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됐던 캔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를 비롯, 방직공장 여직공이 노조결성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마틴 리드 감독의 <노마 레이>, 벨기에 방직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아돌프 단스 신부의 삶을 재연한 스틴그 코닝스 감독의 <단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전 미국 화물자동차 운전기사노조인 팀스터 위원장이었고, 60년대에 11년 간 팀스터를 이끌면서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로 조합원을 230만 명까지 성장시킨 제임스 호파의 일대기를 그린 대니 드 비토 감독의 <호파>도 빼놓을 수 없다.
할리우드의 성격파 배우이자 감독인 대니 드 비토가 주목했던 것은 역사 속의 노동자, 아니 2차 대전 이후 미국 노동조합의 역사가 아니었다. 드 비토는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의회 청문회에서 싸우고, 파업을 주도하고, 정부와 비밀협상을 하고, 마피아와 거래하면서도 “나는 미국 노동자들을 거지에서 중산층으로 끌어올렸지”라고 얘기하는 호파라는 인물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했다. 과연 호파는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이번 현장리포트에서는 보통의 영화같은 스펙터클한 무엇이 아닌, 드 비토 감독이 구사했던 지나친 기교를 배제한 채 사실 그대로 한국의 화물자동차 운수노동자들의 삶과 조직, 투쟁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현장리포트는 레미콘 지입차주들로 조직된 건설운송노조,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조직된 88cc경기보조원노조, 학습지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시도한 한솔교육 등 3차례에 걸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실태와 조직, 투쟁과정을 살폈다. 넓게 보면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화물운수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 역시 비슷한 궤적의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로 볼 수 있다. 즉 그들의 고용형태, 근로제공형태 등을 따져볼 때 일반적으로 노동자성을 따지는 기준인 ‘사용종속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종속성의 개념을 경제적, 조직적인 부분으로까지 확대할 때 ‘노동자’로서 그들을 규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영노동(self-employed)’으로 분류되는 그들이 노동자냐, 아니냐는 도식적인 판단에 집착하지 않고 그들이 왜 ‘차주연합회’가 아닌 ‘노동조합’을 선택했고, 어떤 조직적 전망과 투쟁을 갖고 있는 지를 중심으로 서술하려 한다.
2. 화물운수업 및 화물운수노동자 실태
1) 화물운수업의 특성 및 고용형태
가. 화물운수업의 역사
우리나라에 사업용 화물자동차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이다. 한국전쟁을 끝낸 미국이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들여온 군용트럭을 전쟁을 치르느라 고철이나 다름없게 된 상태에서 다시 자국으로 가져가려니 비용이 더 들고,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결국 한국 정부에 파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고철이나 다름없는 차량을 강압에 의해 구입하기는 했지만, 막상 군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비싸게 사들인 차량을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부를 민간에게 불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구입한 차주들이 돈을 받고 곡식, 석탄, 목재 등을 운반한 것이 운송업의 시작이었다.
이와 같이 50년대의 국내 화물운송체계는 자본이 매우 영세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지입제로 출발하였다. 한국 사회가 60년대 이후 농업화에서 산업화로 전환하면서 운송시장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둘씩 직영체계의 운송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입제는 존속하고 있었다.
80년대 들어서 저유가, 저금리, 저임금 이른바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조건을 맞이하면서 중소화물업체가 수도 없이 생겨났으나 수출증가율이 저하하면서 제조업의 불황이 도래하였고 국내 경기는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맞았는데도 90년도 건설경기의 이상 과열현상과 함께 내수시장에서의 물동량 증가로 화물운송업계는 경기 침체가 지연됐다. 오히려 부분적으로 면허대수를 늘려 노후된 차량을 신차로 대체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91년 하반기부터 건설경기 하락, 수출증가율의 현격한 둔화, 제조업 불황으로 인한 운송물량 부족으로 화물운송자본가들은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였다.
특히 이 시기 김영삼 정권은 무리하게 WTO(국제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대외 개방정책인 우루과이라운드를 받아들였다. 미국이나 일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물운송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국의 화물운송업을 100년 이상 보호 육성하여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게 한 뒤 개방했다. 하지만 한국의 화물운송업은 50년도 채 안 된 역사를 갖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개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고, 결국 위기에 직면했다.
