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창작교실 8기-후 7차시 합평작 (9월 23일 토요일 용)
습작품 합평
1. K과장의 집밥/이태령
1 보이는 것 이상으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했다는 것은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사라지고, 마주앉자 밥을 먹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그 분과 함께 일했던 시간이 더욱 그리워진다.
2 수년전 처음 k과장과 근무하게 되었다. 조그만 체구에 한 뼘되는 높은 구두를 신고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에 흐터러짐이 없었다. 유행을 아는 세련된 옷차림은 누가 봐도 멋쟁이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고위직으로 직원들과 격을 둘만도 한데, 호탕한 웃음으로 사무실을 긴장으로부터 무장해제 시켰다. 그 분의 첫 인상은 유쾌함 그 자체였다.
3 허물없이 소통을 잘 했던 k과장은 직원들이 망설임없이 의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었다. 갈등 상황에서 선택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직원을 보면 시원하게 방향키를 잡아주었다. 회식자리에서도 늘 작은 장점이라도 찾아 칭찬해주며 기를 살려주었다.
4 k과장은 도심지 외곽에 살면서 주말에 농사를 지었다. 주중에는 업무로 바쁘게 보내다가도 주말에는 농군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상추, 케일, 부추 등 주말에 거둔 채소를 한아름 가지고 출근했다. 계절에 따라 감, 고구마도 챙겨왔다. 직원들 챙겨주려고 직접 다듬은 채소를 월요일 아침부터 준비해 오는 마음이 왠만한 직원사랑으로는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직원사랑이 느껴지는 월요장터 앞에서 우리 부서의 월요일 아침은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
5 k과장은 그 해 연말에 30명 남짓한 부서원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동안 찬거리를 나눠주신 것을 생각하며 당연히 주택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했다. 도착한 곳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입구 복도를 따라 장독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직접 담은 간장, 고추장, 된장이라고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더 놀랬다. 펼쳐진 밥상에는 직접 준비한 노란 겨울 배추며, 각종 장아찌, 김치, 나물과 여러 반찬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6 여직원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 구석구석을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경했다. 냉장고와 냉동고 속에 음식재료들이 연도별로 종류별로 라벨을 붙여 칸칸이 정리되어 있었다. 한눈에도 뭐가 어디있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한 부서의 관리자로 일하기도 바쁠텐데, 집안 구석구석 어느 한 곳 빈틈없이 잘 정리되어 부지런함이 곳곳에 묻어나 보였다. 이 정도의 정리 수준은 손님을 초대해서 며칠만에 준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후식으로 홍시와 주전부리를 계속 내주고도 모자라 돌아가는 길에 직접 담은 과일 진액을 모두에게 한 병 씩 담아 나눠 주었다.
7 그 바쁜 일상 속에 집안일도 완벽하게 챙기시는 걸 보고 모두들 그간 자기집 청소를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말할 것 없이. 아마도 여직원 대부분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냉장고부터 청소를 열심히 했을 것 같았다.
8 k과장은 여성으로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전문가로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의 멘토였다. 그 분과 함께 일했던 곳에서 떠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자주 생각이 난다.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자칫하면 협조보다 개인중심으로 가기 쉽다. 그러나 그분처럼 전문성을 가지면서 배려와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힘든 시간도 잘 버텨낼 것 같다.
9 따뜻한 리더 주위에는 그를 닮고 싶어 하는 후배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개인과 조직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하도록 한다. 지금은 퇴직해서 현직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 분과 함께 한 많은 후배들이 그 분의 선한 영향력을 받아 또다른 후배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2. 언니가 해준 생일 선물/임선빈
1. 주일 날 저녁 “고모 화요일 날 고모부님 모시고 우리집에 오셔서 점심 먹을 수 있는 시간 있으신가요? 사촌 올캐의 전화, 옆에 있는 남편에게 시간 괜찬겠어요? 물어보니 괜찬다고 대답했다. ”언니 갈 수 있어요.“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2. 실은 지난 토요일, 아들들과 며느리 손녀딸과 같이 모여 외식을 했었다. 날이 무척 더우니 집에서 밥 먹지 말고 밖에서 먹자면서 남편생일을 미리 축하해 주었었다.
