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두 번은 없다
박 은 주
올해는 봄비가 유난히 잦다. 비 온 뒤 더없이 또렷한 초록 잎과 싱그러운 흙 내음이 오늘도 날 밖으로 불러낸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도심의 도로를 걷든, 눈 닿는 데, 발 닿는 데마다 꽃이다. 돌 틈새 조붓이 핀 씀바귀, 쫑쫑쫑 병아리 떼 같은 샛노란 애기똥풀과 눈 맞추며 산길에 든다. 바람에 낭창낭창 한들대는 아카시아 숲을 지나 가풀막에 오르니, 길섶 모퉁이에 자줏빛 제비꽃이 피었다.
매년 오는 봄이고 꽃은 피지만 해마다 다르다. 입춘첩을 처음으로 집에 붙이고 봄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던 지난해 이른 봄엔 참 이상하고도 황홀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빵’하고 시작하며 교향악을 연주하듯 봄꽃이란 봄꽃들이 일제히 피어났던 날들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하지만 올해 꽃들은 다시 자신만의 속도와 빛깔로 차분히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입춘 우수 지나고 내린 봄눈 녹아 나뭇가지에서 반짝이던 물방울 꽃을 시작으로, 생강나무꽃, 개나리, 진달래, 철쭉, 벚꽃, 목련, 라일락 ……, 차례로 피고 지고, 이젠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난다.
점점 길어지는 해만큼이나 봄의 서사敍事도 길고 길어, 내 눈길과 마음은 그곳에 하냥 머무른다. 수십 번의 봄을 보낸 이 누군들, 어린 날 젊은 날 봄꽃에 어린 추억이 없을까.
진정한 봄을 알리는 개나리 진달래는 내게도 ‘처음’이란 기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대학 입학하고 3월 초 경주 보문단지에서 첫 미팅을 했다, 함께 걸었던 키가 훌쩍 큰 그 남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잊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로 호숫가와 들길에 노랗게 꽃분홍으로 수채화처럼 번져갔던 개나리와 진달래, 그 꽃들이 생각난다.
꽃구경하면 벚꽃이니 사진으로 가장 많이 남은 꽃도 벚꽃이지만, 기억의 앨범에만 남은 장면들이 있다. 자율학습 마치고 벚꽃잎 흩날리던 여고 교정을 친구와 걸어 나오던 봄밤의 기억, 아마 그때 우리는 한창 암송하며 다녔던 시詩 한 구절을 떠올렸으리라.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낙화」)
진해 군항제 소식이 들리면 묻어오는 추억이 있다. 길고 좁은 하천 위로 벚꽃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아름드리나무가 있던 공원, 도시의 적산 가옥과 어우러진 벚꽃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었다. 그때는 개화가 늦은 해였을까. 인파 속을 헤쳐가며 곧 망울을 터트릴 꽃봉오리들이 수없이 많던 벚나무 길을 Y와 걸었던 20대의 내 모습은 먼 기억 속 4월의 필름 한 장으로 남아있다.
아카시아만큼 오감으로 추억을 불러오는 꽃이 있을까, 향긋한 꽃향기부터 보드라운 그 이파리의 촉감으로까지. 중학교 시절 집으로 돌아갈 땐 버스비를 아끼느라 남부정류장 근처 학교에서부터 신암동 집까지 걸어가던 날이 많았다. 꽃향기가 사방에 흩날리는 5월이면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어느 날은 친구와 둘이 걷곤 했다. 꽃을 씹어먹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로 성근 이파리를 한 잎씩 따내며 걸어갔던 하굣길. 그때가 벌써 50여 년 전,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니 ‘먼 옛날의 과수원길’ 거기서 나는 참 많이도 걸어왔구나 싶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 추억이 있다. 일명 아카시아 모임이 있었다. 멤버는 같은 직장,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당시 40대 세 명이었다. 누구라도 집 뒷산 아카시아 향기를 제일 먼저 감지한 사람이 번개모임을 타전하면, 퇴근 후 즉각 집 근처 대나무숲 우거진 주막집에서 우린 만났다. 낙지 소면, 파전에다, 알싸한 마늘종 반찬에 동동주를 마셔가며 직장에서 못다 한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봄바람은 댓잎을 흔들며 꽃향기를 우리에게 자꾸만 실어 보냈었다. 깜깜한 밤, “아, 발걸음이 흔들려.”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주사를 발산하며 셋이 함께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은 지금도 날 웃게 하지만, 기억의 끝은 몇 년 전 저세상으로 영원히 떠나버린 한 사람 생각에 울게도 한다. 아카시아 첫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면 다정했던 목소리, 그 얼굴이 언제라도 그립다.
떨어진 꽃은 땅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했던가. 저수지 끝 길, 키 큰 오동나무 연보라 꽃이 땅 위에 분분하다. 도로변 겹벚꽃은 벌써 지고 마른 꽃잎조차 사라졌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우리의 삶도 저 꽃들과 다르지 않으리. 할 일 다 마치고 사뿐히 떨어진 꽃들을 본다. 결국 존재와 사라짐 그사이의 간극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가 아닐까. 오늘은 들려오는 음악이 그 해답을 준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는 시에 음악을 입힌. 두 번은 없는 유일한 삶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것뿐이라고, 인생이란 꿈에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고 음악은 내 귓전에 들려온다.
오늘은 입하立夏, 곧 뻐꾸기 울고 하얀 꽃 진 자리 산딸기 붉게 익는 여름이 올 것이다. 그러면 흐르는 시냇물에 놓인 징검돌 건너 여름 숲에 들리라. 그곳에서 내 유일한 시간을 살리니 내 앞에 그리고 내 안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는 그곳을 거닐고 싶다.
계절이 바뀌거나 깊어질 때 세상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켜볼 때 나는 기쁨을 느낀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나버릴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기 아까워하면서도 그다음 페이지를 빨리 펼쳐보고픈 마음으로. 지금 여기, 두 번은 없는 나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