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 큐티
시편 29:1 ~ 11
많은 물소리와 같은 여호와의 소리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시 => 본 시편의 저자가 다윗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 시편은 다윗의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으로 여겨지는 시입니다. 천지 만물과 인생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의 위대함을 뇌성과 많은 물소리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리"를 형상화하면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
- 1절.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권능 있는 자들”으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천상의 거룩한 존재들인 천사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능력의 탁월함을 드러내는데는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천상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능을 노래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은 동의를 구할 일이 아니라 선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찬양함에 자신의 부족을 느낀 다윗은 천상의 존재인 천사를 향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그렇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 2절.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 다윗은 여호와께 돌려져야 하는 찬양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드려져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라는 것은 존재의 본질과 성품과 능력 등 전인격적인 의미가 포함됩니다. 다윗 역시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는 가운데 그 이름에 어울리도록 영광을 돌릴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자존자로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분이며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지혜로 그 질서를 운행하시고 있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은 이 땅의 그 무엇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일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서는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의복인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는 것이 천사가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더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3) 여호와의 소리
- 3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 시편 29편에서 “여호와의 소리”는 일곱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7”이라는 수는 완전수이면서 안식을 상징하는 거룩한 숫자입니다. 시편 29편에서 일곱 번이라는 횟수는 하나님의 소리의 완전성과 거룩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설정입니다. 시편 29편에서 “여호와의 소리”는 자연과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만물 가운데 깃든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 시편에서 “여호와의 소리”를 통해서 다윗은 어떤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뇌성을 발하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많은 물, 곧 바다 위에 계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바다를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위에 계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뇌성 가운데 임하시는 여호와의 소리를 통해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고 위엄차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4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 다윗은 뇌성으로 임하시는 “여호와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폭풍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이 있고 위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소리인 뇌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음을 묘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자연의 장관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이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드려야 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5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 “여호와의 소리”가 뇌성과 함께 레바논의 백향목에 떨어져 거대한 백향목 나무가 꺾어지고 부러지게 되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많은 도끼질을 해서 간신히 벌목할 수 있는 레바논의 백향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소리가 한 번 발하시면 단번에 꺾어져 쓰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의 권능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향목”은 주로 레바논의 산지에서 자라는 소나무과의 상록수입니다. 그 높이가 25 ~ 40m, 가지의 넓이는 10m까지 자라는 거목입니다. 이것을 재료로 하는 목재는 수지가 많고, 벌레가 끼지 않으며 견고하고 마디가 없어 건축 재료로 가장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화려함과 장엄함으로 인해 나무들의 왕자로 불려졌습니다. 심지어는 거대한 백향목을 섬기는 이들 조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향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소리”에 단번에 꺾이고 부러진다는 것을 말한 의미는 백향목이 교만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교만한 자가 단번에 부러지고 박살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6절.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 “레바논”은 팔레스타인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레바논 산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룐”은 레바논 산맥의 동편에 위치한 헤르몬 산을 가리킵니다. 레바논 산맥과 헤르몬 산은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 높이에 있어 쌍벽을 이루는 웅장한 산들입니다. 레바논 산맥은 백향목 산지로 유명한 곳이고, 헤르몬 산은 그 정상 부분이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는 만년설이 쌓이는 산입니다. 이러한 높은 산, 장엄한 산들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신들의 처소로 여겨지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과 변하지 않는 기초를 지닌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레바논 산맥이나 헤르몬 산이 들송아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해 보지 못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하시고 임재가 있게 되자 견고함과 교만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백향목이 꺾이고 부러지듯이 영원히 요동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산들도 흔들거리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아무리 견고하게 여겨지는 것이라 해도 영광스러운 하나님 여호와의 임재와 능력 아에서는 요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7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 다윗은 “여호와의 소리”를 시각화시켜 불꽃의 이미지와 칼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뇌성에 동반된 번개가 하늘에서 갈라지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번개를 동반한 뇌성을 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갈래의 불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악인을 멸절시키시는 심판의 검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번개를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연상되는 엄위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 8절.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 “가데스 광야”는 출애굽 당시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한 시내 광야의 북쪽에 위치한 장소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와 같은 곳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룐이 팔레스타인의 최북단의 장소였다면 가데스 광야는 팔레스타인의 최남단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팔레스타인 전체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절대 주권이 팔레스타인, 그리고 온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 9절.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 “여호와의 소리”를 상징하는 ‘뇌성’이 암사슴과 삼림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끼를 밴 암사슴이 뇌성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조산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로 인하여 삼림이 황폐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룐, 그리고 가데스 광야의 삼림은 견고한 것 같아 보이고, 모든 동물들의 삶의 기반이요 터전인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견고한 것 같아 보이는 동물들의 삶의 터전도 여호와의 권능 앞에서는 황폐하게 될 수 있는 연약한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성전”은 하늘의 성소입니다. 아직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지상에 나타내 보이시는 동안 하늘 성소에서는 거기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이라고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는 영원하신 왕
- 10절.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 다윗은 뇌성이 몰고 올 수 있는 결과의 최종적 형태를 “홍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주권자가 되심을 다시금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권능을 가지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는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통치하신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홍수”는 노아 시대의 홍수를 의미합니다. 모든 죄인들을 다 삼켜버렸던 노아의 홍수 역시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비다. 다윗은 여호와의 권능과 주권이 노아의 홍수라는 무시무시한 자연 현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으로 두려워할 분이시며 경외할 분이시라는 것을 노래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심판주로서 물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심판하신 것처럼 영원히 의로우신 심판을 내리실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세대에 걸쳐서 온 세상에 대한 절대 주권을 쥐고 의로운 심판을 단행하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하실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 노아의 홍수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구원이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윗은 동일하게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곧 의인들에게 힘 주시고 보호하시고 평강을 허락하신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진정한 평화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크고 놀라운 뇌성이 주는 청각적 이미지와 번개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문학적으로 놀라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편의 가치는 다윗이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답게 노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소재로 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여호와께서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자연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노래한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인간들이 진정으로 찬양해야 하는 대상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노래하고자 한 것입니다.
2)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강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천상의 존재 천사도 동원해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자연의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존엄하심을 발견하고,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자신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참된 평화를 누리는 것을 다윗은 수없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적용 :
1) 여호와의 소리는 단지 뇌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남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게 되면 진정한 평강도 따라옴을 믿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서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2) 하나님의 소리로 인해서 이 세상이 공의가 펼쳐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던 세례 요한과 같이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며 하나님의 소리를 앞서서 증거하는 존재가 되기를 구합니다.
3) 여전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감당하는 가운데 다윗의 시편은 참으로 위로와 통찰력을 갖도록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은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실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천사도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다 힘을 합해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