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연주회 하던 날
임 명 균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 나무 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 ~~~‘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자 ‘와 우 ~~ 잘했어’, ‘앵 ~~ 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늦은 가을 주말에 하모니카 합주 발표회가 나루아트센터 대 공연장에서 있었다. 45명이 출연한 이번 공연은 문화원 수강생발표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모니카와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같은 각종 악기와 댄스, 난타, 합창 등 여러 분야에서 18개 팀이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발표하는 문화원행사이다.
우리 하모니카 팀은 하얀 드레스 셔츠와 검정색 바지를 입고, 남자들은 빨간 나비넥타이 차림의 의상을 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거울을 보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시절 학예발표회 하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설레는 마음이었다.
공연은 오후 4시부터인데 1시 반까지 모여서 현장 무대 리허설과 별도 연습실에서 최종 마무리 연습을 했다. 그리고 긴장을 풀어야 한다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하며 공연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하모니카 연주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년 전쯤에 시니어 여신보증 심사역으로 다니던 서울 신용보증재단을 퇴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약 35 년간의 직장생활을 은퇴할 시점에서 서울시 산하 어느 기관에서 실시한 인생2모작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 나날들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삶을 재설계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은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고마웠던 사람들과 더불어 인생2막을 살아가겠다 하고 다짐해볼 수 있었다. 조금쯤은 느리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도움받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중의 한 가지가 악기를 하나쯤 배워보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통기타를 치며 ‘7080노래’를 불렀던 것 외에는 악기를 다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다닐 때 열성적인 음악선생님 덕분에 합창단에 가입하여 노래를 불렀던 생각도 났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나의 취미생활에 음악은 메말랐던 감성을 풍부하게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색스폰이나 클래식 기타를 배워볼까 했지만 먼저 배웠던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연습을 할 때 제약이 적고 편리해야 할 것 같아 하모니카를 선택했다.
사실 하모니카를 처음 시작할 때는 몇 달쯤 배워서 한가할 때 콧노래 부르듯 불어볼 셈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매사가 그렇듯 새로 시작하는 일에는 쉬운 것은 없는가 보다. 처음 문화원 하모니카 반에 가입하니 하모니카 여러개를 사야한다는 것이다. 본음과 반음(#, 샵) 그리고 단조음(m, 마이너)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3개의 하모니카가 기본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각기 음역 Key에 따라 C와 A, G와 같이 세트를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이니까 연습용에 가까운 C음역 3개를 구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음역 3개를 추가로 구입해서 연습을 했다. ‘학교 종’부터 시작하여 ‘꽃밭에서’, ‘어머니의 마음’ 등을 배울 때는 멜로디만으로 연주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연습도 자주 하고 신바람도 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요나 하모니카 애창곡을 배우게 될 즈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텅블럭 주법(혀로 하모니카 일부구멍을 막고 연주하는 기법)과 베이스를 넣으며 연주하는 단계에 들어서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박자가 느린 곡은 할 만한데 빠른 템포의 곡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어찌하랴, 한번 시작한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나의 성격을 발휘하여 열심히 연습했다. 인터넷 사이트 ‘하모사랑’이라는 카페에 가입해서 조언을 받으며 매일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세상사 공짜는 없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즐기는 마음으로 연습을 했다.
그 결과 하모니카 연주 시작 1년 만에 합주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문화센터에서 합주를 하지만 언젠가는 독주연주회를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하나의 마침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니까 말이다.
공연은 생각보다 무난히 끝났다. 평소 선생님의 주문대로 지휘자의 몸짓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열심히 불어댓더니 합주곡 ‘여수’, ‘캉캉’,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네 곡이 어느덧 끝났다. 매사가 그렇듯 불안하면 빨라지는 법, ‘천천히 하자’를 마음속으로 새기며 한곡 두곡 연주하다보니 종착점에 도달한 것이다. 처음 공연의 설렘이나 두려움을 의식할 틈도 없이 연주는 종료되었다. 어느 연극장면에서처럼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느껴보는 쓸쓸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연이 끝나자 아내가 조그마한 국화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내가 광진 구내 문화원에서 하는 행사이니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전업주부가 아니고 일을 하는 처지인데도 토요일 오후에 찾아와서 함께 사진도 찍고 축하한다고 요란을 떨어주니 고맙기도 하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평소에는 숫기가 없고 낯을 가리는 편인데 이런 행사나 기념일에는 용감해지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집에서 연습한다고 건넛방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소음이었을 텐데…. 오죽하면 집에서 연주자의 연습소리가 들리면 잠자던 강아지도 슬그머니 집을 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을진데 말이다.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참아 줬으니 또한 고맙다.
다른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아트센터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집 앞에 와서 모처럼 외식을 했다. 평소 ‘집밥 애식주의자’인 아내이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한식을 좋아하기에 집에서 가까운 ‘시레정식집’에 갔다. 아내는 들깨 정식을, 나는 갈비찜 정식을 시켜 반주 한잔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느덧 훌쩍 33년을 넘겨 버린 우리들의 함께 살아온 부부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잘 키워준 두 아들의 엄마로, 밖으로만 나돌던 남자의 아내로, 또한 연로하신 시어머니의 며느리로 고생한 아내에게 마음만 있었지 제대로 호사 한번 시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 가끔 이식당에 와서 식사를 했었지만 오늘은 참 맛있게 먹었다.
진정으로 행복이란 무었인가를 깨우쳐 준 하루였다. 나를 위해 살아보자며 시작한 하모니카 연주가 이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한 금아 피천득님의 글이 생각난다. 오늘은 집에 가면 아내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여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요...’ (*)
2019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