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산시 하양읍 하양시외버스 터미널에 하양읍과 인접한
와촌면 각 지역으로 운행하는 하양와촌1번 버스가 주차해있다.
번호는 하양와촌1번이지만 이 버스의 번호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와촌면의 오지지역 마을을 구석구석 찾아가는 노선이어서
버스 앞에 내걸린 파란색 작은 보조행선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양와촌1번 이전에는 311번 번호를 달았고..
시간을 더 거슬러 26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번호는 아예 없는
상아색에 빨간 줄이 그려지고, 번호와 행선판이 걸려있을 버스앞면에는
버스회사 사명인 제일여객과 회사의 마크였던 번개모양의 그림이
중간에 새겨져 있었다.
지금의 자리가 아닌 하양역으로 이어진 골목길 인근에 터미널이 있었고,
대합실안 주차장에는 빨간 줄이 그려진 버스 3대가 나란히 주차해 있었는데
그중 와촌 행선판이 걸린 동그란 프런트엔진 버스 한대가
사람들을 태우고 이내 주차장을 떠났다.
버스가 떠난 빈 자리에는 녹색 줄이 그려진 대구 35번 버스가
빨간 줄무늬 버스사이로 후진하여 주차한다.
35번 버스 앞에는 와촌/은해사 행선판이 걸려있었고, 버스 뒷바퀴위에
녹색줄무늬에는 흰색 글씨체로 제일여객이 새겨져 있었다.
그 시절 대구시내버스도 경산군 와촌면과 영천군 청통면을
운행하던 노선이 있었으니..
하긴 그 시절에는 승용차도 집집마다 흔치않았고, 도로사정도
열악했고, 버스가 절대적인 발이나 다름없던 그곳에 대구시내버스도
먼 곳이지만 들어가야 했다.
12시40분 하양터미널을 출발해 와촌면-대동리-은해사-애련을
운행하는 하양와촌1번 버스가 35분을 달려 은해사입구에
도착을 했다.
버스는 나를 포함하여 두 명을 내리고 이내 주차장을 떠난다.
이제 은해사를 종점으로 하는 버스는 보이지 않고, 신녕으로 운행하는
버스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나가기에 은해사 입구 주차장에 서있던
버스의 모습도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하다.
은해사는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속해있지만 정작
영천시내버스보다 경산시내버스가 하루16회 더 많이 운행한다.
영천시 청통면은 위치상 경산시 하양읍이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데다
생활권 역시 하양읍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하양와촌1번 버스가
청통면지역을 사실상 전담하게 되었다.
1986년 2월..
당시 늦겨울이었지만 여전히 추웠다.
아양교에서 할머니와 35번 버스를 타고 하양터미널에 내려서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비좁고 허름한 하양터미널 대합실안 중앙에는 작은 조개탄 난로가
열기를 내뿜고, 난로위에는 커다랗고 넙적한 솥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 속에는 대나무 꼬챙이에 꽂혀있는 오뎅이 담겨져 있었다.
난로 앞 나무벤치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난로 위 오뎅을
사먹으려 언 몸을 녹이고 허기를 달래었다.
나도 할머니가 사주신 꿀맛 같은 오뎅을 몇 개먹고, 내 손만큼 작았던
빨간 바가지로 뜨거운 오뎅 국물을 실컷 퍼서 마셨다.
그런데 지루하게 벤치에 앉아 기다렸건만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서 꿈쩍도 안하신다.
“할매 우린 버스 언제타?”
그러자 할머니는 벤치옆 어둑어둑한 벽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가르키면서
“대동가는 버스 타야 된다. 니 저 가서 대동가는 버스
몇 시에 있나보고 온나”
꼬맹이는 벌떡 일어나 할머니가 알려준 버스시간표가 적힌 큼직한
종이 앞에 서서 깨알같이 복잡하게 적혀있는 처음 보는 지명과 옆에
있는 시간표를 보았다.
대동이라고 적힌 지명 옆에는 오후4시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이 길래
나는 얼른 할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할매 대동가는 버스 4시에 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난감 하신 듯 한 표정을 지으셨다.
“할매 그러면 4시까지 기다려야해?”
철부지 꼬맹이가 묻자 할머니는 내 머리를 스 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대합실안 시계는 이제 겨우 1시를 지나고 있는데..
여기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하다니..
낡은 출입문 유리너머 보이는 주차장에는 빨간색 직행버스와
연두색 완행버스가 들어 올 때면 오뎅을 담고 있는 솥 너머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주차장 끝에는 와촌으로 떠났던 빨간색 버스가 다시 돌아와 처음 서있던
그 자리로 다시 후진하여 주차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할머니 곁으로 라면 파 채소 등 한가득 큰 봉지를 든
아줌마가 다가오는데 두 분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알고 보니 먼 사촌이라고 한다.
