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파부인이 올해의 꽃을 피워올렸습니다.
섬세한 기계로 절단한 공예품 꽃이파리처럼 균일한 여섯 잎의 하얀 얼굴이 며칠 전 이른 아침에 제 눈속으로 환하게 파고 들어온 것입니다.
"어머, 파부인이 꽃을 피웠네. 샘아, 샘아."
건너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딸아이는 '응, 난 아까 보았어." 크게 대답해왔습니다.
우리 모녀의 상기된 음성에 가구들이 놀란 듯 화들짝하게 반짝거렸습니다.
사실 여름이 다 가도록 파부인은 이파리만 싱싱하게 올리면서 정작 꽃대궁을 올리지 않아 은근히 신경이 쓰였더랬습니다.
물을 줄 때마다 "언제 필래? 응? 올해 내로 피긴 필꺼니?" 하고 스트레스를 주었는데 드디어 맛뵈기로 꽃 한송이를 올려준 것입니다.
저는 창앞에 서서 파부인이 피워올린 꽃송이를 눈부신 마음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어쩌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품위가 있을까. 마치 사십대의 귀부인 같구나...'
우유빛의 부드러운 꽃송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연두색과 노란색이 어울어진 수술들의 휘어짐도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첫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창앞에 파부인을 놓았습니다.
집에는 여섯 개의 풀꽃화분 있는데 저는 파부인을 일방적으로 편애합니다.
물도 파부인 위주로 줍니다.
그뿐 아니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랑의 말도 한마디씩 꼭 건넵니다.
그에 비해 다른 꽃들에게는 물도 적당히, 사랑의 말 역시 생각나면 하다말다 합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파부인은 제 집으로 온 햇수가 벌써 25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분 안에 갇혀서 아주 긴 시간을 저와 함께 살아온 것이지요.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파부인은 돌아가신 합정동 친정어머니댁에서 분가하여 서교동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댁에는 크고 작은 화초들이 참 많았는데 제가 유독 파부인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자 뿌리를 갈라 저희 집에 몇 포기를 가져오신 것이지요.
파부인은 그해 여름 뜨거운 햇빛속에서 진초록 이파리를 무성하게 퍼트리며 얼마나 싱싱하게 꽃대궁을 피워 올리는 지 여름 내내 현관 입구가 환했습니다.
어린 두 딸들은 하루에도 몇차례씩 파부인 곁을 스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사랑스런 딸들의 순진무구한 웃음과 연한 두 볼, 귀여운 목소리, 마당과 마루를 뛰어다니던 가벼운 발자욱 소리,
그때마다 나풀대던 치마자락이 만개한 파부인과 함께 아직도 선명하게 제 가슴속 깊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 시절 저는 건강하고 명랑했으며 미래는 기분좋게 예측되었고 가족들은 서로 깊이 사랑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지요.
오래 살던 서교동 집을 떠나서 저희는 충정로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회복할 길이 없는 병에 걸려 남은 생이 기껏해야 1년 정도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큰 딸은 어린 나이에 제 품을 떠나 먼 나라에 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분리되고 있음'은 제 삶에 소리없이 그러나 깊은 상처를 내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예측대로 어머님은 일년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일 전후로 꽉 찼던 삶이 조금씩 균열이 가는 느낌을 지녔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는 커져서 매우 힘든 시간을 제법 길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어떤 의미로 지금까지 살아온 생에서 가장 외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파부인은 제 눈길에서 점점 멀어졌지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마루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베란다 한구석에 버려진 모습으로 놓인 파부인을 보았습니다.
그 윤기나고 무성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영양실조 상태의 이파리 몇개가 겨우 남아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비록 줄기 몇개가 남아있긴 했지만 그건 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파부인은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주인과 몇년동안 살아온 것입니다.
주인의 눈에 뜨이면 겨우 물 한모금 얻어 먹었고 안 주면 보름이고 한달이고 바짝 마른 화분 속에서 견디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게 반년도 일년도 아니고 무려 사년가까이 파부인은 그렇게 주인에게 방치되어 있었지요.
그런데도 죽지않고 견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버려진 것에 세차게 항의하며 자신이 처한 악조건에 대항하여 어떻하든 살아내려고 끊질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파부인은 물을 아주 좋아해서 거의 매일 물을 듬뿍 주어야 하는 꽃입니다.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힘껏 저를 내려치는 듯한 느낌이 들며 정신이 번쩍났습니다.
너무 놀라워서 가슴이 다 막혔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말도 못하는 저 연약한 풀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해왔는가'하는 생각과 동시에
'저 꽃을 살리자. 저 꽃이 살면 나도 산다'는 암시가 무슨 깨달음처럼 강렬하게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서 꽃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꽃의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지요.
당장에 화분을 갈아주고 물을 준 뒤에 햇빛 쪽으로 옮겨주었습니다.
