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Club?
경남중고27회 이바구가 아입니다
'27세에 요절한 천재들의 이야기' 입니다
동서고금에서 각분야에서. 젊은 나이에 아깝게 요절한 몇몇 천재들이 당시 나이가 알려져 있다. 많이 알려진 천재들 중에, 28세~ 35세의 나이도 있지만, 유달리 27세에 요절한 천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THE 27 CLUB’이라는 말이 만들어 지기도 했단다.
※나이를 세는 기준이 동서양이나, 태어난 시기에 따라 1년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어, 만나이로 26~27세, 통상의 나이로 27~28세가 살아있던 일수를 따지면, 27년 OO일로 27세 범주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The 27 Club’
만 27세에 요절한 천재들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 영원히 27세로 남게 되었다고 하여 영어로는 Forever The 27 Club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로인해 '천재는 27살에 (잘)죽는다' 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다.
●왕발(王勃)
왕발은 650년에 태어나 676년에 죽었으니, 나이 겨우 27세였다. 그러나 그는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으로 불리어졌을 뿐만 아니라, < 등왕각서(滕王閣序) > 라는 천고의 명문장을 남긴 인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수(隋)말의 저명한 학자인 문중자(文中子) 왕통(王通)의 손자였고, 수말초당의 유명한 문인 왕적(王績)의 종손(從孫)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시를 지을 줄 알았기에 사람들이 신동이라 여겼다. 복고(腹稿)라는 성어가 바로 이 왕발로 인해 비롯되었다 한다.
≪신당서(新唐書)≫ < 왕발전 > 에 의하면, 그가 글을 지을 때, 처음부터 정밀하게 구상하지 않는다. 먼저 먹을 몇 승(升)을 갈아놓고, 술을 흠뻑 마신 뒤 이불을 덮고 잔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붓을 잡고 단번에 한 편을 완성하는데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허난설헌(許蘭雪軒)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초당 허엽은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글공부를 가르켰다고 한다. 그로인해 허난설헌은 다양한 학문을 배웠다.
허난설현은 동생 허균의 글공부를 직접 가르쳤으며, 허균이 시를 지으며 누나 허난설헌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줄만큼 문학실력이 뛰어났다.
허균은 누나 허난설헌의 시를
"누님의 시문은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들이다. 시어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음식을 익혀 먹는 속인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학사초담 中)
난설헌은 27세의 짧은 나이에 213수의 한시를 남긴채. 요절한 천재 여류 시인이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세 자녀를 키워보지도 못하고 떠나 보내야 했다.
조선조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로운 작품 활동이 허용 되지 않았던 시대에 탁월한 시상으로 여성의 감정을 형성화 했으며. 남성들도 자유롭게 구사하기 어려운 한문학을 즐겨 다루었던 문신이다.
난설헌은 나이 27세 되던 해에 홀연히 의관을 정제하고,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 9의 수(27세)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고 전한다
●이상(李箱)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고 활동한 한국의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1930년대 국내에서는 선구적인 모더니즘 작가로서 약 6년간 다수의 시, 소설, 수필을 집필하며 인간 사회의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하고 미적 자율성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상의 작품활동은 한국 근대 문학이 국제적·선진적 사조에 합류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의의가 있으며, 초현실주의와 심리소설의 개척자로도 높이 평가받는 반면, 한편으로는 인간의 인식가능성을 부정한 극단적인 관념론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생전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고 경제 사정도 불우했다. 현실주의 실험작인 『오감도』 등을 투고했을 때에는 독자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오직 그의 지인들만이 이상을 천재로 평가했으나 사후 해방과 함께 그의 뛰어난 천재성이 발굴되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육에서는 이미 국정 교과서 시절부터 빠지지 않고 이상의 작품이 실리고 있으며, 이상문학상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되었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
'로버트 존슨'은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이다.
블루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로 꼽히며, 초기와 현대 블루스의 기초를 닦은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오픈 코드 형식의 작법이나 소울 창법 등 블루스에 널리 쓰이는 기법을 최초로 체계화 해서 정립했으며, 흔히 말하는 ‘27세 클럽의 원조’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하모니카와 주즈하프를 잘 하기로 유명했다고 언급했다.
