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배타성 때문 42.2%, 인간성 말살 20.3%, 부조리를 알고서 12.1%, 지도층의 타락 7.2%, 헌금 강요 5.2%, 세습과 족벌 경영 3.7%, 기타 9.3%.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반기련) 사이트에서 기독교 안티가 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다. 2010년 5월부터 2012년 10월 현재까지 7,500여 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무신론자 그룹인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배타성에 가장 큰 반감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세계적으로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당당히 밝히는 사람은 10% 내외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물론 실질적인 무신론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무종교인을 포함해 비기독교인들 중에도 신의 존재는 막연히 인정하지만 굳이 그 신을 알려고 하진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유신론에 대한 반발로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 기독교에 몸담은 경험으로 각기 다양한 상처들을 가진 이들도 있다. 대체로 기독교의 배타성에 분노하고, 기독교인의 편협성, 부도덕성과 위선에 혐오감을 가진다. 미신적이고 반지성적인 태도를 가진 교회를 때로는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수구세력과 동일시하며 성토하기도 한다.
교리적으로는 특히 구약에서 무차별 살인을 명하는 기독교 신의 잔인한 도덕성, 폭력성을 공격한다. 신앙은 지성의 파산이며 이성과 배치된다고 보는 이들은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론을 적대시하고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무시한다. 그들에게 종교는 일종의 체계적인 미신이다. 그래서 “믿으면 모르고 알면 못 믿는다”고까지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복음전도자였다가 무신론자로 전향한 댄 바커(‘신은 없다’ 저자), 무신론자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신은 위대하지 않다’ 저자),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고도 무신론자가 된 바트 어만(‘성경 왜곡의 역사’, ‘예수 왜곡의 역사’ 저자) 등이 성경의 모순점, 예수신화설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한국의 무신론자들에게도 무신론 논리를 전수해왔다.
교회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일반적인 전도방법보다 변증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성인 계층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믿음을 갖는 데 방해되는 지적 걸림돌들을 제거해주는 변증전도가 요긴하다. 성도들에게도 변증전도는 반기독교 분위기가 팽배한 이 시대에 기독교진리의 절대성을 확신시켜 그들 스스로 전도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준다.
구약에서 오해되기 쉬운 신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는 일반적인 도덕 기준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선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회적인 계시의 완성을 통해 영적 교훈을 남기시려 했던 신학적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 성경의 모순점들도 기독교 진리의 근본을 뒤흔들 만한 것은 없다. 성경 사본상 단순히 이름이나 단어, 숫자의 차이거나 복음서의 예수님 족보 차이처럼 신학적 배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성경은 사실을 토대로 한 신학적인 책이다. 의도를 모른 채 외적인 묘사나 불일치만 보면 오해하기 쉽다.
사실 신은 무신론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인간이 신을 직접 탐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신학은 신이 자신에 대해 알려준 계시에 대한 학문이다. 그 성경의 권위가 믿을 만하면 그 권위가 보도한 신도 믿을 만하다. 가수 싸이의 세계적인 인기를 사람들은 보도매체의 권위를 통해 확인한다. 권위의 신뢰성 여부가 사실 여부를 결정한다.
창조의 신들은 타종교나 신화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는 역사 속에 자신을 계시하지 않았다. 성경의 하나님이 역사적 증거를 가진 진짜 창조주인 이유는 창조 이후 구체적인 역사 속에 주신 성경의 신빙성 때문이다. 예수의 역사성도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칼 야스퍼스는 “위대한 인물들의 실존 여부는 그들이 남긴 영향력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역사 속에 끊임없이 존속되어온 교회의 존재라는 확고한 그분의 영향력을 통해 입증된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실제 역사가 그 배경이다. 예수님 이후 그들의 전 세계 이산과 회복의 역사 또한 성경 예언 성취의 세계사적 증거다.
나는 스데반에게서 변증전도의 영감과 방법론을 얻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복음의 배경으로 쭉 제시한다(행 7:1-53). 성령님은 변증전도에서 이런 접근을 선호하신 것 같다. 역사적 배경을 거두절미하고 예수님을 전하면 종교적 맹신이 조장되기 쉽다.
리차드 도킨스류의 무신론자들은 과학적 합리주의, 자연주의로 기독교를 공격한다. 기독교는 과학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과학도 자연계시의 한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을 우연으로 돌려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무신론적 진화론의 기도는 과학의 월권이다.
무신론자들은 교회사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과 기만과 악행이 하나님 뜻 가운데 이뤄졌다고 넘겨짚는다. 그러나 교회에는 항상 가짜 기독교인들이 있어왔고 인류사에서 사탄의 제1공격목표는 교회였다. 지금도 기독교 문화화된 것으로 만족하는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삶따로 신앙따로의 위선 때문에 교회가 안팎으로 오해받거나 비난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서 참된 회심과 거듭남에 대한 강조가 약해져서다. 존 파이퍼는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오염시킨다”고 경고했다.
무신론자 전도의 좀더 근본적인 대책은 예방이다. 지금은 진리에 대한 확신 없이 교회 안에 있다가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에 휩쓸려 언제라도 교회를 이탈할 청소년, 청장년 전도도 시급하다. 잠재적 무신론자인 이들에게도 기독교는 취향따라 버릴 수도 있는 종교의 하나가 아니라 역사임을 분명히 전해두어야 한다. 역사는 임의로 변경시킬 수 없는 진리다. 기독교만이 참된 역사성을 갖기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지성적 논리를 갖춘 변증전도자가 더 많이 필요한 때다.
-안환균 목사, 『목회와 신학』(두란노) 2012년 11월호 특집에 게재한 글
'목회와 신학' 사이트 바로 가기
http://moksin.durann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