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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고 제2자유로를 내려다보니
오늘은 교통이 한산한 편 입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는 말.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습니다.
인생이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를 풀고 나면
오답노트를 정리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매뉴얼을 작성하듯이,
옳고 그름의 차이들을 기록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묵혀둔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만큼
개운하고 후련한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하는 성격탓에,
너무 많은 생각이 내 안에 계속 쌓이기만 하고
소화를 못해서, 머리와 마음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습니다.
언어의 형태를 가지고,
내 안의 생각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과 마음속에 틈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부 저장소의
파일들을 외장하드로 옮겨서
내부 저장소에 여유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기다려지는 것이 생기면 활기가 더해진다고 합니다.
누군가와의 만남 약속, 여행, 공연, 심지어 택배까지.
기다리는 뭔가가 있는 건 굉장히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게 하는 지표 중 하나는,
무언가를 기다려지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면
얼른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싶을 것 같고,
금방이라도 달려 와 줄 것 같은 설레임.
지금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주어진 사람사는 내음이,
감미로운 음악들이, 휴일의 하루를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나
하는 기다림,
그게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바보스러운 짓임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그 마음이란 걸 증명해보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침표가
다시 되살아나 문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연이
다시 되살아나 기다림을
채워짐을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처럼,
채운다는 것.
음악으로 책으로 그렇게 채워도
뇌는 행복하지 않는 그런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기다리고,
어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부가 그리운,
어느날 부터 보이지 않은 분들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
마음새김.
따뜻한 그리움으로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당신이 참 보기 좋습니다.
멋진
분위기 만큼이나 잘 어우러진
선곡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흔히
나이와 시간은 비례한다고 합니다.
어려서는 시간의 속도가 더디게 흐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지.
실제로
속도가 바뀌는 건 아니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일텐데 말입니다.
늘 이때가 되면
한 해 동안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캘리그래피 카드를 내어 놓습니다.
나쁜 기억은 다 잊고
좋은 기억들로 채워가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임인년의 끝자락에서 나만의 방점을 찍습니다.
한동안
안부가 궁금했던 방송.
한 해 갈무리 인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고작
하루 남은 한 해의 끝이지만 의미있는
마무리이길 바람하며 다가올 새해에도 늘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지만 평소처럼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본문에 삽입된
눈 내린 풍경이 주말 아침 산책을
새롭게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늘 같은 생각이 맴돕니다.
한 해 잘 보낸건지,
아쉬움은 없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맘때면 줄줄이 쇄도하기도 합니다.
그저,
12월에서 1월로 바뀌는 것일 뿐인데.
해가 바뀐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또는
설레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기적을 꿈꾸기도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인생 속 가장 빛났던 한 해 였기를 희망해 봅니다.
뭔가 특별한 날,
뭔가 특별한 사람과 함께
특별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2월 18일.
기다려지는 방송을 한 주 걸러 두주만에
반가운 해후로 맞이합니다.
한파의 추위와
한 해를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문을 열었던 시작의 뒤굼치와
얼마 남지 않은 임인년의 손끝이 공존하는 달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전 서재에 앉아
기다려지는 방송과 함께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음은
어느 누구도 쉽게 누릴 수 없는 나만의 호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애들이
어릴적에 무릎에 앉히고 듣던 요셉 하이든의
음악은 아니드라도 지금 내게 와 닿는 음악들은
그 때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곡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주에
꼭 한번은 밖에서 듣는 방송인데
앞주에 방송을 안하셔서 못 들었으니 두주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몇일
기승을 부리는 동장군의 기세가 아주 쎕니다.
모쪼록 에취 조심하시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행복한 휴일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관계를
우리는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로 만난
관계와는 관계의 확장성은 염두해 두지 않으므로
어차피 서로에 대한 기대나 생각도 일 그 자체에
국한되므로 간단합니다.
나는
일로 만난 관계가 가장 편합니다.
숨겨진 의도를 굳이 파악하지 않아도 되고,
표면 그대로를 읽고 지시나 협력에 따르던가
토론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래서 함부로 시작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관계를.
그리고 함부로 끝내지도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은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주는 것은 때로 그의 상황을
깊이 이해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오롯이
그의 입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요즘,
이게 뭔가 싶은 경우의 수를 많이 경험합니다.
이래도 되는건지, 공감의 장에서 소통의 문제가 있는지,
답을 구하고 싶은데. 이곳 사이버라는 곳이
대화는 접어두고 마구 휘두리기만 합니다.
하루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인데 낯설음이 앞섭니다.
발끈하고 이유모를 황당함에 의문을 같다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이유를 이제서야 깨우칩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는 마음들이 참으로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문학 소년이니, 문학 소녀니 하는 말들이
제법 귀에 익숙하게 들렸습니다.
요즘도
그 또래에서 이러한 말들이
쓰여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 흔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체로
시나 소설등 문학에 뜻을 둔, 문학 지망생들을
일컫는 말이겠지만 학창시절에는 한 때
누구나 철학자이며 시인이었을 시절이 있었습니다.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떤 존재인가.
밑도 끝도 없는
유치한 의문들에 밤새워 심각한 고민으로
마음 아파하고,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대하고서는
내 삶의 전부인 양 외우고 다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아득한 추억의 한 토막으로 남아 있지만
어쩌면 그러한 시 한 구절이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감상적인 애상 같지만
창 밖의 은행나무 잎이 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루었던 날들이 얼마이며
그 편린을 긁적거린
글 나부랑이는 또한 얼마이던가,
달은 왜 그다지도 밝던지.
그 때는
주머니에 문고판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쯤 넣고 다니는 친구가 더러
눈에 띄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도 보기 힙듭니다.
그 만큼
정서가 메말라 졌다는 것인지
시대가 바뀌었다는 얘긴지 모르겠으나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시집 한 권
지니고 다니는 모습이 보고 싶고
싯귀 하나쯤 가슴에 안고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집니다.