3. 해마다 남편 생일 날을 잊지 않고 정성들여 밥을 해주시는 언니,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때는 전 날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아침 먹기 전에 생일상을 차려 오신 적도 있었다.
4 올해도 어김없이 기억해 주시는 언니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내 생일 날 보다 남편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5, 원래 외톨이인 내가 엄마까지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사촌들과 외사촌들의 따뜻한 배려로 내가 외톨이임을 못 느끼게 하고 있다. 사촌 올캐 한분이 같이 울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해마다 남편의 생일 날을 챙겨 주셨다.
6. 화요일 올캐집에 도학하니 사촌오빠는 횟집에서 회 맞춘 것을 찾아왔고 언니는 그 무더운 날 음식들을 만들고, 복고, 지지고, 무치고 한것들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놓고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7. 남편은 무더운 날 언니 혼자 점심 준비 하려면 힘드시다고 아침 일찍 먼저 가서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난 오히려 언니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8. 언니는 워낙 일하는 손이 빠르고 음식 솜씨가 좋아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거리적 거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9. 밥상에 앉기 전에 언니의 수고와 남편이 일찍와서 언니 일하는데 같이 서 있기라도 하라고 했다면서 말을 하곤 자리에 앉았다. 언니가 수고 한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었어요 미리 안오시길 잘 하셨어요 하고 대답해준다.
10. 좀 앉아 있으려니 조카 녀석이 보낸 크림으로 만든 생일축하 케익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회사, 학교가고 없어서 어른들만 언니가 직접 준비한 점심상 음식들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11. 점심 후 후식도 언니가 직접 준비하여 만든 식혜, 수정과 음료수들과 과일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12. 아내인 나도 덥다고 외식하고 말았는데 사촌 처남댁이 직접 땀을 뻘뻘흘리면서 차려준 생일 밥상 남편이 정말 고마워하는 생일 선물이었다.
13. 누군가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을 살고 있는 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14 . 내 남은 삶 나도 누군가를 위해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삶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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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사 집 유감 / 정원주1
1.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열기를 몰아오던 칠월 중순이었다.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1층 집으로 이사를 했다.
2. 자취를 하고 있던 아들은 지난 2년간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았다. 5층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던 번거로움에 비해 새로 이사 온 집이 1층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만족해 했다.
3.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서 반찬을 챙겨서 들렀다. 좁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건조대에는 수건과 양말, 운동복이 널려있고 나머지 옷들은 출입문 위에 냅다 걸어두었다. 이 집은 빨래 말릴 곳이 없다고 했던 집이었다.
4. 가지고 간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는데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먼저 먹을 반찬과 나중에 먹어도 될 반찬들을 간단하게 설명한 뒤 점심이나 사 먹으러 가자며 밖으로 나왔다.
5. “여기는 학교랑 가까워서 정말 좋아요. 지난번 집은 왔다 갔다 하려면 30분 넘게 걸렸는데, 이곳은 7분 정도면 돼요. 방이 아담해서 잠도 정말 잘 와요.”
이사한 집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내 낌새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아들의 목소리는 밝았다.
6. “아니, 너 팔뚝에 난 건 뭐냐?”
아들의 반팔 티셔츠 사이로 좁쌀만 한 붉은 반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들쳐본 아들의 등짝과 반바지 차림의 허벅지에 땀띠가 가득했다. 잠만 자고 다닌다는 방안이 얼마나 더웠으면 몸이 저렇단 말인가!
7. 콩나물과 대파가 들어간 시원한 소고기 국밥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밤새도록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도 올해는 워낙 더워서 그렇다는 아들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8. 두 달 전 부동산 중개사가 소개한 그곳은 방만 달랑 있을 뿐 구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벽에 설치한 작은 에어컨으로 잠을 자는 방안까지 냉기가 전달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싱크대도 손바닥만 한 데다가 식사할 공간도 좁았다. 세탁기는 있으나 빨래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 안보였다. 창문은 동향에만 있어 바람길이 갑갑하게 느껴져 다른 곳을 더 알아보자고 했다.
