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비참
즐거운 시간들을 잃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비참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 (딤전 4:8). 만일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주께서 모든 것을 더하신다” (마 6:33). 하지만 불경건한 자들은 영적인 복과 이 땅에서의 복을 잃게 될 것을 경고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땅에서 추구했던 것마저 다 빼앗기게 된다.
만일 그들이 이 땅에서의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천국을 잃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잃었다면 그들은 주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다시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주께서 그들에게 만유 가운데 모든 것이 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다른 것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버렸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를 잃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주를 버림으로 말미암아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며 나아가 즐거운 모든 시간들을 잃을 것이다.
1. 저주 받은 자들이 잃는 즐거운 시간들
1)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뻔뻔스러운 믿음을 잃게 된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그 믿음을 잃을 것이다. 이 거짓 믿음은 지금 그들의 영을 붙들고 있으며 이 거짓 믿음은 그들의 공포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것들이 거짓으로 들어나고 다른 그 어느 것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때 무엇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가장 위험한 재난을 당할 위기에 있는데도 오히려 자신은 안전하다고 확신하고 있으면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이 평탄한 것처럼 즐거워 보일 수 있다. 만일 그런 헛된 믿음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 행복은 참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믿음이 중생한 자들에게 가장 앞서는 은혜인 것처럼, 거짓 믿음은 중생하지 못한 자들에게 가장 앞서는 악이다.
왜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자신들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이미 자신들은 용서를 받았다고 믿으며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일까? 만일 당신이 지옥에 있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에게 왜 그곳에 가게 되었냐고 물을 수 있다면 그들 대부분의 대답은 “우리는 저주 받는 그 순간까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생과 경건의 능력을 간절히 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할 것이다.
독자들이여, 내가 진실로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진실은, 부주의하고 더럽고 교만한 수많은 무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다 자신들은 좋은 상태에 있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된 믿음은 결국 영혼을 저주하는 기만으로 입증될 것이다. 지옥에 떨어지면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사탄의 작전으로써 인간들의 영혼의 눈을 멀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 과감하게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열릴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2) 모든 소망을 잃게 된다.
그들은 모든 소망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경고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 진노를 벗어날 것이라는 소망에 그들의 마음은 든든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사악한 주정꾼들, 거짓 맹세하는 자들,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회개 없는 구원의 소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악함을 붙들고도 구원을 받을 것으로 소망한다. 오, 구원이 그들의 소망처럼 흔한 것이라면, 그러한 세상은 과연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겠는가!
오, 사람들의 헛된 소망이 너무나 강해서 그들은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와 따질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마 7:22)고 주장할 것이다. 나아가 자신들은 배고픔과 헐벗음과 감옥에 있는 그리스도를 모른 채 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우길 것이다. 하지만 주께서는 그들에게 정죄를 선포하실 것이다.
오, 자신들의 모든 소망을 영영 떨쳐 버려야 하는 그 비참한 신세는 얼마나 슬픈 것인가!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잠 11:7).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욥 11:20). “그들의 희망이 숨을 거둔다”라는 표현은 악한 자들이 자신들의 모든 소망을 포기하게 되는 사실을 적절하고 무시무시하게 표현한 것이다.
영혼의 큰 고통을 느끼는 때는 그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때인 것처럼 악한 자에게서 소망이 떠날 때 그들은 가장 큰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그렇게 오랫동안 즐거이 함께 하던 몸에서 갑자기 찰나의 순간에 떠나는 것처럼 악한 자들의 소망도 그렇게 떠날 것이다. 몸을 떠난 영혼이 이 세상에서 다시 몸과 살려고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악한 자들의 소망은 그들의 영혼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부활의 기적으로 영혼과 몸은 다시 합쳐지지만, 저주받는 자의 소망은 다시 부활하여 그들에게 돌아오는 일이 없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가련한 장면은 불경건한 사람이 죽는 장면으로써 그의 영혼과 소망이 떠나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가련하여진다. 그는 저 세상에서 얼마나 슬픈 처지가 되어 있을까! 저 세상에서 이미 소망을 잃는 사람에게 가서 “당신은 과거처럼 당신 자신의 구원을 확신합니까?”라는 질문하면 그는 얼마나 슬픈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을까! 오, 부주의한 죄인들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이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독자들이여, 성경의 약속에 근거하여 당신의 모든 소망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안심하지 말라. 성경이 말하는 소망들은 당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경건에 힘쓰게 하게, 더 소망할수록 죄를 멀리하며, 소망이 분명할수록 더욱 주를 순종하게 만든다. 만일 당신의 소망이 이러한 소망이라면 주의 힘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 당신의 소망을 꼭 붙들라. 그 소망은 결코 당신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소망이 당신의 영혼에 건전한 은혜의 효력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소망을 당장 내다 버려라. 거듭나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든지, 거룩함이 없이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든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신의 생명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함이 없이도 그리스도 안의 기업을 받을 수 있다든지 하는 그러한 소망이 있다면 당장 버리라. 그러한 헛된 소망에 실망을 하는 것이 바로 천상을 향하는 첫 걸음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길에서 벗어나면 그를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어떤 과정이 있어야 하는가? 먼저 그는 그가 서 있는 잘못된 길로는 그의 여정의 목표를 절대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해야 한다. 집은 동쪽인데 서쪽으로 향하면서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고 기대하는 한 그는 더욱 멀리 빗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 길로는 그가 집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면, 그는 돌아서게 될 것이며 그때야 그는 바른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죄인들이여, 당신의 영혼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천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났고 벌써 그 길을 여러 해 동안 달려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악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구원을 받을 것으로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그러한 소망을 떨쳐 버리고 당신이 줄곧 천상을 향하는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 가장 천국을 막는 것이 있다면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거짓 소망일 것이다. 저주 받은 자들이 후에 천상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붙들고 있던 소망들이 다 거짓인 것을 알 때 그 비참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3) 양심의 모든 평강을 잃는다.