육상운송업 개방 및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물동량 감소 등으로 더 이상 안정적인 부의 축적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운송자본가들은 신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노동자들에게 차량을 불하하는 방식으로 위수탁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법제도상으로도 1961년 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제정된 이후 1980년 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에 대해 경영개선 특별조치를 취하기 전까지의 운송정책은 모든 운송업종에 대해 지입차량을 금지하고 직영화 하도록 하는 기업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송기업의 여전히 현물투자 방식으로 위장 지입한 차량으로 운영했다.
또한 정부에서는 1965년 기업화 보완조치를 통해 업종별 면허 최저기준대수를 현실화하고 직영차량대수를 완화하는 등 지입차주의 분리독립이 용이하도록 함으로써 법 제정 당시 획일적인 기업화 조치를 재조정했다. 그러나 기업화를 목표로 했던 두 차례의 운송정책은 운수업계의 기형적인 성장경로, 영세한 자본규모 등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여전히 지입제가 성행해 전혀 성과를 얻지 못했다.
나. 화물운수업 현황
2001년 말 현재 운수업을 하는 총 사업체수는 28만3,342개로 2000년 말에 비해 14.7%(3만6,380개) 증가했다. 이는 육상운송업 가운데 개별화물(1톤 초과 5톤 미만) 운송 및 개별용달(1톤 이하) 등 화물운송 사업의 등록의 등록제 전환("99.7) 및 전세버스업의 등록기준 완화("01.6), 그리고 육상운송주선업이 처음으로 조사대상에 포함(7,809개) 되어 사업체수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운수업 종사자수는 93만8,430명으로 전년 말에 비해 12.7%(10만6,094명) 증가했다. 이는 육상운송업에서 일반화물과 개별화물 및 개별용달이 사업체수의 증가에 따라 8만1,33명이 증가했고, 운송관련서비스업에서 육상운송주선업의 추가에 따라 1만9,628명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올 9월 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현재 국가물류비는 66조7천억 원으로 GDP의 12.8%에 해당되며 GDP 대비 물류비 비중은 일본(9.59%), 미국(10.1%)에 비해 높다. 또한 물류비 가운데 수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4.2%이고, 수송비 중 94%가 도로운송비이다.
이처럼 화물자동차가 국내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사업규모가 영세하고 사업용 화물차의 90% 이상(약 13만 대)이 지입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입제란 사업면허기준대수(현재 5대)를 보유하지 못한 화물차주(지입차주)가 명의를 보유한 사업자에게 명의(면허권)을 빌리는 대가로 차량관리비 명목의 지입료(1대 당 약 15만 원)를 납부하는 사업형태를 말한다. 화물자동차업체 전체 중 97.3%가 5대 미만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에 불과한 일본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즉, 우리나라에서 화물운송은 운수사업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아닌 자’에게 맡겨져 있는 셈이다. 지입차주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사업자가 아닌 자’이다. 결국 운수사업자는 운수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번호판 장사와 지입수수료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다. 화물운수노동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글에서는 화물운수노동자 가운데에도 지입차주(용차)들을 중심으로 살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화물운수노동자들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우선 회사에 직접 고용돼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직영이 있고, 회사 소속으로 있다가 구조조정에 따라 레미콘기사들과 같이 차량을 불하받으면서 회사가 정해주는 물량을 운반하는 위수탁노동자들이 있다. 화물노동자 가운데 직영은 10%, 위수탁은 20%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70%는 자신의 차량을 보유하면서 사업권을 보유한 사업자에게 면허권을 빌리는 지입차주이다.
이들 지입차주는 비록 회사에 소속은 돼 있으나 물량운반에 대해 회사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고 혹여 요청을 받았더라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철저히 물량은 스스로가 알선업체 등을 통해 확보한다. 따라서 사용종속성 등 좁은 의미의 노동자성을 따지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2) 화물운수노동자 임금, 근로조건
20년째 25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한 운전기사의 운임 내역을 보자.
