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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달리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
컬리의
통밀 식빵과 내가 만든 모닝빵으로
유칼립투스의 모닝 라테로
하루를 열어 봅니다.
휴일의
여유로움에서 듣는 음악은
언제나 마음이 들뜹니다.
비온 뒤의
싱그러움이라 그런지 대지의
모든 초록에 덩달아 생기가 넘칩니다.
두주 만에
다시 듣는 방송에 볼륨을 높인 음악도,
이방저방 기웃거리며 재잘되는 둘째넘의 수다도,
모든 것들이 즐겁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휴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늘, 건강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반갑다는 미소와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행위들로 구성된 루틴을 사랑합니다.
익숙하고 잔잔한 여유, 시간들의 연속.
주말의 늦잠,
맑은 날씨의 산책,
좋아하는 카페에서의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
그 카페에서
읽고 싶었던 책 읽기,
주중에 떠올랐던 또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
글로 쓰고 다듬기.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들 일지 몰라도
나에게 만큼은 진정한 휴식이며,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되는 가장 나다운 활동들입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온전히 나로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이 거의 없어진
일상 속 이 모든 루틴이 간절합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방송인지,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함박웃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걸어가는
시간 속엔 생각 없거나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시간을 잠시 내 머릿속에 정지시킵니다.
예전에
브롬톤으로 여행을 가면,
길을 오를 때마다 힘들면 내려서 걷다가
다시 올라간 기억이 납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들의 풍경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낌들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높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듯이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힘들면 쉬어가도 될듯 싶습니다.
너무 힘들면
잠시 내려 쉬고 다시 걸으면 됩니다.
저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정말로 기분 좋은 시간이 옵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는 않지만,
걸어가는 시간 속엔
나에게 또 다른 시간을 선물로 줍니다.
음악과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 내 삶의 또 다른 시간을
선물로 주듯이 바쁨속에 이렇게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주 만에 다시 들어 보는 방송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휴일의
여유 앞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속에
문득 뇌리를 스치는게 있습니다.
상상의
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끝없이
샘솟는 생각들로
소재와 주제는 차고 넘치는데,
정작,
스크린과 키보드를 앞에 두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디서 시작할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까.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의 의미들을 되내어보면
인간의 감성은 참으로 다양하다 싶기도 합니다.
얼마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일까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해가
뜨고, 지기 직전의
산책을 좋아합니다.
식어가는
공기와 그라데이션으로
변해가는 하늘 빛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젠,
퇴근길 주말 농장에 귀여운 놈들
물주러 들렀는데 마침 행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달콤한
냄새가 확 달려들었습니다.
달콤하고 토속적인 흙 냄새.
행사 주체,
목적 또한 주말농장에 포인트라서
의미가 남달랐다 싶습니다.
서툴지만
호기심으로 다양한 이놈 저놈들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쉰일곱 그루의 생명들을 연두빛 초록으로
오랫동안 마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방송입니다.
그리고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한 곡의 음악에는 저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저기
창밖으로 하얀 꽃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한낮의 공기와 뒤섞여
듣기 좋은 울림이 됩니다.
마음을 잡아타고
화엄사 깊은 산골에는 식물원에 박제된
나약한 진달래가 아니라 험한 산 곳곳에서
새벽의 추위와 모진 바람을 이겨낸
단단한 진달래가 한참입니다.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칙칙했던 땅이
초록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볼품없던
나무들도 숨겨왔던 우아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온전하게 나만을 위해 주어진 시간,
감미로운 음악들과 함께
까치발 세우고 봄마중을 시작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휴일 아침,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휴식을 위해
오랜만에 책을 읽어볼까
아니면 마음껏 늘어져 침목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휴일은
내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니,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싶기도 합니다.
휴일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맛있는 머핀 한 조각을 즐길 때 느끼는 행복한 순간.
더 이상의 극치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인생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듯 합니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사람들이 꺼려 한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측가능성과
적중률은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어떤 자극도
덤덤히 받아낼 쿠션을 키우는 일.
어쩌면
가장 필요한 능력치일지도, 라는
생각을 부쩍 더 많이 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공고히 다져야 할 것과
허물어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의식에
가깝도록 꾸준히 해야하는 것들과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아야 하는 것들을 상기하면서,
아침 명상 벗삼아
그냥 저절로 키워지는 삶의 여유가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시간에서 듣는 음악이
그야말로 내게 주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한주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합니다.
