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에 잠자리 제어를 더듬하게 하다가는 코감기 걸리기 쉬운 게절이다. 특히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기온 차는 곧 서리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싸늘하다.
산내로 옮겨온 지 어언 7~8년 동안, 어지간히 집안일도 마무리하고, 자고 일어나면 씨름하던 풀들이 성장이 멈춘듯하니, 주말이면 제법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오늘 머 하까?.”
“파크 골프하러가까?"
단석산 가는 길 해발 600m 부근에 이른바 '화랑의 언덕' 이 있다. 일명 '바람의 언덕' 이라 불리는 넓은 언덕이 있는 사설 유원지다, 거기에 총 27홀(3 종류의 9홀) 파크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차를 몰고 거기로 쉽게 올라갈 수 있으니, 거기나 갔다오까하고 할매를 꼬신 것이다
"거기는 다음에 가고, 이번에는 부산 자갈치시장 갔다오자. 울산(통도사)역까지 차로 가고, 거기서 KTX타고 부산역가서 전철타면 주차걱정없고, 오래간만에 열차타고 여행가는 기분도 내고....전철은 당신은 공짜아이가?"
우리할매는 자갈치 시장쪽으로 가잔다. 아마도 뭔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싶은 생각이 있나보다. 5~6년동안 경주인근이나 울산이나 포항부근으로 갔지, 부산 자갈치시장부근으로 간 일이 없었다. 가는 길도 좀 멀고, 그곳으로 가면 그곳 지리를 잘 모르는 촌놈이, 차를 주차하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그곳 출입을 삼가하고 있는 데, 우리 할매가 KTX타고 가는 궁리를 낸 것이다. 울산서 귀촌한 이가 있어, 이분의 말을 듣고 방법을 알아왔는 데, 울산서 부산역까지 KTX비용이 2,000원정도로 들었단다. 내가 8,000원정도 될텐데? 일단 시도해보자 싶어 길을 나섰다.
부산 본토배기 우리할매가, 산골에 묻혀 살다보니, 예전에 다녀보던 자갈치 시장인근으로 나들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무심했다. 우리할매가, 종종, 자갈치 시장, 영도인근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하였는 데, 내가 시쿤 둥, 듣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아마도 주차사정을 짐작하기에, 별로 보채지 않다가, 오늘 큰(?) 맘먹고, 거기로 가보자 하네.
울산(통토사)역 인근에 주차시켜놓고, KTX타고 부산역을 거처 전철타고 간 것이다. 차비는 그러면 그렇지, 내 짐작대로 8,400원, 할매가 2,000원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굳이 따져 들 일은 아닌 것이다,
그 옛날의 자갈치부두를 끼고, 재개발되어 있는 ‘자갈치시장’에 연해서 용두산 방향 부평동 입구에 있는 이른바 ‘깡통시장’과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로 알려진 ‘국제시장’이 있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만, 언제 그쪽 동네로 가봤는 지 아예, 기억이 없다. 참 오래간만이다. 아마도, 수십년,(30년~40년?) 만이지 싶다.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그 동네가 어찌 바뀌였을지 궁금증이 남아 언제 한번 추억여행삼아 가봐야 겠는 데 하면서도. 차일피일 잊는 둥 마는둥 지나온지 수십년.
자갈치 시장
거제 촌놈출신인 나에게도 특별히(?) 추억이 많이 서린 곳이다.
아마도 1970년 고등학교 1학년? 그때까지만 해도 부산서 거제를 오가는 여객선의 입.출항 터미널이 자갈치 시장앞, 이른바 ‘자갈치부두’에 있었다. 이전의 장소는 매립이 되고, 그 위나 그 인근에 현대화된 시장이 형성되고 했을 것이니, 그 옛날의 시장위치나 정확한 부두위치를 내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대충 '자갈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동네 어딘가 아니겠나 짐작할 뿐이다.