충남 당진과 부산을 오가며 이 기사가 하루에 받는 운임은 32만 원이다. 원래 계약상 운임은 45만 원이 지만, 화물 알선 업체에서 알선료로 13만 원을 먼저 뗐다. 업계에서는 통상 운임의 10%를 떼지만 알선이 대부분 3~4차례 다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누적 알선료가 20~30%에 달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다단계 알선은 불법이지만 관행처럼 굳어있다. 이 때문에 기름값과 식대, 차량 감가상각비 등 각종 경비를 빼고 나면 한 번 운행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0만원 가량이다.
리포트팀은 이번 취재를 위해 지난 12일 밤 부산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운행하는 화물연대 김동술 부의장과 동행했다. 김 부의장의 경우는 12년째 50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다. 취재 당일 김 부의장은 중국에서 제작돼 온 온풍기를 일산에 있는 물류창고로 운반해야 했는데, 운반비는 38만 원이었다. 일산에서 하차한 뒤에는 수출용 물량을 싣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그 운반비는 30만 원이었다. 하지만 기름값은 평균 왕복 30만 원이고, 톨게이트 비용만도 약 7만 원(상하행선)이며, 식대만 따져도 지출해야 할 비용은 40만 원에 달했다. 여기에 차량 감가상각비와 보험료 등을 제하면 한번 싣고 돌아오는 데 남는 돈은 20~25만원 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근로시간은 상대적으로 차량통행이 뜸한 야간시간대에 집중되고 한 번 운행하면 장거리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리포트팀이 동행했던 김 부의장의 경우도, 상차지점인 부산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언양 톨게이트에서 만난 시각이 밤 10시 30분이었는데, 하차지점인 일산 물류창고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8시 30분이었다. 무려 10시간이 걸린 셈이다. 물론 리포트팀의 취재를 위해 3차례 휴게소에 들르고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30분 가량 토막잠을 잔 시간도 포함돼 있지만, 생체리듬도 완전히 파괴된 채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 부의장은 하차에 걸리는 2시간여 동안 잠시 쉬었다가 점심을 먹고 또다시 컨테이너를 교체하고 다시 물품을 싣고 야간운전을 하며 부산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 번 물량을 운반하고 원래 상차지점으로 돌아오기까지 날짜로 꼬박 사흘이 걸리는 셈이다.
3) 벼랑 끝에 몰린 생존권
운임은 오르지 않고 직접 비용만 상승 : 화물운수노동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운송료는 10년 전 그대로인데 기름값과 통행료만 3~4배 가량 인상됐다는 것이다. 화물차량에 쓰이는 경유가 92년에는 리터당 199원이었는데 올 10월말 현재 726원이다. 그런데 운송료는 인상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특히 장거리 차량의 경우 운행할수록 손해보는 상황이다.
쉴 곳도,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는 죽음의 장거리 운행 : 고속도로 휴게소가 민영화된 뒤 ‘돈 안 되는’ 화물차량은 어디에 가서든 푸대접이다. 적어도 고속버스는 한 번 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돈 되는’ 승객들을 적어도 20~30명씩 쏟아내지만, 큰 몸집의 화물차량은 고작 1명만 고객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화물차전용휴게소는 지난 97년 처음으로 경부고속도로 입장휴게소가 만들어졌지만 전국적으로 몇 군데 되지 않고 그나마 화물차운전자들의 안식처가 됐던 간이정류장이 ‘음주 방지’를 이유로 폐쇄됐기 때문에 졸립고 허기져도 푸대접을 받고 싶지 않아 화물차전용휴게소까지 죽음의 질주를 해야 한다.
산업안전의 사각지대 : 지난 한해동안 140여건의 고속도로 화물차 관련 사고가 있었고, 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도로비나 경유가 등 직접 비용을 줄여야 그나마 수익이 되는 사업구조와 할인시간대가 정해져 있다보니 야간운행이 더욱 불가피해 졸립고 피곤한 상태에서 운행해야 하는 처지는 필연적으로 대형사고를 부를 수밖에 없다.
