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녹음,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김민찬 변호사 / 기사승인 : 2019-02-13 14:02:24
재판에서 녹취록은 주요한 증거로 다뤄진다. 당사자 간 대화 녹취 자체가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고, 간접사실에 대한 입증자료로도 많이 활용된다. 간혹 녹취록의 존재만으로 본인의 승소를 장담하는 의뢰인이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데, 녹취록보다는 직접적인 물적 증거나 계약서, 증인의 법정증언 등의 증명력이 더 높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녹취가 재판에서 순도 높은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조작이 없어야 하므로, 국가공인자격증을 보유한 속기사사무실에서 문서화하는 것이 좋다. 전체 대화 내용이 아닌 본인에게만 유리한 대화 맥락만을 추려내어 녹취한 경우, 그 증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민사나 가사 사건에서 전자소송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데, 전자소송에서는 녹음 파일 자체를 직접증거로 제출하기 편리하다.
간통죄가 폐지된 후 이혼소송에서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생겼다. 많은 의뢰인들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데,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사설탐정제도를 인정하지 않기에 흥신소는 불법일 개연성이 높다. 상대방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 설치 역시 불법이다. 통신비밀보호법 내지 대법원판례에 따를 때, 녹음을 하는 자가 대화당사자가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하면 이는 불법이고, 중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도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청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녹음을 하는 사람이 대화당사자가 되어 그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 상대방의 동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합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일부 주와 달리 휴대폰 녹음 기능이 합법인 것이다.
흥미로운 사례는 차량 내 블랙박스에 대화 내용이 녹음된 경우이다. 개인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및 근로기준법상 CCTV나 블랙박스에 대화 내용 등이 녹음되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CCTV의 경우 근로자의 동의가 없거나 촬영의 목적과 관리자, 범위, 시간 등을 고지하지 않았을 경우 촬영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차량 내 블랙박스에 배우자의 불륜 대화가 녹음되어 있다면, 이혼소송에서 이것이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까? 차량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블랙박스 녹음에 도청의 의도가 있었는지 또 블랙박스의 입수 경위 등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실무에서는 대체로 증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사나 가사재판은 형사재판만큼의 엄격한 증거 능력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민사재판이라도 명백히 증거능력을 배척하는 경우 이를 증거로 쓸 수 없다.
얼마 전 중국 내 한 유명 가수의 공연장에서 AI가 안면인식 기능을 활용하여 사상최대로 지명수배범들을 검거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이제 빅브라더의 시대를 넘어 AI가 시민의 일상생활 전반을 상시녹화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범인검거율 내지 재판승복률은 크게 증대할 수 있겠지만, 시민의 인권 및 사생활 침해가 문제될 수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우선하는 가치인지 사회적인 담론이 필요해 보인다.
김민찬 변호사
출처: 울산저널http://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89366127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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