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자정 무렵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에 놀라 모두가 겔 밖으로 나왔다. 세상의 별들은 죄다 흡수굴 호수가 위로 모여든 것 같다. 핫트갈에서 맞는 마지막 밤하늘은 이렇듯 반짝이는 별천지로 깊어만 갔다. 이따금씩 유성들이 일시에 하늘에 매~ 달려 있기가 싫었던지 하얀 겔 너머로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별은 몽골의 사막에서 바라보아야 제 맛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밤하늘의 별들도 그 장관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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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에 물들지 않은 몽골은 아름답다. 너른 초원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
| 세계에서 가장 청정하다는 흡수굴 호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입으로 마셔보고, 가슴으로 기억하고, 마당삼아 마음껏 누렸던 자유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흡수굴의 쪽빛하늘과 바다 같은 쪽빛의 호수는 생태적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또 다시 이곳저곳의 오지를 찾고 싶은 곳이다. 이른 아침 잔잔한 안개 속에 비쳐진 나룻배의 오감은 주변의 초원이 피워낸 갖가지 꽃들과 갈대들이 어울려 낭만적인 풍광을 더해 단연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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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른 초원의 들꽃들에게 희망을 묻다. |
| 이번여행은 몽골의 유목민이 되어 여러 날 겔 속에서 그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는 의미도 있지만 단순 소박한 삶에 대한 가치를 깨달아 알기 위한 실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에도 뜨끈한 장작난로에 불을 연신 활활 타오르게 하는 호사스러움을 누리려니 내 자신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일 찬 공기를 연신 데워주는 겔과 함께라면 추운 몽골에서의 생활도 그리 걱정은 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겔의 문을 열어 저 멀리 호수너머 초원으로 향하는 물안개를 따라가다가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날들을 떠올린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에 하루다.
흡수굴에서의 장점은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유해산소량이 적어 달콤하게 느꼈던 공기의 맛이다. 지금도 잊기 힘든 자연 그대로의 신선함, 언제고 지친 영혼을 가진 문명인들이 찾아오면 욕심으로 가득한 때를 말끔히 씻어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초원위로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햇살이 어느새 희끗희끗 먹구름 속에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는 핫트갈을 영원히 탈출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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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인들은 언제나 손님들에게 정성스럽게 만들어 말린 찌즈를 내왔다. |
| 여인들은 그동안 아껴온 쌀로 밥을 짓고 시장을 보아 마련했던 반찬들로 아침상을 맛나게 만들어 함께 둘러앉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행복한 유목여행자들의 식사가 되었다. 모처럼만에 셀렌게(몽골인 안내자)는 캠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몽골식의 여유로운 식사를 하고는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각자 흡수굴 호수와의 이별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흡수굴 호수의 맑은 물을 기념으로 삼기위해 작은 페트병에 담고는 물을 길어 세수와 양치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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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트갈에서 무릉으로 향하는 길은 강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
| 핫트갈 겔 캠프 거리는 아직도 진흙탕에 젖어 오가는 차들이 조심스러워 했다. 그래도 짚 차들의 왕래에 관심을 가지는 있는 것은 오늘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캠프 주인장이 잊지 않고 소개한 러시아산 12인승 프르공 짚 차가 캠프 정문으로 들어와 우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각각의 겔은 저마다 한국으로 향할 짐을 꾸리기에 바빴다.
몽골 돈으로 환전을 많이 해 두지 않은 관계로 숙박료 계산에 문제가 발생한 것 빼고는 아무 문제없이 핫트갈 캠프를 나올 수 있었다. 시내는 한산했고, 이곳의 정보가 모아지는 우체국을 제일먼저 들렀다. 흡수굴 호수를 찾아 떠나온 많은 여행객들이 벌써부터 인근의 무릉으로 빠져 나가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핫트갈 공항의 사정은 아직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핫트갈에 있는 보잘 것 없는 공항이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운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역시나 여러 날 째 폐쇄 되어온 그곳이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핫트갈 곳곳이 어제보다 조금은 활력이 넘쳐 보인다. 첫 번째로 끊겼던 길은 아직도 흔적이 없이 황갈색 강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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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몽골인들이 즐겨먹는 천연의 치즈는 웰빙 식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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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인들은 우유와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과자를 즐겨 먹는다. |
| 그동안 함께한 이들이 바라던 대로 좋은 날씨 속에서 야무진 차를 얻어 핫트갈 대탈출 길에 오르다보니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서둘러 캠프를 떠났기 때문에 무릉으로 향하는 중간에 셀렌게 삼촌 집이랑, 외할머니 집을 방문하자고 입을 모았다. 핫트갈 초입에 있는 강변의 물살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웅덩이를 만들고 있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노련한 몽골의 짚 차 운전사와 그의 조수는 예리하게 강의 깊이와 폭을 가늠하면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무사히 강을 건넜다.