새롭게
음악방을 꽃단장 한거 같은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음악에 둘러싸여 살지만,
심장이
터지도록 느낌의 절정에 이르기엔
그다지 흔하지 않습니다.
흘러 나오는
그 모든 음악들을 단순한 일상으로
오득하지 않는 여유로운 아침입니다.
귀로 들어와
마음에 와 닿는 지금의 음악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앞주에는
부재였으니 이주만에
다시 들어 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방송이기에 이 떨림이
더욱 소중한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겨울,
참 쓸쓸하다.
김수용 시인의
[겨울 이야기] 끝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정말 가슴에 겨울의 쓸쓸함이
밀려드는 듯합니다.
그래도
겨울 아침을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
아침 햇살에
남아있는 붉은 기운을 모아
숲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봄을 기다리는 단풍잎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봄을 향한
단풍잎의 눈길과 손짓이
보는 사람에 따라서 따뜻함으로 느껴질 수도,
아니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주 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에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함박 웃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이 없는 곳,
말이 없는 곳,
귀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
지금 나의 귓가에 맴도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지금 흐르는 음악에 대한 예우와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몽환적인 음악을 쫒다가도
가끔은 비트가 강한 곡들이 사탕처럼
달달할 때도 있다는 것은 음악적 성향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뇌의
미닫이를 간지르는 감미로운 음악들은
한 주를 숨가프게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쉼의 여유를 충분히 내어주는 듯 합니다.
한 주를
아우르는 도돌이표 시간속에
반갑다고, 감미로운 선곡들이 좋다고, 엄지척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 공간,
너의 선곡이 좋습니다.
충분한
여백에 딱 맞는 선곡들이
그냥 너라서 좋습니다.
티없이
드러난 순수한 방송이
너라서 듣기만해도 좋습니다.
귓볼을
세우고 지긋이 눈 감고
그냥 너의 음악만 들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우리는
언어로 자신의 마음, 내면,
진심을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부터 이어진 물음인데,
최근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온전하게 표현해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음악방에 들럿다가
감정쓰레기통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얼마전 농담 한마디의
오해로 인해 영추를 당한 방인데
음악성이나 선곡들이 좋아서 주말이면 가끔 밖에서
듣는 방이기도 합니다.
가끔,
음악이 듣고 싶어 창을 클릭하면
회원님은 접근 하실수 없습니다. 라는 시그널 창이 뜨는
그런 음악방 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느때 처럼 클릭 했다가 방 입장이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창에 계신 분들께 인사드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에 마음을 내어주고, 공감중인데,
갑자기 음악이 끊기고, 또 다시 영추를 당한겁니다.
잠시,
뇌리를 스치는 생각들,
이게 뭐지, 음악방 들어와서의 전후를 살펴보면
인사하고, 조용히 음악듣는거 외엔 달리
영추 당할 만큼의 언어나 행동의 비중은 없는데
이게 뭔가 싶습니다.
쓰레기통에는
좋은 것이나 아끼는 걸 버리진 않을 테니
상대의 좋지 않은 감정을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그런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감정쓰레기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분들은 더럽거나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불편함에서 벗어나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가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싶은데,
역시 편하게 동등한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채운다는 것.
음악으로, 책으로 그렇게 채워도
뇌는 행복하지 않는 그런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난히
황토색이 많음에 잡사의 생각까지 겹쳐서
아직도 발걸음 못하고 있는 그많은 생각들을 어찌 풀려하는지.
한 주는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리고, 포근했다가
다시금 추워지는 그런 한 주를 연출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음악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멋진 방송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옷깃을
여미게하는 엄동설한 입니다.
에치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리라 믿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세월 속 벌어진 틈
그리움에 사무친 날.
마지막 파문 하나
고요를 건너 뛴다.
마침표 차마 못 찍고
말없음표 찍으며.
청원 이명희 [물수제비] 중에서…
침대에서
계속 뒹굴대는 하루.
작은 귀차니즘을
뒤로하고 책보기, 음악 듣기에 열중해 봅니다.
빈 시간을
급히 채워보려는 본능을 멈추고,
가만히 멍때리듯이 음악에 심취해보는 것도
너무나 좋은 듯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인데 그 노래가 마음에 들어올 때,
그 노래가 마음을 토닥일 때,
그 노래가 마음과 이야기해 줄 때.
