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의 경배 (1511)
한스 쉬스 폰 쿨름바흐
Hans Suss von Kulmbach, Adoration of the Magi, 1511
한스 쉬스 폰 쿨름바흐(Hans Suss von Kulmbach, c.1476-1522)는
쿨름바흐에서 태어나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한 독일 르네상스 화가이다.
그가 1511년에 그린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현재 독일 베를린 달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올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마태오복음서 2장 1-12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16세기 초 북유럽 화가들이 그린 <동방박사들의 경배>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그 특징의 첫 번째는 <동방박사들의 경배>의 배경을 폐허로 그린 것이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이 구원의 표징이기 때문에
보통 아기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마구간으로 그리거나 야고보 원복음서의 증언대로 동굴로 묘사하는데,
16세기 초 북유럽 화가들은 폐허를 그 배경으로 그렸다.
무너져가는 건축물이 있는 폐허로 배경으로 묘사한 것은 율법으로 맺어진 구약의 시대가 허물어지고
허물어진 건물 사이에서 피어나는 나무들처럼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는다는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계약이 맺어진 것이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곳은 온기 없는 흙바닥이다.
무너진 폐허의 지붕 틈으로 파란 하늘이 빛난다.
두 번째 특징은 동방박사들이 들고 온 선물을 담은 성배와 동방박사들의 옷이 세밀하고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이것은 금세공 기술과 직물 무역이 활발했던 당시 플랑드르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했던 15세기 북유럽 미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별을 보고 길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여러 날 밤길을 도와서 왔으나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복식을 입은 동방박사들은 여장도 풀기 전에 아기 예수님께 차례로 경배를 올린다.
노란 옷을 입은 시종이 준비한 선물을 대령하고,
말을 탄 기수와 낙타를 부리는 일꾼들이 행렬의 긴 꼬리로 늘어섰다.
세 번째 특징은 동방박사들을 다른 인종과 다른 연령대로 그린 것이다.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몇 명인지 씌어 있지 않다.
예물이 셋이니 동방박사들도 세 명이라고 오리게네스가 처음으로 주장했고,
화가들에 의해서 그들이 노인과 중년과 청년으로 묘사되었으며,
제노바의 대주교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1230-1298)가
쓴 황금 전설(Legenda aurea, 黃金傳說)에 의해 그들의 이름이 카스파르, 멜키오르, 발타사르로 명명된 것이다.
아마도 젊은 흑인 임금이 발타사르, 터번을 쓴 중년의 황인 임금이 멜키오르,
머리가 벗겨진 노년의 백인 임금이 카스파르일 것이다.
이들의 인종을 다르게 묘사한 것은 이들이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이 세 대륙은 세상 전체를 의미했고,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야 60,3.5-6)
라고 예언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알리기 위함이다.
동방박사들은 예물을 들고 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예물을 봉헌하고 있고,
아기 예수님은 흰 포대기에 싸여 그 예물을 받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흑인 임금을 바라보고 있고,
붉은 겉옷을 걸치고 서 있는 이는 요셉은 수행원들과 악수하며 손님들을 영접하고 있다.
젊은 마리아와 늙은 요셉을 그린 것은 성모님의 순결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성 가족의 뒤에는 어울리지 않게 대리석 기둥이 있고, 그 위에 푸른 하늘 사이로 밝은 빛이 비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둥에 매달려 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쿨름바흐는 북유럽의 색 원근법을 그림에 반영했으며,
전경의 짙은 갈색이 원경의 푸른색으로 서서히 순환하는 동안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동방박사들과 그 수행원들이 이루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멀리 있는 산악이나 숲, 그리고 무너진 벽돌 위에 난 풀 등 배경에 대해서도 화가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살아 숨 쉬는 자연을 동방박사들의 경배 행렬에 옮겨놓았다.
[출처] 동방박사들의 경배 (1511) - 한스 쉬스 폰 쿨름바흐|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