4) 개정된 화물운수법의 문제점
지난 7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특히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법안이라며 반발을 사고 있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제40조인데, 법안은 ‘화물자동차의 교통사고 예방 및 화물의 안전수송을 위하여 신규등록·증가 또는 대·폐차시 충당되는 화물자동차의 차령을 3년의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럴 경우 3년 이상 중고차를 소유한 지입차주들은 차량 이전을 등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운수회사에 꼼짝없이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차량 5대를 소유해야 운수사업을 행할 수 있는 조건에서, 화물운송업 종사자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개별 지입차주들은 자기소유차량의 재산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게 되고, 근거 없이 지입료를 징수 당하는 불합리한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나아가 시장진입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내용은 설사 현재 계획대로 2005년부터 개별등록제가 시행되어도 중고차를 소유한 개별차주들은 운수업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법안은 화물운송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 운수법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지도와 규제를 완화하여 운송산업구조를 왜곡시키고 물류비를 증가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8천여 개에 달하는 화물운수법인 중 대부분은 운송사업을 하지 않고 등록최저기준에 맞춰 운수법인을 설립하고 번호판 교부와 이에 따른 지입수수료만을 주수입으로 하고 있다. 결국 운수법인에 대한 규제(등록취소 등) 조항마저 삭제된 조건에서 차령 3년 제한 등의 법이 시행되면 개별차주들은 차량 등록 및 유지를 위해 운수법인에 종속적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고, 화물운송사업구조 왜곡의 주원인인 지입제를 유지 강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3. 화물연대 설립
1) 설립과정
지난 5월 31일 새벽, 경부고속도로 경북 김천 구간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화물차운전사 20여명이 고속도로 최저 속도인 시속 50킬로미터로 서행 운전하면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휴게소 주차공간 확보와 통행료 인하, 기름값 인하, 운송료 현실화였다. 결국 이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최 아무개씨(39) 등 2명이 교통방해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화물차들의 고속도로 서행운전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4월말 경에도 화물차의 휴게소 출입을 통제한 것이 발단이 돼 휴게소의 횡포와 간이휴게소를 폐쇄한 도로공사에 항의하는 화물노동자들이 열몇대가 한꺼번에 모여 최저속도로 운행을 하면서 정체를 빚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화물노동자 구속 사태는 다른 화물노동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화물노동자들은 TRS(주파수공용통신)를 통해 이런 사실들을 서로 알리면서 모금운동을 벌여 구속자 가족들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우리도 뭉쳐서 행동하자는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갔다.
그러던 중 김동술 부의장을 포함한 12명이 주축이 돼 6월 6일 민주노총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노동자공동연대 준비위’를 꾸리고 화물노동자 조직에 나섰다. 이들은 TRS를 통해 “지금 가입원서를 받고 있으니 상행선은 ○○휴게소로, 하행선은 △△휴게소로 모이라”고 알리는가 하면 각 휴게소에 화물차가 들어올 때마다 요구안과 조직화의 필요성을 담은 전단지도 돌리고 가입원서를 받아내는 데 주력했다.
미리 화물연대에 가입한 운수기사들은 자신들의 차량에 화물연대의 출범을 알리고 요구사항을 담은 대형 플래카드를 부착한 채 운행을 하기도 했다. 헤드와 바디 부분이 나뉘어 있는 대형 추레라는 주로 콘테이너 뒤에, 분리되지 않은 카고차는 옆 문짝에 길게 플래카드를 달아 움직이는 홍보물 역할을 했다.