사람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살아가지만
역시 사람은 음악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뒹구는
지금의 내 모습이 시간 킬링 타임이라는 표현에서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내가 하는 지금의 시간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흡족한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에필로그를 끝낸 후 2부에 접어든 모습처럼
킬링 타임에서 힐링 타임으로 바껴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주만의
반가운 해후를 맞이합니다
멋진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는 바람이야
스쳐 지나가면 그뿐
남아 흔들리던 나는 혼자 울었다.
산다는 건 그렇게
저 혼자 겪어내야 하는 일이다.
모든 걸 저 만치 보내놓고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고
혼자 울음을 삼키며
혼자 하는 그 모든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일이다.
흔들리되 주저앉지는 마라.
손 내밀어 줄 사람 아무도 없으니
혼자 일어서려면
참 힘겹고도 눈물겨우니.
이정하 [혼자] 중에서…
이른 아침
심학산의 산행은 참으로 고요하고
엄마와 같은 품을 내게 내어 놓습니다.
어느새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처럼
한 장 남은 달력은 낙엽, 첫눈, 그리고 지나갈
뒷모습의 회한으로 남겨 두는 듯 싶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세월중에 그다지 많은 글을 쓰지 못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순수하다면 순수했던 한 해.
어느해처럼 그다지 많은 글이나 행사없이
군더더기 없는 조용한 한 해의 마무리의
달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머리를 숙여야 하는데도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아니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닭의
존재 이유가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망각해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쯤 밝은 사회가 될려는지,
남은 12월 한달 모두들 잘 마무리하여
후회없는 한 해였다고 말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두주가
두달 만큼이나 길었다 싶은 기다림끝에
반가움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눈이 오면
항상 생각이 납니다.
어느 해
11월 겨울의 입김이 머뭇거리던 한 때에,
어느 높은
언덕길에서 흩날리던 손바닥에 닿자마자
사르륵 녹아 차가운 공기 속에 사라지던
누군가의 소원 같았던 그 눈발에.
이번에는
눈발도 송이송이 굵고, 눈으로 피부로
느끼기엔 꽤 크고 많은 눈송이었지 싶습니다.
봄빛을 닮고 얇은
폴리에스테르 플로랄 자켓을 입고
재색의 운동화를 신고 책을
두 권인가 들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첫눈과 눈인사를 했던 나의 모습이
아녔나 싶습니다.
가방을
메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게가 실린 무언가가 내게 있었습니다.
오르던
언덕길 중간에 섰을 때쯤 내린 눈을 올려다보던
나의 모습이 타인인 듯 떠오릅니다.
아마도
2년전 첫눈과 눈 인사를 했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눈은
꼭 첫눈의 기억을 기어코 파고들어
추억의 끝을 부르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그 해
첫눈 오던 밤,
짚 앞 가로등 아래 서있는 그 남학생의 모습으로
순간이동을 해 보고 싶은 하루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꽤 오랜만이지 싶습니다.
반가운 방송, 교감있는 방송에 감사의
마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내 모습이 바로 보이는데
너는
웃으며 안녕이라고 말한다.
가려거든
인사도 말고 가야지
잡는다고
잡힐 것도 아니면서…
황경신 [ 청춘 ] 중에서
첫눈이
내렸습니다.
짧은 시간동안에
함박눈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주변풍경이
순식간에 하얀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꽤나 오묘하다는 생각과 함께
꽤 만족스러운 첫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리는 눈과
집안의 몇몇 식물을 보면서
막힌 공간에 있는 식물은 대부분 관상용으로,
공기청정용으로
인간의 입맛에 맞게 비치된다는 것이
조금은 아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또한
가끔은 그런 식물들처럼
서구의 아시안 쿼터를 채우는 이름 잃은
장식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끝내 영어식 이름을 짓지 않고
자음보다 모음이 많아 혼란을 주는 한국어 이름을
고수하는 건 권력에 대한 식물처럼
조용한 나만의 저항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논리의 쟁점도 못 잡고 두서없이
글을 올려보는 아침입니다.
한주가 꽤나 길었지 싶습니다.
사람이, 음악이 꽤나 기다려지는
그런 한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절은
소리 없이 드나듭니다.
