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ST Fan Fiction : B2S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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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방 prologue
w. 로시난테
"요섭아. 담임이 교무실로 오래. "
같은 반 친구의 말에 요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기광이 담임이 너 왜 불러? 라고 묻는데 어깨를 으쓱한 요섭이 나도 몰라, 갔다올께. 라며 교실을 빠져나간다.
"용준형이 안 오니까 애들이 완전 살판났네. "
"야. 걔 얘기 꺼내지도 마. 걔 오면 숨막혀 죽겠어. "
"한동안 학교 잘 나오더니 오늘은 안 올 모양이네. "
점심시간.
교실에 남은 기광과 아이들은 홀짝을 하며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기광이 앉아있는 자리의 원래 주인인 준형은 아직 등교하지 않았다.
"저 찾으신다고.. "
"왔어? 따라와. "
점심시간이라 교무실은 한산했다. 두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먼저 앞서가더니 교무실 옆에 붙어있는 작은 상담실로 들어간다.
"모의고사 성적표 나왔어. "
"아.. "
"점수가 이게 뭐야? 외국어 3등급이야. 너 이렇게 공부해서는 네가 가고 싶어하는 학교 못 가. "
두준은 상담실 의자에 앉아 요섭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본인 앞으로 보여주었다.
"좋은 학교 가서 어머니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며. 점수가 왜 이래? 20점이나 떨어졌어. "
".....에요. "
"뭐라고? "
"선생님이 선 봐서 그래요. 그 날. "
두준은 요섭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제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또랑또랑 잘도 말한다.
"내가 선 본거랑 네 모의고사 성적이랑 무슨 상관이야? "
"그럼 상관 없어요? "
"말 돌리지 말고. "
"선생님이야말로 말 돌리지 마시구요. "
"네 성적에나 신경 써. 영어는 점수 잘 오르지도 않지만 잘 떨어지지도 않는 과목이야. 근데 어떻게 20점이나 떨어져? "
"그 날 일부러 잤어요, 시험시간에. "
"뭐? "
"듣기평가 볼 때 잤어요. "
"왜? "
"선생님 과목이니까, 외국어. "
이 당돌한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되나, 두준은 고민에 빠졌다.
"허튼소리 말고 기말고사 얼마 안 남았어. 모의고사야 한 번 망쳐도 그만이지만 내신은 그러면 돌이킬 수 없다는거 네가 더 잘 알지? 열심히 해라. "
"짜증나, 윤두준.. "
"이게 진짜. 콱 맞을라고. "
"맨날 나만 미워해. 딴 사람들한테는 잘도 웃고 사근사근하면서어.. 맨날 나한테는 때린다 그러구, 못되게 굴고.. "
요섭은 선 자세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른다. 두준의 입에서 제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제 분에 못 이겨 저러는거다.
요섭이 말꼬리를 늘이며 투정을 부리자 두준은 요섭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책상에 내려놓고 아예 턱을 괴고 본격적으로 요섭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혼을 내는 것도 아니고 달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저러다 제 풀에 지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선 보지 마요.. 응? 응? "
"아 좀..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
두준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제가 앉은 의자 앞으로 바싹 의자를 끌고 와 앉은 요섭은 이제 두준의 팔에 매달려 안달이다.
방금 전까지는 분에 못이겨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제는 울상이 되었다. 좀만 더 골려주면 울 기세다.
"씨이.. 늙어가지구. "
"어. 그래서 이제 결혼해야.. 악! "
요섭은 두준의 걷어부친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목을 왕 물었다.
예상치 못한 요섭의 행동에 두준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빨갛게 이빨자국이 남은 제 팔뚝을 보고 두준은 황당해졌다.
"하.. 네가 개야? 물긴 왜 물어? "
"선 보지 마! 거지 새끼야!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요섭이 씩씩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
"왜!! "
지금 여기가 학교라는 걸 잊은건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세모눈을 하고는 저를 노려보는 요섭의 하극상에 두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 학원 몇 시에 끝나. "
"알아서 뭐하게? "
"나 너네 반 담임이다? "
"어쩌라고? "
"학원 몇 시에 끝나냐고. 사람 여러 번 말하게 만들지 말고. "
으르렁대는 듯한 두준의 마지막 말에 요섭은 그제야 찔끔 겁을 집어먹었다.
더 까불다가는 진짜 맞겠구나, 싶은거다.
"11시.. "
"데리러갈게. "
두준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요섭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알았지? "
"응.. "
이제야 좀 말을 듣네. 두준은 요섭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시각. 교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죽고싶냐? "
"아..아니. "
"양요섭네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게 너랑 뭔상관이야? 어? "
"난 그..그냥.. "
5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10분전에 등교를 한 준형이 요섭의 어머니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반 아이 하나를 잡아 흠씬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제 앞에 서있는 준형이 무서워 덜덜 떠는 아이를 보며 반 아이들은 연민과 공포가 섞인 시선을 보냈다.
기광 역시 그런 준형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양요섭 빨리 와라, 빨리와..
"앞으로 입 조심해라, 너. 입 함부로 놀리다가 죽는 수가 있어. "
준형이 제 자리로 돌아가 앉자 그제서야 반 아이들은 슬금슬금 맞은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맞은 아이는 죽는다고 끙끙 앓는데 겉보기에는 그런 반응이 의심스러울만큼 멀쩡했다.
안 보이는 곳만, 티 안나게 골라 때린 준형의 스킬에 아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어? 언제 왔어? "
교실 분위기가 대충 정리될 무렵 요섭이 반으로 돌아왔다.