2) 노조로 모인 이유
이들은 조직을 결성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 뒤 곧바로 민주노총을 찾아 상담을 한 끝에 고용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화물운수노동자, 항만하역노동자들도 조직된 전국운송하역노조에 준조합원으로 가입하기로 했다. 곧바로 조합원 자격을 택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받는 데 다소 논란이 있는 ‘자기고용’에 가깝기 때문에 조직결성 초기부터 ‘조합원’임을 앞세울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오히려 시급한 제도개선 과제들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차주연합회 등의 사업주단체를 만들지 않고 노동조합을 택했을까? 김동술 부의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사업자들의 연합회인 전국차주연합회가 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결속력을 발휘했는데, 차주들의 권익신장 등의 활동보다는 알선사업 등 연합회 간부들만을 위하는 활동에만 주력해 많은 기사들이 탈퇴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주이기에 앞서 화물운송을 하며 생계를 잇는 노동자들이다. 굳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화물연대 역시 차주연합회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는 노동조합이고,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런 차주연합회의 전횡과 이권사업 개입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출범 초기 조직적 어려움도 겪었다. 준비위 출범 당시 임시의장을 맡았던 김 아무개씨가 다른 이익단체와 간여된 사실이 적발되자 7월 23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조직을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징계한다’는 운영규칙에 따라 김씨는 제명처리했다. 또한 공식 출범 전까지 직함을 활용한 이권개입 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부의장, 회계감사, 총무 등의 직책을 대신 전원 ‘준비위원’으로 전환시켰다.
3) “우리도 놀랐다"
전국화물노동자공동연대(이하 화물연대)는 10월 27일 부산대 신축학생회관에서 출범식을 했다. 당초 500여명의 화물노동자들이 참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무려 1,780명이나 모였다. 준비위 간부들조차 뜻밖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놀라기도 했지만, 화물노동자들의 억눌린 기본권 요구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종인 화물연대 의장(전국운송하역노조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억압받고 착취당해온, 그러면서도 운송자본가들에게 속아 사장이라는 탈을 쓰고 살아온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이제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났으며,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20만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이제 하나됨을 선언한다. 이제 화물연대가 명실상부한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구심이 됐으며, 또한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기는 11월 10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로 이어졌다. 이날 대회의 화제는 단연 화물연대였다. 회색바탕에 노란색으로 굵게 ‘화물연대’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빨간색 띠를 펼치던 운송하역노조 조합원들은 2,500여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은 1,600여명이었다. 10월 27일 출범식 이후 불과 보름도 안 된 기간동안 준비된 결의대회였음에도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다.
4. 화물연대 조직운영 및 특성
1) 조직체계 및 운영방식
현재 화물연대는 의장단(의장 1명, 수석부의장 1명, 부의장 3명)과 서울 부산 울산 대구경북 포항 광양 마산창원 등 지부를 두고 있다. 아직 출범 초기여서 지역별로 조직력의 편차가 있는 만큼 23~24일 수련회를 갖고 재편성을 한다.
현재 조합원은 2,500여명 가량이다. 조합비는 월 1만원이며, 전원 CMS(계좌자동이체)로 납부토록 해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의장단과 각 지부장, 집행위원 등은 월 1차례 회의를 정기적으로 갖고 수시로 필요할 경우 그때그때 전체 모임을 갖는다. 모두 화물운송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 장소는 주로 고속도로 휴게소이고, 시간대는 밤 9시에서 10시다.
2) 준조합원 제도
전국운송하역노조에는 특이하게 준조합원 제도가 있다. 노조 준조합원 규정에 따르면, △다른 업종에 근무하다가 운송하역산업에 종사하고자 전업준비를 하는 자로 해당자격증 및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에 있는 자 △운송하역산업 관련 자격 및 면허를 취득한 후 운송하역산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자 △운송하역업계에 종사한 자로서 준조합원으로 가입하고자 하는 자 △운송하역산업 종사자로서 조직적 여건 법령의 미비 기타 사정으로 정조합원으로 즉시 가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준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입차주(용차) 형태인 화물운송기사들의 경우, 운송하역노조는 현행 법령상 곧바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만큼 일단 준조합원으로 포괄키로 한 것이다. 노조 정호희 사무처장은 “세계적으로도 지입차주는 특수고용노동자(self employee on lease based)로 인정돼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레미콘운송기사, 보험모집인 등 위수탁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도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만큼 즉각적인 노동자성 인정 투쟁보다는 제도개선 투쟁을 중심으로 조직을 강화한 뒤 그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3) TRS(주파수공용통신)의 힘
흥미로운 것은 화물운송기사들은 1명씩 화물차를 운전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모이기가 어려울 텐데, 어떻게 급속도로 조직이 확산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화물운송기사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욕구가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이들을 엮어주는 수단인 TRS 때문에 가능했다. 화물기사 중에 같은 주파수를 쓰는 기사들은 5천명인데, 운행 중에 TRS를 통해서 정체지역이나 사고지점 안내나 상하행선 주요 지점 날씨를 소통하는 것은 물론 화물연대 출범이나 앞으로 이런 싸움을 해 보는 건 어떤가 하는 제안까지도 서로 얘기한다. 조합원들 교육 역시 TRS를 활용한다. 업무의 특성상 일상적으로 집단적인 모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교육을 한다고 통보하면 기사들은 그 시간대 운행을 하거나 잠시 쉬면서 TRS를 통한 원격교육을 받는 것이다.