9. 그런데 웬일인가. 다른 곳을 둘러보고 나서도 아들은 처음 본 집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방 크기가 아늑하고 화장실이 깔끔하단다. 남편은 남편대로 대학 도서관과 가까운 위치라서 공부하는 데 더 좋은 조건은 없다고 했다. 이곳 대학가는 비어 있는 집이 드물다는 중개인의 말도 마음을 눌렀다.
10. “당신이 살 집이 아니잖아? 아들이 좋다 하면 됐지.”
“엄마, 제 마음에 드는 대로 결정해 보고 싶어요.”
의기투합한 부자지간을 말릴 수가 없었다. 살림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의 의견은 저만치 밀려났다.
11. 불편한 환경이라도 감수하며 살겠다는 아들과 자식들이 알아서 하도록 독립성을 길러줘야 한다는 남편의 주장이 강력했다. 답답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지만, 다 큰 자식 마음대로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 설핏 판단력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12. 이사를 끝까지 말렸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또 다른 집을 알아보자고 확실하게 설득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고 후회스러웠다. 이사한 지 채 두 달도 안 되었는데, 저 집에서 1년이나 더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13. 부모의 주장이 강하면 자식이 기를 못 펴고 의존적이 된다고 했던가.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자식의 장래를 망친다고 했던가. 나 또한 캥거루족 자식은 키우고 싶지 않았다. 아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면서 자립심을 기를 수 있도록 하려고 애쓰다가 낭패를 당한 셈이었다.
14.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새벽에 가족 단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새로 이사 들어간 그 집 갔다 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서 잠이 안 오네
무엇보다 밥 먹는 식탁이 없어 식사는 어찌하는지?
햇볕 안 드는 방 안에서 빨래를 말리기가 불편하지?
집을 잘못 구해준 것 같아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남편과 아들 뜻 따르느라 내가 얼마나 힘든 마음인지를, 본인들이 내린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15. 이른 아침, 아들이 문자를 달았다.
“괜찮습니다.”
새벽 운동을 간 남편이 아들의 글에 답을 달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다행이다. 우리 학창 시절에 비교하면 특급호텔이나 다름없다.”
16. 밤새 어수선했던 내 마음이 분명해졌다.
“그래, 아들아. 집이야 1년만 있다가 옮기면 되지만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은 함부로 우리 집에 데리고 오면 안 된다. 엄마의 이야기도 좀 듣고 나서 최종 결정을 네가 하기다.”
4 채송화를 닮고 싶어 / 박명화 1
1.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채송화이다. 정확히는 어릴 적 학교 화단이나 동네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홑겹의 채송화이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겹꽃 채송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홑겹의 채송화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낯익은 채송화를 발견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내 발길이 멈춘다.
2. 채송화의 소박함이 나는 좋다. 한 송이만 있어도 눈길을 확 끌어당기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미나 백합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표현에 딱 맞는 꽃이다. 소박하기에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아서 좋다.
3. 채송화의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내게는 과시할만한 외모나 재력도 지위도 없다. 그저 무던하고 겸손하게 살고자 한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다. 변함없이 내 주변의 사람들을 진솔하게 대하고 싶다.
4. 채송화는 햇볕과 물 빠짐이 좋은 흙만 있으면 어디서나 잘 자란다. 줄기를 잘라 흙에 꽂아 놓기만 해도 살아난다. 이전에 심었던 곳에서 씨앗이 날아와 스스로 자라기도 한다. 거름을 주거나 하는 특별한 보살핌이 없어도 잘 견딘다. 도시의 삭막한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5.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뿌리가 뽑힐 지경까지 힘든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주 조금 남은 흙을 위안삼아 잘 버텨내었다. 가녀리지만 생기 있는 채송화처럼 나도 잘 견디어 삶을 활기차게 이어가고 싶다.
6. 채송화가 주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송이 따로 자랄 때 보다 무리를 지어 있으면 더 소담하고 예쁘다. 마당 한 쪽이나 돌담 아래에 다소곳이 자리 잡아 배경에 녹아드는 모습이 좋다. 어느 시인의 묘사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피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숨기지도 않는다. 수많은 꽃 속에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다.
