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 인식과 서정적 기원의 진실 --최원봉 시집 『동그라미의 끝』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나’를 인식하면서 감응한 정서 현대시에서 추구하는 보편적인 정서는 ‘나’를 인식하면서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을 통한 자성(自省)의 시법으로 작품을 형상화하는 경향을 많이 대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정황(situation)은 무엇보다도 그 시인이 체험한 삶의 현장에서 감응한 다양한 의식들이 재생하여 시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주제를 정립하는 것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은 작품의 상황 설정과 전개과정에서부터 표현과 주제를 결론짓기까지 우리 인간들의 존재문제와 이 문제에서 탐색하려는 인간 본질의 지향에 대한 인본주의(humanism)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경우를 흔하게 접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원봉 시집 『동그라미의 끝』의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그가 사유하는 지향점은 바로 ‘나’를 중심으로 해서 잡다하게 생성된 삶의 체험이 곧 생존(존재)에 대한 인식이라서 그의 인생 탐구가 진솔하게 적시되고 있어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시제(詩題)와 메시지가 많은 흡인력을 갖게 한다. 이 ‘나’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시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나(혹은 자아)’에 대한 영육(靈肉)을 관류하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대한 지적인 정서의 축적이 그만큼 광범위하게 작용해야 하는 사유가 필요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평범한 체험과 지식보다는 차원 높은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철학이나 심리적인 상황전개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활 속에서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시인의 말> 「은어, 귀향하다」 중에서 ‘인생살이에서 이제는 108번뇌 염주알로 뺄셈만 하면서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삶’을 그의 존재 이유로 정립하고 있어서 그가 현재의 삶에서 감지하는 인생관이 함축된 어조에서와 같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제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머물다가 / 세월따라 하나하나 흩어지겠지 / 너와 난 그렇게 흘러가며 과거가 되고 / 산이 되고 들이 되고 또 강이 되리라 // 나란 것도 없고 너란 것도 없다(「만두로 점심을 하다」 중에서)’는 정돈된 인생론적 어조처럼 ‘나’와 ‘너’라는 실체가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존재의 허무에 대한 시법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라고 불리워지는 퍼즐 가까이 보면 눈 귀 코 입 그리고 몸뚱아리라고 불리워지는 조각들이 있다 오래 보면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이라고 불리워지는 조각들이 있고 가끔은 이성 양심이라고 불리워지는 조각들도 있다 나는 조각들로 짜여진 퍼즐이다 조각은 느끼고 행동하기도 한다 채워야 할 조각들 채우지 못하고 버려야 할 조각들로 채워진 퍼즐 사람이라고 불리워지는 퍼즐들이 나를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라고 불리워지는 조각들」 전문 우선 최원봉 시인은 ‘나’에 대해서 ‘사람’이라는 하나의 사물로 가까이에서 보거나 오래 동안 보면서 인생행로에서 당면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정의(情誼)에서 불리워지는 ‘나는 조각들로 짜여진 퍼즐이다’라는 어조(語調)로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띄우는 경종(警鐘)의 메시지로 들려서 우리들은 그의 이러한 단정은 상당한 설득력을 내포(內浦)에 몰입하게 된다. 