화물연대의 결성 계기가 됐던 ‘김천’ 사건의 경우도 휴게소 출입을 봉쇄 당해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화물기사가 TRS를 통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했으니 함께 항의하자”고 말하자 인근 지역을 다니던 화물차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여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휴게소 제도개선
준비위에서부터 공식 출범까지 화물연대는 내부 조직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휴게소 출입과 화물차 기사 대우에 관한 몇 가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왜 버스만 주차되냐구요, 돈 받았어요?”
“여기는 버스만 대는 전용이라니까 화물차는 안 돼요”
“누가 그래요?”
“여기는 버스만 대라고 하더라구요.”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어가려던 화물차 기사와 화물차 진입을 막는 주차관리요원과의 대화 한 부분이다. 결국 화물차 기사는 버스전용 주차구역에서 쫓겨나 휴게소 밖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에 있는 모든 휴게소로 화물차를 위한 것이지만, 수익성만을 따지는 각 휴게소들이 버스전용 주차공간을 설치하면서 대형 버스를 적극 유치해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제대로 쉴 권리조차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13일 밤 10시 15분 경, 화물연대 소속 한 기사는 대보유통에서 운영하는 하행선 옥산휴게소에 들어가려다가 화물차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고 구석으로 주차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자 예의 TRS를 동원한 자발적인 화물차들의 진입투쟁과 휴게소 인근 서행운전 등이 시작됐고, 휴게소 넓은 주차장은 2백여 대의 화물차로 가득 찼다. 입구까지 늘어선 차량들 때문에 휴게소를 이용하려던 승용차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손님들로 붐빌 저녁시간에도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았고 식당도 텅 비었다. 이에 못이긴 옥산휴게소장은 화물연대에 사과공문을 보냈고, 화물주차장 확장공사와 화물기사 전용식당 설치 등을 약속했다.
옥산휴게소 뿐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화물차기사들의 집단 행동에 호되게 당한 대진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경부고속도로 황간 휴게소는 화물차 기사들에게 사과하고 화물차 기사 전용 샤워시설 설치 등 시설확충, 화물차 이용이 많은 오후 6시 이후 버스전용선 폐지 등을 약속했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를 부착하기도 했다.
5) 3대 요구·3조직 연대·3단계 투쟁
화물연대가 속한 운송하역노조는 올 하반기 투쟁의 전략적 방향을 광범위한 화물운송종사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결집한 대정부 투쟁으로 설정했다.
가. 3대 요구
화물운송기사들의 요구를 요약하면 △도로비, 기름값 인하 △운송료 현실화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개선 등을 집약될 수 있다.
나. 3조직 연대
5톤 이상 화물차의 경우 직영/위수탁/용차로 구분되는데, 지역의 경우 대부분 운송하역노조로 조직돼 있고, 위수탁의 경우는 상조회가 조직되어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연합 상조회로 결집되어 있기도 하다. 압도적 다수라 할 수 있는 용차들의 경우는 이제 화물연대로 출범했고 일부는 차주연합의 형태로 조직돼 있다. 3조직 연대는 노동조합과 상조회, 준조합원 조직(화물연대) 등 각기 다른 조건에서 조직돼 있는 단체들이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연대를 이루자는 것이다.