학급 분위기가 좀 살벌하다고 느꼈지만 요섭은 지금 그런 것을 신경쓸 기분이 아니었다.
"좀 전에. 어디 갔다와? "
"담임이랑 상담하러. "
"밥은 먹었어? "
"그럼. "
준형은 요섭의 소매에 붙은 실밥을 한 손으로 뜯었다.
그것을 본 요섭이 와아, 하고 신기해하자 준형이 요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반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의 살기 가득했던 모습은 어디다 팔아먹었냐는 표정들이다.
"오늘 왜 이렇게 늦게왔어? "
"그냥 좀.. "
"또 싸웠어? "
"아니. "
"그럼. "
"때렸어. "
준형의 말에 요섭은 준형을 흘겨보았다. 자꾸 싸우지마, 너.
요섭의 말에 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약속이 얼마 못 갈 것을 요섭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
"독서실 갈거야? "
"아니. 약속있어. "
"이 시간에? "
"응. "
같은 학원에 다니는 기광은 팔뚝으로 달라붙는 후덥지근한 여름 밤 공기에 반팔 티셔츠 소매 부분을 펄럭였다.
단과학원임에도 제법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나와 학원 건물 앞은 북적거렸다.
요섭은 기광에게 먼저 가보라며 손짓을 했고 기광은 요섭에게 손을 흔들며 뒤이어 나오던 친구와 함께 사라졌다.
요섭은 건물을 나서면서부터 두준의 차가 학원 앞에 서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기광이 가는 것을 확인한 요섭은 두준의 차에 올랐다.
요섭이 차에 오르자 두준의 은색 세단이 출발했다.
"기광이랑 같은 학원 다녀? "
"응. "
"쟨 성적 올랐더라. 넌 떨어지고. "
요섭은 아까부터 지난 모의고사 성적을 빌미로 제 신경을 긁는 두준을 노려보았다.
아 왜 자꾸 시비걸어, 이 인간이?
"집에 가자. 출출하다. "
"저녁 안 먹었어? "
"먹었어. 강 선생님이랑. "
"수학? "
"엉. "
"둘이? "
"물론. "
"왜? "
"왜긴. 직장동료끼리 밥도 못 먹냐? "
"지금 일부러 내 속 긁는거지? "
"내가 뭣하러. "
저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걸 뻔히 아는데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머리는 두준의 도발을 무시하라고 경고를 보내는데 가슴에서는 늘 천불이 난다.
"나 내려줘. "
"시끄러워. 도로 한복판에서 내리긴 뭘 내려? "
"아, 내려줘! 나 너네 집 안가! "
"쪼끄만게 목청은 더럽게 커요. 입 좀 다물고 있어. 운전하는데 방해돼. "
손을 들어 제 입을 무심하게 막아버리는 두준의 행동에 요섭은 분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도 진짜 울지는 않는다. 제가 울면 또 두준이 저를 만만하게 볼 것이 뻔하다. 이 남자 앞에서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한다.
요섭은 입술을 앙 다문채 고개를 홱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헤란로는 지루하리만치 카페가 많다. 요섭은 그 지루한 광경에 눈을 감았다. 피곤해.
"다 왔어. 내려. "
두준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카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있는 요섭의 어깨를 흔들었다. 잠이 든건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야, 양요섭. "
"들었어. 내릴꺼야. "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요섭을 본 두준이 먼저 차에서 내리자 요섭이 그 뒤를 따라 느릿느릿 내린다.
아까의 그 악을 쓰던 모습은 어디로가고 잔뜩 피곤하고 우울한 표정의 양요섭만 남았다.
성큼성큼 걷던 두준은 아직 저를 반도 못 따라온 요섭을 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요섭에게 다가왔다.
"피곤해? "
"좀.. "
"업어줘? "
"응.. "
요섭의 말에 두준은 망설임 없이 요섭의 앞에 등을 보이고 무릎을 꿇었다.
늘 한결같이 저를 다그치고 막 대한다면 포기가 빠를것을. 이런식으로 한 번씩 자상한 두준의 모습에 이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은 조용했다. 토각토각. 두준의 발소리를 제외하고는.
요섭은 두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입고 있는 셔츠에서는 제가 두준의 집에 사다놓았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씻어. "
"응.. "
욕실로 들어가는 요섭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보인다.
두준은 요섭이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쇼파에 앉았다.
요섭은 분명 두준이 구미가 땡길 부류의 사람이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똑똑하고 어리기까지하다.
게다가 제 감정을 잘 컨트롤 할 수 없는 소년이었다.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이고, 화가 나면 화가나는 것이 다 뻔히 보여서 자꾸 괴롭히고 싶고, 쥐고 흔들고 싶어지게 만든다.
두준은 만약 요섭이 자신에게 목을 매지 않았다면 오히려 제가 요섭에게 매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탐나는 존재다. 양요섭은.
두준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요섭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가 생각해도 하루 종일 요섭의 속을 너무 긁어놓은 것 같다.
"일로 와 봐. 머리 말려줄게. "
샤워를 마친 요섭이 욕실에서 나오자 두준은 요섭에게 손짓을 했다.
군말없이 두준 앞으로 다가온 요섭이 두준의 발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준은 요섭이 손에 쥐고있던 수건을 들어 요섭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고슬고슬한 갈색 머리카락을 말리다가 요섭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뭐해? "
"그냥. 예뻐서. "
"웃겨, 진짜. "
요섭의 얼굴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TV에 비친 요섭의 얼굴이 웃고있는 것 같았다.