그는 ‘조각’이라는 객관적인 대칭적인 화자를 설정하고 외적인 육체와 내적인 정신을 하나의 퍼즐로 비유하는 그의 시법은 주(主)와 객(客)이 ‘채워야 할 조각들 채우지 못하고 / 버려야 할 조각들로 채워진 퍼즐’이 되는 상호 교감하는 진실이 채움과 버림에 대한 인생적 가치관을 형상화하는 그의 시정신이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짙은 흙냄와 함께 / 머리 내민 쑥과 달래 향기가 / 내 가슴을 흔든다 / 머지않아 / 벚꽃들 연분홍 향기 쏟아내면 / 어찌할까 눈으로 맡아 볼 수밖에 // 상추 쑥갓 무럭무럭 자라나면 / 혼자 사는 친구 불러 쌈 싸 먹으며 /’ 꽃향기 사람향기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텃밭에는 코 있다」 중에서)‘라는 ’사람 향기‘에 대한 평소의 미감(美感)이 ‘꽃향기’와 더불어 ‘흠뻑 취해보고 싶다’는 기원의 의식이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단계로 ‘내 가슴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사리암에 왔다 녹음을 뚫고 지나온 길 지운다 녹음이 구름 되어 몸으로 물길 틔는 골짝개울 차가운 바위 속으로 천천히 걷고 있다 하늘 메워버린 녹음 사이로 길이 삐죽이 나 있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 관음전의 부처님 젊은 비구니 모두 虛像되어 녹음 속으로 묻혀 간다 나이테처럼 쓸데없는 울타리만 만들어온 내 모습이 보인다 --「모두 虛像되어 녹음 속으로 묻혀 간다」 전문 최원봉 시인이 나를 인식하는 방법에는 사리암을 찾거나 직지사를 찾아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력(일종의 방황)이 지속된다. 그는 ‘기도하러 온 사람들 / 관음전의 부처님 / 젊은 비구니 / 모두 虛像되어 녹음 속으로 묻혀’ 가지만 그 속 ‘허상’에는 ‘나이테처럼 / 쓸데없는 울타리만 만들어온 내 모습이 보’이고 있어서 나에 대한 진정한 나를 발견해서 자아의 인식을 명징(明澄)하게 확립하는 그의 시법에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리암, 관음전, 직지사, 능여화상, 노스님, 도경소리 등등으로 사찰과 연관된 어휘를 많이 응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불심(佛心) 등에서 인식된 자아에서 성찰의 심리적 변환으로 새로운 자신의 행로를 구축하려는 시의 정신적 지향의식을 이해하게 한다. 최원봉 시인은 조계종 제8교구 신도회장을 역임했던 참신한 불자이다. 이 시집의 표제시인 「동그라미의 끝」 중에서도 ‘백팔 염주알이 / 동그라미를 그리며 / 빙글빙글 돌고 있다 // 동그란 염주알처럼 / 열심히 수행하여 / 둥글둥글 살아가라고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 윤회의 길을 / 벗어나라고’라는 불심(佛心)의 언어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나란 것도 없고 너란 것도 없다(「만두로 점심하다」 중에서), ’아직도 내가 나를 못 버리나 보네(「잃어버린 손수건」 중에서), ‘내 몸은 / 하루 빨리 분해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에서)’ 등의 시적 소재에서 나를 인식하는 시구(詩句)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불망(不忘)의 애절한 아내와의 애정 최원봉 시인에게서 다시 간과할 수 없는 불망의 애가(哀歌-elegy)가 있다. 사랑하던 아내와의 영원한 결별이다. 아내가 췌장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남달랐던 애정의 이미지가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심중을 애련하게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당신과 함께 심은 겹벚꽃이 / 방울방울 등불을 달았어요 / 여보 저기 꽃좀 봐요 (「저 꽃좀 봐요」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의 애정의 온도는 가늠할 수 없이 뜨거웠다.는 그의 내면에서 복받치는 애감(哀感)의 언어는 그의 망실(亡室)에 대한 너무나 경건하게 울려지기도 한다. 그가 <시인의 말>에 언급했듯이 그는 ‘직시사의 불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서 그의 법명이 보광이며 아내의 법명은 세등심이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깜빡깜빡 / 이승 저승을 넘나들던 世燈心 / 초파일을 하루 앞둔 10시50분 / 普光의 품에서 임종을 맞고 말았다--중략-- 초파일 아침 직지사 앞마당에 / 밝은 연등 걸렸다(「밝은 연등」 중에서)’는 어조로 자신의 심안(心眼)이 부처님 자비(慈悲)에서 명민(明敏)한 기원의 의지로 변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앞에서 본봐와 같이 그가 ‘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사찰의 스님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살면서 그의 아내와의 별리(別離)가 현실로 도래(到來)한 것이다. 사내아이 셋을 혼자서 다 키우고 집안일은 도맡아 하셨는데 돈만 벌어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직장일 핑계로 자정 넘기는 일이 허다하고 때로는 와이셔츠 입술연지 묻혀가도 말없이 씻어 주셨지요 막내아들 결혼식날 영양제 주사 힘으로 그토록 긴 시간을 잘도 버텨내더이다 두 달도 채우지 못하시고 당신은 떠나셨는데 “담신 나 때문에 고생했어요 당신 가슴이 이렇게 넓은줄 몰랐어요” 그말 한마디에 내 할일 다 했다고 생각 했지요 웨 그렇게 몰랐을까? 웨 그렇게 바보였을까? 