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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삶의 이야기 방 우리 아버지 이야기
청솔 추천 1 조회 319 23.02.23 09:43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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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2.23 11:00

    첫댓글 참으로 긴 시대를 관통하는 대하 스토리입니다.
    여느 역사책보다 나아요.

  • 작성자 23.02.23 12:05

    감사합니다

  • 23.02.23 11:03

    청솔님~
    정말 대단한 아버지셨네요
    일찍 돌아 가시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을 하실분이셨을텐데 .....
    가족 묘 꼭 만드시길 바랍니다
    긴 글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 23.02.23 12:06

    그러게요
    아버님께서 참 험한 세상을 사셨습니다
    탄장사 하실 때가 전성기였던 거 같은데
    대홍수로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감사합니다

  • 23.02.23 11:14

    27년생이신 제아버지보다 위시지만 같은 정서를 느낍니다. 1세대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고무친한 남한에 와서 말로표현할수 없는 고초를 겪으시고 실향의 한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 작성자 23.02.23 13:25

    맞습니다. .
    월남하신 분들이 대충 다 그랬지요
    그래도 저희 아버님은 형제들이라도 있었지만
    기정수님 아버님은 혈혈단신이셨다니
    그 외로움이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 23.02.23 12:01

    저의 아버지도 장남 아닌 장남으로 사셨어요 증조부모님 모시고 큰아버지에 큰고모네 가족까지 한집에서 대가족으로 사셨답니다 우리 삼남매도 물론 이고요
    다행이 아버지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요
    우리가 부모님 나이가 됬는데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하면 참 가슴이 울컥 합니다

  • 작성자 23.02.23 13:24

    대가족이셨군요
    저희 아버님은 장남은 아니었지만
    살림이 조금 나았다고
    집안일을 많이 맡아서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가만있다가도 아버님 얘기만 나오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지금도...ㅜㅜ

    감사합니다

  • 23.02.23 12:02

    격동기 그 시절
    가장으로서
    마니 고심하시고
    무슨일을 해서라도
    가족부양을 위해 부단히 노력 하신 아버님
    참 훌륭하십니다
    다 기억하시고 계시니
    총명한 두뇌는 물려 받으셨나
    봅니다

  • 작성자 23.02.23 12:12

    맞습니다 격동기지요
    거의 맨 땅에 헤딩하시는 식으로 사업을 하시고
    닥치는대로 이것저것 하시면서 애쓰셨지요

    그래도 저는 감사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평생을 남의 집에 세 살아보지 않았다는거
    어렵지만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는거

    아버님의 노력에 늘 감사합니다
    맨 손으로 이남으로 내려 오셔서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늘 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23.02.23 12:16

    청솔님~
    그 시대의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23.02.23 12:18

    네 봄이 되면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듯해서...
    제 효도를 별로 받아보지 못하고 가셨지요

    제가 대학 졸업 후에
    이런저런 양계잡지에 글을 많이 썼는데
    그걸 갖다 드리면 보시고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읽고 또 읽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23.02.23 13:37

    그런분이 아버지 셨다니....ㅎ
    대단한 분이시네요......
    이건 글이 아니라 역사네요......
    한가정의 역사...
    수원신풍동에서 태어나셨다니..........
    그당시 화성군청이 매향동 인근에 있었는데....
    내가...초등시절인것 같네요....
    당시에는 군청옆울타리 쪽에 말을 모는 마방들이 있었는데.....

  • 작성자 23.02.23 13:51

    네 제가 수원 신풍동에서 태어 났습니다
    수원이 고향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그 인연으로 큰아버님이 수원에 정착하셨지요
    아버님은 서울로 오시고...