바람에
낮게 내리는 낙엽 날리는 날에
머리 박박 깍은 문학 소년이 새삼 그립고
쌍갈래머리 문학소녀가 그리워집니다.
한 주 만에 다시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심경.
제대로 정리를 못해서 괴로운게 맞는데,
정리를 하려다 보니 아집으로 내 비출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냉철하게 접는 선택을 합니다.
어느날 부터
갑자기 글도 못 쓰겠고, 시화전 작업도 못하겠고,
인라에 펼쳐진 부산물들을 바라보는게 힘들고,
뭔가 먹먹한게 같이 했던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농담 한마디가.
어찌 그리 나쁜 글이 될까 싶기도 하고,
문맥이나 그를 뒷받침하는 조사는 뒷전이 된 상태에서
자신들 기준, 생각대로 치부하고
결론 내리는지 많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입시에서
논술을 어찌 치뤘을까 싶기도 하고,
근본 사고에도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상황이 뭔가 싶기도 하고,
굳이 이런 것들에게서 무념이고 싶은데, 못된 성격때문인지
그냥 쉽게 간과하지 못하고 잔재의 여운을 남깁니다.
어제
그리고 아침까지 이곳에는 입동이 지난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 겨울비가 참으로 처연하다 싶게 느껴지는
비가 아녔나 싶습니다.
그런 날이 있지요.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계속 되는날.
아침
산책길에 맞이하는 서리는
이제 더 이상의 가을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아침 5시에
집을 나서 심학산 둘레길을 정복하고
집에 오기까지 3시간 30분의 소요시간은
말 그대로 휴일 아침을 열어가는 나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샤워를 마치고
우유 한잔과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함은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멋진 시제이의 음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감미로운 선곡속에 펼쳐지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불현 듯
떠나고 싶다.
울컥 보고 싶다.
아무런 까닭 없는데
할 말도 딱히 없는데
뼛속을
파고드는 그리움
거스를 수가 없다.
< 청원 / 이명희님의 있다 그런 날 중에서... >
휴일의 갈무리
우유한잔과 함께
서재에 앉아 청원 이명희님의 시집을 펼칩니다.
음악도
감미롭고, 시상도 다채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저녁입니다.
책보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오늘 밤은 유독 난필이라도 좋을
나만의 글을 쓰고 싶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가
참 좋습니다 라고 수고로움에
감사한 마음을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뭔가
마음이 어수선하면 카페에 들립니다.
카페에 가면
스스로가 정갈해지고 단정해지는 느낌입니다.
어지러워
실타래처럼 꼬였던 생각도
정리가 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것 같습니다.
눈이 저절로 감기는
저절로 상단전에 전해오는 업템포 연주곡도
마음에 들고, 원두 탄내가 은은히 풍기는
진한 커피향도 내겐 취향 저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페를
비롯한 어떤 공간을 찾는다 함은
내겐 무념무상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로 만들어보는 나만의 공간,
그 안에서 풀어내는 짙은 상념들의 재정렬.
장소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곳이 있을지언데.
그곳에서는
자신을 내려놓고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을 듯 싶은데
복잡한 머릿속 자유를 내려 놓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갈수록
멀어지는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속에서 찾아 볼수 없는 사람들.
어느 하늘아래 어느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들,
새삼 안부가 그리워 지는 그런 하루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늘
힐링하시고 좋은 곡들
많이 들려주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날짜 : 10월의 어느 가을날
날씨 : 쌀쌀한 바람에 비가 추적추적
무모한건지
용기가 가상한건지
이 비에 옆지기와 함께 심학산 둘레길
정복에 나섰습니다.
우산을
비켜가며 침입하는 차가운 가을비에
금세 축축해진 재킷.
오늘은
무조건 핸드드립이네,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카페는 유독 조용하게 느껴집니다.
피터건드리의 피아노 연주곡 하나쯤 들어도 좋을,
빈티지한 음악들이 빗소리와 참 잘 어울립니다.
가끔은 좋고,
가끔은 외로운시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첫 모금에 구수한 향.
끝 모금에 퍼지는
은은한 단내, 내가 좋아하는 핸드드립의
맛입니다.
삼주만에
들어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운날의 운치가 음악의
깊이를 한층 더 해 주는 듯 싶습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있습니다.
아침 6시,
눈가에 맺힌 눈꼽을 떼어내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흐립니다.
심학산 둘레길 산책을
나설지 말지 고민중인데 후두둑 빗방울이
창가에 부딪치기 시작합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아침,
오늘의 풍경을 한 점의 쉼표로 찍어두는 일.
망설임 뒤에
찾아드는 공허함, 가만히 서재에 앉아 있으면
온갖 생각이 습한 공기처럼 달라 붙습니다.
제습기의
물을 비우고,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아침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황급한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비오는 날,
가장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문득,
어제본 영화 한산의 투철한 이순신의 의를 다진
신념과 전장에 나선 동료를 위해 위험을 마다않고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 과히 역사 앞에 나설만 합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나만의 국가관을
한산이란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적립시켜 봅니다.
뭔지 모를 어수선함,
글도 주제가 없고, 서재도, 음악도, 모든게
어수선한 일요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듣는
방송인데 익숙한 멘트를 듣는 듯 싶어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비소리를 듣는 것도,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곰곰이
더듬어 보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서른이
조금 넘어서였고, 옆지기는 반팔 원피스를
입었던 여름날이었습니다.
그 즈음
이대와 연대 학부모임이 있어서 신촌의 거리를
뚜벅이와 또각이의 보폭을 맞출때였습니다.
그날도
우리가 자주가던 백화점 옆 던킨에 들렀고
커피를 마시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여름비가 꽤 시원하게 느껴졌고
큰 창에 맺히는 빗방울을 이따금씩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동그란 테이블과 따뜻한 커피와 활짝 웃는 옆지기의 모습과
내 눈에 담았던 비오는 거리의 풍경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날
그 비가 좋았고 그래서 비오는 날을 좋아 하던
특별한 순간으로 그날이 내내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이렇게 비가 내리니 다시 그날이
생각이 납니다.