7. 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역량으로 내 주변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내게 주어진 작은 역할을 묵묵히 하다보면 좋은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같이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과 서로를 응원하며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8. 채송화처럼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주변을 밝히고 싶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위기에도 살아남아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 무엇보다도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정답게 살고 싶다.
5 또 하나의 선물 /홍미애2
1. 더위에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사위가 보내준 미숫가루로 허기진 배를 채울 때였다. 집으로 온다는 사위의 경쾌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린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 내로 도착 예정이라 그때부터 눈보다 빠른 내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위의 밥상을 준비하는 내내 딸보다 사위 생각으로 음식을 차렸다.
2. 띵동. 드디어 왔다. 사위는 신발을 벗기도 전에 큰소리로 ”어머니 이제 병원 자주 안 가도 됩니다. 주치의 말대로 1년에 한 번만 정기검진으로 여행 가듯이 다녀올 테니 걱정 마세요“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퐁퐁 거리며 뛰지 않았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타들어갔던 슬픔이 식도를 타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긴 시간 고생한 딸과 사돈 내외의 얼굴이 떠올라 목이 멨다. 아침 햇살처럼 특별한 온 가족의 선물이었다.
3. 하루하루 시간마다 세월의 무게만큼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딸아이가 결혼하고 두해를 갓 넘겼을 때 사업을 늘려 열심히 일에 전념할 때였다. 무심코 목 주변을 만졌는데 숟가락 크기의 멍울이 잡혔다가 어느 날엔 괜찮다가를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자신에게 시련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4.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심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위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씩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어떻게 될지 앞으로 닥칠 일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딸은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했다. 아니 그런척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애써 참는 모습이 가슴 아리고 애처로웠다.
5. 초음파부터 받아야 할 여러 검사들을 다 받고 힘든 시간을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기대와 간절함으로 기도했다.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했을 때 정말 앞이 캄캄하고 주저앉고 싶었다. 딸의 얼굴과 사위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6. 이하선 암, 침샘 암이라 했다. 매우 드문 암에 속하고 인구 10만 명당 한두 명 발병한다는. 이 때문에 다른 암보다 관심이 낮고 진단도 늦어 치명적인 만큼 무섭다 하니 암담했다. 침샘에도 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약한 암을 대부분 혹으로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며 수술 후유증으로 안면 신경 마비나 혀 마비 통증이 올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 사위한테 왜 하필이면, 원망의 여유가 없었다.
7. 아이들은 각자 여행용 가방에 짐을 챙겼다. 울러메고 짊어지며 앞으로 닥칠 힘든 여정의 무게를 함께 나누자며 떠났다. 사돈이 정해준 병원. 예약부터 모든 순서를 바쁘게 움직였다. 치료받고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사위가 아파 눈물 삼킨 그 날부터 새벽기도를 다녔다. 무조건 엎드렸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날때는 수면시간이 줄어들었다. 세시간 잠을 청하고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간절함과 절실함 앞에서는 기도밖에 안나왔다. 마음껏 울고 소리내어 기도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자신이 속상했다. 애타는 부모 마음까지 헤아리며 딸 아이는 혼자서 모든일을 감당해 냈다. 사위의 눈빛만 봐도 일거수 일투족 현미경 들여다보듯 한몸이 되어 사랑으로 움직였다.
8. 영양사가 되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겨주고 인내한 딸에게 애썼노라 고맙다는 말을 마음으로 수없이 되뇌어 본다. 늘 조바심으로 보낸 시간들. 그동안 사위도 딸도 힘든 가운데 둘의 사랑은 더 깊어진 것 같다. 요즘 사위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가볍게 둘레길을 걷다가 강도 높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9. 내가 사위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자상하고 따뜻해서다. 누구에게든 정감있게 마음 쓰는 사위는 참 든든하고 착하다. 사위는 내가 만든 음식을 잘하지 못해도 무엇이든 맛있다고 한다. 깻잎 반찬과 양파 장아찌를 좋아해 두통을 줬더니 다 먹었다며 빈 통을 또 가져다준다. 사위가 보내준 미숫가루가 바닥이 보이니 더 맛있다.