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좋아
조금 열어둔 창문 틈으로 가을이란 놈 대신
겨울이 슬며시 자리 잡아가나 봅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보다 내면의 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입니다.
어떤
음악방에서 청곡 하나로
장르에서 이견 타협을 이루지 못해 영추를 당하는 순간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리스너 한 사람이 듣고 싶었던 곡에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정작 당신들은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선 폄하하는 장르에
더더욱 충실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음악방에서는 왜 그릇된
사고를 가지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적어도
이곳 음악방은 품격있는 방송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방송
멋진 선곡으로 이루어진 방송에
함박 웃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끝에
맴도는 독특한 가을바람이
햇살에 서서히 말라가는 낙엽과 풀의 냄새에
몇년 전,
심지어 몇십년 전의 그때 그 바람과 냄새로
연결이 되어 기억의 소환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얼굴, 이름과 행동거지까지 또렷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희미하게 흐릿한
영상으로만 떠오르는 이도 있고,
공간이나 소리,
촉감만이 명확한 기억들로 떠오르는 이도 있습니다.
이 가을
잠시 일상을 뒤로하고
그리운 사람을 회상해 보는 것도 좋고,
좀 더 시간을 내어
그리운 사람, 그리운 장소로 찾아가
직접 보고 만지면서 그 기억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더욱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가을에
이 글을 수신하시는 모든 분들이
저에게는 그리운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3주의 부재,
무척이나 보고싶었습니다.
목마른 그리움의 반가움입니다.
감사합니다.
색채와 기온의 변화.
형형색색으로 시계와 기온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맘때면
유독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주변환경들,
글은 쓴다는 것에 대해 제법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 싶습니다.
열여덟 사춘기에도 글을 썼고,
스물 몇 살에도 글을 썼고,
서른 중반에도 글을 썼고, 마흔 중반에도 글을 썼고,
쉰 중반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과거의 글이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얼마 전에 재미있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스물 몇 살의 일기,
낙서장을 가져와 한 페이지씩
자판에 옮겨보았습니다.
아끼고 아끼고 싶다는
느낌보다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어떻게 조금 바꿔줄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결국 잘 보내주는 게
제일 중요하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혼자서 흩어진 조각을 가져와
이리저리 꿰맞추기를 반복했습니다.
나만의 역사라고 했던가,
현재의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마무리 했던 몇일전의 기억과 너무나 비슷한
오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듣고 싶은 방송,
기다려지는 방송, 시간의 엇갈림으로
2주 넘게 함께 하지 못하는 방송이 있습니다.
시간의 틈,
늘 듣는 방송은 아니지만 오늘 잠시 듣는
방송이 2주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채워 주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
보고 싶으면 봐야지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말하고 싶으면 말해야지
춤추고 싶으면 춰야지
노래 부르고 싶으면 불러야지
자고 싶으면 자야지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쉬고 싶으면 쉬어야지
상황에 따라선 가장 쉽고
또 가장 힘든 우리네들 일상이지 싶습니다.
어쩌다보니
청곡란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이렇게 로그에 대신합니다.
음색에서
나름의 솔깃함을 느낍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성도 이름도 모르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참 아름다운 사람,
그분과 몇곡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베란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가을바람이 내게 가디건을 걸치라고 합니다.
바스락 밟히는
낙엽을 보니 본격 가을이 다가오나 싶기도 하고,
감성 맛집, 감성 카페 이런 말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잠시 유체이탈을
시도했던 감성도 이맘때면 다시 돌아오는 계절,
상단전을 울리는 음악과 함께,
책장 속에
숨어있는 작은 문 하나를 열어가는 것도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같은날
평온한 독서와 음악만큼
가을 풍경의 뷰를 배경으로 채울수 있는 것은
없을 듯 싶습니다.
2주만의
해후로 이루어지는 반가운 방송,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습니까?
안부 인사와 함께 함박 웃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순간이 지겹고,
즐거움을 찰나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항상 지금보다는
다가올 짧은 순간들을 위해
인내했던 듯 싶습니다.
퇴근을,
주말을, 월급날을,
빨간 날과 여름휴가만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기다리던 순간들이 오면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다시 유명한 희곡의 주인공들처럼
저만의 고도를 기다립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날씨도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고,
긴팔 옷을 챙겨야할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추석은 9월에 있어 조금 이른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소식은 임시 공휴일까지 포함되어
6일간의 황금연휴로 더욱 설레게 합니다.