그날처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큰 창을 바라볼
시간은 나지 않지만, 비 오는 날은
이상하리만치 다른 감성, 다른 마음으로 바낍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들려오는 음악들이 평소보다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은
늘 즐겁습니다.
우리 네식구가
함께하는 영월여행,
그리고 여행을 위한 5일간의 휴가.
어쩌면
이 모든것이 우리 모두를 더 설레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운전 시간마저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큰애는 세번째 방문이고 둘째는 첫 방문입니다.
책과 함께 할수 있는
숙소의 내부 모습에 집안 깊숙히 자리잡은
햇살이 책이 주는 안정감에 더해져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사방이
유리로 된 북룸은 참으로 보기 드문
구조의 건축물인듯 싶으면서도 색다른
감성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책들과 함께 5일을 보낼수 있다는것,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주중에
책 몇권과 오일을 휴가로 보내고 나니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습니다.
첫 느낌으로 듣는 방송입니다.
무더위의 극치속에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처음 느낌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리트미크의 음악세계로
마음껏 빠져봅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들이 마시는 한줌의 공기마저
향기롭기를 바라며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유래
성분과 함께 오감을 느끼는 음악에 빠져봅니다.
애써 꼼지락
거리지 말고 그냥 에어컨 바람에
시원한 아이스티 한잔 하고 싶은 바램입니다.
그냥
좋은 뷰 보면서 간단하게 체크리스트 확인하고
업무와 상관없이 한없이 졸아보고 싶은 날.
어제
저녁부터 곡기를 거르고 이곳 저곳
쑤시고, 찍고 하고나니 하늘이 노랗습니다.
딱히
뭔가 이거다 싶게 끌리는 음식은 없지만
생존 본능에서 뭔가를 넣어 달라고 속은 꼬르륵
아우성으로 난리가 아닙니다.
덥다.
찝찝하다 라는 형용사에 익숙한 계절입니다.
찬거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말고 적당한 체온 유지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방송인지, 얼마만에 여쭤보는 안부인지,
갈수록 그 셈을 세는 횟수가 길게만 느껴집니다.
한마디의 가벼운 실소,
반갑습니다. 라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감사함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날
아무 기약없이 찾아든 곳, 그 자리에
이렇게 성량이 풍부한 음악으로 함께 해 주셔서
오늘도 반가움의 미소를 맘껏 내어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문득
그리운 날.
그날,
놀이터 쥐똥나무 너머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더운 공기를 그네로 날려보내려고
무딘 애를 썼던 그 여름 밤이 무척 그리운 날입니다.
낮선
강촌행 버스에 몸을 실으며
오늘은 어떤 후배가 어떤 선배의 밥을 얻어 먹는지,
2차는 어떻게 조인하면 좋을 지,
오늘의 비공식적 흑기사는 누굴지 열심히 눈치보던 그 때가.
곱등이가
자주 출몰하던 그 언덕.
지갑 삐삐 잃어버리고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를 때,
공학관 앞을 서성거리다가 밤 늦게 퇴근하던 대학원생 선배가
주워주던 그 지갑과 삐삐에 감동하던 그 여름 밤이.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음정박자 무시하고 끝끝내 함께 부르던 그 때가,
동촌이라는 민속주점에서 오며가며 듣던 노래들이.
옆지기
한 번 더 보려고 매일 매일 새로움에
찌들어 간신히 올라갔던 신촌동 그 이대 후문의 오르막길과
중앙도서관이.
잊지 않겠다 다짐했던
그러나 쉽게 잊혀져만 가는 순간들,
스스로 열쇠를 던지지 않게 된지 무려 삼십해.
사실은
내가 꽤나 독립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무렵,
내것으로 만들려던 무던한 노력.
좀처럼
되돌릴 수 없는 공간시계,
그 면면에서 느낀 옆지기의 조각들 그리고 나의 조각들,
참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내어 놓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은 하루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주만에 다시 듣는 방송입니다.
늘, 이 시간때면 마음놓고 들을 수 있는
그런 방송이길 바래봅니다.
무룻의
푸른 잎사귀들이 오목조목 제대로 솟은
5월의 평온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은
손님 맞이 하는 날인가 보다 싶은게
아주 반가운 사람을 뵙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근처 소바집에 갔다가 브레이크타임에 걸려서
시간보내기 망설임의 대가 유무 손익을
따지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옆지기 눈치 살피다가
접속한게 너무도 잘했다 싶은 반가운 안부를
접합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반가움의 극치뒤에 이어지는 평온함이
너무나 좋습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바닐라 어쿠스틱 / 뽀드득
*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 블루파프리카 / 천천히
신록이 푸른
아침 공기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의 본원의 음악듣기를
시작해 봅니다.
음악과 함께하는
이 순간 만큼은 마음을 조작하거나
각박한 일상과 동떨어집니다.
어떤 효과를
기대하거나 어떤 목적을 갖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평온함을 지켜주는 음악듣기 시간은
내게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바다의 표면은
파도로 출렁이지만, 바다의 바닥은 아주 조용합니다.
내겐 음악을 듣는 이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수면이 교란되면서
돌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성부에서 악센트가 있는 마디 부분이
동시에 다른 성부의 악센트가 없는 마디 부분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악센트의 연주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가끔씩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행복은 이런 찰나의 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문득 나를 위한, 나만의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공간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멋진 방송 잘 듣고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누군가 기분만 안 망치면
기분좋게 오늘을 마무리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바람에 살랑이는 불두화 꽃이 너무 탐스러워서
한송이 꺾고픈 충동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어디에서나
이맘때쯤이면 모두가 마주하는
설레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이 계절엔 하얀 꽃들이 많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불두화도 그렇고,
이팝나무의 꽃들도 그렇고,
아카시아 꽃들도 그렇고,
이젠
어딜 가도 제법 신록으로 채색을 이룹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가도 초록을 노래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청춘들도 사랑 노래하며
두런두런 산책길의 초록이 깊어 절정입니다.