“대동가는 버스 기다리지 말고 은해사 가는 거 타고
거서 내려서 걸어 가지예”
사촌이란 분이 할머니께 그렇게 말씀하시며 나와 할머니는 그분을 따라
대합실 밖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드디어 지루하게 기다리던 하양터미널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와촌/은해사 행선판이 걸린 낡은 빨간색 버스에 올랐다.
그 당시 대구는 아직 자율버스가 실시 된지 4년이 흘렀지만
한일운수,영진버스외에 몇 회사에서는 아직 일부 버스노선에 안내양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 지금의 55번 555번 버스였던 금호번호를 단
시내버스에도 안내양이 있는데, 하양을 기점으로 운행하던
제일여객 완행버스와 대구대학-북부정류장(현 708번)구간을 운행하던
0-0번 버스에도 모두 안내양이 없는 자율버스였다.
그 당시 하양에서 와촌지역으로 초등학생은 (시내구간 60원)100원의 요금을
받았다.
오후로 접어든 시간 은해사행 버스는 이내 한가득 만 차가 되어 드문드문
시골의 작은 면소재지의 풍경을 간직한 하양읍내길을 달려
와촌-청통-신녕으로 이어진 일차선길에 인가도 드문드문 보이던 정겨운 시골길
919번 지방도를 달려 산 아래 뽀얀 흙먼지 날리며 버스의 종착지
은해사입구주차장에 도착했다.
은해사
로 이어진 아스팔트길을 할머니와 사촌분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난생 처음 내려서 마주한 은해사 주변의 모습을 연신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데 지금 매표구 입구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있던 시절에 비해
그때는 자동차 한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아래 식당이 몇 채 모여 있던 황무지 주차장에 서있던
우리가 타고 온 완행버스 한대가 유일한 자동차였다.
은해사로 어이진 길을 따라 걷다가 포장길 옆으로 산을 따라 이어진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좁지만 포장된 도로가 되어버린 그 신작로길..
그때 86년 겨울 사람도 인가도 하나 보이지 않던 이 길을
할머니와 마을 사촌 분 나..세 사람이 대동리를 향해 걸어갔다.
2012년 3월..
차갑고 시린 듯한 봄비가 신작로 길에 내렸다.
신작로를 졸졸 따라 걷던 꼬맹이는 서른을 넘어버린 어른이 되어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우산 속에 몸을 맡기며 나 홀로
대동리를 향해 걸어갔다.
간간히 은해사로 향하는 승용차들이 보이지만..
도로는 한적하다 못해 정적이 흐르는 때론 두려움이 들만큼
고요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으니 오죽하겠는가..
떨어지는 빗소리가 왜 그리고 가슴한곳을 아련히도 적셔오듯 아파올까..
이젠 돌아 갈수 없는 그 시절..
요란스러운 것이 싫어서인지 빗줄기는 얌전히 조용히 떨어진다.
하루 한번 은해사와 대동리 마을을 잇던 옛 신작로 길 위로 은해사/애련행 하양와촌1번 버스가 휑하니 떠나간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따라 고갯길을 내려서니 인가가 보인다. 그때는 오직 산과 끝이 없이 뻗어있던 신작로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그곳 마을 아이들이 저마다 집에 땔깜용으로 쓸 긴 나무를 하나씩 질질 끌고 지나갔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신작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땔감나무가 담긴 지게를 지고 지나갔다.
버스는 산모퉁이를 돌아 멀어지고..
작은 고갯길을 하나 내려가니 암자가 하나 보인다.
비가 내리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니 암자 처마 밑에 내걸린
풍경(風磬)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은은한 메아리소리를 들려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처마 밑에 가만히 서서 후드모자를 벗고
風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살아가며 이처럼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과 같은 소리를 들어 본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바람이 사나울수록 風磬 소리는 더욱더 아름답게 세상을 울린다.
세상이 고요하면 風磬은 들리지 않는다..
風磬은 우리가 말하는 시련이란 바람이 모질게 불어야
비로 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다.
한차례 사나운 바람이 지나고..
은은한 풍경소리가 멈출 무렵 암자 뒤 텃밭에 야옹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처마 밑에 서있던 필자를 잔뜩 경계한다.
나와 야옹이가 신작로 길과 암자 앞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야옹이는 길을 건너 어느 집 앞마당으로 발길을 옮기면서도 연신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야옹이에게 나는 신뢰 할 수 없는 낯설 은 이방인이기에..
마치 야생의 삵이 뒤돌아보듯 한 풍채로 나를 한 번 더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갈 길을 가버린다.
버스가 지나온 길을 따라 멈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좁은 길이 끝나고 이내 확장되어 포장된 대동리를 지나
대구 능성,갓바위로 이어진 909번 지방도와 접속되는 도로가 나온다.
30년이 흐른 세월이 산골 신작로 길은 하나의 도로가 되어있었다.