이윽고 넓은 초원 길가에 있다는 몽골인 통역자 셀렌게 삼촌 집을 주소도 번지수도 없이 찾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감히 코로 숨조차 쉴 수조차 없는 맑고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키며 대초원을 달린다. 다행히 이곳지리를 훤하게 알고 있는 푸르공 운전자의 도움으로 우리들이 찾고자하는 겔을 쉽게 찾아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셀렌게와 핫트갈에서 만난 푸르공 운전사가 친척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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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농촌의 삶은 단순소박 했다. |
| 허름한 겔에는 삼촌이 외출하고 없었고 대신 그의 이모가 계셔 함께 겔 안으로 초대되어 따스한 차와 천연의 치즈를 대접받았다. 대부분 유목민들의 거처가 이렇듯 작은 겔 중앙에 이가족의 수호신인 작은 불상이 놓여져 있었고 그 바로 옆에 텔레비전과 침대, 난로 등과 몇몇의 생활도구들이 이 집 살림살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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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나무집 내부모습 |
| 겔 세 곳에 두세 가족이 살고 있는 듯한 이 마을은 너른 개천과 하늘이 초원과 함께 끝없이 맞닿아 있어 동서남북 어디든 시야가 탁 트인다. 옆 겔에 들러 할머니와 아이를 만나 사진도 찍어주고 선물도 전해주고는 또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우리네 도로처럼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 다니면 그곳이 곧 길이다. 핫트갈 초원을 달려 무릉으로 향하는 도중 모든 다리는 유실되거나 심하게 파손되어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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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길은 없다. 다만 용기만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강을 건너다 만난 트렉터의 모습이 안스럽다. |
| 초원을 얼마간 달리니 드디어 두 번째 강이 나타났다. 흡수굴을 방문할 때는 보지 못했던 강이 나타나 제법 많은 량의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렇듯 곳곳에 마련된 몽골오지의 오프로드 길은 타국의 여행자들로 하여금 좌절과 단념 대신 어려움을 도전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듯 하다. 이쪽과 저쪽언덕에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가 무사히 건너오가기를 바라는 마음들로 정이 넘치는 곳, 힘차게 건너오는 이들을 향해 누구나가 박수로서 축하를 보내주는 곳, 이곳이 바로 생생한 삶의 현장이지 싶다.
무릉으로 향하는 언덕에는 벌써부터 많은 차들이 멈추어 서서 상기된 표정으로 한 팀 한 팀의 여정에 시선을 보내주는 것이 역력했다. 우리의 프르공도 잠시 강가에서 숨고르기를 했다. 운전사와 조수가 차에서 내려 강가 이곳저곳의 지세를 살피더니 이윽고 강물 속으로 빠져든다. 아직도 거센 물살에 차 창밖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데 차안의 표정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는 일쯤으로 생각하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몽골이 우리들에게 안겨준 대륙적인 기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 며칠 만이라도 몽골 땅을 밟게 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대 자연의 섭리에 동화된다는 것이 바로 차에 온몸을 맡기고 몽골 인들이 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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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에 휩쓸려 강바닥에는 많은 돌과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나뒹글고 있었다. |
| 강변주변에는 뿌리째 뽑혀진 나무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트렉터가 흙더미에 깔린 채 누워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푸르공은 그렇게 곧장 강 물살을 가르며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반대편 언덕 편에서 노심초사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여행객들이 일제히 우리의 무사를 환영하기 위해서 박수를 쳐준다. 일단 기분이 좋고 안심이 든다. 차 밖으로 나와 아들과 강가로 나가 작은 볼일을 보고는 초원위에서 뒤따르던 차량들의 행렬에 우리들도 환영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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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들른 농촌마을에는 형형색색 러시아식 통나무 집들로 가득했다. |
| 그리고는 또 다시 끝없는 초원위를 달려 길을 재촉했다. 프르공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어 의아 했으나 셀렌게 외할머니 집을 찾아 작은 마을로 들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제법 잘 살고 있는 마을처럼 보였다. 형형색색으로 차려진 통나무집들과 울타리는 몽골의 전통 겔과는 다른 러시아양식임을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간신히 셀렌게의 친척집을 찾아 외할머니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이곳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치료 받고 계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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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손녀 |
| 센렌게 외할머니 댁은 얼마 전 강의 범람으로 길이 끊겨 더 이상 갈수는 없었다. 대신 주변의 친척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셀렌게와 모두의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 겔이 아닌 러시아식 통나무로 만든 주택안은 화려함 없이 소박하게 벽면을 천으로 장식한 것이 특이했다. 그들은 친절하게 차와 밀가루로 만든 과줄로 손님들을 대접하고는 밝은 미소로 마중을 했다.