코씨 오씨의
횡포도 많이 수그러 들었습니다.
와중에도 다들 몸관리 잘하시고
혹여 오더라도 가볍게 넘기시길 바래봅니다.
어느 시간,
보고 느끼는 감정과 그 것들을 정립하는 교차점에서
오감을 충족 시키는 지금 이시간이 너무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듣고 있습니다.
심학산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갑니다.
어린이의 마음같이
깨끗한 오월은 계절의 여왕답습니다.
5월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버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보이고,
옛 스승이 생각납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과 흐르는 물소리는 덤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손에 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녹음을 스쳐 오는 향기로운 바람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5월의 하루.
새롭게 맞이하는 날들처럼
저에겐 기분 좋은 시간들입니다.
눈이
부시게 예쁩니다. 오월이.
코끝을
살짝스치는 꽃 내음도 상큼하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상쾌한 하루입니다.
기억을
한면씩 펴면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신록을 맘껏 느껴보고 싶은 하루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리운 날.
아주 감사하게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연지 / Whisky On The Rock
* 이선희 / 봄날은
* 헤이즈 / 헤픈 우연
월 22일
날씨 흐림, 미세먼지 조금이라는
일기예보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비켜서는
이런 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비축하기도 합니다.
눈떠서
출근하려고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는
하루의 아침, 번잡한 부산함도 없습니다.
운동하고,
관리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가장의 무게도
절박한 시간의 째깍거림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책 한 권 펼쳐들고
듣고 싶은 음악속에 빠진 본연의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습니다.
창문으로
보여지는 단지내의 새싹들이,
평소엔 새롭지 않을 것들이,
새삼 신기함과 설레임으로 가득합니다.
멈춰진 듯한 시간의 하루.
음악도, 눈에 보여지는 것들도, 오가는 사람도,
너무나 소중한 하루의 일탈입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습니다.
그리고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문득,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냉이된장국 구수한 향이 생각납니다.
4월의 자연이 다채로운
봄의 향연을 보고 있는 듯 싶다가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의 다채색의
시들어감이 아쉽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긴 한장의 사진이 묘미다라는
생각에 늘 공감하는 하루.
사진은 만드는 것,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예술
빛과 그림자 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제 오후
단지앞 산책하다가 흔들리지 않으려
숨 조이며 구도를 잡았습니다.
봄 향기 달콤 하시죠?
영혼 깨워주는 향기에
한없이 젖어 들고 싶은 하루,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하는 오늘을 감사합니다.
잘 듣고있습니다.
바쁘게 보낸 한 주.
여러날 밤을 새고 마무리된 업무,
멍한,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떠보니 휴일 아침입니다.
토스트와
원두 한잔으로 서재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스스로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면서
하루하루를 그저 버릇처럼 살아 간다는 것 만큼
서글픈 일은 없지 싶습니다.
지천명,
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는 것,
참 슬픈 말입니다.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임을 부정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지천명이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것에
감격할 줄 알고, 슬픈 것에 눈물 흘릴 줄도 알며,
불의에 분노하기도 하고,
귀중한 것을 보면 갖고 싶기도 한
그런 지천명의 나이지만 그렇게 지천명이 아닌것처럼
살고 싶기도 합니다.
휴일,
맘대로 생각이 훨훨 날고 싶은 날.
그냥 아무말 없이 옆자리를 지켜줄 수도 있는
그런 친구가 그리운 날.
마음이
혼자 둥둥떠다니는 날,
내 마음을 알아주면 고맙고, 몰라줘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그런 친구가 옆에 있다면 딱 좋은
오늘은 아마 그런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방송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세 먼지 좋음, 날씨 맑음.
내고향 남쪽에는 벚꽃 꽃망울이
한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얼 하지 않아도,
생각에 잠기지 않아도, 그 상태로
주인공이 되기 충분한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잡념에
젖어 있을때 몸이 게을러 졌을때
찾아가는 계절 인근에 마음속 봄들이
자라고 있을 내고향 매화꽃이 일탈을 맞이합니다.
시작과
끝이 불 분명한 이야기처럼
만남과 헤어짐이 이상하게 얽힌 영화처럼
만지작 거릴수록 엉성해지고
돌아 볼수록 어색한 시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소한
일탈에서 얻어지는 행복들.
여지것 해오던 것들에게서 하루쯤 벗어나
이렇게 감미로운 음악을 들어도 좋고,
파전에 막걸리 한잔,
아님 분위기 있는곳에서 향좋은 커피한잔,
잠시 마음의 사치를 누려 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마음이
고요할 수록 얻어지는 것들이 있나봅니다.
마음의 고요속에 귓전을 맴도는 음악들은
참으로 그지없이 좋기만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합니다.
비가 내립니다.
오랜만입니다.
그냥 좋습니다.
몇일 더 이렇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몇 달 동안
시끄러웠던 유세의 흔적도
가까스로 진화된 강원도 산불의 잔재 또한
말끔히 씻겨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모로
지금 시점의 이 비가 참으로 반가움을
동반하는 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딱 한잔이 생각나는 주말,
여유로움으로 열어보는 한권의 책갈피에서
묻어나는 종이냄새,
이 느낌들은
단순히 여유로움에서 오는 감성들이
아닌, 계절의 변화에서 한몫 거듬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창가에 펼쳐진 운무와
비의 조화로움의 향연,
감탄,
이렇게 드물게 그리고 쉽지 않게 찾아오는
지금의 시공간은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행복의
극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있습니다.
음악.
여러 느낌들로 다가오는 듯 싶습니다.