비는 내리지만 자두, 복숭아밭에는 한해의 농사의 준비로
분주했다.
아직 앙상한 가지만 보이지만 머지않아 초록빛으로 물들고
탐스런 자두와 복숭아가 팔공산의 맑은 공기를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할매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걸어야해?”
가도 가도 산밖에 없는 산길..
고개를 하나 넘고 또 넘어도 마을은 보이지 않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땐 왜 그리도 이 길이 멀고도 멀었는지..
“인자 저기 고개만 넘으면 다 왔다”
친척분이 내게 산 너머 이어진 길을 가르치며 이야기 하셨다.
어느덧 영천시 청통면과 경산시 와촌면 시경계선을 넘으면서
저 아래 가옥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고 넓은 저수지가 보였다.
그 시절
은해사에서 두어 시간은 걸어 간 듯한 거리..마침내 할머니의 고향 대동리 마을에 고개를 넘어 도착했다.
큰 저수지를 바라보며 산 아래 자리한 깊은 산골마을..
그때는 대동리는 육지속의 섬이라 불리던 청송군과 견줄 만큼
사방이 산이 에워싸듯이 서있고, 흙 담장너머 한옥집들이 모여 있었다.
할머니 고향집은 대나무가 무성히 자란 뜰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31년 전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마을안의 모습은 생각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태어나신 옛 집을 찾아보려 마을을 돌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빗줄기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
스물 스물 비안개가 마을을 드리운다.
‘할머니.. 할머니 고향을 이렇게 찾아왔는데 더는 제 기억 속에
더는 남아있지 않네요..31년 전 할머니 손잡고 걷던 그 산길을 따라
이렇게 다시 걸어왔는데 그때의 기억이 여기까지밖에 남아있지 않네요..
죄송해요 할머니..,
구멍가게 하나 없던 마을..
아이들은 겨울방학에 집안일을 거들기 위해 혹한의 겨울추위가 찾아드는
마을의 유일한 연료인 땔감을 하러 어른들을 따라가 해온 나무를
지고 다녔다.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저수지 앞 대동2리 버스정류장..
31년 전 하루 3번 다녔던 빨간색 완행버스 종점도 이곳이었다.
현재는 하양와촌1번 버스가 하루 7회 운행하고 있다.
찜질방보다 더 뜨끈뜨끈한 옛 한옥집의 온돌바닥에서
저녁을 먹고 할머니 옆에 누워서 난시청 지역이어서 MBCTV는
잘 잡히지 않아서 지지직~ 거리는 화면의 흑백TV를 보고 있는데
창호지를 바른 어두컴컴한 문지방 밖에서 버스의 경적소리가 들렸다.
“저 밑에 못에 여기 마지막 버스가 8시에 들어왔다가 나가지예”
친척분이 플라스틱 쟁반에 강정을 담아서 들고 방안에 들어오시며
할머님께 이야기 하셨다.
이른 아침과 오전 오후 늦은 밤에 버스가 마을에 들어왔다가 나간단다.
하루 4번 버스가 운행을 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마치고 할머니는 마을에 계시는 다른 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가셨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가마솥이 있고, 70년~80년대 KBS1TV에서 방영하던
TV문학관에서나 볼법한 풍경들이 그 당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다만 전기가 들어온 것만 빼고...
할머니는 고향 마을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친척분이 하양 가는 버스는 11시에 들어온다고 그러신다.
그런데 방안에는 하양으로 나가는 다른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들어오신다.
구멍가게 하나 없다보니 모든 생활필수품은 오전 11시에 들어오는
완행버스를 타고 하양으로 나가서 구입하고 모든 볼일을 마치고
오후 4시차로 돌아오신단다.
산골마을은 하루4번 들어오는 버스시간에 생활이 맞추어져 있는 셈이다.
“인자 그만 나갑시다. 버스 들어올때 됐어예”
그러자 방안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 그리고 할머니와 나도
일어나서 대문 밖을 나서 마치 마을사람 전체가 소풍이라도 가는 듯
모여서 저수지 앞 비포장 길이 나오는 마당으로 향했다.
저수지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저수지너머 빵빵~거리며 덜컹덜컹~
요란스레 소리를 내며 빨간색 완행버스가 누런 흙먼지를 덮어 쓴 채
마을입구 저수지 앞마당에 도착했다.
11시..
대동리 마을에 들어온 빨간색 완행버스는 같은 회사소속의 0-0번에서도
몇 대 운행하고 있던 파란색 동그란 손잡이의 신차 BF프런트 버스였는데,
이 버스의 특징은 대구와 다르게 차창 문 틈 사이에 하나씩 설치된
하차 벨이 없었다.