10. 자신의 몸이 좋아졌으니 여행처럼 병원 다닐 거라고 걱정 마시라며 건강한 몸을 선물한 사위에게 고맙다는 말로 등 두드려 안아주고 싶다. 어려운 이 세상을 항해할 때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모난데 없이 사랑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끝까지 마라톤 인생을 달렸고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준 사랑하는 내 사위는 그 존재만으로도 큰 선물이다.
6. 촌집 구하기/ 윤경희 2
1. “언니, 엄마도 이 집 마음에 든대. 그래서 계약하려는데 공휴일이라 엄마가 적금을 찾을 수 없어. 지금 계약금 좀 부쳐줘.”
2. 상기된 목소리로 숨 쉴 틈 없이 말하는 걸 보니 꽤 상황이 급한 듯하였다. 그저께 여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온 촌집 사진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지라 나 역시 마음이 들떴다.
3. 친정엄마는 나이가 드시며 마당이 있는 주택을 원하셨다. 마당 한 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자녀들이 오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노후를 꿈꾸셨다. 엄마가 사는 곳은 노후화된 아파트로 산 아래 위치하였다. 오르막길을 오른 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계단을 오를 때면 젊은 사람도 중간에 두어 번 쉬게 마련인데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에게는 버거운 집이다.
4. 하지만 혼자서 자식 셋을 키우느라 노후 자금이 부족한 엄마에게 마음에 꼭 드는 주택 구매는 무리였다. 우리 형제들 역시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대출을 생각했지만 억 단위가 넘어가는 금액은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시간은 갈수록 마음은 급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만 무거워졌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집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 드릴게.” 하면 엄마는 “다른 거 말고 집 사 주면 안 될까?”하고 웃으시며 아쉬운 마음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5. 그러는 동안 여동생 내외가 아침마다 부동산 홈페이지를 탐색해가며 몇 군데 집을 알아 오긴 했지만, 주택 상태, 위치, 매매가 모두를 충족하는 집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던 차에 이 집이 나온 것이다. 리모델링 비가 걱정되긴 하지만 이런 집이 인근에 나오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6. 동생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간 나의 속앓이를 알고 있던 그는 우리 돈으로 그 집을 사자는 게 아닌가? 남편이 말하는 돈은 차를 바꾸기 위해 몇 년간 모아둔 돈인데 현재의 차를 조금 더 타고 그 돈을 쓰자는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 원하는 차를 사기 위해서 판매자와 줄다리기했던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번에는 엄마께 향한 마음이 우선이었다.
7. 그 길로 고향에 들러서 계약한 집을 보고 난 후 집 매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모두 부담하기로 엄마와 여동생에게 말했다.
8.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숨을 돌리는데, 오전에 촌집을 잠깐 보고 일을 하러 갔던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9. “누나, 얘기 들었어. 왜 혼자 모든 걸 하려고 해? 목돈은 누나가 하더라도 나도 돈 좀 보탤게.”
10. 동생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지라 연거푸 거절했지만, 외아들로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은 속마음이 느껴져 대출해야 하는 금액을 빌려주는 것으로 승낙했다.
11.엄마가 주택에 살고 싶다는 소원에 전 가족이 몇 년 동안 애를 태웠는지 모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힘을 모았다. 아침 일과를 부동산 사이트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여동생, 생활비를 쪼개서라도 힘이 되고 싶은 남동생의 마음 그리고 남편의 배려가 합쳐져 작은 촌집을 마련하였다.
12.잔금을 모두 치르고 작은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고되었던 엄마의 인생에 맞춤 선물을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사를 하는 날에는 마당에서 다 같이 모여 숯불에 고기를 그득히 구워 먹어야겠다.
7. 저녁 노을 / 권은희
1.결혼 후 남편 직장 사택에서 퇴직할 때까지 살았다. 다행히 남편은 퇴직 후 동종 업계에 재 취업이 되어 사택 근처로 이사를 왔다.