부산에서 거제도의 장승포, 옥포를 다니는 여객선과. 장목, 성포를 거쳐 충무까지 다니는 여객선이 자갈치부두로 입항하고, 거기서 출항하던 기억이 난다. 여객선은 철선도 있었고 목선도 있었는 데, 같은 시기에 운행되었는 지, 목선이 먼저 운행되고, 퇴출되어, 뒤에 철선이 운행되었는 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장목이라는 곳을 다니는 배는 목선이였던 것 같고, 장승포, 옥포를 다니던 배는 철선이였던 것 같다.
자갈치 시장부근에 들어선 12층짜리 부영**라는 건물이 자갈치 시장 부근에서 당시 제일 높은 건물이였는 데, 이것이 부실시공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되고 있다. 생각나는 기억이라도, 엉뚱한 기억을 생생히 기억한다 느낄 수 있으니 제대로 기억하는 지 장담을 못한다. 그런 나이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대부분을 자취하던 때라, 주말이면, 자갈치 부두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옥포나 장승포 또는 장목으로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중, 목선이였던 배가 '신진호'라 기억된다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땐가, 자취를 할 때였다. 매주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준비해주는 1주일 먹을 쌀과 반찬을 갖고 와서, 내가 직접 해먹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라면이라는 제품이 출시되어 라면을 자주 먹던 기억도 난다.
어느 토요일에 거제 집으로 가서 일요일에 올라오는 데, 갑판2층에 올라가 고등학교 26회 선배인가 누구랑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 듯 자갈치 부두에 도착 했다. 허겁지겁 내려 버스정류소로 가다, 아뿔사, 어머니가 준 '쌀 꾸러미'를 1층에 두었는 데, 두고 그냥 내렸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배로 뛰어가서 쌀을 둔 곳을 찾아봤지만, 벌써 쌀꾸러미는 사라지고...,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 바람에 그 한 주는 거의 굶다시피...
또,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초, 서울역에서 아마 당시 열차비가 480원으로 기억되는 완행열차를 저녁9시에 타면, 아마도 아침 5시부근인지, 9시부근인지 (도착시간은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부산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부산역에서 자갈치부두로 버스를 타고가서, 시간맟춰, 거제가는 배를 타면 12시쯤에 옥포나 장승포에 도착하고, 여기서 한참을 기다려 우리집으로 가는 버스를 탓다. 당시에는 배차시간이 드문드문, 들쭉날쭉 운전기사 꼴리는 데로 있어, 때를 놓치면, 2~3시간을 여객터미널에서 기다리곤 했어야 했다. 겨우 버스를 잡아타고 통칭 30리길이라 하지만, ‘신작로’라 불리였다해도, 당시 길은 비포장으로 해안선 따라 구불구불 가는 길이라, 비온 뒤에는 바퀴가 빠져 탄 손님이 다 내리고, 버스가 빠져 나오기를 도와주기도 하는 길, 쭉 벋은 요즈음의 30리길하고는 느낌이 완전 틀린 그런 길을 달려갔다.
동네마다 정류소에서 사람이 내리고, 사람을 태우고. 사람들로 가득찬 차에 차장이 '오라이'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시골버스, 아마도 시속 30~40km도 되지 않았지 싶은 속도로. 아마도 1시간도 훨씬 넘게 걸려 시골동네 어귀로 가까이 가다보면, 소설에서나 시골정취를 표현하는 데, 쓰여질 것 같이, 저 멀리에서 저녁밥 짓는다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워 오르는 것을 보곤했다
그러니, 밤9시, 서울역을 출발하여, 다음날 오후 5시경 멀리 저녁밥 하느라고 불 때는 연기가 보일 때쯤, 거진 20시간이 걸려, 시골의 우리집 인근 버스정류소에서 내리는 경험을 여러번 하였던 것이다. 그시간이면, 요즈음 같으면, 여기서 남미의 어느 곳에도 갈 시간이다
고등학고, 대학을 거쳐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운행되다가, 언젠가부터, 승용차 보유가 보편화되면서, 부산서 거제를 가는데, 여객선보다, 약 1시간이내 걸리는 카페리호가 주력 운송수단으로 운행되더니, 거가대교가 생기고부터는 카페리호도 퇴출되었다. 그런 유형의 카페리 운행은,. , 충무에서 한산도, 완도에서 보길도 가는 노선처럼, 인근 도서지역 여객수단으로 전략하였던 것이다. 몇년전 통영에서 한산도를 다녀오면서 그런 유형의 카페리호를 이용했다.