"TV 바꿨어? "
"응. "
"엄청 크네. 교사 월급 얼마나 한다고 저렇게 큰 걸 사? "
"나 돈 많다니까. 못 믿어? "
"알지. 아는데, 그게 자기 돈이냐구. 다 아버지 돈이지. "
"울 엄마가 날 좀 많이 예뻐하거든? 근데 엄마가 아버지 몰래 뒤로 꿍쳐놓은 돈이 좀 많아. 그래서 이 정돈 쓰고 살아도 괜찮아. "
"자랑이다. "
"그리고 남자가 너무 곱게 크면 못 써. 고생도 좀 해보고 진흙탕에서 굴러도 좀 봐야지. "
"얼씨구. "
미국 유학이 끝날 무렵 두준은 자발적으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사람을 고용해 홀연히 사라져버린 두준을 찾아 헤매기를 어언 6개월만에 두준은 서울 시내 한 고시원에서 발견됐다.
성인 남자 한 명이 눕기도 버거운 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해 근근히 먹고 사는 두준을 본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두준을 어르고 달래 겨우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빌라로 두준을 이사시켰다.
회사는 들어가기 싫고 놀고 먹기는 더더욱 싫다는 두준의 억지에 두준의 어머니가 지인을 통해 지금의 학교에 두준을 교사로 취직시켰다.
원래 사립학교라는게 사돈의 팔촌이 교사는 물론이요 하다못해 행정실까지 꿰차고 있는게 현실이니 두준 하나 취직시키는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윤두준은 학력도 꽤 번듯했고 미국 유학생활로 영어를 꽤 잘 하는데다가 성격도 싹싹해서 교사 하기에 부족함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지금 윤두준은 2년째 A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이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호기롭게 어떠한 집안의 경제적 지원도 받지 않고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던 두준은 막상 물질적 풍요를 회복하자마자 금세 그것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에는 '그딴 거 안 한다'고 펄펄 뛰며 거부했던 교사 생활은 막상 해보니 꽤 재미있었다.
결과적으로 두준에게 현재의 생활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되었고, 따라서 두준은 이 생활을 계속해서 영위하고 싶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에는 그저 두준의 소재를 파악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그의 어머니는 점점 두준이 누리는 물질과 그의 직장을 빌미 삼아 두준에게 선을 보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요섭이 학을 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두준이 종종 선을 보는 것은 백 프로 두준의 자의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고 갈거지? "
"생각해보고. "
"자고 가. "
"몰라아.. "
두준은 젖은 수건을 소파에 집어던지고는 요섭의 팔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요섭을 일으켜 제 무릎 위에 앉혔다.
"돌아앉아봐. 얼굴 좀 보자. "
"싫어. "
"아, 또 왜. "
"선 안 본다고 약속해. "
"아직도 선 타령이냐? 알았어, 안 봐. 안 볼게. 됐지? "
결국 항복이다.
그제야 요섭은 몸을 돌려 두준을 바라보고 앉는다.
샐쭉 웃는 걸 보니 제가 여우새끼를 키웠지, 싶다.
-
"준형아, 준형아아.. "
어제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등교를 했던 준형은 요섭의 성화에 못이겨 오늘은 제시간에 등교를 했다.
요섭은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준형의 팔을 흔들었다.
"왜.. "
"우리 매점가자. "
"뭐 먹게? "
"딸기우유! "
"기다려. 사올게. "
"혼자? "
"응. 넌 책 보고 있어. "
"알겠어. 얼른 갔다와! "
자리에서 어기적대며 일어난 준형이 한 손은 주머니에 꽂은채로 교실을 빠져나간다.
기껏해야 딸기우유 하나를 사기 위해 준형이 5층 교실에서 지하에 있는 매점까지 간다는 사실에 요섭은 웃었고 앞 자리에 앉은 기광은 요섭에게 난 용준형보다 네가 더 무서워. 라고 말했다.
"학교 끝나고 뭐해? "
"독서실 가. "
"영화볼래? "
"영화? "
준형이 사온 딸기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던 요섭은 준형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에 준형이 요섭의 볼을 꼬집었다.
요섭이 '너도 마실래? '라며 제가 마시던 딸기우유를 건내자 준형은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응. 공짜 예매권 생겼는데 기한이 얼마 안 남았어. "
"아.. "
"너 바쁘면 안 가도 되고. "
"나 별로 안 바쁜데. "
"보러가도.. 돼? "
"안 될건 또 뭐야. "
"너 공부하는데 방해하면 안 되니까. "
너 귀여워, 준형아.
요섭의 말에 반 아이들은 전부 사색이 되었다.
"나 검도는 언제 가르쳐 줄거야? "
"나중에. "
"수능 끝나고 가르쳐 주는거다? "
"알았어. "
준형은 경호관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대통령 경호실 실장이었고, 형도 경호실에서 일했다.
그래서 준형은 어려서부터 태권도며 검도, 유도, 합기도 등 다양한 무술을 배우며 자랐다.
요섭은 특히 준형이 검도복을 입은 모습을 좋아했다.
준형과 친하게 지내기 전에도 강당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는데, 키도 크고 어깨도 넓은 준형이 검은 도복을 입은 모습은 남자인 제가 보아도 멋있었다.
"너 자꾸 자지마. "
"그럼 뭐해? "
"공부. "
"엑.. 공부? "
준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요섭이 왜에, 나랑 같이 공부해. 란다.
"공부하면 뭐 해줄건데? "
"해주긴 뭘 해줘. 공부해서 남주나? "
"너처럼은 못 해. "
"아, 그러지 말구.. "
"그럼 내가 공부하면.. "
준형이 요섭의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나랑 자자. "
요섭은 얼굴이 새빨게졌고, 준형은 콧노래를 부르며 서랍에서 영어 교과서를 꺼냈다.