1930년경 미시시피 주 로빈슨 빌에 나타난 그는 미국의 유명한 기타리스트이자 블루스 음악가인 ‘선 하우스’와 ‘윌리 브라운’을 만나게 됐다
'선 하우스'의 회고에 의하면 하모니카는 꽤 잘 불었는데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 했지만, 기타 실력은 시원찮아서 청중들에게 온갖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 뒤 잠적했던 ‘로버트’는 2년 뒤 로빈슨 빌에 다시 나타났을 땐 훌륭한 기타 실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가 연주를 끝내자 모두 입이 벌어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들린 듯한 그의 기타연주를 듣고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자신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그러한 소문에 대한 곡을 남겼다(참조: .https://youtu.be/GsB_cGdgPTo)
그 당시에 흑인들의 블루스나 다른 문화들이 조금씩 백인 젊은 층에 스며들면서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탐탁치 않게 여기던 보수층들은 흑인들이 젊은 사람들의 정서를 해친다며 이런 소문을 내곤 하였다.
그렇다보니 기독교 사회에서 '블루스'나 '락' 음악은 악마의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는 공연을 할 때 특이하게도 관객에 등을 돌린 채 자신의 손을 감추고 연주를 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타 기술을 훔치는걸 원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라고 한다.
1938년 8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The 27 Club의 창립자로 알려진 '로버트 존슨'부터 유명한 락스타들은 모두 만 27세 죽음이라는 공통분모가 화제가 되었었다. 우연찮게도 이들 외에도 27세에 요절해 버리는 락스타들이 1970년대에 속출했고, 한동안 잠잠해지다 1990년대 그리고 21세기에도'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저명한 뮤지션의 죽음있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
커트 도널드 코베인(영어: 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1994년 4월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며 록 밴드 너바나의 프론트맨이다. X세대의 대변자로서 크게 알려졌으며 아울러 얼터너티브 록(Alternatve Rock)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인으로서 평가된다.
워싱턴 주 에버딘 출신이고, 1987년 크리스 노보셀릭과 애런 벅하드와 손잡고 너바나를 창단했다. 이들이 활동하고 그 세를 키운 곳은시애틀 음악의 신. 이후 주류 레이블 DGC레코드와 계약하고서 발표한 <Smells Like Teen Spirit> 및 이 곡의 앨범 <Nevermind>로써 전세계적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이 성공으로 하여 코베인은 동세대의 목소리(voice of his generation)로조차 추어올려졌다.
말년에 접어들어 코베인은 헤로인 중독과 우울증따위의 만성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더구나 명성에 따른 압박 및 코트와 러브와의 결혼문제 및 개인사적 문제로 앓았다. 1994년 3월 샴페인과 로히프놀의 복합적 과용으로 병원에 실려갔으며 1994년 4월 8일 향년 27세로 시애틀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의 밝힌 바 사망시각 및 사인은 4월 5일경 엽총으로 인한 자살.
사후 2014년 너바나의 일원으로서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과 더불어 로큰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롤링스톤》 선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송라이터 100인' 및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인' 및 '가장 위대한 싱어 100인' 중 한 명 .MTV 선록 '음악에 있어 가장 위대한 목소리 22인' 중 7위. <히트 프레이드> 선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메탈 싱어 100인' 중 20위.
●아벨(Niels Henrik Abel)
수학의 노벨상… 27세 요절한 비운의 천재 기린, '아벨상'
아벨은 불과 19세에 5차 이상 방정식은 근(根)을 구하는 공식이 없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다, 아벨은 이 증명이 실린 논문을 자비로 출판하여 당시 수학의 대가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벨의 업적은 수학계의 무관심 속에 묻혀버렸고, 아벨은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27세에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
안타깝게도 그가 사망하고 이틀 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초빙한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
노르웨이 정부는 우표와 지폐에 그의 얼굴을 새겨 기렸고, 수학자들은 많은 수학 이론에 아벨의 이름을 붙였다. '아벨 군' '아벨의 정리' '아벨의 적분' 등이 대표적이다.
역대 아벨상 수상자 중에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내시 교수가 유명하다. 그는 2015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아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후 귀국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벨상 최초 여성 수상자는 2019년 미국 텍사스대 캐런 울런벡 교수. 85년 전통의 필즈상에서도 첫 여성 수상자는 2014년에야 나왔다. 필즈상 첫 여성 수상자 마리암 미르자하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암에 걸려 2017년 세상을 떠났다.
● 요제프 하시드(Josef Hassid)
폴란드 태생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16세 때 녹음한 것이다. 그는 이 몇 안 되는 녹음을 남기고 27살에 요절을 한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지금의 일렉기타의 연주주법과 기타이펙터(일렉기타의 소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다양한 소리를 내게 해주는 기계)의 정립을 시도한 일렉기타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다.