그후로부터는 꽃이 살아나면 제 삶도 전처럼 윤기를 회복한다는 그 이상한 믿음으로 파부인을 보살펴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파부인은 바로 회복되지 못하고 몇년에 걸쳐 아주 느린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물도 못얻어 먹고 버려졌던 지난 시절의 후유증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우아하고 기품있는 초록의 곡선들이 흙화분을 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퍼져가도 꽃은 없었습니다.
파부인은 제게 그냥 이파리만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파리만 보았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jadunamu.net%2Fimg%2Fpaflower2.jpg)
큰 딸이 세상을 떠나고 몇달이 지나 첫여름이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저는 깊은 슬픔속에서 파부인에게 진심으로 부탁했습니다.
" 부디 꽃 한송이만 피워주렴. 많이도 아니고 딱 한 송이만 피워주렴"
만약 파부인이 꽃을 피워준다면 제 슬픔을 알고 위로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말을 안하는 사물들은 사람으로서는 결코 엿볼 수 없는 어떤 다른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꽃을 피워준다면 그건 알 수 없는 그 세계로부터 제게 보내는 크낙한 위로의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내 부름에 대한 큰 딸의 대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파부인은 제 청대로 아름답게 피워주었습니다.
딱 한송이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저는 꽃을 다시 보았고 말할 수 없이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음 해가 되었습니다.
제 슬픔은 표면적으로는 전보다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슬픔은 여전했습니다.
올해도 파부인이 꽃을 피워줄런지 어떨런지 알 수 없어 또다시 부탁했습니다.
" 작년에는 내 부탁대로 딱 한 송이를 피워주었지? 고마웠다. 하지만 한송이라서 쓸쓸했어. 올해는 두 송이만 피워주렴."
그해 파부인은 두 송이를 피워올렸습니다.
파주인과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관계를 맺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부인은 매년 두어송이 이상은 절대 꽃대궁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 집에 이사올 때 창가에 파부인을 놓으면서 말했지요.
'나 이제부터는 많이 행복할 작정야. 그러니 너도 내년부터는 꽃을 많이 많이 피워줘. 이제 그래도 될때가 되지 않았니?'
파부인은 제 부탁대로 올해 모처럼 인심을 팍 썼습니다.
화분 속에는 현재 5개의 꽃대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파부인이라는 이름은 얼마전에 딸아이와 함께 지은 이름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지내왔으면서도 저는 파부인의 세상이름도 몰랐으며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어느날 저녁, 작은 딸아이와 둘이 꽃을 바라보다가 파부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 것입니다.
자태가 하도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서 그리된 것이지요.
(글 쓰신 분 소개:
화가 정상명님. 환경단체 풀꽃세상과 풀꽃평화연구소를 창립하심.
연세는 오십대 후반이시지만 외모나 정신 연령면에서는 젊은이들보다 신선한 마인드를소유하신 분임. 육년전 불의의 사고로 플륫하던 성년의 딸을 잃고 깊은 슬픔의 끝에서, 마침내 이 척박한 세상에 대한 '사랑의 복수'를 크게 결심하시고 풀꽃세상을 창립하심.
http://www.jadunamu.net에 가면 그 분이 쓰신 좋은 글이 많이 있음. )
첫댓글 참 아름다운 글이라서 같이 읽고 싶어 퍼왔단다..
눈물난다...글도 너무 아름답고..여자 화가시구나.풀꽃평화연구소라... 우리나이에 아름다운것은 바로 이런것같어. 아픔이 있는자들이 더 아름다와보여..그것을 솔직히 드러냄도 인간적이고..희숙아 니덕에 좋은글읽었다. 음악도 잘 골랐어. 감동했어.
울 집에도 있는꽃- 흰꽃 나도 샤프란- 예전 우리 이모는 아주 커다란 항아리 뚜껑에다 이거 가뜩 키우셨는데 꽃이 피면 어찌 이쁜지 ~~오늘 앞집 후배와 항아리 뚜껑 사러가자 했는데...^^*
희숙아, 좋은 글 고맙다....
나도 꽃이름을 파부인이라 해야겠다. 우리집 배란다 화분에도 심어져 있는데 중국 부추같은 모양...돌보지 않아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꽃이 피더구나 꽃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생명력도 강하고. 좋은글 잘 읽었다^^
샤프란에 관한 이야기야. 늦가을 무렵, 꽃의 신 폴로라가 목장 옆 연못가에 누워있었다. 그때 목초의 요정이 나타나서, "여신이여, 무정했던 목초가 모두 시들어 버렸으니 가을의 마지막 꽃을 찾아헤매는 어린 양을 가엽게 여겨 낮잠 잘 보금자리를 주소서" 하였다.
그러자 꽃의신 플로라가 가을의 마지막 꽃을 한 송이 피워 주었는데.. 그 꽃이 바로 샤프란이래. 봉옥이 말대로 '흰꽃 나도 샤프란'이 정식 명칭이고.. 그런데 '파부인'도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모두들 잘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