    남문옆 영동시장에서
    포목점을 꽤 크게 하셨습니다
    수원이랑 주변에 땅도 많으셨구요

    사촌누나 둘이
    수원여고, 매향여고 나왔습니다
    사촌동생은 수원고 다녔구요

    북수동 성당 옆에 사셨습니다
    방학 때마다 갔지요

    팔딱산 올라가서 멱도 감고...
    화홍문 아래에서 고기잡고...
    연무대 화살터에도 가고...
    큰아버님이 활을 쏘셨습니다

    저도 수원에서 대학을 다녔고
    제 동생은 아주대 나왔습니다

    지금도 누님은 고색동 삽니다
    조카놈들도 동원고, 삼일고 다녔구요
    두 녀석 다 제 대학 후배입니다
    매부가 원예시험장 다녔습니다 ^^*

  • 23.02.23 16:25

    @청솔 내언제고 청솔님을 만나면......
    참 반가울것 같아요........
    수원에 남다른 애정이 있을것 같아.....
    제가 살던곳이 활터 부근이었는데.....
    말을하다보면 기억에 남는 아는 분일수도 있겠어요..큰 아버님..ㅎ
    영동시장 삼원상회.....? 아닌가요..

  • 작성자 23.02.23 16:33

    @장안 거긴 아니구요
    처음엔 이병희 국회의원 동생 이병철씨랑 동업
    동신상회를 함께 하셨지요

    나중에는 따로 광신상회를 하셨습니다
    이병철씨가 저를 꽤 이뻐하셨습니다

    남문근처 뒷골목의 명세의원은
    절친 매부가 하던 병원입니다
    누님은 선생님을 하셨지요

    네 제가 수원에 연고도 많고
    수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막내 여동생도 수원에서 삽니다

    전에 화성순례기도 올리고 그랬지요
    융건릉도 그렇구요
    용주사에도 자주 갔었습니다 ^^*

  • 작성자 23.02.23 16:38

    @장안 활터 부근이면 연무동인데
    어머님 이종사촌 동생이 거기 살았습니다
    제가 기숙사 있을 때 가끔 갔지요

    거기서 제품집을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수원경찰서 형사셨구요

    삼풍농원 하는 친구는 고교동기입니다
    가끔 만나서 식사도 하는...

  • 23.02.23 19:21

    청솔님의 파란만장한 가족사 잘 읽고나니
    저도 아버님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보다는 아버님일 일찍 여의셨군요
    저의 아버님도 1015년 생이신데 78세에 돌아가셨는 데
    평생 농사일 하시고 칠남매를 키우고 가시니
    저는 장남된 입장에서 아무것도 해 드린 것 없이 보내드려
    장례기간 동안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청솔님 인척중에 원예시험장 근무하신분도 계시다고 하니
    저도 농촌진흥청 산하 공직을 해서 원예시험장에도 몇 번 출장을 다닌터라
    그게 눈에 들어오네요
    어머님께는 효도하셨다하니 정말 효자이십니다
    저는 아버님 가시고 25년간 어머니와 함께 지냇는데
    왜 좀 더 잘 해드리지 못했나 늘 생각한답니다
    다큐멘타리 같은 가족사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작성자 23.02.23 20:31

    78세시면 원은 없으시겠습니다
    저는 아버님 61세, 제가 28세였지요

    효자는 아니고 아버님에 비하면
    그래도좀 나았다는 말씀입니다

    네 매형이 원예시험장 근무했습니다
    아 농진청 산하에 근무하셨군요

    감사합니다

  • 23.02.23 21:16

    청솔님도 난석선배님 못지않게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저의 아버님과 비슷하게 사시다
    돌아가셨네요.기일도 비슷 하고요
    우리 아버님은 59세.
    기일은 1월29일
    며칠 전 기일 미사 드렸지요
    청솔님 글을 읽다 보니
    우리 아버님 눈에 선합니다
    한편의 드라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 작성자 23.02.23 21:24

    감사합니다
    59세면 너무 일찍 가셨네요

    조금만 더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제게 효도할 시간을 안 주셨네요

    성당에 다니시는군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제사만 겨우 열심히 모시지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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