지난 토요일이다. 새벽녁,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옷을 좀 두텁게 입고 나왔더니, 햇살이 포근한지, 부산부근이라 해발이 낮아 그런지 생각보다 싸늘하지 않다. 우리할매 손을 잡고, 자갈치 시장 쪽으로 가느라 울산( 통도사)역으로 왔지만, 모든 주차장과 인근 유로주차장이 만원이다, 인근 동네 공터를 찾아,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 KTX를 탓다. 울산역 부근은 개발이 덜 되어 역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 빈 공터가 많음을 알기에 몇번 주차장을 돌다가 그곳으로 가서 주차를 하였던 것이다.
역까지, 12분 쯤 걸었나보다. 열차를 탔지만, 옛날의 그 완행열차의 정감어린 분위기는 아니라도, 유달리 출발한 때와 틀리게, 따스한 가을 볕과 맑은 공기를 느끼며, 그 옛날 부산역과 자갈치 부두의 사건들을 회상에 잠기다 문득, '자갈치' 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생긴 말인지 궁금해진다. 우리 할매 조잘거리는 소리를 귀로 흘러 듣고, 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뵜다
자갈치는 서북 태평양이나 오호츠크해, 포항 근해에 서식하는 심해어종이다. 최대크기는 약 9.7cm 정도. 몸은 길고 앞 부분은 원통형이며 뒤로 갈수록 좌우로 납작하다. 양 턱과 구개골에 작은 이가 있으며 서골에는 2개의 큰 이빨이 있다. 위턱이 아래턱보다 앞으로 나와있다. 아가미구멍은 작다.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는 꼬리지느러미와 연결되어 있다. 꼬리 쪽이 가늘고 길다. 배지느러미는 없다. 몸은 연한 갈색이다. 측선비늘은 몸의 앞 부분에만 나타나 있다. 몸이나 지느러미에 반점이 없다(나무위키).
자갈치시장이 위치한 항구는 부산남항(南港)인데, 이 항구가 어항(漁港)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곳에 수산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 자갈치역과도 인접해 있다.
자갈치라는 이름은 생선 자갈치에서 나온 게 아니라 바닥에 자갈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물론 시장 내부를 현대적으로 단장한 지금은 자갈을 찾아볼 수 없다. 치라는 말은 언덕 치(峙)에서 따왔다고 하는 어원도 있고 '자갈이 있는 곳'[處]의 처가 치로 변했다는 어원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화하면서 수산시장 뿐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한 업소들이 입주했다. 1층에는 기존의 수산시장이 있다. 바닥이 화강암으로 되어 있기에 깔끔한 인상을 준다. 살아있는 해산물들이 가득 찬 수조가 가득한데 이거 구경하는 게 상당히 재밌다.
2층에는 1층의 시장에서 산 해산물들을 바로 회쳐 먹을 수 있는 횟집들이 입점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초장집에 더 가깝다만. 횟집들이 각각 독립된 구조가 아니라 2층 전체가 개방형으로 탁 트여 있는 구조라 출입문 같은게 없다. 시장 자체가 관광지이므로 횟집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특히 바다가 보이는 창가쪽은 더 붐빈다.
깡통 시장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시장으로 옛날에는 주로 미군 부대에서 반출된 물건을 팔던 곳이었다. 미군 부대에선 주로 통조림 같은 깡통 제품이 많이 반출되었는데 그래서 '깡통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고한다.
우리할매 따라가다보니, 여성 내의를 파는 란제리 가게에 앞이다. 거기에서, 내 팬티를 사러 온 모양이다. 여성의류가 잔뜩 있는데, 그 틈속에, 남자 용 팬티가 끼여있다.
