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詩란 무엇인가
1. 명칭의 문제
(1) 시는 원래 운문과 창작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띠고 있다.
(2) 문학의 종류를 서정시, 서사시, 극시라 할 때, 이 세 장르는 운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3) 시와 대립되는 산문이 역사나 철학과 같이 이미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분석, 비판하는 토의문학임에 대해 시는 창작문학이다.
(4) 국문학에서는 '詩歌(시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詩(시)란 문학상의 명칭이지만, 歌(가)란 음악상의 명칭이다.
(5) 서정시(lyric poem)는 어원적으로 음악과 관계가 있다. '리릭(lyric)'은 원래 현악기인 라이어(lyre)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2. 시를 보는 몇 가지 시각
(1) M.H. 에이브럼스는 시론 또는 비평의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작품을 그 세계에 비추어서 논하려는 입장(모방론), 제작자인 시인의 편에 서서 보는 경우(표현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에서 평가하려는 경우(효용론), 시를 엄격하게 시 자체로만 논의하려는 경우(구조론) 등이 그것이다.
(2) 模倣論(모방론)
①모방론은 시론 내지 문학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경우이다. ②동양에서는 공자가 논어에서 시 속에는 초목, 화장에서부터 인간세계의 여러 현상이 두루 담겨 있다고 말한 것이 있다. ③플라톤은 <공화국> 10장에서 시인추방론을 내세운 바 있다. ④플라톤은 예술가의 창작이란 그 실에 있어서 진리를 3단계나 벗어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방이란 허위며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인추방론을 주장한 것이다. ⑤플라톤의 卓子(탁자)이론 3단계는 제1단계(창조주)-탁자의 이데아를 지닌 자, 제2단계(목수)-실제로 탁자를 만든 자, 제3단계(화가 또는 시인)-탁자를 그리거나 노래한 자 ⑥아리스토텔레스는 심미적 기예의 세계가 모방예술의 세계라 보았다. 곧 서정시나, 극시들은 어떤 실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체계와 존재이유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⑦아리스토텔레스는 개연성 또는 보편성의 이론을 이끌어들인다.
(3) 表現論(표현론)
①워즈워드는 쿨리지와 함께 낸 [서정민요시집]에서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과 "강렬한 감정의 자발적인 넘쳐남"이라는 시의 정의를 내린다. ②밀의 경우는 시와 외부세계와의 관계는 아주 사물화되거나 거의 소멸되어 버린다. 시는 외로운 감정의 양식이며, 그것은 불가피하게 독백의 측면을 강하게 지닌다.
(4) 效用論(효용론)
①호라스는 시가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효용으로 심리적 효과와 교훈적 효과로 구분. ②시드니는 정서란 실제의 행동에 관한 감동의 세계라 정의하고, 시의 교훈적인 내용은 감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서를 통해서 독자에게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 ③드라이든은 표현과 형식의 문제를 강조하며 일종의 심리주의를 택했다.
(5) 構造論(구조론)
①윔샛은 표현론에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범하게 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의도의 오류>라고 일컫는다. 효용론에 대해서도 그것을 소박하게 적용해서 시를 논해 버리면 그 자체가 존재와 결과를 혼동하는 <감정의 오류>를 범한다고 경계한다. ②객관주의 구조론이란 영미계의 신비평가들에 의해 생성, 전개된 비평방법을 가리킨다. 그것을 흔히 뉴크리티시즘이라 부르는 것이다. 뉴크리티시즘이 취하는 비평방법은 크게 네 항목으로 요약된다. 첫째, 그것은 주로 시를 다룬다. 둘째, 뉴크리티시즘은 시를 그 자체로만 이해, 파악하고자 했다. 셋째, 뉴크리티시즘의 기본원리는 의미론에 입각한다. 넷째, 뉴크리티시즘은 비평의 원론 내지 시학을 내세우기보다 작품 자체를 즐겨 다루는 경향이 있다.
제2장 詩의 言語
1. 언어의 시적 특성
(1) 리처즈가 구분한 언어의 두 유형
①과학적 용법에 의한 언어 : 관련대상을 어김없이 정확하게 지시하기를 기하는 말들. ②정서적 용법에 의한 언어 : 시에서의 언어는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말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쓰여지는 언어(유치환의 [울릉도]가 그 例)
(2)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대개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있다. 리처즈는 이것을 陳述(진술)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관련대상의 적절한 지시가 아니라 충동과 태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언어가 있다. 리처즈는 이것을 擬似陳述(의사진술)이라 명명했다. 즉 관련대상 내지 사실에 부합하기를 기하면서 쓰는 언어를 진술, 시의 언어는 그와는 다른 입장에서 쓰인 것이기 때문에 의사진술이라 말한 것이다.