공간, 사람, 시간,
같은 장르의 음악도 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음악을 듣는 입장이라면
누구나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간이면
늘 같은 모습으로 이 시간 의 여운을 채워주는 사람,
한 사람의 음역대가 있었는데 그 기억이 꽤 오래 되었지 싶습니다.
그 공간 속에서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들을 우린 애써 지키려는
바램으로 그 공간을 찾기도 합니다.
아쉬움,
어느 한 사람 시간의 공백.
같이 했던
반려견의 공감들을 정리하는 모습도 보이고
또 어떤 곳은 무리지어 이곳저곳을
떠돌기도 합니다.
여기
지금 어느 한 곡을 듣는 다라는 의미를
그저 가벼이 하면 어떨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네 인간들은 늘 어렵게 살아가려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가
열정을 다해 청곡이라는 걸 했다가
고사 당하고 난 후론 나름 정립이란걸 해 두었는데
다시금 난잡한 글로 청곡이란걸 해 봅니다.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아직 6시가 안 된 이른 시간에
일어 났습니다.
옆지기의
가로누운 콧볼에는 새끈새끈
콧바람 소리가 한참입니다.
언제나 말없이
친구처럼, 내 부모처럼, 당신의
부모처럼, 내게 생명의 온도를 36.5도로 유지 시켜준
옆지기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습니다.
기억의 조각으로
지천명의 나이테를 만들어준 부모님, 옆지기 그리고 두 아들.
내겐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싹이
이제 막 세상에 나와서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처럼 오늘의 하루는 설레임으로
가득할 듯 싶습니다.
늘 기다려지는 방송,
하지만 늘 엇갈리는 시간으로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
오랜만에 감사하게 잘 듣고 있습니다.
어느날
무심코 찾은 음악방에서 공감은
호감의 원초라는 사실을 깨닫는 방이 생겼습니다.
무멘트 방송에서
음악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방송,
코드가 맞아서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지만 그래도 꽤나 호감이 가는
그런 방송이라 생각합니다.
선곡의
세심함에서 느껴지는 만족감.
그리고 힐링으로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마구 쏟아지는 그런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밀하고 직관적인 표현은 많이 아끼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내게 솔직하자면 이곳 이 음악방이
너무나 좋습니다.
일상적인
가벼운 모습이 아닌, 중심 제대로 잡고
음악에 집중 할 수 있는 그런 방이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설 연휴의 끄트머리.
첫날은 고향 내려가는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연휴의 시작 전날밤에 출발했지 싶은데
요즘은 큰애 때문에 모든 일정이
많이 삐그덕 거립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괜히 설레고
보고싶은 사람들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의 극치.
이번
구정은 장모님의 무릎 수술로 인해
처가에 들러 차례를 먼저 지내고 본가에 와서
다시 차례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리 수술외엔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건강해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고 트렁크에
바리바리 싫어주는 양가 부모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용돈 몇푼
쥐어드리고 돌아설때의 안타까움,
먼발치 돌아서서 차가 안 보일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의 여운이 아직도 선합니다.
펜데믹이
기세를 부리는 올 연휴지만 그래도
방역수칙이라는 규범 잘 지켜가면서
고향길 잘 다녀온 듯 싶습니다.
늘
인사는 오랜만이다라는 활용형 인사를
하게 되는 듯 싶습니다.
그만큼 서로가 같이 하는 시간이 적조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방송이지만 멋진 방송이라고,
화사한 미소로 안부를 전해봅니다.
* 케이맨 / ㅃ
얼만전
제주 출장중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일정 때문에 가보질 못했었습니다.
제주도에 오면
자연스럽게 제주도 한달살기를
꿈꾸게 되지만 바쁜 일상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곳에 조용히 위치한 책방.
이전을 한 것인지 살짝 헤맸는데 책과 좀 더
가까워 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들어가 봅니다.
책방이라는게
그냥 출판사에서 낸 책을 가져다 판다 라는
생각을 완전히 깨준 곳,
하루에도 무수히
출간되는 책 중에 어떤 책을 가져올지,
어떤책을 가져와야 구독자가 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들이 넉넉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 글씨를 조금씩 뽐내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완성한다니 쏘 로맨틱.
가장 좋았던 포인트는
책방지기님이 직접 필독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을
보이지 않게 포장해 키워드만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해둔 블라인드북 코너가 아닌가 싶습니다.
뭔가를 구입하고
부르마블한 하는 느낌으로 스탬프나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직접 조명이 없어
여기저기 간접조명을 켜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블투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
그냥 갬성 카페가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제주책방 올레책자는 매년 업데이트 되어
내년엔 또 다른 디자인과 구성이겠지만
신년에 2개의 책방에 발자취를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오랜만에 듣는 방송,
참 반갑다고, 그리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임인년
인사를 이제서야 나눕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임인년 구일째를 맞이합니다.
인생에
초보와 선수는 없다는 말.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처음이고, 2022년 구일째의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100점짜리 인생을 살아 왔기 때문에
좋은 태도가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인년은 제 잇속을 챙기느라 허겁지겁 하지 말고,
남의 것은 남의 것,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슬픔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며
다만 기쁨은 나누고, 그 기쁨이 커져 세상에
넘치도록 부지런히 풀무질을 하길 기원합니다.
메리 올리버는 기러기란 시에서 우리가
더 이상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라고 말했습니다.
애써 착해지려는
강박증은 몸과 마음을 옥죄니 올해는 공정과 상식을 지키며
우리가 가진 품성만큼만 착해지길 바래봅니다.
머리카락이
쭈빗서는 놀라움과 경이로움,
여태껏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들었던거 같은데
그 상단전을 충족하는 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산책길에서
내게 보내는 계절 신호는 귓볼이
깨질것 같은 칼바람으로 대신합니다.
어제부터
찾아온 추위, 말 그대로 동빙한설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그런 날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주도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한주였습니다.
