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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룹모임을 위한 방이 4개, 이대역 6번 출구 앞, 전통찻집,간판은 규정에 의해 그냥두고 한류차문화원 으로 개칭, 주변에 나름 저렴한 음식점들이 소재, 건너편 5번 출구 순대국집이 양호하다. 사진 권오철)
2023년 12월2일 오후 이대앞 작은 찻집에서 노년의 풍요를 이야기하는 작은 모임이 결성되고 그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한류(韓流)N통신의 맥락이 닿아 그 출발의 미미함 보다 그 끝의 창대함이 기대되는 모임이었다.
이제 초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시들어가는 한국사회의 활력은 이제 이들의 숙명으로 닥아왔다.그 전쟁의 후폭풍 아래, 또 개발독재의 광풍을 거치며 그 누군가 말했듯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청춘은 사랑을 하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았다.’ 그 결과물이 이 369 가장 많은 인구집단의 노인들이다.
369는 60대의 그들이 30대의 아들,딸을 안고 90대의 부모님을 엎고 있는 전형적 낀세대의 모습이다.
전쟁의 후유증과 전쟁의 공포로 단련되고 잘살아보세의 이기와 비상식적 독재체제를 경험하고 모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제일이라는 기형적인 70만명을 동일한 시험으로 등수를 맥이는 그로데스크한 시절을 겪은 그들이다.
이제 이들 세대의 진정한 각성과 희생이 또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이 20년의 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동안 변할 세상은 지난 60년의 4배 이상으로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못하고 안한 세대에 대한 것 까지 오롯이 그들의 노동과 희생에 의해 메워져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서울역뒤 (사)국어고전문화원(이사장유수현)은 또 다른 원력을 세워 몇몇 뜻있는 인사의 도움으로 이대역 6번 출구 앞에 ‘한류차문화원’을 개소하게 된 것이다.
우선 회원제로 운영하고 CCQ명장1호점, 애터美, 한류茶문화 보급, 인성삼담,족보문화등 다양한 형태의 그룹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접근성이 용이한 이 곳에서 열었다.
이에 대해 庾이사장 "유지비용의 우려도 있지만 그것은 이대앞 죽은 상권을 살리는 노력과 함께 새로운 한류문화의 시범을 보이자는 관점에서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경제성과 댓가성을 따지기에는 이 사회에 우리 세대가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몇 천만원 보다 이 우리들의 만남의 시작은 더욱 더 귀중합니다. 오로지 전진할 뿐입니다. 園은 동산입니다. 우리들의 작지만 알찬...”이라고 하며 기염을 토하는 고희를 앞둔 그 열정은 대단했다.
그리고 茶道 담당 朴선생은 "누구나 와서 고담준론을 하고 대화와 공부를 통해 힐링이 되는 장소로 자율적으로 부담없이 비용을 내고 차한잔을 음미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여러분이 만들어 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 새로운 시도를 위한 작은 모임, 오른쪽 천자문을 한장에 쓴 족자가 우리의 지난날을 되새겨 주고 있다. 천지현황, 우주홍황,일월영측,진수별장 그 대원칙! 사진 국전원)
이날 오전 오후로 나누어 많은 인사들이 찾아왔고 격려하였다.
그중 벽에 걸린 한 장의 족자가 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 했다. 이것은 중앙에 고운 최치원의 난랑비서문과 둘레에 천부경81자가 써진 국어고전연구원의 창시자인 고 윤경혁선생의 글씨이다.
고 윤경혁(尹庚爀) 원장은 한글전용주의자로 지내오다 한자(東夷文)교육의 선봉 실천학자로 생전에 차와 관련된 역사 자료들을 모아, 자료에 목말라 있던 차학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가 처음 신설되었을 때 차문화 고전을 사이버로 강의하는 시대를 열고 열성적인 문화활동을 전개한 분이다.
(사진 천부경과 풍류지도로 귀결되는 한류정신의 핵심, 이것이 바로 한류차문화원, 한류N뉴스 통신이 추구하는 한류정신의 핵심 사진 권오철)
이 난랑비서문(鸞郞碑 序文)은 한류정신을 명백히 보여주는 명문장이다. 중국 노나라 법무대신 공구(공자), 인도 측건태자 시달타(석가모니), 중국 주나라 사서 주주사(노자)의 삼교를 통합하고 그 위에 존재하는 코리언 스피릿(玄妙之道)이 바로 풍류도(風流道)라 하니 이것이 오늘날 ‘한류(韓流)’의 원형질 이라는 것이다.
또 천부경은 이으면 일로 시작 일로 끝나니 80자라 하기도 하지만 고대 한류가 만든 최고의 경전이다.
이렇듯 고도의 한류정신세계는 모든 코리아에 인입된 모든 종교와 사상 위에 존재하기에 일견 분열된 듯 보이지만 통합의 정신을 보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를 모토로 하여 한류의 또 다른 시작을 차문화로부터 시작함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한류의 유전자는 모질고도 끈질긴 것이다.
게다가 유(庾)이사장은 코리아(고려)건국의 최대 위업인 고창(안동)전투의 핵심인 유금필(庾黔弼, ?~941) 장군의 후손이고 이를 돕는이들 중 고창전투의 최대 협조자 삼태사의 후예들이 있고 또 통일의 영웅 김유신의 유(庾)가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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