오전 11시가 넘어설 즈음 출발한 차가 무릉에 있는 공항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초원을 몇 시간동안 달려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5시로 알고 있음에 조금은 여유롭게 초원을 달릴 수 있었다. 마지막 강에는 이미 물이 다 빠진 상태라 가볍게 건널 수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비행기로 울란바타르에 도착하고 그동안 별렀던 기념품들을 마음껏 사서 돌아가리라는 마음을 먹고 차창너머 드넓은 초원의 변화무쌍함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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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트갈 오지의 강을 건너는 언덕에서... |
| 핫트갈 대탈출의 기세를 업고 무릉으로 향하던 중 거대한 떼를 이룬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꽃을 피우는 장관이 나타났다. 즉시 차를 세워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망이 굴뚝같이 여러 번 들어 참아오다 도저히 아쉬움으로만 남길 수 없어 차를 세웠다. 쪽빛의 꽃을 피운 예쁜 장면들을 모아 카메라에 정신없이 담기에 바빴다. 변변한 길도 없는 오지를 찾아 색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가벼웠다. 그저 그렇게 일행과 함께 삭막한 무릉시내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3시쯤으로 도착하자마자 환전을 위한 은행을 찾았으나 대여섯 곳 모두에서 환전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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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나무 집에서 만난 몽골아이 |
| 이유인 즉, 한국 돈은 환전이 되지 않고 그나마 달러의 환전도 매우 불합리한 조건에서 바꾸어야 했다. 이 은행 저 은행을 찾아 되도록이면 우리에게 유리한 환전을 위해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마지막 은행에서는 다행히 몽골화폐 가치를 1불대 750원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환전을 했다. 그러는 동안 셀렌게는 울란바타르에 있는 바타와 통화를 하더니 뭔가 석연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우리들에게 별일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무릉공항에서 비행기출발시간에 관한 일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용무를 다 마친 후에 무릉공항에 도착하니 3시40분쯤 되었다. 하지만 5시에 출발한다던 미얏트 항공기 시간이 변경되어 지금 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후 무릉의 활주로에는 쌍발의 프로펠라 비행기 한대가 막 이룩준비를 끝내고 서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뿔아 우리에게 주어진 타임스케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무릉의 셀렌게와 울란바타르의 바타간의 통화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셀렌게는 다급하게 공항으로 들어가 탑승에 대한 수속과 사후 처리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공항사무실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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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 만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자동차 |
| 우리는 허망함을 삭히면서 잠시 주차장에서 짐을 보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난감할 때가 있을까. 모두는 심각한 모습으로 무릉의 야속한 하늘만 원망하며 낙심하고 있었다.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몽골의 초원위에 버려진 우리들은 한순간에 집으로 향하던 꿈을 일시에 접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조급했던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면서 공항 앞에 마련된 원두막으로 짐을 옮겨놓고는 그동안 점심도 못 먹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둥그렇게 않아 남아있던 맥주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아들이 전령사가 되어 공항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알려왔는데 우리에게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들이 교차했다. 최종적으로 센렌게가 나와 조금 전 울란바타르로 출발했던 비행기가 특별기편으로 다시 돌아와 6시쯤 우리일행을 태우러 온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공항대기실로 들어가니 아직도 출발하지 못한 많은 여행객들로 번잡했다. 6시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7시가 지나고 공항대기시간 4시간째인 오후 8시경에 되돌아왔다. 짐을 꾸러 붙이고 45인승인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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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릉공항에서 특별기편을 제공받아 탑승하고 있다. |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탑승 전 소란을 피웠던 한 이스라엘 남녀 여행객의 몰상식한 행동에 야유를 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몽골의 하늘과 거대한 땅을 넘어 오후 11시 울란바타르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으로 마중 나온 바타와 얏트마는 우리들의 탑승을 위해 미얏트 항공사와 여러 차례 협의를 하고 결국 악천후로 인한 외국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특별기를 증편해서 보내주었다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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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 만난 야크 |
| 오랜만에 울란바타르에 온 기분은 좋았다. 일단 울란바타르 대학 옆에 있는 굿모닝 호텔에 여정을 풀기로 하고 곧장 굿모닝 호텔 1층에 마련된 조선옥에 들렀다. 하루 동안의 긴장과 초조, 희망과 기쁨을 떨어내기 위한 식사로 저마다 좋아하는 한식을 준비해 먹었다. 그다음 굿모닝 호텔에 짐을 풀고는 환전을 위해 은행에 들렀다. 역시 환차손이 발생하는가 하면 일정금액 이상의 환전이 어려워 다른 곳의 은행을 찾았다. 첫 은행에서는 원화의 가치를 매우 떨어뜨려 환전을 했고, 두 번째 은행에서는 제대로 환전을 해주어 곧장 한국으로 가져갈 기념품을 사기위해 시내 곳곳의 점포에 들렀으나 자정이 다된지라 여러 곳의 상점들이 문을 닫아버렸다.