일주일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음악에서, 간간이 흘러 나오는 멘트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가지말라면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라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 나태주님의 그리움중에서… ]
생각만으로도 설레이는 아침,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설렘입니다.
주말이니까,
주말이라서 큰맘 먹고 독서를 시작합니다.
물론 매일 점심시간을
독서시간으로 쓰고 있지만
읽다가 멈춰야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니
집중도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방송과 맘껏 독서를 할 수 있는
오늘이야말로 최고의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때
이렇게 한권의 책을 꺼내어 전달자의
속을 들여다 보는것도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반가움입니다.
함박 웃음이 절로 나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멋진 방송 감사합니다.
설레이는 아침.
살아가면서 설레임이란
감정은 불시에 찾아오는 듯 합니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
간절히 무언가, 누군가를 기다릴 때, 미래를 꿈꿀 때
갓 시작된 관계에서의 설레임은
막 개화하기 시작한 꽃 봉오리 처럼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무엇을 뜻하는 건가?
이것은 단순히 형용사로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이유,
그 속성 혹은 본질에 관한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젠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벼도 익고, 사람도 익어가야 마땅할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월에 무슨 금이 그어져 있겠는가?
그런데도 가을과 여름의 차이는 크기만 합니다.
이제 점점 더 날이 선선해 질 것이고
들판도 누른 물결로 일렁일 것입니다.
푸른 하늘은
문득 교훈이 될 것이고,
뒹구는 낙엽은 삶의 이치를 자각케 할 것입니다.
길섶의 코스모스도
유년의 어떤 기억을 불러와
숙연한 가운데 우리 성장의 자극제가 될 것이고,
추야장의 달빛은 더 그윽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침을 열어
또박또박 내딛는 발걸음처럼
무덤덤히 시작하는 도입부처럼
어느 시제이님의 멋진 방송으로 하루를 열어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사계절의
시시콜콜한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몽실몽실한
하늘을 보고 여름이 왔네! 라고
반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산책을 해도 상쾌한 가을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여름은
어서 가라며 인사하는 계절.
여름과 가을의 조화가 아름다운 오늘.
땡볕과
많은 폭우를 동반했던 여름이었지만
떠나는 순간이 아쉬워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이 순간,
실바람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려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으로 시원한 방안,
감미로운 음악,
정감있는 사람들, 이공간에서
내게 이루어지는 사람내음의 다채로움은
그저 단순한 행복이 아니지 싶습니다.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오늘도 이렇게 반가운 안부를 여쭐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분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
그런 하루입니다.
과다분비 되는 것도
문제지만 도파민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기며,
기억력이 저하되고 집중력을 잃게 되어
무기력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잠자리 날개가
얇아지기 전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책이나 음악만한게 없지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저 단순한 인사가 아닌 한 주를
손꼽아 기다린 반가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도
반가움으로, 함박 웃음으로, 3시간 남짓한
시간속에 빠져봅니다.
감사합니다.
반가운 미소 한 번,
감사의 미소 한 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엄청난 횡재 하나, 귀의 호사, 이런 것들이
지금 내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의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이입시키고 동요시키는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예능이나 영화를 볼 때
음악에 따라 울컥하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 슬퍼질 장면이 아닌데 왜 눈물이 날까 원인을 찾다보면
배경음악을 의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음률은
음표와 쉼표를 동시에 가져야 하듯이
우리네 삶도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리를 내세요" 음표입니다.
"소리를 내지 마세요" 쉼표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리듬, 멜로디, 화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매개체는
중간중간 적당한 간격으로 들어가는 쉼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오늘도 수려하고 품격있는 방송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머리카락이 쭈빗서는 음악의
최고조를 만끽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주곡을 좋아해서 몇곡 청곡을 놓습니다.
이러다가 돌멩이 맞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머물러 앉았습니다.
채 가시지도 않는
두통과 속쓰림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5일을 열심히 살아낸 만큼 기다림뒤에 나타나는
그 여운들중 하나를 소환해 봅니다.
먹고싶은 욕망,
더위와 상관없이 어젠 소곱창에 꽂혀서
대학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상기라도 하듯이
옆지기와 함께 부어라 마셔라의 연장으로 참이슬 네병을 쓰러뜨렸습니다.