그들은 현재 그들의 삶을 매우 편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양심의 거짓 평강을 다 잃게 될 것이다. 수없이 많은 불경건한 자들이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때 누가 그들이 이제 얼마 후에 영원히 타는 불못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순종하는 신자만큼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구원을 받게 될 신자들과 다름없이 그들 대부분은 마음이 평안하다.
만일 그들의 평강이 영원한 것이라면 그들은 얼마나 행복한 자들이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오, 이런 멸망으로 끝날 잔인한 거짓 평안이여!
모든 사람의 영혼은 본성상 사탄의 수비대 역할을 한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그리스도가 찾아오셔서 심판과 지옥의 무서운 경고를 알려주시고 경고와 공포의 규례로 그 영혼을 때리실 때까지는 헛된 거짓 평안을 누린다. 하지만 주님은 강한 자로 오셔서 “사탄을 굴복시키시고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신다” (눅 11:22). 그러면 그 영혼은 거짓 평안을 다 잃고 주를 영접하고 주를 통치자로 모신다. 그 후 주님은 든든하고 영원한 평강을 그의 영혼 속에 세워주신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첫 번째 종류의 평강에 있다면 그것이 오래갈 것이라고 절대 생각지 말라. 당신이 영혼이 그리스도와 원수로 있으면서 지속적인 평강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전쟁을 선포하시는데 과연 당신이 평안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태평스러운 마음에 들이닥치셔서 당신을 흔들어 거짓된 평안에서 나오게 하여 당신이 그리스도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주여, 제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라고 말하게 되는 가장 큰 복을 누리게 되길 바란다. 그때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더 좋고 안전한 평안을 받게 될 것이다. 그 평안은 영원한 안식의 시작으로서 절대 부서지지 않으며, 당신이 망할 때 함께 무너지는 세상의 평안과는 달리 당신이 죽더라도 그 평안은 멸하지 않는다.
4) 모든 정욕적인 쾌락을 잃는다.
그들은 모든 정욕적인 쾌락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해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전 2:2) 말할 것이다. 그들의 쾌락으로 인한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다” (전 7:6). 즉, 그들의 정욕적인 쾌락은 잠깐 타오르더니 곧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쾌락을 당장 망쳐놓기 때문에 그들은 그 이야기들을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위험에 대한 생각을 참을 수 없어했는데, 그 이유는 그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망쳐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죄 때문에 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들은 웃음으로 슬픔을 쫓아낼 수 있었고 노래로 우울함과 염려를 멀리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말씀 묵상과 기도를 생각하면 비참을 느끼거나 또는 미칠 정도로 짜증이 났다.
가련한 영혼들이여! 그곳에는 슬픔 밖에 없을 텐데, 당신은 얼마나 비참을 느끼게 될까? 그 슬픔은 강렬하게 가슴을 찌르는 엄청난 슬픔일 것이다. 당신에게는 성도들이 누리는 기쁨도 없고 당신이 과거에 누리던 쾌락도 이제 없으니 무슨 낙이 있겠는가! 지옥에는 즐거움을 누리거나 밝은 얼굴을 하거나 또는 우스개 농담을 하는 단 한 영혼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신은 그곳에서 “작은 쾌락이 너무나 큰 슬픔이 가져왔구나”라며 절규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경건한 슬픔이라도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것을 잊지 말라. 그 기쁨은 당신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어리석은 쾌락보다 무한하게 값질 것이다. 하지만 쾌락의 끝은 언제나 슬픔이다.
5)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을 잃는다.
그들은 또한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참 하나님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으뜸 되는 선과 신으로 여기며 좋아했던 것들과 천국으로 여겼던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교만하며 야심적인 사람이 높은 영광의 자리에서 떨어질 때 그 비참은 대단하다!
그의 시체의 먼지와 뼈는 가장 가난했던 거지의 먼지와 뼈로부터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영혼도 그 거지의 영혼보다 더 명예롭거나 특혜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단히 많은 위대하고 고상하고 학식 있는 자들이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들에게는 화려한 집도, 부드러운 침대도, 안락한 소파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진기한 정원과 유쾌한 초원과 풍부한 추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식탁에는 음식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곳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눅 16:19) 부자가 없고, 구경꾼들의 감탄의 소리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운동과 오락으로 시간을 보낼 수 없고 오직 슬픔 가운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과거와는 너무나 변화된 자신들의 신세를 발견하고 혀를 찰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의 정욕의 열기가 누그러질 것이다.
그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볼 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갈가리 찢어지겠는가? 서로 얼굴을 보면서 그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서로를 만났던 그 날을 저주할 것이다! 오, 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이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즐거운 만남이 그 때에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할 것이 확실한가? 그 때에 그들을 기억할 때 그 기억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 때에 지금 우리가 악에 동참한 사실을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쾌락을 맛보기 위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팔아먹어야 하는 것일까? 오라. 우리가 함께 죄를 지었으니,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용서를 구하자. 서로 속이며 서로 망하는 것을 위해 돕지 말고 함께 천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서로 돕도록 하자.”
오,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추구하는 그 때에, 정작 그들이 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정욕 때문에 계속 유혹을 받는다. 한편 당신을 잡으려는 덫은 점점 세력을 얻고 있다. 속지 말고 당장 정욕을 버리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붙들라.
-하늘나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