"쌤. 시험에 나올 거 좀 찍어주시면 안 돼요? "
"찍어주는게 어딨어? 다 책에서 나오는건데.. "
"아.. 선생님네 반인데! "
"이 녀석들아. 우리 반이라고 찍어주면 수학쌤은 3반 애들한테 수학문제 다 찍어주시겠다? "
두준의 말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시험이 2주 밖에 남지 않은 탓에 반 아이들은 수업에 꽤 집중을 잘 하고있는 편이었다.
혹시나 두준이 시험문제에 대해 단서를 흘리지는 않을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운채로.
"교과서보다 부교재 많이 봐. 거기서 더 많이 낼꺼니까. "
"네!! "
"그대신 시험 잘 봐라? 이번에도 전체평균 1등 해야지. "
"당연하죠! 우리 반에 양요섭이 있는데! "
한 아이의 말에 아이들이 맞다며 동조했다.
3학년 1학기까지 요섭은 늘 1등이었다. 전교 1등.
그러니 두준이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왔다고 들들 볶은 것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물론 두준이 진짜 제자에 대한 애정과 염려 때문에 요섭의 속을 긁어놓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요섭이 뿐만 아니라 늬들 다 열심히 해야지. 아 이 녀석들, 늬들이 자꾸 딴 소리 해서 시간 너무 많이 갔다. 얼른 책 봐! "
두준은 미소를 지으며 교탁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요섭은 그런 두준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지켜보았다.
저 이중인격자.
'수업 들어야지. '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는 두준과 달리 준형은 제 깨끗한 교과서 위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준형의 모습을 힐끔 본 요섭이 준형의 책에 글씨를 썼다.
정갈하고 동글동글한 글씨다.
준형은 요섭의 글씨에 웃음이 터졌다. 글씨도 꼭 너 같아. 귀여워.
"왜 웃어? "
"네 글씨가 귀여워서. "
준형은 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준형의 말에 요섭은 준형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저를 놀리지 말라는 뜻이다.
준형은 제 허벅지를 찌르는 요섭의 손가락을 잡아 꼭 쥐었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요섭은 더 이상 준형을 괴롭히지 못했다.
"뭐야. 왜 벌써부터 부산스러워? "
"아, 선생님. 식당 빨리 내려가야되요. 안 그러면 밥 먹고 축구 못 해요! "
4교시는 늘 끝나기 10분 전부터 부산스럽다.
아이들은 벌써 책을 덮고 몸을 출입문 쪽으로 돌리고 뛰어나갈 채비를 하고있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식당을 향해 아이들이 달려나갈 때면 흡사 수십마리의 말이 달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
두준은 이미 책을 덮고 저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에 조용히 나가야된다? 딴 반 아직 수업중이잖아. "
두준의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뛰어나간다.
우르르. 역시나 시끄럽다.
두준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교실을 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고등학교 때는 저랬던 것 같으니 딱히 비난할 마음은 없다.
"너희는 식당 안 가? "
"천천히 가려구요. 지금 가도 사람 많아요. "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교실에는 두준과 준형, 그리고 요섭만 남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여전히 자리에 앉아 느긋한 준형과 요섭을 본 두준이 말을 걸어왔다.
"너 운동은 열심히 하냐? "
"뭐, 그럭저럭이요. "
"모의고사 생각보다 잘 봤더라? "
"그 정도 가지고 뭘요. 얘랑 비교하면 어림도 없어요. "
준형은 제 옆에 있는 요섭을 가리켰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 "
"네. "
교탁 앞에 서있던 두준은 어느새 준형의 자리 앞까지 왔다.
두준은 자신의 반의 골칫거리인 준형에게도 관대한 편이었다.
준형은 학교에서 소문난 골칫거리였다.
완전 문제아도 아니고 공부도 제법 하면서 간간히 사고를 치고 다녔다. 몇 차례 정학을 당할 위기가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의 직위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학생이었다.
학기 초, 용준형이 두준의 반에 배정되었다는 말에 다른 교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준도 준형의 소문을 익히 들어왔지만, 학교에서의 준형은 의외로 얌전했다.
물론 그것이 준형의 옆에 딱 달라붙어있는 요섭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두준은 준형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요섭은 두준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쫒았다.
"우리 담임,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
"뭐.. 그런가? "
요섭은 준형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야, 용준형. 너 거기서 뭐하냐? "
"뭐하긴. 보면 몰라? "
농구를 하던 찬민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준형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옥상에서 식후땡 안하고 왜 여기 있냐는 눈빛이다.
"농구 안 해? "
"애 자잖아. "
"미친놈. 가지가지 한다. "
준형은 제 무릎을 베고 누워 자고있는 요섭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평온한 얼굴이다.
"네가 어제 너네 반 애 하나 팼다며. "
"누가 그러디? "
"벌써 소문 났지. 얘 때문에 그랬다며. "
찬민은 턱으로 요섭을 가리켰다.
"남의 얘기 지껄이고 다니는거 짜증나서. "
"오지랖 넓다? "
"엉. 내가 좀 그래. "
준형은 씩 웃었다.
찬민은 그런 준형에게 얼 빠진 놈. 이라며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찬민이 사라지자 다시 등나무 스탠드는 조용해졌다. 준형이 버티고 있으니 감히 아무도 등나무 아래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이다.
준형은 다시 요섭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본관 건물의 시계를 한 번 보았다.
5교시가 시작하기 5분 전이다. 이제 깨워야겠네.