뽑은 지도 얼마 안 된 새 차 인데 비포장 길 몇 번 달리면서
창문과 버스앞 유리에는 누런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버스는 마을입구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저수지 앞을
한바퀴 휙 돌아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그때 나는 버스 맨 앞문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겨울들판과 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길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마차 길이었다.
버스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웅~우웅~웅~~
창문이 소리치듯 덜컹이고 버스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덜컹덜컹 난리도 아니다.
길이 얼마나 험한지 글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한계이듯 싶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동 비포장 산길을 달리던 0번 버스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런 길을 대낮에도 다니기가 힘든데 저녁 8시에 마을에 들어 가야하는
버스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이 길을 어떻게 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가 몇 곳을 지나고 밭옆 을 돌아서 산을 휘감아 돌아
뿌연 먼지가 날리던 비포장 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길로 버스가 올라섰다.
40여분이 걸렸을까..
버스는 그렇게 산골마을 사람들을 하양역으로 가는 골목길 입구에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버스를 타고 내렸던 31년이 흐른 2012년 3월..
하양터미널에서는 여전히 그 시절 와촌면 구석구석을 다니던
빨간색 완행버스가 이젠 예쁜 연두색 옷을 입고 개 끗 이 닦여진
포장길을 달린다.
버스는 그 시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아지고 도로사정도 나아졌지만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콩나물시루가 되어
흙먼지 날리던 길을 달리던 시절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오지노선은 좌석을 모두 채워 가는 날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마을의 인구는 줄고, 젊은 사람들은 승용차로 움직이고..
대중교통이 유일한 세상 밖의 다리역할이 될 수밖에 없는
할아버님 할머님들이 이용하시는 버스가 되었다.
신작로를 달리던 대동리행 완행버스의 이야기도
앞으로 31년이 흐르면 영원히 잊혀진 이야기가 될지도..
|
첫댓글 와촌에서 갓바위 방향으로 가다가 은해사 주차장 있는 쪽으로...
저기 잘 알아요....왜냐면 은해사 주차장서 하양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주차장에 들어 올 생각도 않고 그대로 대동리족으로 넘어가는거예요....ㅠㅠ
열받아서 걸어서 버스가 넘어 갔던 길을 따라서 걸어갔지요...
결국은 대동리 지나서 갓바위에서 내려오는 대화교통 타고 하양으로 나왔습니다...
아담한 저수지도 지났구요...
그길이 바로 옛날에는 인적도 드문 산속 신작로 길이었지요...대낮에더 으스스한 곳이기도 하구요 ^^
대동리에 버스편이 드물어서 차라리 대동입구로 나가서 하양와촌1번, 803번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은근히
계시다고 합니다.
이쪽 동네도 아름다운 곳들 많네요 .. 미처 몰랐던 사실입니다. 저는 제가 타본 골짜기 노선버스로 손꼽을 만한 노선이 ... 영덕에서 타 본 영해~영양 군내버스였습니다. 길이야 요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지만 태백산맥을 넘나드는 험준한 산길을 넘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첩첩산중을 달리거든요.. 운행은 하루 5회, 2007년 당시 요금을 5천원 가까이 지출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덕은 흔히들 바다가 있는 고장으로 생각하지..강원도 삼척도 그렇고..사실 이 두곳은 오히려 깊은
첩첩 산중속 오지마을이 즐비한 곳이지..때묻지 않은 자연속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마을들이 있는곳..
경산 와촌면 팔공산 아래에도 우리가 미쳐 모르고 지나쳤던 이러한 오지마을이 의외로 많어 ^^
저수지 풍경이 아주 조용하고 한적해서 낚시에 그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마침 이날 비도 내리는데 낚시하시는 분이 두분 계셨어요..수질은 농수용이어서 붕어나 잉어정도 있을듯 싶어요..
대동은 818 첫차 1회, 대동 · 은해사 · 애련 2회,
애련 · 은해사 · 대동 1회, 단순 대동방면 3회 로 운행 중에 있습니다.
대동서 은해사 넘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죠,,,
저녁에 해 빠지고 지나가면은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지만,
평소에 가면은 그저 한적한 동네 그 자체 입니다.
자전거 즐겨 타시는 분 보면은 대동, 은해사 해서 멀게는
부계 혹은 소보 / 효령 쪽으로도 많이 넘어가신다고 하더군요,,,
아하..하양와촌1번 버스 노선의 첫차와 막차는 거의 818번이 지원나가는군요..지난번에 저녁 8시40분에
능성동에서 하양와촌1번 버스 타고 하양으로 나갔는데 하양읍 사무소 삼거리에서 기사님께서 버스는 진량
차고지로 들어가야 하신다고 이야기 해주시며 대구갑니까? 물어보시더니 시내버스 정류장과 가까운곳에
세워주셨어요.. 부계에서 소보/효령구간은 풍경이 참 괜찮은데 도로가 좁은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꽤나 과속을
하는 구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