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321) 본래 아무 일이 없다
수많은 핸드폰 문자·영상 다 어디 갔나?
생각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며 단지 의식이 그려내는 이미지나 관념뿐이니 그 본질은 결국 허망한 환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셔터스톡
생각하지 않을 때 실제로는 내게 아무 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사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란 그 본질이 그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치매환자나 갓난아기들만이 있는 세상이라면 과연 무슨 일이 있을까요?
아무 일도 없다면 그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얼마나 장대하고 심원할까요? 비로 이것이 몇십년전 갓난아기때의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생각이 생겨나면서 스스로 자기가 만든 생각의 감옥속에 갇히고 말았지요.
이젠 자기 힘으로 벗어나기 불가능할 정도로 우린 생각에 중독되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자기 생각을 앞세워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듭니다.
하지만 생각이란 그 본질이 과거의 경험기억을 단어로 관념화해서 만든 정보와 이름들의 조합이 아닙니까? 이게 꿈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릅니까?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생각만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깨달음도 바로 그런 문제에 속합니다. 그런데도 대다수는 자기 생각에 의지하여 생각만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니 이토록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요? 생각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며 단지 의식이 그려내는 이미지나 관념뿐이니 그 본질은 결국 허망한 환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깨나려면 자기 생각의 내용 속에 빠지지 말란 겁니다.
본질이 허망한 환영이라면 그건 실재하진 않는게 아닙니까?
비유하면 우린 하루종일 핸드폰을 갖고 놀거나 수시로 들여다보며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그 객관적 본질은 다 전기가 액정화면 위에 매 순간 나타낸 파도처럼 출몰하곤 사라지는 다양한 글자나 이미지 그림들이 아닙니까?
핸드폰 갖고 지난 세월 살아왔지만 액정화면속의 글자나 이미지들은 지금 다 어디에 남아있습니까?
본래 스스로 실재하지 않는 환영으로서 공한 것이니 다 꿈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지 않습니까?
우리를 핸드폰 에 비유하자면 오온개공이란 바로 이 말입니다. 즉 생각, 감정, 감각(오온)을 액정화면(마음) 위에 나타나는 문자나 이미지로 본다면 지난세월 나를 괴롭혔던 그많은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 많은 번민과 걱정근심들의 본질이 허망하기에 삶은 지금도 이처럼 본래가 텅 비어있는 가운데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건만 우리들 마음만 자꾸 제 생각으로 지지고 볶으며 온갖 이야기 속에서 난리법석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깨달음이라고 다릅니까? 이 역시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환영이 아닌가요?
그러므로 실상적으론 이 삶엔 본래 아무 일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바다에 가면 수많은 파도들이 넘실대지만 그 파도들을 일으키고 있는 바다 전체자리에선 아무 일도 없이 늘 그대로 거기에 부동으로 있음과 같습니다.
지나온 삶을 통째로 돌아보면 그저 생명 하나만 은밀히 살아있었던 게 아닙니까?
이처럼 본래는 아무 일도 없는데 내 생각이 쉬질 못하고 뭘 또 찾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일으킨 탐진치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분별만하는 내 생각을 이제는 그만 좀 쫓아다니고 크게 탁 내려놓고 쉴 수는 없습니까? 본래 아무 일도 없고 이미 그것이건만 아직도 허망한 자기 생각만 믿고 계속 쫓아만 가십니까?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