따스하던
겨울날의 퇴근길에 북촌을 걷고,
고즈넉한 카페에서 옆지기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순간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만큼
의미있는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취소 되었던 학부모임을
이번엔 본캠 공학관 대강당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행사를 무사히 마친듯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꼬인 마음 없이, 꿍꿍이 없이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내보이며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다른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약간 경외심과 더불어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하는데 동시에 나도
곧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것 같아 자꾸만 어울림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가면서 요즘 타인에게 대해서
비중을 많이 두는 편입니다.
모쪼록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들 하시고
늘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개
자욱한 아침 산책길,
보폭을
같이하며 주말이면 매일 걷는 길인데
매번 새로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책길의
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주를
수고한 나를 위한 선물의 시간,
하우저의 선율에 상단전을 맡겨도 될 만큼
자욱한 안개는 가는 길의 그 깊이가 더욱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한주를
열심히 살아내고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
이 기억들을 다시 느끼고 각인 시키는데 까지 5일.
이런 몽환적인
하루를 위해 한주를 잘 견디고 충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언제였지?
꽤 오랜만이지 라는 퀘스쳔이 무색하지
않으리만큼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주는 아닌듯 싶고,
두주 아님 삼주만에 들어보는 참으로 듣기 힘든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오늘도 수고가 많다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런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 아래로
펼쳐진 하얀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워
놓치기 싫은 마음에 서둘러 셀카를 찍습니다.
노을,
새연섬에서 노을을 바라보다 돌탑을 쌓고
그 풍경을 한폭의 포토존에 담아봅니다.
서귀포
칼 호텔에 여정을 풀고 눈에 들어오는
새연교의 야경을 훔쳐봅니다.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서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것들을 여전히 지켜 나가려고 노력중입니다.
일상과 가족,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이 아닌 쉼에서 얻는 또 다른 에너지의
축척원으로 우린 이렇게 쉼없이 여행을 즐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넓고 새로 집어넣어야 할 지식과 보고 각인 시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또 다른 곳에서의 며칠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듯 싶습니다.
그냥
쉼이 필요했던 출장겸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곡들을 듣습니다.
꽤나
듣고 싶은 방송, 기다려지는 방송, 이런 바램들이
예전엔 누군가에게는 꽤나 부담이 되는 글귀였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꽤나 듣고 싶은 방송, 기다려지는 방송이라고
오늘의 안부를 이렇게 여쭙습니다.
감사합니다.
심학산의
아침은 여기 저기의 안개가 자욱한 신비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깊어가면서 둘레길 주위의
이런저런 잡풀은 한해살이 마감을 하려고
누렇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붉나무 잎도
서서히 단풍의 끝을 보여주는 중이며,
둑 아래 큰 소나무를 칭칭 감아 오른 칡도
절로 끝 부분의 잎이 시들어 떨어지고, 가깝고 먼 산의 활엽수가
갈색 채색으로 수를 놓으며 심학산을 향해 손짓하는 듯 합니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겠다며,
한여름 꼭두새벽에 일어나 둘레길을 걸으며
크게 음악을 들었던 기억도, 지금 듣는 음악도,
그때와 사뭇 다른 느낌인 것은 확실합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눈을 맞추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계절인 듯 싶은,
서둘러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골랐습니다.
걷는 보폭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곡이지만 주위의 나무들과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시벨리우스다 싶기도 합니다.
아침에 이어
채 가시지 않는 자욱한 안개.
미세먼지 높음과 어우러지는 짙은 안개.
아침 심학산을 눈에 담아본 안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
1초만의 행복을 누린다는 것,
방송 멘트에 흘러 나오는 것들이 우리 모두의 일상이고,
나름 하고 싶은 것들일텐데, 각자의 벽에서 그 벽들을
무너뜨리지 않기에 오늘도 이렇게 웃는 얼굴로
방송을 들을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음악듣기를 시작했다가 낯익은 멘트가 흘러나와
어.. 이사람 누구누구 같은데라는 퀘스쳔을 찍어보았습니다.
한참을 듣다가
뭔가 이상해서 창에 궁금증을 해소하려
글을 올렸더니 어느 한분이 녹음 방송이라고 답변을
해 주십니다.
특별한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은 안부가 궁금한 분이였기에 내심 반갑다라는
혼잣말 감추기 인사를 하였는데 녹음 방송이라고 하십니다.
헌데,
순간 상실감에서 자괴감으로 이어집니다.
상실감이야 누구나 그렇다치고 여기서 필자는
자괴감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시제이는
다른 분을 걸어두고 다른분 방송 녹음을 그렇게
올려도 되는 건지, 리스너분들의 혼란스러움은 어떻게 되는건지,
그분은
인라에서 안 보인지 오래 되었는데, 허락은 받고 녹음을 올리는건지,
암튼, 심사숙고 해야 할 부분들이,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머물다간
성격상 또 오지랖을 떨듯 싶어 황급히 그 자릴 피하긴 했지만
실망과 아쉬움이 더해지는 순간입니다.
옳고 그름의 척도야
어떤 누구도 가늠할수가 없지만 목과 심장에
뭔가 걸린것 같은 찝찝함, 뭔가 뱉어내지 않으면 곪아 터질것 같은 상처.
아쉬움이 더해지는 순간,
교향악조 음조를 맘껏 들어도 뭔가 해결 될거 같지 않은 상단전.
이유없이 우울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10월의 끄트머리.
어느 순간 머리가 정지된 느낌이 듭니다.
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은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라는 곡의 멜로디와
노랫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 단풍,
가을은 남자의 계절, 그저 이렇게
이루어지는 단상들 몇 개.
가을을 재촉하며
10월 갈무리하는 10월 마직막 휴일날에
옆지기의 추천으로 안나 아흐마또바의 시를 읽습니다.
명확한
언어와 이미지 속에서 지난 세기
러시아의 운명이 한 사람 삶을 관통합니다.
하얀색과 푸른색의 풍경과 사물들.