"요섭아. "
"으음.. "
"일어나. 교실 올라가자. "
준형의 말에 요섭의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준형은 요섭이 완전히 일어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 잤어? "
"응. "
"네 무릎 베고? "
"응. "
"힝.. 무거웠지? "
"아니. 하나도 안 무거웠어. "
준형은 요섭의 머리를 양손으로 꾹 눌렀다.
너무 조그매서 하나도 안 무거웠어.
"피곤해? "
"밤에 잠을 잘 못자서.. "
윤두준이 밤새도록 괴롭혀서 말이야.
요섭은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영화관 진짜 오래간만에 온 것 같아. "
"나도.. 한 반 년만에? "
평일 저녁인데도 영화관에 사람이 제법 많다.
요섭은 제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으며 잔뜩 신이 난 표정이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미리 보러 오자고 할껄 그랬나, 준형은 생각했다.
「어디야」
두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물음표도 없다. 무뚝뚝하긴.
「영화관」
요섭은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두준이 전화를 할리도 없지만 혹여 전화를 하더라도 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야? "
"그냥 아는 사람. "
"영화 보고 밥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독서실 데려다줄게. "
"데려다주긴 뭘 데려다 줘. 내가 여자야? "
"너 혼자 가면 누가 잡아가. 예뻐가지고. "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할 때 보면 두준과 좀 닮은 것 같다.
요섭은 준형을 흘겨보았다. 준형은 웃고 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하.. 이게 진짜 미쳤나.. "
"누구? "
"양요섭. "
두준은 황당하다는듯이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현승이 옆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간만에 현승과 만나는 자리인데 기분이 나빠졌다.
"걔 여기 사장누나 아들이지? "
"응. "
"귀엽게 생겼던데.. 사장 누나랑 별로 안 닮았어. "
"언제 봤어? "
"아 또 째려볼건 뭐야? 살벌하게. 예전에 사장 누나가 자기 아들이라고 사진 한 번 보여줬다! 됐냐? "
두준은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누구랑 영화를 보러간건지 물어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야. 술 안 따르고 뭐하냐? 윤 선생님 화나셨잖아. "
"선생이 다 뭐야. "
"그러게 누가 집 나가래? 원래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잖아. "
"아 진짜.. "
두준은 목을 죄고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오늘은 제 정장 입은 모습을 좋아하는 요섭 때문에 일부러 정장을 입고 나왔는데 정작 요섭은 수업 시간에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준형과 장난이나 쳐대질 않나,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버리질 않나.
게다가 이 콩알만한게 지금 영화관? 시험이 얼마나 남았다고? 내가 너네 엄마한테 다 이를거다.
"야. "
"응, 오빠. "
두준은 제 옆에 앉아 시중을 들던 여자를 불렀다. 제가 올 때마다 몇 번 방에 들어와 얼굴이 제법 낯이 익다.
"가서 사장님 불러와. "
"알았어. "
여자가 나갔다.
이제 현승은 테이블을 탕탕 치며 웃고있다. 저 마호가니 탁자는 치면 제 손만 아플텐데. 두준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현승을 쳐다보았다.
"아.. 너무 웃겨. 윤두준 쟤 왜 저렇게 치졸해졌냐.. "
그래. 나 왜 이렇게 치졸해졌니.
두준은 현승의 말에 짜증스럽게 타이를 완전히 풀어 쇼파에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셔츠 단추를 풀렀다.
"부르셨어요? "
"그냥 말 편하게 해요. 뭘 새삼스럽게. "
두준의 말에 여자는 두준의 옆으로 와 앉았다.
"왜 불렀어? 나 지금 바빠. "
"사장님이 테이블 뛰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바빠요. "
"테이블 안 뛰니까 더 바쁘지. "
"아들 교육 좀 잘 시켜요. "
"요섭이? "
"어. 지금도 시험이 2주가 남았는데 영화관이래. "
두준의 말에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 엄마한테는 꼼짝 못하는 요섭을 잘 아는터라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 오늘 엄청 깨질 것이 뻔하다. 감히 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다.
"걔 모의고사 성적도 떨어지고 요즘 수업 태도도 안 좋아. 사장님이 관리 좀 잘 해요. 가게에만 신경쓰지 말고 애한테도 좀 신경 써요. "
"알았어.. "
"윤두준. 무슨 학부모 상담하냐? 누나 별 신경쓰지마요. 얘가 지금 괜히 심통나서 그래. "
옆에서 현승이 중재에 나섰다.
제 할말을 마친 두준은 쇼파에 몸을 길게 늘였다.
그 모습에 현승이 여자에게 나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애냐? 윤두준. 애야? "
"아 뭐가. "
"애한테 심통이 났으면 걔랑 해결을 해야지 왜 애 엄마를 끌어들여. "
"난 걔네 반 담임으로서.. "
"세상에 어떤 미친 담임이 학부모 상담을 단란주점에서 하냐? "
현승의 말에 두준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현승은 테이블 위에 있던 사과를 한 개 베어물면서 웃었다.
누군가가 제 전화를 받지 않아 우울하고 심통을 부리는 윤두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현승은 요섭을 만나고 난 후 두준에게 생긴 변화를 유일하게 감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재밌다. 그치? "
"응. 근데 너무 시끄럽더라. 귀 아팠어. "
"그게 액션영화 묘미지. "
영화가 끝나고나니 8시가 훌쩍 넘었다.
밥 먹으러 가자. 준형은 요섭의 손을 잡아끌었다.
Rrrr
"잠시만. 나 전화.. "
영화관을 나오면서 다시 켰던 휴대폰이 맹렬한 기세로 울렸다.