올봄에도 벚꽃이 핍니다 당신 마음속에 모아둔 곷송이들 올봄에는 남김없이 쏟이놓고 떠나세요 --「아내 생각」 중에서 최원봉 시인은 이처럼 아내의 고결한 행적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사내아이 셋을 혼자서 다 키우고 집안일은 혼자서 도맡아 하던 아내는 막내아들 결혼식날 영양제 주사의 힘으로 끝까지 버티다가 두 달 후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애절한 사연이 시적으로 형상화는 것은 일종의 시법에서 러브 스토리로 적나라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그토록 잊지 못하는 아내의 사랑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더욱 감동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내의 삼우제 끝나고 모두 떠나버린 텅빈 아파트 /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 연화지 벚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고려장」 중에서)는 어조에서도 이해할 수 있듯이 이제는 혼자 텅빈 아파트에서 맞이하는 벚나무꽃들은 그의 애모(哀慕)의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키는 고독감이 그의 사랑가의 중심이다. 나보다 더 나은 여자와 꼭 재혼하라던 당신 그 빈자리가 더욱 커집니다 사십년을 함께했던 시간에 갇혀 예쁘고 알뜰하고 지혜로운 인연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내편이었던 당신에게 한번도 당신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남편 아닌 남의 편으로 살아 왔습니다 쇠똥구리는 쇠똥이라도 평생을 굴리고 사는데 아직 나는 허송세월만 굴리며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아직」 전문 떠나간 아내는 현실적인 현명하고 진정성 있는 유언을 남기지만 그는 ‘아직도’ ‘예쁘고 알뜰하고 지혜로운 인연을 /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가 바로 ‘사십년을 함께했던 시간에 갇혀’ 있다는 애정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아내는 항상 내 편이었지만 나는 남편이 아닌 남의 편으로 살아 왔다는 이 세상 남편들의 솔직한 번민을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최원봉 시인의 의식의 흐름에는 오로지 아내를 향한 사랑의 애처가로 보답하는 휴머니즘적 정신을 엿보게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 「말은 안했다」에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한 아주머니의 가방을 들어준 일에 ‘아내의 안색이 별로다’라거나 「죽어도 없음」에서는 걸려온 카톡-당신 나 몰래 통화하는 여자 있지-죽어도 없음이라고 변명하는 익살, 등등 아내와의 정다운 대화는 그의 시 읽기에 흥미를 더하면서도 사랑가의 정점을 예감할 수 있는 시법이다. 최원봉 시인은 아내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 며느리 손주들까지 전 가족들에 대한 사랑의 향연이 다정다감하게 전개되는 그의 사랑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3. 친자연적인 교감과 서정시의 발현 최원봉 시인에게서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에서 그가 여망하는 몇 가지의 상황에서는 친자연적인 서정으로 인간과 회해하는 순정미를 읽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는 만유(萬有)의 자연과 교감한다는 것은 순수 서정에서 발현하는 그의 안온한 정심(情深)의 정서와 사유가 융합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잇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꽃밭이 / 산으로 올라왔다 // 끈끈이대나물 / 채송화 /족두리꽃 /금계국은 몰래 따라오다 /지쳐서 비탈에 자리 잡았다 //둥굴레 /원추리 /땅비싸리가 /친구되어 꽃을 피웠다 // 일년이 지난 어느 봄날 /그녀도 / 산으로 올라와 꽃밭이 되었다(「그녀의 꽃밭」 전문)’는 정감적 어조는 ‘그녀’에 대한 상사(相思)의 순정이 꽃밭에서 다시 반추해보는 아련한 연정이 넘치는 시법에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천덕꾸러기 망초꽃 엄마 떠난 빈 마당에 엉덩이 슬쩍 들이밀더니 용케도 버텨 주인이 되었다 길 건너 텃밭에도 춘자네 삽작거리에도 하얗게 피어 빈자리 지킨다 텅 비워버린 고향 동네 걱정되어 마지막 떠난 엄마가 보낸 꽃인가 뜨거운 여름 끈질기게 피어난 너의 마음 이제는 너를 보러 텅빈 고향을 찾는다 --「망초꽃 만발」 전문 그렇다. 그는 이러한 작은 천덕꾸러기 ‘망초꽃’에서도 엄마와 고향동네에 대한 추억의 향기가 배어있는 회상으로 ‘뜨거운 여름 / 끈질기게 피어난 너의 마음 / 이제는 너를 보러 / 텅빈 고향을 찾는다’는 귀향의 행로가 ‘텅빈 고향’의 서글픔이 우리들의 현실을 잘 표출하는 시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엄마 떠난 빈 마당에’ 이제는 망초꽃이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춘자네 삽작거리에도’ 그 빈자리를 하얗게 지키고 있어서 지금은 그가 텅빈 고향을 찾는 시적 정황은 전원 풍광에서 감응하는 소삭임의 어조를 이해하게 한다. 