다. 3단계 투쟁
최근 고속도로상에서 산발적인 시위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고립되고 분산된 형태다. 따라서 1단계로 서명운동을 통해 여론을 결집하고 2단계로 대규모 집회를 통해 대정부 요구와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3단계로 위력적으로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6) 조용하고 거대한 쟁의행위
화물연대의 쟁의행위는 공장을 점거하거나 집단적으로 일손을 놓거나 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물류운반을 중단하는 그 자체가 쟁의행위가 된다. 대부분 용차이기 때문에 알선업체로부터 물류운반을 요청 받아도 그걸 거부한다고 해서 해고된다거나 할 우려는 없다.
김동술 부의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뚜드려박고 하는 싸움을 하진 않는다. 싸워서 다치기보다는 내 차를 내가 운전하지 않는 방식으로 싸움을 하면 된다. 조용히 한다.”
물론 스스로 물류운반을 거부함으로써 파괴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수가 한날 한시에 움직이는, 조직력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물연대는 차곡차곡 조직력을 먼저 쌓아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버스가 파업을 하면 지하철이나 택시, 철도가 파업을 하면 버스 등을 이용하듯이 다른 교통수단은 대체할 무엇이 있는 반면 물류운반을 하는 화물차들이 하루아침에 서 버리면 대체할 다른 무엇이 없다.
올 초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물류대란이 온다고 떠들썩했는데, 화물차의 경우 물류운반 거부가 몇 일만 지속된다면 아마 대부분의 공장도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를 형편이다.
실제 11월 10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화물차 기사들이 서울로 모였을 때 운반해야 할 물류가 집결돼 있는 부산의 알선업체들은 각기 아는 화물차 기사들에게 전화를 해 “빨리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면 안 되겠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부의장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런 물류대란을 초래하기 전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5. 맺음말
지난 11월 19일 오전 1시 30분 경, 화물연대 소속 화물기사 윤형씨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안전거리 미확보 또는 화물운전자의 졸음운전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죽음을 일방적 과실로 모는 데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이미 사고가 난 지점에 대해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뒤에서 추돌사고를 낸 것인데, 추돌과 함께 불이 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에 화물연대는 이날 아침 7시, 10초가 크략션을 동시에 울리며 사망에 항의했고, 19일부터 30일까지 차량에 검정색 리본을 달고 고속도로 운행시 라이트를 켜는 방식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기로 했다.
그리고 화물연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기름값, 통행료 등은 상승하는데도 운임은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밤샘 졸음운전을 할 수밖에 없고, 항상 교통사고에 노출돼 있다. 그러므로 비용상승은 막고 운임을 올리면 화물기사들의 근로조건도 개선하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둘째, 한 푼이라도 통행료를 절감하기 위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심야 할인제가 있는 시간대에 맞추려고 하는데 이것이 밤샘 졸음운전의 원인이 된다. 심야할증제도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사업용화물자동차 도로비 인하가 우선돼야 한다.
셋째, 기존 고속도로 상태를 개선해 불필요한 차량 마모를 막아야 한다.
넷째, 도로공사에서 공사를 할 경우 대부분 충분한 안전조치도 없이 도로폭을 좁혀놓은 상태로 공사를 하고 있어 공사구간에서 대형사고가 빈번하고 있다. 공사를 할 때는 도로폭을 충분하게 확보해 놓거나 우회도로를 확보해야 한다.
이 같은 요구사항을 관철해내기 위해 화물연대는 11월 23~24일에도 수련회를 갖고 조직내부 정비와 조직확대 사업 과제들을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아직 조직결성 초창기이지만 화물차기사들은 이제까지 참아왔던 푸대접과 부당한 제도들을 개선해 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11월 13일 오전 1시30분. 리포트팀이 들렀던 칠곡휴게소에는 예의 화물연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피곤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잠깐 잠이 급할 터인데 이들은 3대 요구안에 대한 서명지와 화물연대 조합원 가입원서를 들고 휴식을 위해 휴게소를 찾는 화물차 기사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이제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거대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새로운 조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