일렉기타의 왠만한 테크닉은 지미핸드릭스가 거의 완성시켰다고 보면 된다.
특이한 것은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인데.. 그 당시 왼손기타가 거의 없는 시대라 오른손잡이 기타를 거꾸로 잡고 줄을 교체한 후 연주했단다.
본래 락앤롤이라는것은 지금의 락이라고 생각하면안된다.
일렉기타의 일그러진 디스토션이라던지, 크런치한 소리는 지미헨드릭스가 앰프스피커를 칼로 찢어서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소리를 일그러트려서 만든 것인데, 지금 이펙터의 시초가 된 것이고 그당시에는 그러한 시도 자체가 지미헨드릭스 말고는 없었다.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연주주법은 지금 봐도 믿을 수 없을만큼 독특하고 정교하고 공격적이다.
커트코베인 과 마찬가지로 향년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수면제 과다복용 후 자신의 토사물에 의한 기도질식사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27세 요절한 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다.’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예술가가 있다. 그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를 즉흥과 감각으로 조합하며 시작과 동시에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를 뛰어넘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자유와 저항의 에너지로 점철된 예술가,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분방한 화법, 이질적이고 거친 이미지로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현했다. 바스키아는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세이모를 결성하고 뉴욕 거리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며 자신을 알렸다. 세이모는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 여기에 저작권 기호 ‘©’를 붙여 자신들만의 상징적인 문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맨해튼 곳곳에 물질만능주의와 권위적인 사회를 비꼬는 메시지를 새겼다. 간결함에 담긴 비판적인 목소리는 백인들로 뒤덮인 소호 갤러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수수께끼처럼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보일 듯 말 듯 써 내려간 텍스트와 서로 대립하는 이미지들이 동등한 구조로 배치된다. 논리적인 사고의 틀을 전복하여 기존의 가치를 뒤흔드는 차원의 문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해부학적인 인체 모습과 내장 기관들, 팔과 다리를 강조한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7세 때 당했던 사고와 연관된다.
바스키아는 1968년 큰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친다. 비장을 떼어내는 큰 수술로 장기간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어머니가 선물한 해부학 입문서 ‘그레이의 해부학Gray’s Anatomy’을 읽으며 인체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을 보며 사고를 발전시켰고, 이러한 배경지식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새로운 도상으로 이어진다.
바스키아는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현재까지도 문화 전반의 아이콘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조리한 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긴 여운을 남긴 그를 조망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시는 2021년 2월 7일까지 계속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Jade Winehouse)
영국 여성 싱어송 라이터, 재즈싱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 중 한명으로, 독창적인 음악과 소울 충만한 가창력을 가졌는 데,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2011년 27세 사망(사인 급성 알코올 중독)하였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신인상, 그리고 그래미 여자 최우수공연상, 최우수 팝보컬상, 올해의 레코드상 5관왕을 거머쥐며 최고의 디바로 활약하던 그녀가 돌연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1970)
미국의 블루스, 컨츄리, 사이키델릭 락 싱어송라이터였다. 60년대말 히피 문화를 대표한 인물중 한명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블루스, 최고의 여자 록스타 중 한 명.
거침없는 음악 스타일과 관습적 제약에서 벗어난 것으로 유명한 그녀는 1970년 27세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요절했다. . 27살에 생을 마감한 천재 뮤지션들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인 "Forever 27 Club"의 멤버가 되었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있는 그대로 정물화를 그리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럴 가르키는 미술은 선생은 에곤 실레에게 ‘
"사탄이 널 우리 반에 토해 놓고 갔다!"
고 할 정도로, 에곤 실레는 본인만의 시선으로 독특한 화법을
●짐 모리슨(Jim Morison)
그룹 The Doors의 리드 보컬인 Jim Morrison (짐 모리슨)은 27세의 나이로 약물과용에 따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Jimi Hendrix, Janis Joplin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27세의 젊디 젊은 나이에 요절한 3인방으로 3J라 묶여서 설명된다
Jimi Hendrix와 Janis Joplin은 1970년에, Jim Morrison은 197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수면제, 약물, 마약 등이 음악계를 파고 들어 한창 문제가 되던 시기였다.