"남자 옷은 팬티밖에 없네요"
가게주인에게 농담쪼로 말을 건넸더니, "남자 옷(내의)는 간단하잖아요? 여자옷들은 복잡하다" 그래서 여자 옷은 종류도 많단다, 그런데,
내의 더미 속에 박혀서 방송중인 테레비를 발견했다. 요리조리 살펴봐도, 요새 LED테레비가 아니다. LCD 테레비도 아니다. 뒤로 두툼하게 볼륨감이 있는 게 영락없는 진공관식 테레비다. 그래 긴가민가해서 물었봤다
"이거, 옛날 진공관식 테레비 아입니까"
"예, 마자예, 요거 초기 모델인데, 얼마전에, LG에서 귀한 모델이라고 수집한다고,수백만원 줄터이니 팔아라고 찾아왔어예. 그래도 안판다 했어예. 화면도 깨끗하고 얼마나 잘나오는 데...."
주인아줌마인지, 종업원 아줌마인지 입에 거품을 물고 테레비 자랑한다.
거참....
지금도 수입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 술, 과자, 의류, 화장품, 가방, 그릇 등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2013년 10월부터는 깡통 야시장이 개장하여 부산 대표 길거리 음식과 다문화 가정이 함께하는 외국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야시장은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열리며 늦은 시간까지 부산 시민들과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정신없이 우리할매한테 끌려 다니다, 할매가 옛날 즐겨 사먹던 오뎅집이 있다네. 내가 국밥같은 얼큰한 국물있는 음식위주로 좋아하니, 조심스레 이런 것도 먹어보자고 권한다. 그래, 그곳에서 점심으로 떼우기로 했다. 할매 말대로, 국물맛이 일품이고, 요세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옛날의 오뎅향수를 자극할 만한 맛이다. 돌아다닌다고 배가 좀 고파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색않고 '참 맛잇다. 다음에 오면 여기 또들러자' 할매한테 아부성 발언을 쏟아부었다. 이제, 이 나이 되니 아부도 많이 늘어간다
국제시장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있는 상설시장. 해방 이후 모여든 귀환 동포들과 6·25전쟁으로 밀려온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상권을 이루었으며, 미군의 구호품과 반출물자 등이 유통되면서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68년 이후 현대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2002년 아케이드가 설치되었으며 2008년에는 인근 시장들과 연합하여 국제 마켓 타운을 결성했다. 2014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관광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저기 우리 할매가 보인다. 우리할매는 촌에서, 늙어가는 모습 보기싫고, 보이기 싫다꼬, 사진을 찍지 말래서 살짝살짝 한 컷씩 하는 것이다. 아마도, 서토거사는 우리 할매를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지 못하면, 싱가폴 처럼, 빳다를 좀 맛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 시장이 밀집하고 있는 곳이니, 이런 저런 풍물거리가 많다. 나는 어깨에 가방을 매고, 우리할매가 이것 저것 사주는 소물(小物)을 넣고 쫄쫄 따라 다녔다. 마치 주인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강아지 처럼. 그런데 요새 강아지는 쫄졸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인품에 안겨다니는 모양이다. 비좁은 길을 비집고 다니다, 애긴가 싶어 시겁을 하고 비켜서 처다보면, 강아지이다. 몇번을 그런 경우를 겪었다. 그동안 도회의 장터, 특히나 바람쐬고, 풍물구경하기 좋은 번잡한 장터에 나와본지 거의 기억에 없는 지라, 우리 할매 덕분에 이런 델 나와보고, 요지경 시장 풍물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자갈치시장과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을 둘러보고, 소소한 소물들을 사서 어깨에 매고, 깡통시장 입구 어디쯤에 있는 ‘제주식 카페’라나 그곳에 들러, 지친 다리를 쉬게 했다. 바닥에 나무를 얊게 썰어 깔아둔 카페로, 별난 카페로구나 싶었다. 늦게 오뎅과 우동 사리 비빔을 많이 먹었기에 별시리 들어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뭐 빠뜨린게 있다하면서, 깡통시장으로 다시 갔다오마 하며, 여기서 커피 마시면서 기다리란다. 먼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몸도, 다리도 좀 쉬게할 겸, 화장실도 다녀올겸해서...