야심한 밤이라 마땅히 기념품을 마련할 상점은 없었고, 대신 일반 슈퍼에서 각자 알맞은 선물을 골라야만 했다. 돌아올 무렵 또 다른 일이 생겼다.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울란바타르 대학 총장 비서실에 맡겨 두었는데 비서는 출타 중이라 찾을 길이 막막해졌던 것이다. 다행히도 울란바타르 대학의 총장께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총장실 깊숙히 보관하고 있던 우리들의 비행기표를 되찾아 주어서 다음날 새벽에 떠나야 될 일정에 차질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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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에 둘러않아 몽골의 전통 수태차이를 한 사발씩 들이키고는 길을 재촉했다. |
| 밤새 씻고 정리하고 하는 통에 정신을 놓고 자다가 호텔 모닝콜로 간신히 제시간 안에 징기스칸 공항으로 출발했다. 정확히 한국을 떠나 몽골에 온지 13일째 되는 날, 7월 25일 화요일의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도심 교통체중이 심한 곳을 빠져나와 한적한 울란바타르 시내를 가로질러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다. 언젠가 이 곳을 또다시 방문하리라는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벌써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했다.
한때 항공기 조종사를 꿈꾸었던 바타와 그의 미얏트 항공사 친구에 의해 비행기 티켓을 여러 번 바꾸기를 반복하다가 역시 마지막 날도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좌석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동분서주 했다. 잠시 공항대기실에 있다가 곧장 탑승수속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셀렌게와 얏트마에게 고마움과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는 바타와 함께 티켓 팅에 들어갔다.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고 짐을 부쳤다. 바타와 아쉬움을 남기는 이별을 고하고는 곧장 면세점에 들러 몽골의 기념품을 만지 작 거렸다. 그런데 울란바타르 대학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던 숙박료를 전달해 주지 못하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렵사리 바타에게 전화를 걸어 차후에 부쳐주기로 하고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 와중에 몽골이 자랑하는 쿠빌라이 보드카를 여러 병 손에 쥐어 들고는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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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가족의 이사장면, 정말이지 단순소박하다. |
| 정확한 계획 없이 그저 초원하면 떠오르는 몽골을 여행하겠다고 그것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곳을 경험해보겠다고 달랑 식구들을 이끌고 도착했던 몽골을 생각한다. 몽골과 솔로고스는 역사적으로 따듯했던 영혼들을 보살폈던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소박이라는 유목정신에 맞게 자연에 순응하는 삶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소위 선진국들이라는 우리들이 유목민들의 위기를 만들고 있음에 우리들이 가지는 가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개발의 도시, 소비의 도시, 문명의 도시 속에서 탈출한지 13일째 되는 여러 날 동안 우리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개발, 개발, 개발이라는 단어의 폭력성을 한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 곳이 없다. 주어진 삶에 좀더 충실하고 생명이 모든 것들과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늘이 감추어 둔 운둔의 땅 몽골을 찾았다가 도시화로 인한 고정과 유목생활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문명의 차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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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 만난 소녀는 대단히 수줍어 했다. |
| 초원과 사막이 펼쳐진 하늘에서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하나 둘씩 떠 올리며 어설픈 문명에 찌들어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 정신을 돌아보았다. 정녕 문명이라는 도시문화에 찌들어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들도 믿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진보된 사회인가, 착하고 순박하게 서로의 정을 나누며 오손도손 살아가고자하는 이들이 진보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