●마사초(Masaccio)
마사초, 본래 톰마소 디 조반니 디 시모네 구이디라는 긴 이름을 가졌던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모두 꽃피우기도 전에 2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천재이다. 회화에서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
하지만 그 짧은 생애 속에서도 마사초는 탁월한 작품들을 남겼고, 그로 인해 심지어는 피렌체 르네상스의 회화가 마사초에 의해 탄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동시대 작가인 필리포 리피, 프라 안젤리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도 직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는, 건축에서의 브루넬레스키나 조각에서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의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천재가 15세기 초 피렌체화단을 풍미했던 국제고딕양식을 청산하고 지오토 디 본도네의 조형적 회화적 기법을 이어받고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의 원리와 도나텔로의 인체조형의 성과를 섭취하였다고 평가되는데 이는 마사초가 공간과 양체(量體)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참모습을 파악한 시각적 세계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마사초가 피렌체의 카르미네 성당에 그린 벽화 중 일부분인<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그린 그 유명한 천지창조 중 일부. 구도나 표현 방식 등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마사초에게서 받은 영향을 명확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첫댓글
참네
포털 D 욜마들
디게 게으르고, 저능하네.
미켈란젤로 작품에
남성의 조물주(※이에 대해서는 서토 거사가 설명을 쫌...)가 그려진것을 그대로 올렸다고
저거 멋대로 삭제처리하네.
할 수 없이 스크린 처리하여 다시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아마도 포털 D가 올려지는 내용을 에이아이로 감시하나본데,
그 에이아이에게 이런 류형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학습시키지 않은 모양,
에이아이든, 포털관리자든, 그렇게 저능해서야...
벌써 몇번째야?
요노믜 포털과 이별하고 싶네
D 글마들 수준이 곰발바닥으로 살키만 보이면 오뉴월 염병 들린 듯이
입에 하이타이 거품 물고 자지러집니다.
디기 많네요. 우리는 일흔까지 살고 있으니 凡才^^ 단, 옥자는 열외로 수재!
근세 한국 문인들 중에도 요절한 이가 많지요.
이상(만 26세) 말고도 나도향(만 24세), 최서해(만 31세), 김유정(만 29세), 박신애(만 31세), 이장희(만 28세), 김소월(만 32세), 심훈(만 34세) 등등
천재들이 희안하게도 27세를 잘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앗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72세를 잘 넘기지 못할듯한 필링이(?) 오는듯 하네요.
따라서 72세 까지만 우찌우찌 잘 넘기고 나면..그 다음부터는일사천리로.. 100세까지
무난히 잘 넘어갈듯한 필링(?) 또한 오는듯 함미다.
특히 경남고 27회 졸업생들에 한하여- ^^
옥자 덕분에.. 요절한 천재들의 프로파일을 일견할 기회가 되어 매우 감사-
이쁜 계집은 얼굴값하고 뛰어난 놈은 목숨값 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兒名으로 개똥이니 바우니 여러 천한 이름을 지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아이 이쁘라고 하지 않고 못났다라고 신의 질투를 피하였습니다.
이모씨만 하더라도 아명이 알랑바우라고 지었는데,아랑 드롱을 연상시키는 이름때문에
半은 잘 되었고 다른 半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재주가 특출하면 하늘에서 가리방 긁어서 조기 스카우트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종적을 감추고 신선이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랄과 관련된 건은..그냥 그렇거니 하고 넘어가는게 좋겟슴미다.
그간에 가만 보자니..서토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부랄이란 단어를
잇는그대로 입밖에 내는 것에 대해.. 모두들 제법 뜨악하게 여기는듯 합디다.
서토는 그리 안할라 캐도..어릴적부터 워낙에 외할머니로부터, 좆 이란 단어와 함께
아주 자연스레 들어온 터라..그 사용이 거의 습관적이고 편안한데 비해..
다른 분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언젠가 이곳 지인들과 골프후 식사모임에서 우연히 정치관련 대화 중..바이든의 부랄이
서늘하겟다 식으로 이야기 했더니..은근히 불편한듯한 기색으로..그런 직설적 용어는
좀 자제해 달라며 정색을 하는 사람도 잇습디다.
그러니.. AI도 그리 하고 잇으리라 생각되네요.
그런 저급한(?) 어휘는 쓰지 말자 하면서도..실제로 삿되게 부랄을 마구 휘두르고 다니기는
그들이 더 하는듯 합디다만- 참.. ^^
오래간만에
서토거사 답지 않는 궁핍(?)한 처신을 봅니다
머 나이든 탓인가?
그러타면 내가 이바구를 꺼집어 내야 하겠네요?