어두워지기전에 집에 도착하자고, 서둘러, 울산역으로 와서 주차된 곳으로 걷고 다시 한적한 산골로 들어왔다. 멀리 띄엄띄엄 촌집과 가로등만이 쓸쓸한 풍경이 오늘 낮에 북작거리던 자갈치 부근의 시장과 대비되면서 마치 우주선을 타고 외계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오늘은 걷기를 생략했지만, 잠이 잘 들 것 같다. 저녁을 가볍게 먹자마자, 벌써 잠이 쏟아진다.
첫댓글 글이 은근히 재미있네요.
백교장님이 자주 말슴하시는.'소확행' 의 모범적 예가 아닐까 함미다.
초등 때 대교동에서 살았던 터라..옥자가 언급한 대개의 지역이
낯설지가 않은데다..
수년전에 부산에 들렀을 때..형님과 여동생이 일부러 이 지역을
함께 돌아보게 해주어.. 더욱 기억이 새록해지는군요.
거리에서 사묵는 씨앗호떡이 아주 인기가 많더군요.
해당 주인은 이 호떡으로 거의 재벌(?) 수준의 부자가 되엇다는 말도 잇습디다만- ^^
그리고 연혁깊은 국제시장 안경점에서 즉석으로 몇 개의 안경을 맞추어
구매했던 바...미국에 비해 값도 저렴하지만..
오랜 경험의 도수측정이 워낙에 정교하여 ..오랫만에 눈이 확 밝아집디다.
지금도 그 안경을 이용하고 있지만..다시 가게되면 또다시 몇 개 맞추어
살 작정을 하고 있슴미다.
가성비 좋은 안경을 현장에서 쉬이 만들 수 있다는게 참으로 행복하더라는- ^^
(미국에서 안경 맞추느라 하도 불편을 많이 겪엇다 보니- )
미국에선 안경 맟출려면
값이 많이 비싸지요.
옥자가 글을 실감있게 적어 옛 추억이 아련거립니다.
쌀 1말을 그냥 두고 내려
1주일 동안 굶었다니.
ㅉㅉ
나도 언양 출신 김진명이 자취하고 있는 집에가서 밥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쌀이 찰져서 밥맛이
아주 좋았던게 지금도
기억납니다.
옛 추억을 불러오는
옥자글 좋았습니다.
와~ 서울에서 거제집까지 20시간~~~우주 여행을 다녀온듯한 뭉클한 수필, 잘 읽고갑니다!^^
아, 옥도사가 70년대 젊은 시절 대처에서 학교다니다 거제 집으로 찾아가는 '집으로 가는 길'이 장쯔이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독자의 감정선을 꾹꾹 눌러주고 있심다. 글 참 유려해서 좋네.. 문디 이런 필체도 자주 보여주지.. 너무 고답적인 주제 글만 딱딱하게 쓰니 옥자 글은 읽기도 전에 얹히는 걱정이 들어 쉽게 달려들어지지가 않았소이다.
예전 고교와 대학생 때 귀향하는 길의 옛 풍경들은 같은 시대를 겪은 독자들에게 많은 회상거리들을 깨우치며 들어서게 하는 멋진 가이드 그림들이외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을 볼 때 동시대인이 느끼는 아늑하면서도 좀 한심하기도 했던 날 것의 감상들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말이지요.
자갈치와 국제시장 방문 얘기들도 내가 지난 8년간 부산에서 지내며 살았던 괜찮은 시절을 한번 더 일깨우며 연결시켜준 멋진 고리였소이다. 부산 떠난 지 넉달 밖에 안되는데 마지막 떠나던 무렵이 제법 그립게 여겨지외다. 조만간 마무리짓지 못한 내 자서전 이바구도 다시 속개해볼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구료.
재미있고 잔잔한 글, 좋네요.
나는 동해남부선 기차 타고 집에 가곤 했지 배 타고 집에 가 본 적이 없어 고등학생 때 하숙생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은근히 부러웠는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