안 에르보의 파란 시간이 아흐마또바에게도 있습니다.
사랑과 슬픔, 만남과 이별, 고통과 억압.
꿈, 열정, 바람, 창문,
소박한 언어, 투박하고 단순한 선율,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아흐마또바의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나의 세계로 순간 이동이 이루어진 것처럼
뭔가 형연 할 수 없는 감동으로 빠져듭니다.
시작에서
정독으로 그리고 필독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아흐마또바의 시상속을
맘것 유린하여 보렵니다.
10월의
마지막 햇살에 내리쬐어 말라 비틀어진
담쟁이 넝쿨의 모습이 초라하듯이 가을은
늘 이렇게 내게 이유 없는 외로움을 선사합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을이 너무 짧아질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른다해도 날씨만큼은
하늘이 주는대로 받으면서 자연에 순응하고
겸손해야 하는 법을 배워가는 날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년전 집중호우로
진입로가 유실되어 매년 불편함을
느껴야 했던 진부에 있는 별장을 드디어 처분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옆지기와 함께 여행 삼아 새로운
부지를 물색중인데 마땅한 곳이 아직은
보이질 않습니다.
어제는
지인의 소개로 감악산 줄기인 적성에 들러
몇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새로운 부지 선점도 좋지만
옆지기의 애마 레드 비틀과 함께 하는 주말나들이가
너무나 좋습니다.
수풀이
우거져서 세세한 관찰이 불가하여
드론으로 위치를 촬영하고 집에서 다시금
영상으로 살펴보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늘은
겨울옷 찾아내 입고 외출해야 할 것 같은 날.
가을이 떠나기 전에 어디라도 한바퀴 휑하니
돌고와야 섭섭하지 않을것 같은 날.
배고픔에
굶주린 어린아이처럼 허겁지겁 상단전에
뭔가를 채워야 할 것 같은 날.
몇일 만의
해후인지는 모르지만 뭔가에 꽉찬 느낌을 주는 방송,
가벼운 농담 하나쯤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한 방송,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감미로운 음악을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빗물이 질척이는
자동차 소리가 제법 큰 하루였습니다.
이번 한주는
맑은 하늘을 보는 것 보다는 흐린날의
비구름과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았던 듯 싶습니다.
바퀴가 포트홀에
빠지는 소리도 들리고 앞차를 추월하는 소리,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감각이란
참으로 놀랍다라고 느끼는,
보지도 않고 보이는 것처럼 산책의 이모저모를
느끼게 합니다.
수축된 느낌의
체온을 다독이며 산책로를 걷는 모습은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책로에 강아지와 줄다리기를 하는 아줌마,
긴 생머리 여학생, 다리를 절며 산책로를 걷는 아저씨,
눈이 마주친 청바지 아줌마.
흐린 휴일 한 낮의
단지의 풍경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는
바쁜 걸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휴일의 산책,
다비코즈의 연주곡 한곡 귀에 담으면 제법 그럴사 할것도 같은,
시원함이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흐린 휴일의 오후.
나뭇잎은 가을의 여인을 기다리 듯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고 어느 소설의 백서처럼
노오란 손수건 하나쯤 걸어 놓고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바램 하나쯤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은 그런 하루입니다.
한주,
열심히 살아내고 휴식과 함께 다시 듣는 음악은 참으로 감동입니다.
이곳은 비가 제법 내리고 무척 흐린 하늘인데
멘트를 듣다보니 반도에서 어느 곳은 꽤나 쾌청한 날씨인가 봅니다.
오랜만에 멋진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사한
미소의 얼굴로 다가온 설레임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가을 들녘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하는 풍요가 있어
하루를 즐겁게 머물며 마음의 보석 같았던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일상의 첫 주말 쉼을 맞이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하루해가 저무는 저녁까지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들,
그리워만 하다가 보고파만 하다가
이렇게 가을은 깊어만 가는 듯 합니다.
이런 날,
예브기니 니키텐코의 연주음악 두어곡 들으며
턱 고이고 앉아 거울앞에 비추는 내 모습을 보면 머리카락 쭈빗서는
감동 몇개쯤은 아무 손색이 없을 듯 싶기도 합니다.
추석 연휴 이후
또 다시 늘어나는 펜데믹의 줄다리기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깊어가는 가을 코스모스의
고운 자태는 가을의 깊이를 더해만 가는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의 첫 날.
아침에 늦잠 푹 자고 가볍게 우유한 잔 마시고,
창문을 열어보니 가을 하늘이 너무나 높습니다.
책 한권 펼쳐들고
글과의 사색을 나누는 시간도 제법 그럴 듯 하고.
알알이 즙이 꽉차 당도 맘껏 머금은
귤이 책과의 사색의 다리를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변하고
그것은 빛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
빛이 변하면 풍경속 만물의 색과 형태가 변한다는 것,
오늘은
풍경도 무한히 다채롭게 보여 질 수 있다는 것을,
여지껏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펜데믹(코로나)으로
몸살을 앓은 시국적인 명절연휴가 아니라면
알알이 맺힌 과일과 친지 형제들그리고 여러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꽃이 한참일 시간인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방송입니다.
결실의 계절과 함께 찾아 온 한가위!
모든 분들의 가슴이 정겹고 즐거운 시간으로
물들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심학산 둘레길,
풀벌레 소리와 제법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이
가을이 오나 봅니다.
예전에
길을 걷다 보면 계절을 잃어버리고 핀
코스모스도 가득했는데 역시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게
그 정서를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방어벽 두터운 요새처럼 거만하게
짓누르던 불볕더위는 표백을 한 하얀 얼굴을 하고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습니다.
매미도
차가움을 느끼는지 울음소리가 많이 줄어들었고,
허락없이 살갗을 침범하던 모기들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긴 여름내내
가시나무처럼 불편한 관계로 공생을 하던
더위도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듯 합니다.