인지 능력, 지구력 모든면에서
당연 최하의 컨디션으로 아침을 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마주 앉은 사람의 표정을 읽고,
그날의 내 감정을 읽고, 새로운 장소의 분위기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메시지들을 읽고,
기뻐 하는 날.
기쁨이란 감정은
나에게 있어서 희노애락 중 가장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면
그 것 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답변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떤 지인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것,
음악을 건드려 그 호사를 누려보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언가를
읽고 쓴다는 것은 마치 숨 쉬는 것과 같다는 생각속에
좋은 음악을 듣고, 아침 먹기 민생고는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쉽사리
떠오르질 않습니다.
오늘도
멋진 방송으로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는
수고로움에 함박웃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8월의 첫 번째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태풍은 어떤이의 삶을 한 차례 뒤집어놓고 갔습니다.
가끔 마음을
정화해 주는 것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라는
폴 발레리의 시 구절을 좋아하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라는
이병률의 책 제목을 좋아합니다.
명지바람이라는
다정한 단어가 어울릴것 같은 하루.
바람이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부드러운 바람이 불 때
내 곁에 우연히 있을 누군가와
그 단어에 대해 이야기할 날을 기다립니다.
무엇인가 바뀌면 몸부터 반응합니다.
온도계로 물체의 온도를 재는 것처럼
온 신경이 음악과 함께하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온과 저온을 체크합니다.
한주 만에
고품격의 방송을 다시 접합니다.
온종일 방송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램은
과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요 며칠
나를 한참 괴롭히던 프로젝트 하나가 끝이 났습니다.
굉장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그런 기분과
왠지 모를 것에 대한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몇 날 며칠을
이어 달을 넘겨서까지 고생을 시키던
일이었으니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매번 끝을 보고 나면
너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수차례 주고받은
피드백 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오갔던 터라 끝나기를,
정말 끝이 나기만을 바랬었습니다.
그 순간순간에는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으며 부정도하고 이해도 하고
인정하고 동정하며 그렇게 수많은 감정들을 스쳐 보내며,
노력했던 시간들이
아쉬웠던 탓인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 체념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인가.
끝났다는 시원함이 아닌 미련의 아쉬움과 섭섭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기다림이 즐거운 주말 아침입니다.
한주를 열심히 살아내고 또 다가올 한주를 위해
쉼으로 에너지 축척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역시 한주의 기다림은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주를 손꼽아 기다렸던 방송입니다.
기다림의 주말입니다.
설레임의 주말입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주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스팔트와
대기의 폭염속 온도를
그대로 느껴야 하는 요즘입니다.
내 돈과 시간을 들이고
제주까지 가는 발품을 팔며 손님 대접받으러 가는 상황이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이 여름 티켓팅 전쟁에서 두 자리를 거머쥔
그 영광의 몇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달살이 제주투어를 제대로 실행하진 못했지만
몇일의 체험은 좋은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겨울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만
기억 속 오감이 모두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에 남은 기억이라도
끌어 안고자 합니다.
보이는 것만 봐야 할 때와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할 때를 구분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인생을 음악에 비유한다면
악보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단어들로 표현된 삶의 경로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주 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이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방송입니다.
감사합니다.
비가 제법 쏟아지는 아침.
창가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원두 한 잔의 향을 음미한다면
세상 부러울게 없을 것 같은 그런 아침입니다.
인간은 하염없이
약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은 인간에게
너무나 쉽게 상처를 주고, 받는 존재이고,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와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도
마음이 깊게 베이거나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고도로 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치 않게
정작,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하루입니다.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때 때론 반어법을 쓰기도 하는데
그 반어의 화법이 문제가 된듯 싶습니다.
형편없는 방송,
어떤 누구도 형편없는 방송을 대놓고 형편없는 방송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대놓고
형편없는 방송이라고 말을 할 만큼
성격이 모질거나 직설적이지 못한 탓에 어떤 진실에 봉착하게 되면
표현하기 보다는 입을 다무는 쪽이 지배적인 나이기도 합니다.
의도 한 바는
우스개 소리와 반어의 화법을 사용하여
좋은 방송을 형편없는 방송이라고 얘길 했을겁니다.