2.남편의 직장선배가 3년전에 언양 도동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마당에 반은 잔디를 심고 나머지는 텃밭으로 여러가지 야채들이 심어져 있었다. 남편은 유독 텃밭에 관심을 갖고 나중에 전원주택에 살면서 노후를 농사로 소일하며 보내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3.몇 년 후 남편은 재 취업한 곳 에서도 퇴직을 했다. 이사사갈 마음을 굳히고 늘 생각하고 있던 전원주택을 얘기했다.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적응이 되어 편하고 근처에 재래시장 및 수변호수공원, 울산대공원이 있어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주택은 불편할 게 뻔했다. 영 내키지 않았다. 남편은 굳이 주택이 아니라도 집근처에 텃밭처럼 사용할 땅을 사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언양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4.오자마자 농지를 보러 다녔지만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땅이 적당하면 예산보다 비쌌고 값이 괜찮으면 환경이 좋지 않았다. 토지를 매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선책으로 주말 농장을 알아봤지만 너무 멀리 있어 여의치 않았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더 알아보기로 했다.
5.남편은 아파트 체육시설도 이용하고 자치회에 가입도 하며 빠르게 적응했다. 나는 적응 못 하고 전에 살던 울산으로 자꾸 나갔다. 친구들 만나 여행도 가고 맛집 순례도 했다. 그것도 몇 번하고 나니 시들 해졌다. 남편은 탁구 동호회에 가입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한번 따라가보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활기차게 움직였다. 잘 치면 좋고 잘못 쳐도 상관없이 즐겁고 재미 있어 많이 웃고 간다고 했다.
6.행정복지센터 주민자치 발표회에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됐다. 합창, 에어로빅, 소프라노, 오카리나, 섹소폰 등 멋진 경연이었다. 어르신들도 중간 중간에 보였는데 열정이 대단했다. 특히 섹소폰연주자는 70대 여자분인데 멋진 연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저분들의 저녁 노을은 얼마나 우아하고 황홀한가...
7.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고 앞만 보며 살았다. 노후에 무엇을 하며 살것 인지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무엇을 하고싶은 지 뭘 배우고 싶은지도 몰랐다. 집 가까이에 있는 울주도서관에 갔다. 가서 책을 읽기도하고 대출해서 집에서도 읽었다. 꾸준하게 갔더니 사서선생님이 독서 토론회를 알려주며 추천해 줬다. 가입을 하니 회원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지도 교사가 설명 및 마무리를 해 주었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생각도 해석도 다 달랐다. 혼자 읽었을 때보다 한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됐다. 도서관은 책에 관련된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프로그램강좌가 있었다. 그중 자전적 에세이 쓰기에 신청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문학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8.농사 지을 땅을 보러 다니던 중 남편은 상북면의 한 고등학교에 지킴이로 취업이 됐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학교 텃밭이 있으니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했단다. 뛸 뜻이 기뻐했다. 심어 놓으니 푸성귀는 금방 자랐다. 커다란 봉지에 상추를 가득 갖고 와서는 탁구 동호회원들 나눠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도 저 만하면 행복한 노을이었다.
9.나는 주민자치회, 복지관,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즐거움과 스트레스가 동반했다. 배우는 것 마다 어렵고 힘들었다. 글 이라고는 일기를 써본 게 전부인데 수필 습작품을 제출할 때는 조그만 기대와 커다란 두려움이었다. 시 낭송은 암기하기도 어려운데 시를 이해하고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니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울주도서관에서 시 낭송 동아리 활동을, 오영수 문학관에서 수필을 배우고 정류장 2곳을 배정받아 한달에 두번씩 클린버스 봉사할동을 하고 있다.
10.오랜만에 못안 저수지로 산책을 갔다. 우연히 본 하늘에 붉은빛 저녁 노을이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였던 나의 노을도 시 낭송 발표회를 하면서 서서히 밝아졌다. 수필 습작품을 쓰고 클린 봉사활동을 하면서는 핑크 빛으로 물들었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더 어둡고 깜깜해져 배우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을 것이다. 열심히 갈고 닦아서 풍성하고 화려하게 구름도 그리고 구름사이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도 그려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