‘부랄과 관련된 건은..그냥 그렇거니 하고 넘어가는 게 좋겟슴미다.’ 라….
서토답지 않은 말씀
그동안 경계가 없이 살아온 듯 하더니
'부랄관련' 과 '노스코리아 관련된 일'에는
유달리 경계를 드러내는 동인(動因)을 알 수 없습네다
미스터리!
서토거사가 그냥 넘어가는 기 좋겟다햇으나
그럴 수는 없지요 내가 총대(?)를 매지요
《조물주 이론(異論)》
‘조물주가 소를 만드시고 소한테 말씀하시길..
"너는 6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60년은 너무 많으니 30년만 살겠다'고 했다.
두 번째 개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길..
"너는 3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집만 지켜라."
그러자 개는' 30년은 너무 길으니 15년만 살겠다'고 했다.
세 번째 원숭이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길..
"너는 3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롱을 떨어라."
그러자 원숭이도 '아이고 30년간을 어떻게 재롱떠느냐며 15년만 살겠다'고 했다.
네 번째 사람을 만드시고 말씀하시길..
"너는 25년만 살아라.
단,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
그러자 사람이 조물주에게 말하기를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은 25살까지는 주어진 시간을 그냥 저냥 살고..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살부터 55살까지 소같이 일만 하고..
개가 버린 15년으로는 퇴직하고 개같이 집 보기로 살고..
원숭이가 버린 15년으로는 손자손녀 앞에서 원숭이처럼 재롱을 떨며 살고…’
위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다
조물주(造物主)는 세상만물을 만든 주, 주인 즉
세상만물의 창조자 즉 조물(造物)자로 인식하고 믿고 있는 대상의 보편적인 표현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보편적 인식대상이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각종교에서도 조물주를 창조주, 하느님, 한울님, 하나님 등으로 표현한다.
유일신이나 다신교 신앙에 따라 의미는 다소 다를 지라도,
그 명칭과 근본 의미하는 바는 대동소이할 것이다.
조물주의 조물(造物 )중,
가장 빛나는 작품이 생명창조이다.
생명의 씨앗이 싹트는 것은 수컷의 거시기,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수컷 거시기의 물속에서 생명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물주의 의미에는 또 다른 인식이 존재하게 된다.
조물주는 수컷의 거시기 물을 만드는 주인, 즉 ‘조물주’가 되는 것이다.
원래, 그 조물은 ‘좆의 물’에서 유래하였다.(아이모 말고)
‘좆’은 수컷의 거시기. 그 좆의 물은 생명의 씨앗을 담고 있으니,
‘좆의 물’을 만드는 자는 그 좆을 달고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좆의 물’이 ‘좆물’로 압축되고,
그 ‘좆물’이 ‘조물’로 바뀌었으니,
발음의 순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근본 의미는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니 ‘좇의 물을 만드는 이’는 ‘좆물을 만드는 이’가 되고,
다시 발음의 순화를 거쳐 ‘조물을 만드는 이’ 또는
‘조물을 만드는 자’ 또는 조물을 만드는 주인’의 의미로
즉 ‘조물주’로 발전해온 것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명의 씨앗과 그 씨앗을 잉태하는 물이 말라가서
‘조물주’로서의 역할이 끝나게 되지만,
대를 이어 조물의 역할을 기대하고 애쓰는 것은
인간뿐아니라 모든 생명의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를 이어 조물주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컷들이여,
당대에 조물주의 역할이 끝나간다고 서글퍼하지 말라.
그것은 천지 순환의 찰라의 과정일 뿐이다.
@玉忠錫 몇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조물주였네 ㅎㅎ
@玉忠錫 좆물을 받쳐줄 玉盤(냄비)도 만들어야하는데...
옥자도 천재인데
ㅎㅎ
ㅎㅎ역시 옥자다운 그럴듯한 창작물이군요. 대단함미다.^^
그런데..서토가 근자들어 노스코리아 관련건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자제하고
잇슴을 알아채는 것으로 보아..옥자가 매우 예리하군요. ^^
그간 오랜세월 같은 구조의 이바구를 끝없이 강조해 왓으니 이젠 그만할 때가 되엇고
고로 이제는 더 이야기 하지않아도.. 남북관련 돌아가는 판에 대한 감을 동기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잡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북은.. 어느 싯점 들어 이미.. 남한에 대한 그간의 기대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서토가 중간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상황이기도 함미다.
이후로 어떤 전환적 상황이 오면 그 때는 또 언급을 해나갈 예정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