요섭은 의외의 발신인에 좀 놀랐다. 이 시간에 엄마가 전화를 할리가 없는데..
[네, 엄마. ]
[요섭아. 지금 어디니? ]
[나 잠깐 밖에.. ]
[너 혹시 영화관이야? ]
[어떻게 알았어? ]
[너희 담임 선생님 만났어. 네 걱정 하더라. 너 시험도 얼마 안 남았잖아..]
엄마의 말에 요섭은 인상을 찌푸렸다. 치사한 인간, 엄마한테 이르다니. 이건 명백한 반칙이다.
[응. 지금 독서실 갈거야.. ]
[요섭아, 엄만 너 하나 믿고 살아.. ]
[알아요. 열심히 할게요. ]
통화를 마친 요섭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준형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나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아.. "
"밥 안먹고? "
"응. 배 별로 안 고파. "
"데려다줄게.. "
"응.. "
요섭은 두준 때문에 준형과의 데이트가 흐지부지 된 것이 짜증났다.
두고 봐, 가만 안 놔둬.
요섭은 입술을 깨물었다.
-
준형과 헤어진 요섭은 독서실 건물의 인적이 드문 비상구로 들어갔다.
이제는 안 봐도 누를 수 있는 두준의 번호를 부러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영화는 잘 봤어? ]
[치사하게 이럴거야? 엄마한텐 왜 말해? ]
[선생이 학부모한테 학생 얘기도 못해? 너네 엄마가 네 학교생활을 얼마나 궁금해하겠어? ]
[엄마 가게 갔지? ]
[어. 지금도 거긴데? ]
이 인간이 진짜.
제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한다.
두준이 이렇게 나오면 애가 타는건 요섭이다. 요즘들어 부쩍 여자들과의 만남이 잦은 두준 때문에 요섭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거기 왜 갔어어.. 내가 가지 말랬잖아. ]
[친구랑 간만에 놀러온거야. ]
[옆에 여자들도 있지? ]
[당연하지. ]
[자기야.. 진짜 그러지 마, 응? 전화 안 받은 거 잘못했어어... ]
[잘못했지? ]
[응.. ]
[지금 어디야. ]
[독서실.. ]
[공부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
수화기를 타고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끊어졌다.
요섭은 이미 통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붙잡고 선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등을 타고 느껴지는 서늘한 벽의 감촉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요섭은 눈을 감았다.
친구와 함께 있다고 하였으니 오늘은 전화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나쁜놈.. "
윤두준과 양요섭의 관계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분노-애원-체념. 늘상 이 패턴의 반복이었다.
제가 애원하고 매달릴수록 두준은 더욱 악랄해졌다. 더 잔인하게 저를 괴롭히고 흔들어 놓았다.
이제는 이 진부한 패턴을 좀 깨야겠어. 어떻게?
요섭은 반짝, 눈을 떳다.
[여보세요. ]
[준형아, 어디야? ]
이렇게.
[나 도장 가는 길이야. 무슨 일 있어? ]
[나 배고파서 안 되겠어. ]
[독서실이야? ]
[응. ]
[기다려. 금방 갈께. ]
[응.. 아, 맞다! 너 오토바이 타면 안 돼! ]
[이제 안 타. 팔았어. ]
[진짜? ]
[응. 네가 타지 말라며. ]
[잘했어. ]
윤두준도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오죽 좋아?
두준과의 통화 이후로 내내 굳어있던 요섭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와.. 너 진짜 빨리 왔어! "
독서실 건물 입구에 서있던 요섭은 제 앞에 선 준형의 인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호흡이 제법 거칠다. 뛰어왔나보다.
"너 배고프다며. "
씩 웃는다. 준형의 웃음에 요섭도 따라 웃었다.
"밥 먹으러 가자. "
"응. "
요섭은 준형이 내민 손을 주저없이 잡았다.
"그렇게 배가 고픈데 아까 왜 그냥 갔어. "
"그냥. 엄마랑 통화하고 나니까 가야될 거 같아서.. "
"천천히 먹어. 체해. "
"응.. "
준형은 반대편에 앉아서 쌀국수를 꾸역꾸역 먹는 요섭을 바라보았다.
볼 터지겠네. 흰 볼이 빵빵해졌다.
"요섭아. "
"응? "
"주말에도 학원 가? "
"아니. 학원 수요일이랑 금요일에만 가. 왜? "
"그럼 같이 공부할까.. "
"어? "
요섭은 준형의 말에 반문했다.
준형은 요섭이 고개를 들자 재빨리 고개를 숙여 국수를 먹었다. 제가 말해놓고도 쑥스러웠나보다.
요섭은 준형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주말에 같이 공부하자. "
"가르쳐 줄꺼지?
"음.. 생각해보고? "
새침한 요섭의 표정에 준형은 웃음이 터졌다.
"오늘은 무슨 운동해? "
"검도장 가는 날이야. "
"나 따라가도 돼? "
"너 공부는? "
"어차피 지금 들어가봐야 얼마 못 해. 나 너 따라갈래. 응? 응? "
다 큰 남자애가 제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준형은 요섭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대신 내일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된다? "
"응!! "
"지금 오냐? "
"네. 벌써 가시게요? "
"응. 오늘 집에 일찍 가봐야되서. 뒷정리 하고 갈 수 있지? "
"네. 열쇠 주고 가세요. "
도장 입구에서 만난 관장은 준형에게 열쇠를 건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이 장소도, 관장님도 준형에게는 집 같이 편안한 존재였다.
열쇠를 받은 준형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요섭의 손을 이끌어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이렇게 생겼구나.. "
요섭은 검도관 안을 신기하다는 듯이 둘러보았다.
