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一獨立宣言書
1.역사적 배경
1918년 초반부터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1919년 1월 18일에 파리 강화회의가 열리자,
당시 식민지·반식민지 상태에 있던 여러 나라에서는 독립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게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하이[上海]에 있던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2월 1일 김규식이 파리 강화회의에 급히 파견되었고,
2월 8일에는 일본유학생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더구나 1월 21일 고종이 죽자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유포되면서
그동안 폭압적인 일제의 무단정치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의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모색하게 되었다.
2.작성 경위와 내용
이들의 첫 움직임은 1월 20일경부터 손병희·오세창·최린·권동진 등의 천도교 측 중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월중 2차례의 모임에서 처음에는 손병희의 발의에 의해 일본정부에 건의서를 내기로 했고,
2번째 모임에서는 독립청원서와 선언서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월 상순경에 천도교측은 대한제국의 거물관료였던 윤용구·한규설·윤치호·김윤식 등과 접촉하여
그들을 독립청원의 대표로 내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했고, 김윤식은 청원서만 내는 것을 고집하고
독립선언서의 발표에는 찬성하지 않음으로써 이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2월 중순경에 최린은 최남선의 주선으로 기독교 측과 연락이 닿아
기독교 측의 대표 격인 함태영(咸台永)과 만났는데 그가 청원서만 내겠다고 하여
천도교와 기독교 측의 회동이 결렬될 뻔했으나, 결국 선언서 발표에 동의하게 되었다.
또한 한용운(韓龍雲)을 통해 불교 측과의 제휴도 이루어져 독립선언서가 작성·발표되었다.
이때 독립선언서의 작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최린이었는데,
그는 "청원서나 건의서는 민족자결의 의미가 없으므로 대내적으로 전 국민을 분기시키고
대외적으로 전 세계를 향하여 독립해야 하는 이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중대한 선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최린은 이미 2월 상순에 선언서·의견서·청원서 등 운동관계 서류의 초안을
최남선에게 기초하도록 부탁했는데, 손병희 등과 합의한,
첫째, 평화적이고 온건(穩健)하여 감정에 흐르지 말 것,
둘째,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할 것,
셋째,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이 전통정신에 입각한 정의와 인도의 운동임을 강조할 것을
기본내용으로 삼게 했다.
삼일독립선언서의 전체정신은
첫째, 한민족의 독립정신 및 그 유래를 철두철미 민족 고유의 양심과 기능에서 발동하도록 하고,
둘째, 한국인의 독립운동은 결코 배타심 특히 단순한 배일정신에서 온 것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발전상 당연한 지위를 요구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셋째, 한국인의 독립운동은 한국인 독자의 이기적인 동기에서가 아니고
동양 전체의 평화 및 세계 역사의 추세에 비추어 불가분한 것으로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며,
넷째, 한국인의 독립운동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고,
그 목적을 완수하기까지 어디까지나 지속할 성질이라는 것을 명백히 할 것 등이었다.
더욱이 이 선언서의 내용은 근대의 서구사상인 자유·평등·인권·도의 사상을 반영하여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문화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결하여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민족의 자유·독립·평등을 요구한 것이었다.
나아가서 한국의 독립이 동양의 평화,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고,
세계개조의 대기운과 도의시대를 강조한 것은
외세에 의지하거나 타력에 의해 독립을 쟁취한다는 뜻이 아니고
세계정세도 바야흐로 유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비폭력을 주장한 것은 일제와의 타협이나 청원적인 내용이 아니고
오히려 비폭력을 호소하면서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요구인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정정당당하게 끝까지 투쟁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배포와 의의 역사적 배경
삼일독립선언서는 천도교 측 15명, 기독교 측 16명, 불교 측 2명 등 33인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후에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普成社)에서 2만 1,000매가 인쇄되어
2월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전달·배포되었다.
1,762자로 된 독립선언서는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이 선언문의 낭독 없이
한용운의 간단한 취지 설명 후 축배를 들고 일본 경찰에 자수함으로써
민족대표에 의해 민중 앞에서 낭독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삼일독립선언서의 전국적인 배포와 전달은
운동의 조직과 준비를 함께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각지의 3·1운동의 전개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각 15명, 16명, 2명씩 참가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1일에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이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중 손병희등은 복역 중 병사하였다.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 린,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흥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주,
정춘수, 한용운, 백용성.
3 1 절노래 가사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 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태극기 다는 법
국경일 및 기념일조의를 표하는 날
5대 국경일 :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및 국군의 날.
국기 게양 시간 : 오전 7시 00분 ~ 오후 6시 00분,
오전 7시 00분 ~ 오후 5시 00분(11월 ~ 다음해 2월)
게양위치 : 단독주택은 집 밖에서 보아 대문의 중앙이나 왼쪽에 게양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출 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선언서, [ 獨立宣言書 ]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 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 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 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년만에 처음으로 딴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지 이미 10년을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험을 없애려면, 눌려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가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공동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대대로 닦아 물려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민족인 우리를 야만족 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도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 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 중국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쳤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 때의 형세라 하면, 참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순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게 할 것 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 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 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1. 공약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건국 4252년(1919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흔,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첫댓글 3.1절에 맞게 독립선언서 와 배경을 올려준 친구에게 감사.
점점 잊혀져 가는 3.1절
내 가까이에 초등학생이 없으니
내가 죽어서도 언니일 유관순 열사
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하는 노파심까지 우리가 이렇게 잘 살기까지의 과정을 우리 어린 손자 손녀뻘 들이 알아주었음 하네요.
와우 선배님은 동안 이시라 그렇게 보입니다 ~~
와우 선배님 제가 실수했어요.
기분 나쁘시진 않으시죠?
진짜 젊어보여서 착각했네요.
오늘은 삼일절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을 외친 날이네요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서 우리나라를 더욱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우리 후손대대 굳건히
이 아람다운 강산을 물려주어야합니다.. 와우선배님 감사합니다
와우 선배님 고맙습니다
3.1절 노래가 새롭개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우"~~~친구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자주 자주 깨우쳐 주시기를...
네! 와우 선배님 귀감이 되는 좋은 글 올려 주시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