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신한은행 '상고 파워'
평상복 차림의 은행원 두 명이 소매를 걷어붙인 채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악을
쓴다. "너 나가!" "못 나가!" "자신 없으면 나가란 말이야!" "안 나가! 죽어도 못 나가!" 수십,
수백 번을 외치다 두 사람 모두 눈물범벅이 된다.
1980년대 초반 신생은행이었던 신한은행의 사원 연수에서 볼 수 있던 장면이다. 은행원의
투지를 키우기 위한 이 프로그램을 '맹렬하게 짖는다'는 뜻의 맹폐(猛吠)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재일교포들이 일본 정부의 엔화 반출규제를 피해 여행가방에 몰래 숨겨온 돈으로 설립됐다. 1982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직원은 300명이 채 안됐고, 지점은 1곳
뿐이었다. 그런 신한은행이 기존 은행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달라야 했다.
먼저 맹폐 같은 프로그램으로 은행원들을 단련시켰다. 영업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고객에게 전 직원이 일어나 큰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쳤다. 여직원들이 "신한
파이팅"을 외치며 몇 시간씩 명동 거리를 누볐다.
직원들은 매일 동전 상자를 담은 전동카트를 끌고 서울 경동시장에 가서 상인들에게
동전을 바꿔주며 통장 개설을 권했다. 찾아오는 손님만 받았던 종래의 은행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을 선보였다.
▶신한은행은 인사에서도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실력과 실적만 따졌다. 그래서인지 비롯한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중에도 상고 출신이 많다. 1970년대까지 전국의 명문
상고에는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수재들이 많았다.
이들은 집안 환경이 좋은 동갑내기들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그래서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지 않고 악착같이 발로 뛰어야 하는 신한은행의 영업 제일주의 문화에
더 잘 적응했다. 그러나 앞으론 상고 출신 스타를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엔 상고에 예전만큼 인재가 몰리지 않은 데다 대부분의 명문 상고가 일반
계 고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고 전성시대의 마지막 불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경데스크] 벼랑끝에 선 자영업 현승윤 경제부 차장 노사민정(勞使民政)비상대책회의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에 합의했다. 기업들은 해고를 자제하고,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고,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1998년 2월에 있었던 노사정(勞使政)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에 맞먹는 성과로 볼 수 있다. 괜찮은 회사의 임직원들이 급여를 10%씩 반납하고 나면 외식이나 나들이에 써야 할 돈은 더 큰 비율로 줄이게 된다. 인턴이라도 더 뽑으려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다른 비용을 아껴 써야 한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이 떠안아야 할 공산이 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해고를 당한 회사원들과 은행원들은 식당이나 구멍가게를 열면서 퇴직금을 털어넣었고 집마저 담보로 잡혔다. 이번에 무너지면 재기할 힘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기업의 투자위축과 가계의 소비감소로 나타나면서 내수시장 궁핍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두 달 사이에 42만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했다. 앞 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횡설수설/박성원]카르타고와 한나라당 기원전 218년. 알프스 산맥을 넘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로마군을 대파(大破)하고 로마의 도시동맹들이 이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의 도시동맹들은 쉽 사리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고, 이사이 로마는 내부적으로 총단결해 군대를 재편한 뒤 스키피오 장군을 아프리카 북부로 보내 방어에 취약했던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했다. 로마 입성을 목전에 두고 본국의 별 다른 군사적 지원조차 받지 못한 한니발은 결국 로마 입성을 포기하고 귀환했으나 로마군에 패배했고, 카르타고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통일된 전력 없이 분열과 의심, 자리다툼으로 날을 새우던 나라의 최후를 보여 준다. 당 일각에선 2월 임시국회가 마무리된 뒤 홍 원내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않은 채 자진 사퇴 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리고 있다. 지도부에 힘을 몰아줘도 모자랄 ‘2차 법안전쟁’ 와중에 한쪽에선 원내사령탑의 힘을 빼는 개인플레이가 난무하고 있다. 오죽하면 당 사무총장을 지낸 권영세 의원이 나서 “코미디 아니냐. 지도부가 잿밥에만 관심을 보이는데 어느 의원들이 심각하게 (2월 입법전쟁을) 생각하겠느냐”고 쏘아 붙였을까. 온통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집권당이 미디어 관계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국회에서 통과 시키고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4년을 제대로 견인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분수대] 음주 정치
지평선/2월 25일] 직업정치인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독일의 막스 베버(1864~1920)는 역사와 종교,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 걸쳐 근대
학문 체계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를 근대의 마지막 대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함께 생애 막바지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
베버는 여기에서 직업정치인 출현에 주목하고,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제시한다. 바로 열정과 통찰력, 책임감이다. 그는
직업정치인을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과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을 구분하기도
했다.
■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이란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반면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에게는 소명이 요청된다. 베버에게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며 정치는 그 물리적 폭력, 즉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니
현실은 어리석고 비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소명이 없다면 정치로 생계를 해결하는 정치적 기식자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 행사의 결과에 책임감이 없는 것은 정치적 소명의 배반이다.
베버가 직업정치인에 부여하는 소명은 이처럼 무겁다.
■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업정치인이라는 말은 베버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한때 대권의 꿈을 꾸다가 중도 하차한 고건 전 총리는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재ㆍ보선에 왜 몸을 던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직업정치인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직업정치꾼이라는 말도 다분히 부정적이다. 교수직을 유지한 채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에게는 직업
정치인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 낙향 1주년 소회를 담아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엊그제 올린 글에서 직업정치를 언급했다. 향후 계획을 밝히는 부분에서
"생각이 좀 정리되면, 근래 읽은 책 이야기, 직업정치는 하지 마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언급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직업정치에 대해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의 신산한 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통령직 수행 자체를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열정은 자타가 인정한다. 하지만 베버가 역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소명은 미약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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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 쿠먼 원문보기 글쓴이: 一 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