉(1024.8m)에 올랐다. 정상에는 정맥의 방향과 나란하게 봉분 2기가 자리잡고 있다. 뒤돌아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본다. 그렇게 느리고 하염없는 길이었지만 이렇게 뒤돌아보니 제법 멀리도 왔다. 장안산으로부터 에돌아 흐르는 정맥이 굽이굽이 또아리를 트는 뱀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곳이 사두봉(蛇頭峰)이라는 이름 탓일까?
수분치
봉분을 지나 또 한 번 산죽밭을 지난다. 세월의 때가 잔뜩 낀 돌탑이 <전북 체신청 봉수대 탐사반> 이란 말뚝을 명패로 단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일행을 배웅한다. 여전히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끈질기게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가능한 한 가볍게 멘 배낭의 무게가 다시 조금씩 어깨를 누르기 시작할 무렵 송계재 어간에 도착했다. 오른쪽 아래로 19번 국도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심정화씨가 다시 힘을 낸다. 목소리를 돋워 다시 노래를 시작한 것이다. 거의 가수 수준인 그녀의 노래를 들려주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바구니봉재 큰 소나무 밑에 모여 앉아 삶은 달걀로 점심을 먹었다. 삶은 달걀에는 사이다가 있어야 하고, 김밥은 나무도시락에 든 것이 제일 맛이 있다는 둥,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리와 수분치에서 마시게 될 막걸리 생각에 다들 여유가 작작하다. 수분리와 사암리를 넘나들던 옛 나그네들처럼 한참을 쉬다가 다시 일어선다.
임도가 나 있는 당재를 지나 가파른 언덕배기를 올라서자 정맥은 이제 사과밭과 묘목 재배장 사이로 이어진다. 저 아래 수분치를 넘나드는 자동차들이 분주하다. 수분치로 내려서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요란한 개 짖는 소리였다.
<주> 1. 이번 호남정맥 종주에서의 지명이나 고도 등 일반적인 지형학적 사항은 국립지리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의 표기를 따랐다. 지형도 상의 표기와 현지명칭이 다를 경우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현지명칭은 [ ] 속에 표기했다.
2. <장수군사.1982>에 나타난 명칭으로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영취산이란 산명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번 호남정맥 종주에서는 섬진강의 수계를 온전히 답사한다는 의미에서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인 영취산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3. 이번 호남정맥 종주에서의 각 구간별 주요기점은 산줄기를 넘는 주요 도로와 삼각점(△) 봉을 기준으로 삼았다. 산줄기 위에서 직접 확인이 가능한 유형한 지형지물로서 GPS를 이용한 정확한 좌표를 별도로 표기했다. 이번 구간에서는 깊게 쌓인 눈으로 인해 단 한 군데의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했다.
a. 이번 호남정맥 종주에서 출발점은 영취산, 최종 목적지는 광양 백운산으로 정했다. 또한, 일관되게 이 방향으로 각 구간을 이어갈 계획이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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