다시 ‘떠나온 땅속에 누가 있길래 /초롱초롱한 꽃잎이 말라붙을 때까지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 꽃이 되었나--중략--//비바람 심술에도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 순결한 희생이 귀중한 뿌리로 자랐구나(「둥굴레꽃」 중에서)’에서도 순수한 순결과 순정이 교감하는 시법이 그의 내면에서 생성하는 진정한 시법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자연에서도 화훼(花卉)류에 대한 동화(同化)가 많은 소재로 취택되고 있어서 그의 정감이나 미감(美感)의 심리적인 발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 많은서 꽃중에서도 탱자꽃. 민들레, 살구꽃, 복사꽃, 버들말즘, 백일홍, 자운꽃, 접시꽃, 개나리, 진달래, 벚꽃, 구절초, 진달래, 춘란, 해오라비란, 하늘타리, 달맞이꽃, 단풍,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 산머루, 감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이 꽃과 나무에 그의 눈길을 멈추지 못한다. 연화지를 에워싼 벚꽃들의 연분홍 사연들은 가지마다 가득 매달려 시끌벅적 야단법석이다 이제 머지않아 연화지 가득 연꽃 피어나면 수줍은 웃음으로 유혹할 텐데 꽃이 되고 싶다 꽃이 되어 꽃을 보고 싶다 꽃의 마음을 보고 싶다 --「봄봄봄」 중에서 최원봉 시인은 이처럼 ‘꽃이 되고 싶다’고 절규하면서 ‘연화지’에 핀 벚꽃과 연꽃들의 연분홍 사연들에 매료(魅了)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꽃이 되어 ‘꽃의 마음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기원의 어조는 ‘연화지’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속에 메마른 정의(情誼)를 간절하게 여망하는 그의 진실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특히 김천시 교동에 위치한 연화지에 착목(着目)하여 그 푸른 물력과 주변 풍경과의 소통(疏通)이 잦은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탐색하는 서정적인 자연 친화에서 그는 다채로운 현실속 우리 인간들의 정감을 응시하는 시적 보고(寶庫)가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연화지를 작품에서 자주 응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연과 함께」 중에서) 교동연화지엔 / 큰 연 / 작은 연 / 하트 연도 있다 // 큰 연들 / 큰 꽃을 피우는 바람에 / 작은 연들 / 숨어서 살짝 피었다 지고 말아 / 휴대폰에 담지 못했다 -(「단풍」 중에서) 속알머리 없는 벚나무들이 / 연화지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 가을 햇살을 붙잡고 있다 -(「경자년 연화지」 중에서) 잡연들은 / 노래하고 춤추기 바쁜데 / 코로나 해결 못하고 떠나 는 경자년 / 연화지에 멋진 연들 오기만 기도한다 -(「자운꽃」 중에서) 요즘 동네 연화지에 연꽃이 한창 피어 / 백일홍과 어울려 유혹하고 있다 / 나도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못 차리고 / 휴대폰에 잔뜩 담아 마구 퍼 날랐다 4. 시적인 해학(諧謔)과 역설적 진실 최원봉 시인에게서 특이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시적인 해학을 말할 수 있겠다. 이 해학은 시학에서는 풍자(諷刺-satire), 역설(逆說-paradox), 페러디(parody) 등으로 현현되는 아이러니(irony)를 말하는데 우리 현대시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사용되는 시법이다. 최원봉 시인도 이러한 해학적인 시법으로 작품을 형상화 하고 있어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표출은 내용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이해하지만 모순이나 잘못된 형태를 비꼬거나 꼬집는 형태의 시법을 말하는데 실제로 그 전개 속에는 그 시인의 진리와 진실이 숨겨져 있다. 