이젠,
조석으로 반팔이 무색할 만큼 시원해졌습니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꽤 높다고 느껴지는 것이
이젠 완연한 가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듣게 되는 방송, 잊을만 하면 한번씩 여쭙게 되는 안부.
두팔 벌려 반갑다고, 멋진 방송 잘 듣는다고,
반가운 안부를 여쭙습니다.
어느
지인의 초청으로 성대 인문사회 과학 캠퍼스에서
3시간 정도의 노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강의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할 강의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것 또한 여의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배움의 문턱에서 턱고이고 뭔가에 열중하는
살아 있는 눈빛들이 참으로 똘망스럽고, 젊음이라는
나이의 부를 지닌 학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합니다.
아직,
개강전이지만 그래도 꽤 많은 학생들이
참여를 하였습니다.
물론, 학점과 관련된 친구가 제시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순수한 열정들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강의를 마치고
교정 주차장으로 가는길에 문득 눈에 들어오는게 하나 있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 모두가 시대의 아우름을
공통할 수 있는 공중전화 부스였습니다.
예전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공중전화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유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집 전화도 없어지는 판국이지만 공중전화는
더더욱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만 보이면
무조건 반가운 마음에 이쪽에서도 찍어보고,
저쪽에서 찍어보는 나만의 대학시절 타임세계에 빠져봅니다.
8월의 초록과
빨간색 부스가 참으로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는
그런 풍경을 자아냅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한주의 쉼 앞에 이렇게 멋진 음악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의
시간을 만들어 주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바닐라 어쿠스틱 / 뽀드득
* 황가람 / 심장도 지워야 잊나봐
* 심규선 / 그런계절
아침
6시 30분에 옆지기와 함께 집을 나서
마장호수로 행선지를 잡았습니다.
집을 나선지
20여분쯤 지나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7시쯤 도착하여 드론은 띄우지 못하고 호수 주변 산책을
시작합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인산인해를 이루는 호수의 풍경입니다.
비록 멋진 풍경들을 드론에 담아보지는 못하지만
비내리는 산책로의 풍경이 제법 그럴사 합니다.
오리들이
호수에서 나와 여유를 즐기는 풍경도 그럴사하고
출렁다리 거니는 몇몇의 사람도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레드브릿지 카페에서
옆지기와 차 한잔 마시고 싶은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카페 풍경만 담아봅니다.
비가 내려
드론 투어는 못하지만 나름의 풍경들을
눈으로 보고 상단전으로 이 느낌들을 기억에
담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비는 여유로운 시간을 할여하지 않아
바쁜 걸음으로 호수를 빠져 나와야 했지만
겨울에 찾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름이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듯 합니다.
이틀전
옆지기와 함께한 나들이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송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산책길,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득하고 대기는 그런대로 맑으나
후덥지근 한게 한 낮의 더위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분리 수거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듯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평안함과 함께 합니다.
잔잔한
음률에 맞춰 생각의 흐름을 바라보고,
쉼 없는 호흡의 흐름에 내가 열정적으로 살아 있음을
오늘도 깨닫습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곡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나게 깨닫는 요즘입니다.
사람 또한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절대음감,
음악의 절대성을 논하기도 하지만 가벼운 대화나
그곳의 흐름에 맞는 적당한 농담을 할 때도 있는 듯 합니다.
같은 농담을 해도
어떤 이는 말 그대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 반면
또 어떤이는 발끈해서 필요이상의 과민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알아 차렸다 싶을 만큼, 여유를 갖게 하는 음악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명상의 순간,
작은 공간, 이 안에 번져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들,
참 감사합니다.
요즘, 하루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고
저녁에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이 좋으면
자연이 내품는 기가막힌 밤 풍경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설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같이 걷기 시작하면
옆지기와 아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모자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는 1시간 30여분 동안 정말 쉼 없이
조잘거립니다.
너무 지친 날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귀찮다 싶기도 하지만
아들과의 대화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종종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난감 할때가 종종있습니다.
그래도
이런게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닌가 싶은 행복감,
큰애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이게 사람사는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몇몇 분의
방송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그중 한분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역시, 오늘도 심쿵한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부터
비의 발걸음은 시작되었습니다.
정확이 내리는 시간과 멈춰야 하는 시간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비의 서정이 시작된건 확실합니다.
전 비를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앉아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비가 내렸을 때 우리 주변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기록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려하고
멋스럽진 않지만 사진에 삶과 이야기가 담기는
비의 채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의 오지랖같은 감성들을 이해 하리라 믿습니다.
비의 향연이든,
인과관계의 삶이든,
시작은 언제 하였는지는 몰라도 끝은 알아야 한다고.
내리는 비와함께 잠시 아우성치는 시간도
꽤나 의미 있을 듯 싶기도 한 그런 하루입니다.
맘대로
되지 않는게 사람마음 이지만
기억은 본디 잊히고 변질되기 마련이니
뭔가 속상하거나 누군가에 서운함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내리는 비와 감미로운 음악속에 묻어 두는 것도
제법 그럴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듣지 못하는 방송이었지만
누군가의 입김이 가해지거나 불편해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가끔은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아닐까 싶습니다.
품사중에 하나인
부사를 사용할 만큼 꽤나 오랜만이지 싶습니다.
특별하다, 이렇다할 그런 긴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은 안부가 궁금했던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6월의 진행중에
막바지 3일을 남겨둔 휴일 밤에
할일을 다 마치고 서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내용들이 있으면 필사를 시작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머릿속에 쌓인 생각과 낮에 쌓인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축척을 위해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멈추고,
이어가고, 다시 시작하기를.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두 가지가 글자부터도 다르지만
최근에야 나는 이 두 단어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한다는 것을,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새로운 아이디를 사용하는 아쉬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뭔가 거추장스럽고
낯설게만 느껴지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위안으로 대신합니다.
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오랜 시간 멀리 한것도 아니지만
아주 적당한 시간의 거리에서 다시금 맞이하는
방송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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