이유야 어떻든
진행의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이글의 맹점인데 어떤 글이나 행동으로도
진실된 마음을 쉽게 전 할 수 없을 듯 싶습니다.
이 방송과 더불어
미안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진심을 담아 몇곡의 청곡으로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환한 꽃 길 어디선가
기억의 꽃술을 열며 바라보고 있을
그 시선의 끝을 따라 가며
눈물로도 나눌 수 없는
마음 저 편 그리움 하나
고요히 깃드는 일 아름답다
누군가 저벅저벅 올 것만 같은
둥근 문고리 잡아당기며
얼굴을 내밀 것 같은 부질없는 예감
마냥 기울어도 좋을 물목[物目]의 향연
긴 기다림의 꽃 터널 아찔해도 좋으련만
낭창낭창 허리 꺾으며
흐득흐득 흔들리는 꽃잎
서로에게 닿지 못한 그늘이 크다
[ 청원 이명희님의 꽃은 홀로 피어 중에서 ]
음식 솜씨는 없지만
이것 저것 만져가며 아침을 차려 봅니다.
내가 기다린 그 한마디,
옆지기와 아들의 미소 사이로
그림 같은 아침 풍경이 지나갑니다.
배고픔은 몸의 습성이지만,
마음속에 파동을 그려 넣는 것은
정성과 배려에서 나오는 손길의 관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밥과 찌개와
반찬 모두가 정성의 손길 끝에서 빛을 발합니다.
모락모락 사연이 피어나는 가족들의 아침 밥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만들어진 요리의 맛과 냄새는 아니지만,
모양새는 잠든 오감을 깨우고 제법 침샘을 자극합니다.
음식도
각기 어울리는 재료와 간이 있듯이
가족들의 화목도 식탁의 온기를 통해 자기만의 좌표를
찾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멋진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정겹게 들립니다.
오월 초의 비가 장맛비처럼 쏟아집니다.
어제
낮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비가
오전 중에 멈출 듯하더니 오후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창문을 옆으로 밀고
손을 내밀어 빗소리를 잡습니다.
손바닥이 젖을수록 물내음이 향기롭습니다.
간절하고,
나름의 바램이었던 이 빗소리가
참으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플라타너스
너른 잎이 조금 더 넓어질듯 싶습니다.
버드나무 잎들이 많이 풍성해질테고,
포플러나무도 푸른빛을 짙게 발산할겁니다.
만물의
색이 짙어질 계절,
동안 참으로 많이 적조했다 싶은 비가
오랜만에 많이 쏟아집니다.
기름을 적당히 두른 팬에 파가 반,
잘게 썬 오징어가 반에 반인 전을 지져내서
시큼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을 빗소리에 섞어 마시고 싶습니다.
정겨운 리듬의
빗소리가 나를 게으름에 빠져들게 합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가끔은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
나름
소중했던 기억들의 몇몇을 끄집어 내어
상기함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빗물에 다 젖어보는 것도 나름 운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 30일
어느덧 4월의 끝자락입니다.
4월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새벽 산행이 좋은 이유는
신록의 싱그러운 풀내음을 그대로 느낄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은
아무랑도 연이 닿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가령
한 지붕에 살고 있는 가족이 별다른
연락 없이 여행을 연장한다던가,
퇴근하는 길에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은데
갑작스러운 번개에 응해줄 이가 없다던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싶은 날.
그런 날엔
이렇다할 의도 한 바의 목적은 없지만
책보기나 음악듣기에 몰두하면 나름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는 생각.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럴 것 입니다.
외톨이로 보이는 것,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두려워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혼자 활동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혼자 있기를 자처하는 것이 아닐지,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하여 느끼는
아쉬운 외로움과는 다르지 싶습니다.
고독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성격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고독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이렇게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때면
더더욱 공감이 가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4월의 끝자락에서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4월 하고도 23일을
맞이하는 하루입니다.
여름의
한 복판은 아니지만 요 몇일 제법
덥다고 느껴지는 날들이었지 싶습니다.
이 계절을
입 밖으로 꺼내보는 일이
그 자체로 휴가, 여행과 낭만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록이
짓어지고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산이나 들을 볼때면 올 여름도
여느 여름처럼 만만치 않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미치도록
목마름을 외칠만큼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누군가를 태연히 감추고
잊을라치면 다가오는 설레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뻔히
못 볼걸 알면서도
시간이 될때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나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하루 기다림을 시작으로
끝을 맺어 갑니다.
