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아쉬움
異邦人 정상진
늦은 봄꽃이 피는가 싶더니 밤새 비바람에 어렵사리 피어 낸 여린 꽃잎들이 모두 떨어져 길옆 도랑에 주단을 깔아 놓은 듯 채곡채곡 쌓여있다. 마저 떨구지 못한 아쉬움에서인지 한 줄기 바람이 휭하니 일자 도랑에 곱게 깔려있던 꽃잎들이 회오리 춤을 추듯 벌떡 일어났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봄이야 매년 오는 것이고 봄꽃 또한 매년 피는 것이련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조급함을 더해가니 제때도 되지 않아 피지 않은 꽃나무를 쳐다보며 아쉬움들을 표하지만 날이 따뜻해지지 않은 날에 봄꽃은 필리 만무한데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의 때에 봄이 맞추어 주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추운 겨울에 봄은 오는지도 모르게 어느샌가 살며시 왔다가 누가 볼까 두려운지 그렇게 또 살며시 여러 꽃잎들을 피어내고는 가는지도 모르게 짧게 아니머문 듯 우리들 곁을 떠나가고는 또다시 일 년을 기다리라 한다.
화창한 봄날이 그래도 열흘은 지속되어야 온갖 꽃송이들이 만개를 할 터인데 늘 사람들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기에 그 짧은 순간의 바램을 갖고 기대를 하는가 보다.
복수초 노란 꽃잎이 잔설 사이로 얼굴을 내밀면 이내 남녘으로부터 훈풍이 돌기 시작하고 산천초목이 아직은 겨울잠에 빠져있는 사이 산수유 꽃망울이 톡톡 터지는 것에 시샘을 하듯 청매실 엷은 흰초록 꽃은 매화 향기를 듬뿍 담아 온 산등성이를 하얗게 물들인다. 이윽고 오래지 않아 길가 벚꽃들이 그 화사함을 뽐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어린아이 소풍 가듯 주저리 주저리 봄꽃 맞이에 나선다.
화사한 벚꽃의 꽃망울이 터뜨리기 시작하고 비바람 없는 날이어야 그 화사함에 빠져들 수 있건만 풍운조화를 뉘라서 막을까, 한바탕 몰아치는 비바람에 얇은 꽃잎 후두둑 꽃비되어 떨어지고 말면 일 년의 기다림도 바램도 모두 허사가 되고 봄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 간다.
우리가 봄꽃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그 꽃들이 화사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겨울 춥고 어두웠던 묵은 기운을 걷어내고 새롭고 가벼운 소망을 봄꽃에 핑계삼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화사한 벚꽃잎이 길가 도랑에 쌓였다 해서 그 화사함이 잃어지지 않듯이 우리의 봄날은 또 다른 꽃잎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온 동네 산등성이에 또 다른 산벚꽃으로 그 화사함이 물들어 갈터이니 봄꽃의 아쉬움이 조금은 사그라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