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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저널 스크랩 2 월 25 일 (수) 신문 컬럼
케팔러 추천 0 조회 43 09.02.25 09: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만물상] 신한은행 '상고 파워'


 

평상복 차림의 은행원 두 명이 소매를 걷어붙인 채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악을
쓴다. "너 나가!" "못 나가!" "자신 없으면 나가란 말이야!" "안 나가! 죽어도 못 나가!" 수십,
수백 번을 외치다 두 사람 모두 눈물범벅이 된다.
 
1980년대 초반 신생은행이었던 신한은행의 사원 연수에서 볼 수 있던 장면이다. 은행원의
투지를 키우기 위한 이 프로그램을 '맹렬하게 짖는다'는 뜻의 맹폐(猛吠)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재일교포들이 일본 정부의 엔화 반출규제를 피해 여행가방에 몰래 숨겨온
돈으로 설립됐다. 1982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직원은 300명이 채 안됐고, 지점은 1곳
뿐이었다. 그런 신한은행이 기존 은행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달라야 했다.
 
먼저 맹폐 같은 프로그램으로 은행원들을 단련시켰다. 영업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고객에게 전 직원이 일어나 큰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쳤다. 여직원들이 "신한
파이팅"을 외치며 몇 시간씩 명동 거리를 누볐다.
 
직원들은 매일 동전 상자를 담은 전동카트를 끌고 서울 경동시장에 가서 상인들에게
동전을 바꿔주며 통장 개설을 권했다. 찾아오는 손님만 받았던 종래의 은행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을 선보였다. 

▶신한은행은 인사에서도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실력과 실적만 따졌다. 그래서인지
다른 은행과 달리 상고 출신이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신임 행장으로 내정된 이백순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해 은행장만 3명이 나왔다.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상고 출신 행장을 배출한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신한카드
비롯한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중에도 상고 출신이 많다. 1970년대까지 전국의 명문
상고에는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수재들이 많았다.
 
이들은 집안 환경이 좋은 동갑내기들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그래서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지 않고 악착같이 발로 뛰어야 하는 신한은행의 영업 제일주의 문화에
더 잘 적응했다. 그러나 앞으론 상고 출신 스타를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엔 상고에 예전만큼 인재가 몰리지 않은 데다 대부분의 명문 상고가 일반
계 고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고 전성시대의 마지막 불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경데스크] 벼랑끝에 선 자영업   현승윤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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