모니터
끄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이 기다림의 존재 의미는 퇴색되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그런 하루가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
간절하게 기다리는 기다림이 많이 희석된,
전혀 아무런 움직임의 답이 없어야 할 기다림.
이 기다림의
시작과 끝에는 어떤 결과물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기다릴 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 기다림이 참으로 좋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우리집 가훈은
가족과 함께 입니다.
주어진
한주에서 5일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그리고
일요일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각자의 휴식을 보장 받는 그런 의미에서
가족과 함께라는 가훈의 존재가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주를
한 달을,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큰애가 행시를 패스하고
경기도청으로 발령을 받고난 후 부터 가족과 함께 라는
가훈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광교까지 출,퇴근 문제로
분가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넷에서 하나가 자주 빠지게 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불러 모으고, 서로를 기다리게 만드는 공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실제의 삶을 살아내느라
고단한 듯한 사내가 보입니다.
거울 속 모습일 뿐인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위안 받고 싶은 날.
누군가 늘 지켜보는 것도 아니니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합리화 시켜보는 날.
운동을 마치고 나오며
근육들은 봉기한 투사같이 달려드는 느낌이지만
의외로 마음은 저만치 선 바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가벼운 옷차림 때문인지
기댈 곳이 생겨서 인지 몸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기다림, 설레임으로 음악과 함께 봄마중을 시작해 봅니다.
주말이지만
날이 흐립니다.
산책하기
썩 반가운 날씨는 아니지만, 맑은 날이 아니더라도
구름에 하늘이 가려지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걷는 행위는 변함없는 것이니 계획했던 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내심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거닐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하얗고 거대한 구름 숲에서 빗방울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멋진 방송, 좋은 음악과 함께
얼마전 교통사고로 2주간 입원했을때
써 놓은 글들을 보고 있자니 역시 글로 남겨놓길
잘했다 싶기도 합니다.
그때의 황당한 기억도,
바쁜 와중에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기억도,
지금은 시간의 흐름속에 가려진 기억들이
되어 가지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자니 새삼 그 시간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합니다.
날은 흐리지만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은 휴일.
이렇듯 감미로움 속에 멋진 방송을 듣는
나만의 호사로 휴일을 열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햇살이
너무나 좋은 주말 아침입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흐름이
마냥 멈추지 못하는 하루입니다.
기다림은
시간의 흐름이 기다리는 사람으로 인해
정점에 이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다림이
그토록 간절한 것은
그리움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아침.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어느 하늘아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그 사람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한 아침입니다.
테두리에 갇힌
그리움이 아닌 나만의 호연지기를,
기다림의 상대어는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추상적인 기다림에서도,
나답게 기다리는 호연지기를 길러가는 휴일의 하루를 열어갑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수고로운 방송에 함박 웃는 미소를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중에서...]
싱그럽고
느릿느릿한 꿈같은 산행으로
일상의 통념을 다시금 접하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휴식은 앞으로 나아갈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 가벼운 산행을 시작으로
첫번째 맞이하는 휴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풍경은 마음에서 힐링을 하고
아픈 생채기가 나면 거길 보호하고,
나아질때까지 자신의 생각과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릴 것 같이 흐리고 차가운 날씨.
난 다시 현실을 살아갑니다.
인생은
에스프레소 처럼
쓰다가
아메리카노 처럼
평범하다가
카라멜 마끼야또 처럼
달콤한 날도
오는 법이다.
입원 4일째.
자정이 넘었으니 5일째가
되어 가나 봅니다.
마냥 편하고 좋을 것 같기도 한데
낮과 밤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항상 바쁜 일상을 보내서인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마냥 쉬는데도
일할 때 보다 더 힘이 들고 피곤합니다.
치료하고, 낮잠도 자고,
음악 듣고, 책도 보고 하는데도
왜 이렇게 병원생활이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퇴원을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은데
퇴원을 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아니 이젠 새벽이 되어버린,
병실에서 듣는 음악의 또 다른 느낌.
그리고 창에서 이루어진 대화들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공간속의 느낌
또 다른 느낌은 마냥 행복한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간에도
멋진 음악으로 오감속에
이루어지는 감성을 채워주는 수고로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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