2. 언어의 含蓄性(함축성)
(1) 시에서 그 말의 뜻이 일단 관련대상을 정확하게 지시하는 그래서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언어의 外延(외연) 또는 개념지시라 명명한다.(서정주의 [연산홍]이 그 例)
(2) 정서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크게, 짙게 하기 위해서 시의 언어는 內包(내포) 또는 함축적 의미도 이용한다. 내포는 외연을 전제로 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언어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함축적 의미는 외연과 알력, 마찰을 일으키지만 다시 그것이 한 구조 속에 용해되는 의미이다.
(3) 함축적 의미를 가진 시를 가리켜 리처즈는 '포괄의 시'라 명명한다. 이것은 시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충동을 두루 포괄해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배제의 시'는 원하는 충동만을 택하고 그밖의 것은 제외하는 경우이다. 김억의 [오다가다]는 배제의 시의 보기가 된다.
3. 시어의 曖昧性(애매성)
(1) 앰프슨에 따르면 애매성의 개념은 언어의 뉘앙스에 관계되는 문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어떤 일정한 언어표현에 따른 반응을 허용하는 언어의 뉘앙스"라 정의한다.
(2) 김동리는 김소월의 [산유화]가 정신세계의 원점 내지 열쇠 구실을 하는 부분이 <저만치>라 보았다. <저만치>는 산(자연)과의 거리를 뜻한다. 그런데 <저만치>가 하나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는 것은 앰파슨의 애매성 이론에 대입시켜 보면 알 수 있다.
4. 시어의 事物性(사물성)
(1) 사르트르는 문학의 구조적 특성을 밝힌 글에서 산문이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데 반해서 시의 언어는 사물이라 말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전통, 인습으로 흐르고 있는 의미내용과 독립되어 있음을 뜻한다.
(2) 시의 언어가 사물이 되는 순간 그 작품 전체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뚜렷한 실체가 된다. 그것을 존재의 시라 말한다. 존재의 시에서 언어는 대상을 기호화하지 않는다.
(3) 맥클리시의 시를 통해 존재론적 시 또는 시의 존재론상의 의의를 알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시의 언어가 그 자체로서 제3의 실체가 된다. 즉 사물로서의 언어가 시를 이루는 것이다.
5. 시적 개성과 문체
(1) 시어 선택이나 배열은 제재와 상황 그리고 시인의 개성에 따라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2) 상황의 관계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시의 언어와 표현 양식이 선택되는 것이다.
(3)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로 시작하는 김광균의 [설야]는 좀처럼 끊이지 않는 긴 문장으로 느릿한 템포를 느끼게 하지만, "나도 알거라만....."으로 시작하는 정현종의 [센티멘탈 쟈니]는 행의 길이만큼 스타카토의 짧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시의 호흡이 짧아져 간다는 것은 현대시의 두드러진 경향인데, 이것은 시인의 개성의 문제라기보다 상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4) 현대시에 있어서 또 하나 문체론적 문제는 역설적으로 '반문체'를 들 수 있다. 전통적 시 문체마저 의도적으로 해체시켜 철저하게 산문적이고 현실적 언어라는 것이다. 김춘수는 이런 반문체를 '해사체'라 했으며 일종의 형식적 자포자기다.
(5) 모든 시인은 영속적인 것(전통적), 지배적인 것(시대상황의 특징), 미래지향적 경향(시도적)에 참여한다.
제3장 比喩(비유)
1. 비유의 의미
(1) 비유에는 일정 사물, 현상, 개념 등 원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변형, 이동하는 보조표현 내지 관념이 행사되어야 한다.
(2) 비유는 언어의 운동형태이다. 이때 그 모양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전이 또는 이월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유를 크게 네 개의 유형으로 나누었다.
