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현재 일념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어서 제 성품이 없고 제 성품이 없는 것이어서 인연으로 생기나니, 부처님 법계에 나지 않으면 문득 아홉 가지 법계에 나는 것이니라.
만일 인연으로 생기어서 제 성품이 없는 이치로 보면 중생과 부처님이 평등하여 한결같이 공한 것이요, 제 성품이 없는 것이어서 인연으로 생기는 이치를 보면 법계의 승하고 못한 것이 현저하게 다르니라.
아기달阿祈達왕은 임종할 때에 파리를 날리던 사람이 파리채로 얼굴을 스친 탓으로 일념의 성을 내고 독사가 되었으며, 어떤 여자는 물을 건너다가 실수하여 아들이 물에 떨어지거늘, 아들을 건지려다가 함께 빠져 죽었는데 자비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태어났느니라.
일념의 자비와 성냄으로 천상과 축생이 나뉘었으니, 임종할 때에 인연으로 나게 되는 일념을 어찌 삼가지 아니할까보냐.
진실로 이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한다면 어찌 부처님을 뵈옵고 왕생하지 않으랴마는 다만 이 일념은 요행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미리부터 행해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한마디 아미타불을 천념 만념으로 내지 종일토록 하고 생이 다하도록 하는 것은 일념을 성숙케 하려는 것이다. 일념이 성숙하기만 하면 임종할 때에 오직 이 일념뿐이요, 다른 염이 없을 것이니라.
지자대사가 말하기를, 「죽음에 다달아 정定 중에 있는 마음(아미타불)이 곧 정토에 왕생하는 마음이라」 하였으니, 일념뿐이요, 다른 염이 없는 것이 선정에 있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일념이 과연 이렇다면 아미타불을 보지 못하고 누구를 보며, 정토에 왕생하지 않고 어느 곳에 태어나겠는가. 다만 우리의 믿는 마음이 그렇지 못할까 두려워할 뿐이로다.
『관경觀經』에 말하기를,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곧 부처다」 하였으니 두 말을 이미 말하였은 즉, 이 말 밖에 있는 「마음이 부처를 짓지 못하면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니며, 마음이 아홉 법계를 지으면 마음이 곧 아홉법계요, 마음이 아홉 법계를 짓지 않으면 마음이 곧 아홉법계가 아니니라」라는 뜻이 모두 드러났느니라.
이 이치를 밝혀 알면서도 오히려 염불하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느니라.
『관경』에 말씀한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한 두 말은 오직 관경의 으뜸가는 법요일 뿐 아니라, 실로 석가여래 일대시교의 으뜸가는 법요이며, 오직 석가여래 한 부처님의 법장의 으뜸가는 법요일 뿐 아니라, 실로는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들 법장의 으뜸가는 법요이니, 이 종취를 통달하였다면 무슨 종취를 통달하지 못하며, 이 법을 이미 분명히 알았으면 무슨 법을 알지 못하리요.
이른바 공부가 비록 많지 않으나 성현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니라.
살생하는 일은 허물이 매우 중대하니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 성품이 있는 것이거늘 중생을 죽일 수 있겠는가. 중대한 죄업을 지어 살생하려는 마음을 기르며 깊은 원수를 맺어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 모두 살생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살생하려는 마음이 점점 맹렬하고 살생하려는 업이 점점 깊어져서 차차 사람을 죽이다가 심지어 육친까지 죽이며 심하면 도병겁刀兵劫까지 되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니라. 이것들이 모두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알지못함으로 생기는 것이니, 진실로 살생을 경계할 줄 안다면 짐승도 죽일 수 없거든 하물며 사람을 죽이며 육친을 죽이겠는가.
짐승도 차마 죽일 수 없는데 도병 겁이 어떻게 오겠는가. 다른 사람의 아비를 죽이면 또 다른 이가 나의 아비를 죽이고 다른 이의 형을 죽이면 또 다른 이가 내 형을 죽인다 하였으니, 남의 부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살생을 경계한 것인 줄을 알면서도 오직 부형을 죽게 한 것이 살생을 경계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하도다.
사람들이 살생을 경계하지 않는 것은 인과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는 까닭이니, 인과란 것은 감感하면 응應하는 것이라. 내가 악한 마음으로 감하면 남도 악한 마음으로 응하고, 내가 착한 마음으로 감하면 남도 착한 마음으로 응하느니라.
사람들은 감하면 응함이 현재에만 있는 줄로 알고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하는 줄을 알지 못하며, 또 감하면 응함이 인간에게만 있는 줄로 알고 여섯 갈래에 통하는 줄을 알지 못하도다. 여섯 갈래 중생들은 모두 나의 여러 생의 아버지와 형이어니 살생을 어찌 경계하지 아니 하리요. 또 감하면 이 여섯 갈래에 통하는 줄을 안다 하여도 감하면 응함이 세간과 출세간에 통하는 줄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공한」마음으로 감하면 성문이나 연각의 과보로 응하고, 보리심과 육도만행으로 감하면 보살법계의 과보가 응하고, 평등한 대자와 동체대비로 감하면 불법계의 과보로 응하나니 감하고 응하는 도리를 다할 수 있겠는가.
이 염불법문은 마치 하늘이 두루 덮었고 땅이 모두 받는 것과 같아서 한 사람도 한 법도 그 밖을 뛰어나 그 속에 있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화엄경이 비록 5주인과와 4분문답이 다르지마는 인과 과의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였나니 41위의 인행因行 닦는 마음이 하나도 과지果地의 각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없는 즉 41위에서 닦는 법행이 모두 염불하는 법행이 아니겠는가. 맨 나중에 보현보살이 10대원왕으로써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하여 경 전부의 결론을 삼았으니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또 「화엄華嚴」이란 말은 만행의 인을 닦는 꽃으로 일승一乘의 불과를 장엄한다는 뜻이니, 이 만행 무량이 염불하는 행이 아니겠는가. 화엄경에는 바수밀 여와 무염족 왕과 승열 바라문 따위의 무량한 법문을 구족한 것이 모두 비로자나불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니, 이 무량한 법문이 곧 염불법문이 아니겠는가.
법화경으로 말하더라도 처음부터 나중까지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고 보여주어 깨닫게 하고 들어가게 한 것이니, 그 처음과 나중이 오직 한 염불법문이 아니겠는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도사 아미타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법화경으로 말하더라도 처음부터 나중까지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고 보여주어 깨닫게 하고 들어가게 한 것이니, 그 처음과 나중이 오직 한 염불법문이 아니겠는가.....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