"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 "
"응! "
준형이 탈의실로 들어가자 요섭은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보았으나, 전화는 커녕 메세지도 한 통 안 와있다.
에잇, 짜증나. 요섭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다시 마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제 진짜 확인 안 할거다.
"너 사무라이 같아! "
"칭찬이야? "
"응! 멋있다구! "
"근데 혼자 연습할 때는 되게 재미 없어. 너 엄청 지루할텐데. "
"막 대련 같은 거 안 해? "
"지금 대련할 상대가 어딨어. 너? "
"뭐야. 날 때리려고? "
요섭이 저를 노려보자 준형은 푸스스 웃으며 죽도를 쥐었다.
"그것만 계속 해? "
"응. "
준형은 30분째 정면후리기만 반복하고 있다.
요섭은 준형의 진중한 모습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준형이 움직임을 멈추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나도 해볼래. "
요섭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렇게 하는 걸 중단세라고 하는거야. "
"응. "
"그 자세에서 45도 위로 올렸다가 무릎 높이까지, 이렇게. "
"이렇게? "
"너무 내려갔어. 이 정도로. "
준형은 요섭의 어깨 뒤에서 요섭의 팔을 잡았다.
그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는 전신거울로 보면 백허그를 한 것처럼 보였다.
요섭은 거울로 비치는 제 모습에 괜히 민망해졌다.
"이..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 "
"너 왜 말 더듬어? "
"내가 언제!! "
"이걸 확 그냥. "
"악! "
순간적으로 저를 뒤에서 확 껴안는 준형 때문에 요섭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깜짝이야. 갑자기 그렇게 안으면 어떡해? "
"예뻐서. "
능청스럽게 웃는 준형의 얼굴에 결국 요섭도 따라 웃었다.
오늘은 예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봐준다.
"내일도 학교 늦지 말고 와, 알았지? "
"봐서. "
"안 돼! 내가 아침에 전화할꺼야! "
"그럼 네 전화 올때까지 일어나지 말아야겠다. "
"대신 내가 전화하면 한 번에 받아야돼? "
"알았어. "
어느덧 요섭이 사는 아파트 앞이다.
준형은 요섭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Rrrrr
[왜. ]
[너 지금 어디냐? ]
[집에 가는 길. ]
[너 주말에 뭐해. ]
[공부. ]
[.. 나 방금 잘못 들은 것 같다. 뭐라고? ]
[공부한다고. 귀 먹었냐, 새꺄. ]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세상에. ]
찬민의 호들갑에 준형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확 끊어버려?
[나도 대학은 가야될 거 아니야. ]
[용준형 철 들었네. ]
[우리 아부지가 좀 무서워? 나 대학 못 가면 끝장이야. ]
[양요섭 때문이 아니고? ]
[끊어! ]
준형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준과는 3일째 냉전 중이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요섭은 샤프로 노트를 툭툭 치며 창 밖을 응시했다. 5교시인지라 반 아이들의 절반은 쓰러져 자고있었다.
요섭은 지금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 중이었다.
연락이 없는 두준이 괘씸하기는 하나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번에도 자신이 져주어야 하나.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요섭에게 향했다.
담당교사도 요섭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 "
수업시간이라 복도는 조용하다.
요섭의 반에서 화장실로 가기 위해서는 복도를 가로질러야 했다.
요섭은 일부러 실내화를 끌며 걸었다. 신발을 끌며 걷는 것은 두준이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텅 빈 복도에 신발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신발 끌지 말라고 했지. "
복도의 절반쯤 왔을 때였다. 같은 층에 있는 3학년 교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안으로 두준이 서있었다.
"왜 나왔어. 자습시간 아니야? "
"화장실 가려고요. "
"들어와. "
두준은 요섭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아무도 없어요? "
"다들 수업 들어가셨어. "
교무실 안에는 두준과 요섭 뿐이었다. 3학년 교무실은 원래 3학년 담임들만 사용하는 곳이라 빌 때가 종종 있다.
두준은 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요섭은 말 없이 두준의 의자 앞에 서있었다.
"저 빨리 들어가봐야 되는데요. "
"왜 전화 안 해? "
"하.. 먼저 하겠다면서요. "
"내가 그랬었나? "
요섭은 어이가 없었다.
3일간 그렇게 전화를 기다렸는데 기껏 하는 말이 저 따위다.
"내가 안 하면 네가 하면 되잖아. "
"하면 받기는 해요? "
"가끔 받잖아. "
열 번 전화하면 한두번 받는 것도 가끔이냐, 이 인간아.
요섭은 며칠동안 안정되었던 마음에 다시 파장이 이는 것을 느꼈다.
두준과 있으면 이렇듯 마음이 요동을 친다. 성난 바다처럼.
"별 영양가 없는 말 하실거면 저 갈게요. "
"삐쳤냐? "
요섭은 입을 다물었다.
요섭이 대답이 없자 두준은 진짜 삐쳤나보네, 라고 중얼거렸다.
"맨날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안달내고..기다리고.. 약 올라 죽겠어. "
"왜 너 혼자 좋아해? "
"그럼 나 좋아해? "
"당연하지. "
"다른 여자들은? "
"걔네도 좋아해. "
"그게 뭐야. "
"근데 너보단 덜 좋아해. "
두준은 제 앞에 서있던 요섭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요섭은 두준이 움직이는대로 두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화내지 마. "
"화 안내. "
"그럼 웃어봐. "
"뭐? "
"빨리. 웃어봐, 예쁘게. "
고개를 들어 저를 올려다보며 조르는 두준의 행동이 우스워서 요섭은 웃음이 터졌다. 못 살아, 내가.
