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렵게 기회를 만들었다.
처음 군산노인종합복지관에 부임해서 직원들에게
욕구조사를 실시했다.
꼭 필요한 교육이나 하고 싶은 연수가 있다면
적어서 내라고 했더니
해외연수를 한번 다녀오면 좋겠다는 욕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실시를 하려고 보니
비용도 문제고 또한 복지관은 문을 쉽게 닫을 수도 없어
가능하면 국경일이 있과 주말을 포함시켜 날자를 잡아보니
2월 26일(토)부터 3월 1일(화)까지 일정이 나왔다.
또한 비용도 직원들한테 모두 내서 가도록 하면
부담이 되어 갈 수가 없으므로
일정 정도 기관에서 부담을 하고 직원들도 부담을 해서
가능한 많은 직원들이 갈 수 있도록 독려를 했다.
드디어 출발 당일 복지관에서 새벽 5시 반에 출발했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도중 화성휴게소에서
만두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인천공항에는 오전 9시 경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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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 비행 수속을 밟고 12시 20분 경에 이륙하는 비행기라,
다른 직원들은 쇼핑을 하는데
나는 할 일이 없어 빈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26665A4DF2E3833B)
자유 쇼핑시간이 모두 끝나고 비행기는 이륙하여
대만으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이 나와 먹고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월간원광지를 보며 가다보니
현지시각 오후 2시 반에 도착하게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1B4E544DF2E3C70A)
대만의 날씨는 흐렸다.
오후 3시 반, 비행장에서 나와 버스에 탑승하였다.
우리 일행을 안내할 가이드가 인사를 했다.
화교인으로 아줌마이고 이름은 송옥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만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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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수도는 타이빼이다.
중국과는 별개의 다른 나라다.
대만은 2월 28일이 연휴라고 했다.
주 5일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쉰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 3일간 연휴라고 한다.
대만은 3만 평방미터로, 한국의 전라도 보다 조금 크다.
인구는 2천 7백만이며, 4분의 1이 북쪽에 살고 있다.
고속도로만 달리는 거리가 420km로
서울에서 부산가는 거리다.
동쪽은 태평양이어서 태풍이 많고 지진이 많은 반면,
자연 경치는 아름답다.
대만은 대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부르는데
대북, 대남, 대동, 대서라고 부른다.
대만은 물이 귀한 나라로,
커피문화가 아니라 차(우롱)문화다.
술집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만에서 제일 큰 돈의 단위는 2천원이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8만 8천원 정도 하는데,
좀처럼 보기가 쉽지않다.
1천원짜리가 많다.
100원, 500원, 1,000원짜리는 지폐다.
대만에서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달러를 교환하는데 수수료가 높기 때문에
달러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대만 역사는 4백년이다.
명나라 복건성에서 건너왔다.
또한 대만은 다민족사회다.
중국 사람이 넘어오기 전에는 유럽,
네덜란드 사람들이 와 있었다.
유럽 사람들이 오기 전에도 원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쪽에서 온 사람들이다.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50년을 받았다.
이후,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넘어왔다.
대만은 산악지역이 65%를 차지하고 있고
제일 높은 산은 옥산으로 3,995m이다.
3,000m 넘은 산이 무려 1백개가 넘는다.
대만의 날씨는 추위가 온다하면 영상 5도이다.
며칠 전까지는 무척 추웠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가자, 햇볕이 나왔다.
대만의 여름해도 길다고 한다.
대만은 오토바이가 많다.
만 18세 이상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오토바이가 대만 사람들의 발이다.
일본의 도요타 승용차는 대만의 서민 차다.
한국차는 부속품을 찾을 수가 없어 어려움이 많다.
1970년대는 세계 외환 보유국 중에 대만이 2위였다.
대만 사람들은 무조건 돈이 없다고 한다.
또한 국민성은 겸손하다.
재미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있는데
한국말과 중국말이 같이 통용되는 말이
화장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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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대만에서 신생활운동을 펼친 것을 보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1) 중정기념당
이렇게 설명하는 사이 오후 4시 10분경에
중정기념당에 도착했다.
대충문에서 내려 대효문에서 승차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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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기념관은 장제스 기념관이다.
장제스가 중국 본토 고향에 가질 못해
죽으면 고향에 묻어달라고 해서 중정이 장제스다.
1975년 89세를 일기로 돌아갔다.
그래서 중정기념관에 오르는 계단 숫자가 모두 89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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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기념관에는 장제스 총통이 사용한 승용차와 사진 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승용차는 56년이 된 캐딜락 2대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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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01048594DF2E7092A)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45E594DF2E70D20)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48A594DF2E70520)
장총통의 부인 송미라 여사는 105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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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과 장개석 총통은 동서지간이라고 했다.
대만에서는 이 두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고
중국에서는 장개석을 빼고 모택동을 넣어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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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기념당을 모두 둘러보고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로 옆이 공원이라서
이곳에서 연주하고 있는 시민도 있어 한 컷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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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