①類(류)를 가리키는 말을 種(종)으로 전용한 경우(저기에 내 배가 정지하고 있다) ②種(종)을 가리키는 말을 類(류)로 전용한 경우(수많은 공훈) ③어떤 種(종)을 나타내는 말을 다른 種(종)으로 전용한 경우(청동의 칼날로 목숨을 길러내며) ④류비관계에 의한 전용('선의 이데아'를 '태양'으로 일컫는 경우)
(4) 김춘수의 [나의 하나님]에서 비유되어진 말은 '하나님'이다. 이 작품에서는 '하나님'을 <늙은 애상>, <푸줏간에 걸린 살점>, <놋쇠 항아리>,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純潔(순결)>, <느티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 등으로 전이시켜 놓았다.
2. 비유의 종류 - 直喩(직유), 隱喩(은유), 換喩(환유)
(1) 單一比喩(단일비유)와 擴充比喩(확충비유)
①정한모의 [바람 속에서]는 '바람'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쓰여져 단일비유에 해당된다. 시인이 그 의도를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원할 때 단일비유가 쓰여질 수 있다. ②박두진의 [꽃]은 '꽃'이 작품전체의 비유로 이루어지면서 비유와 비유 사이에 다시 그 나름의 유추관계가 빚어지고, 그에 따라 의미, 심상의 상승작용이 이루어진다. 이런 비유를 확충비유라 한다. 서정시의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정서나 가락을 총체적으로 자아내고자 한다면 대체로 확충비유를 쓸 수 있다.
(2) 主旨(주지), 媒體(매체), 動機(동기)
상호작용하는 비유의 단면을 보다 극명하게 제시하기 위해서 리처즈는 주지, 매체 등의 개념도 설정했다. 리처즈에 따르면 비유가 관련하는 요소, 곧 기본적인 생각이 주지이다. 그리고 주지를 구체화하거나 변용,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말들이 매체인 것이다.
(3) 直喩(직유)와 隱喩(은유)
이미 이루어진 주지, 매체의 관계 형성에 만족을 느끼는 듯 보이는 비유가 직유이다. 그러나 어떤 비유 가운데는 주지와 매체의 관계가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자는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일치부합한 상태에 들어간다. 뿐마 ㄴ아니라 주체와 사실범주영역 사이에는 다시 감정이출과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비유를 은유라 한다.
(4) 換喩(환유), 提喩(제유), 기타
어떤 대상의 속성이나 그와 밀접하게 관련된 특징을 이용하여 그 대상을 표상, 제시해 내는 것이 있다. 이를 환유라 한다. 가령 <왕물과 왕관(지배자)이 굴러 떨어져/낫과 삽(평민)과 흙 속으로 구르는구나>, <정오는 육중하게도 꽃과 나무에 누워 있네> 등의 예들이다.
제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낸다든가 전체를 부분으로 대치시킨 비유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열다섯 개의 돛>은 15척의 배를, <미소의 계절>은 봄을 가리키는 제유의 예이다.
한편 還元(환원)이란 대리표상을 뜻한다.
3. 置換(치환)과 置(병치)
(1) 치환비유
휠라이트는 이 비유의 개념을 최초로 수집한 예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았다. 치환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epiphora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스스로 비교적 익숙하고 구체저긍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후자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게 하고 알리고 싶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말로 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다. 치환비유는 바로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상의 도구에 해당된다. 또한 이 비유는 그 의미작용을 가능케 하는 확실한 축어적 바탕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사작하는 유치환의 [깃발] 등이 치환비유의 예이다.
(2) 병치비유
순수하게 이질적 두 요소를 병치시킨 경우를 가정해 낼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의 비유를 병치비유, 곧 diaphora라고 한다. 병치비유는 비유를 이루는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대등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이다. 이때 두 요소는 외견상 대립상태에 있는 것 같다. 다음의 작품이 병치비유의 예가 된다. "인총 속에 끼어 있는 이 얼굴들의 환영/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4. 막스 블랙의 相互作用論(상호작용론)
(1) 막스 블랙은 비유를 세 가지 각도에서 거론하였다. 대치, 비교, 상효작용론 등이다.
(2) 대치론은 가장 일반적인 비유론으로 통용되어 왔다. 우리는 "키다리"를 <전봇대>로, "희고 둥근 여인의 얼굴"을 <달덩이>로 하는 비유에서 대치론을 알 수 있다.
(3) 막스 불랙은 비교론 설명을 <리처드 왕은 한 마리 사자다>의 문장으로 예를 들었다.
(4) 상호작용론은 비유를 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는 입장이다. 주지는 매체에 작용하고, 매체는 또한 부단히 주지에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한 교환작용이 아니라 제3의 역동적인 실체가 출현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