우리 문학에서도 해학을 다채롭게 수용해서 작품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데 특히 소설에서는 익숙하게 응용하고 있으나 시에서는 그 범위가 다소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표현에서 언어의 함축이라는 시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리라. “영감님 불알이 아닙니다 자꾸 만지지 마세요” 박스를 찢어 칠곡 할머니 글씨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복숭아 가게의 안내문 복숭아 사러 온 아낙네들 킥킥거리며 한 박스씩 사간다 구경하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집에 가져가서 아무도 없을때 골고루 만져 볼 심산인지 만져보고 사는 사람은 없다 보이지도 않는 영감님 불알을 가져와 허락도 없이 덤으로 끼워 팔다니 봉이 김선달이 놀라겠다 --「복숭아 장수」 전문 일찍이 누군가가 해학은 먼저 웃음을 짓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유머러스한 사실에서 존재를 인식하고 인간의 관대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먼저 작품의 내용에서 미소를 띄우면서도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풍자적 비유법에 고개를 꺼덕이게 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심도 있게 잘 표현하는 시인들은 많다. 특히 시사성이 있는 작품들에서는 사회를 비꼬거나 질책하면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시법도 있지만 최원봉 시인의 풍자는 아주 보편적인 스토리에서 탐색하는 일상적인 인간들의 심리가 ‘복숭아 장수’를 통해서 우리들의 감응력을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원봉 시인은 ‘나 클 때는 말이야 / 젖마개란 괴물도 없어서 / 엄마품엔 언제나 / 꿀같은 젖가슴이 달려 있었다 // 그런데 얼마전부터 / 반드시 입어야 할 옷이 하나 더 생겼다 / 빤쓰는 안 입어도 조심하면 되지만 / 입마개를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한다(「새로운 옷」 중에서)‘는 스토리는 6~70년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적시된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다. 그 당시에는 ’젖마개‘ 곧 브래지어가 없던 시절의 정경이 오늘날은 코로나의 괴질로 ’입마개‘(마스크)를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을 역설적을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늦둥이로 태어나 엄마는 젖이 부족했다 한달 먼저 태어난 갓집 춘자 엄마의 젖을 나누어 먹고 자랐다 춘자엄마는 젖엄마다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기생들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춘자도 목련꽃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춘자야 네젖 먹고 내 이렇게 컸다” 갑자기 아이들이 배꼽을 잡았다 “뭐라꼬 춘자젖 먹고 컸다꼬?” 놀려대는 소리에 얼굴 빨개진 춘자 자리를 떠났다 --「젖엄마」 전문 최원봉 시인은 이와 같은 해학적인 작품을 다소 창작해서 비평적 혹은 비판적인 요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젖엄마’도 동일한 형태의 유형을 띄고 있다. 엄마 젖이 부족했던 늦둥이가 ‘갓집 춘자 엄마의 젖을 / 나누어 먹고 자라’서 이제 어엿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춘자야 네 젖 먹고 내 이렇게 컸다”, “뭐라꼬 춘자 젖 먹고 컸다꼬?” 참으로 흥미 넘치는 해학적인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이다. 또한 ‘잠자리에 실수를 해서 / 키를 덮어쓰고 소금 얻어러 갈 때가 있었다 / 또래 여자 / 아이가 볼까봐 옆집은 번개같이 지났지만 / 한집 건너 포수 아저씨 집엔 사나운 개가 있어서 /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가야만 했다 // 무사히 갓집에 도착하여 머뭇거리고 있는데 / 새댁이는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웃으시며 / 소금을 한주먹 집어 주셨다 / 돌아오는 길에 키를 덮어쓰고 있는 / 또래 여자 아이를 만난 일은 아직도 둘만의 비밀이다(「갓집 새댁이」 중에서)‘. 여기에서도 우리들이 농촌에서 겪었던 옛날 추억에서 형상화한 해학의 시법이 감동을 흡인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봄은 봄」 「소나무 애인」 「불거지」 「전투모기」 「오리 물에 빠지다」 「무정란의 세상에선」 등등의 작품에서 역설적이거나 반어(反語)의 시법으로 이미지의 도출이나 상징이 가미되는 시법으로 시적 의미를 확충시키고 잇는 것이다. 최원봉 시인은 시집 『동그라미의 끝』에서 탐색하고자 했던 주제는 대체적으로 ‘나’라는 존재의 인식을 통한 성찰과 가치관의 재확인이 주제로 승화하고 있으며 존재의 귀중한 내면에는 불망의 아내와의 애감이 절절하게 각인되는 시법에서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 밖에 그는 친자연의 전원적인 서정에 몰입하고 있는데 특히 꽃과의 교감은 그의 서정시에 많은 영향을 제공하고 있어서 우리 시인들이 시도해보는 좋은 장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시와 함께 ‘직지사 불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맑고 밝은 고차원의 가치관을 구축하려는 그의 의지에 찬사를 보낸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