"화 푼거다? "
"화 안 났다니까. "
"그럼 전화 할거지? "
두준의 물음에 요섭은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두준이 요섭과 마주보고 섰다.
허리를 끌어 안고 있던 손을 올려 요섭의 얼굴을 잡은 두준이 요섭의 입술을 깨물었다. 따끔한 느낌에 요섭이 눈을 찡긋거렸다.
입을 맞출 생각은 않고 장난스럽게 제 입술을 깨물었다가 혀를 내어 핥았다가를 반복하는 두준의 행동에 감질난 요섭이 두준의 목을 끌어 안고는 먼저 입을 맞췄다.
"나빠, 당신. "
"알아. "
"미워 죽겠어. "
"거짓말. "
"진짜야. 미워 죽겠어. "
"미워하고 싶은거겠지. 근데 못 미워하겠지? "
"... 응. "
요섭의 말에 두준이 킬킬대고 웃었다.
"주말에 집에 와. "
"주말 언제? "
"아무때나. "
"일요일에 갈래. "
"토요일은 안 돼? "
"그냥. 일요일이 더 좋아. "
요섭은 씩 웃었다.
나는 당신이 밉지 않아. 당신이 아무리 나에게 못되게 굴어도 당신이 좋아.
근데 말이야.
나도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좀 좋아해보려고. 당신보다는 조금 덜.
어때, 공평하지?
모순되고 미성숙하고 가슴 속에 저마다의 상처가 있는 인물들이 등장할 계획입니다.
지루하지 않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기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 요섭의 마지막 독백에서 제목의 의미를 추론하실 수 있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0 15:38
첫댓글 으아아ㅏ아 서로 좋아하지만 다른사람도 좋아한다... 엄청 복잡하고 오해의 연속일것같은!!!! 기대됩니다ㅠㅠㅠㅠ 처음부터 엄청 험난할듯해보이네요! 재밌고 기대되요!!!
와... 복잡미묘한관계가 되겠네요 절대 평탄치 못할꺼같네요 ㅎㅎ 재미있을꺼 같아요~ 기다리고 있을께요 재미있게 보고가요~
짐승은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글을 보고 너무 재밌있어서 그런 분위기의 작품을 또 기대했는데 이렇게 다른 색다른 분위기의 글이라니... 제 취향저격이에요ㅠㅠ 두준이에게 지지 않는 요섭이도 좋고 그런 요섭이에게 안절부절 못하는 두준이도 좋아요ㅠㅠ 다음편 기대할게요 :)
나쁜남자 윤두준....이쁜 여우 양요섭....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기대하며 기다릴께요♥♥
벌써부터 앞으로도 계속 기대가 되는 설레임이 있네요..^^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직은 미완인 사랑인것같아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면서도 살짝쿵 걱정도되구요..두준군을 사랑하는 요섭군을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고있는 준형군도..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아플까봐서 벌써부터 걱정이 되지만, 그러므로 서로의 사랑을 찾아가고 더 깊어질것도 같아서 설레이기도 하네요..^^ 잘읽었구요..다음편도 기대할께요 ^^
꼬이고 꼬여서 더 재미있을꺼같아요 잘보고가요! 근데 요섭이가 너무 불쌍하네요 ㅠㅠ 정말 혼자사랑하는거같기도하고 잘보고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0 21:2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0 21: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0 21:26
우와....프롤로그인데 엄청 길어서 깜짝 놀랐어요! 두준이가 나빴네....요섭이가 좋아하겠다는 다른 남자는 준형이겠죠? 이 셋의 사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계속 챙겨 볼게요~
미성숙한 사랑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더 성장해간다면 성숙한 사랑이 될것같아요 요섭이와 두준이의 입장이 왠지 바뀔거같은ㅎㅎ준형이가 가운데서 상처입는건아닌지 걱정되네여ㅜㅜ잘보고갑니당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0 23:17
걍 이건 ..... 취향저격입니다 ....ㅠㅠㅠㅠ 요섭이와 두준이 준형이 사이는 대체 어떻게될것인지 그리구 두준이가 제일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진행될것인지 작가님 작품볼때마다 짐승도 그렇고 !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문제을 풀어나가는 것이 정말 좋아요 ㅠㅠ ! 기다릴게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31 20:30
우와! 로시난테님^^ 새 글이라니!!!!!!! 우와우와우와!! 저 지금 너무 설레이는거 아시나요? 엄지손톱 물어 뜯으면서 왼쪽 다리를 발발발 떨고 있답니다!!!
프롤로그만 봐도 너무너무 기대되고 앞으로 두준이와 요섭이, 그리고 준형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려 지네요! 1편 가지고 빨리 와주세요!!!!
헐! 이런 밀땅남들!!!! 안대에...ㅜㅜ 그치만 기다리는 저를 발견합니다..
응??이런 판타지 같으니ㅋㅋㅋㅋ예사로운 인물들이 아니에여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6.03 01:49
삼각관계인가요??
요섭이는 질투가 참 많은거같아요ㅋㅋ
잘 보고갑니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차피 두준 요섭이니 저는 혼자 준형이를 응원해도 될까요ㅠㅠ 아.. 조연 킬러라.. 아 게다가 준형이 너무 다정하고 속도 안썩이고ㅠㅠㅠㅠㅠㅠ 아..ㅠㅠ 죄송해요. 작가님.. 용준형 만세.
와아아아앙 정주행할게요너무재미있어요!! 프롤로그가이렇게길다니!!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14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