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章 다섯 가지의 實用武學들.
남궁청우는 문득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소했다.
"그렇지 않소. 당신은 아직 한가지의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소. 내가 다시 묻겠는데...... 당신의 그 흑옥마예는 일부러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번 살인(殺人)을 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혈견휴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듯이 안색을 굳히며 대꾸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은 조금 전에 이치대로 따지자면 당연히 나의 멱살을 잡고서 칼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죽였어야 할 것인데, 어째
서 그렇게 갑자기 살인을 멈추고서 단지 나를 위협하기만 했느냐는 것이오. 당신은 게다가 무림인으로서의 나의 혈도를 제압하지 않고 그저 일반의 시정잡배처럼 멱살을 움켜잡았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소?"
(......?)
혈견휴는 사실 조금 전에 그와 같은 사실을 무심결에 흘려보내기는 했지만 다소 괴이(怪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내 어리둥절해 하며 대꾸했다.
"그건 그렇지만...... 설마하니 그럼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이냐?"
남궁청우는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그 이유를 모른다면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겠소?"
혈견휴는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에 나를 죽이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느닷없이 전신의 기운이 허(虛)해지는 듯 하고 살기(殺氣)가 사라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칼을 나의 목에 겨누고 또한 다른 한손으로는 나의 멱살을 움켜잡았던 것이 아니오?"
혈견휴는 의아해하며 대꾸했다.
"하긴 그렇다만, 그게 너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이냐?"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당신의 흑옥마예는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그 효력을 상실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의 앞에서 그렇게 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솜씨가 아니면 대체 ㅠ누구의 솜씨이겠소?"
(......!)
혈견휴는 순간 깜짝 놀라서 크게 경악한 표정으로 위협하고 있던 칼날을 휘둘러서 남궁청우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음 순간 그의 안색이 잿빛처럼 굳어졌다. 느닷없이 그의 전신에는 다시 기운이 하나도 없어지고 몸은 마치 석상(石像)이라도 된 듯이 굳어졌던 것이었다.
크게 부릅뜬 두 눈에서는 지금 이러한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이제 다시는 그의 입속에서는 말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
남궁청우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 혈견휴의 손에서 벗어나서 고개를 뒤로 돌려서 방덕승과 서무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어서 선비와 우왕을 부축하지 않고 뭐하는가?"
(......?)
방덕승과 서무구는 그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와 같은 남궁청우의 말을 듣고는 놀라서 자신들의 상처도 잊고서 좌선비와 가우왕에게 뛰어갔다.
그 순간까지 좌선비와 가우왕은 몸이 마치 석상처럼 굳어진 채로 쓰러지지 않고 있었는데 가슴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어서 안색이 매우 창백했다. 방덕승과 서무구는 각기 가우왕과 좌선비의 몸의 상처를 지혈(止血)시키고 나서 급히 부축하며 물었다.
"선비, 우왕!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직 견딜 만 한 건가?"
순간 이제까지 멍하니 서 있던 가우왕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아직 견딜만 하냐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
방덕승과 서무구는 뜻밖에도 가우왕이 그렇게 기력이 왕성하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깜짝 놀랐다.
게다가 정작 소리를 지른 가우왕 본인도 설마하니 그렇게 큰 소리가 자신의 입속에서 터져나올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말을 끝내자마자 크게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좌선비도 자신의 몸이 어느새 서서히 부드럽게 풀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방덕승은 자신이 부축하고 있던 가우왕과 옆의 좌선비를 돌아보고는 일순 어이없어 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둘 다 무사하다니, 정말로 다행이로군.“
* * *
잠시 후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장간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뜻밖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저마다 크게 경악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들 가운데의 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본래는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칼을 갈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것이 혈견휴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론 조금 전에 가우왕이 크게 소리치는 것을 듣고서 모두 다 잠에서 깨어나서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이곳에서 대장장이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남궁세가에 소속된 사람들로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심한 부상을 입은 방덕승과서무구, 그리고 다시 심한 부상을 입은 좌선비와 가우왕은 즉시 그곳의 무사들에 의해서 부축되어 다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그 무사들이 몰게 되어서 급히 남궁세가로 향해 떠났다.
기이하게도 좌선비와 가우왕은 조금 전에 분명히 혈견휴에게 심장부위를 찔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칼날이 심장을 조금 빗겨서 스쳐지났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서 혈견휴와 같은 사람이 두 사람이나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되었었는지 그것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좌선비와 가우왕은 심히 아픈 상황 하에서도 그와 같은 사실들을 남궁청우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움직이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그 혈견휴(血見休)는 뜻밖에도 매우 싱겁게 이미 죽어 있었다.
남궁청우가 그의 아혈(啞穴)까지 제압해 놓았었는데도 그의 몸에 극독이 퍼진 것은 그가 이미 제압당하는 순간에 저절로 독이 퍼지게 되는 일종의 금제(禁制)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혈견휴의 시신(屍身)은 그저 잠시 후에 대장간의 무사들에 의해서 불로 태워지고 말았다.
* * *
남궁청우는 약간 느긋한 표정으로 서서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에 그는 사대호위와 함께 자시(子時) 무렵에 돌아왔었는데 우선 그들 네 사람의 상처가 심했기 때문에 특별히 내당에 데리고 들어와서 장보고(藏寶庫)의 장약실(藏藥室)에 있는 남궁세가의 외상성약(外傷聖藥)인 한옥빙섬고(寒玉氷蟾膏)를 발라주었고 이어 그들을 돌려보낸 다음에는 이층으로 올라와서 그때도 심한 내상(內傷)에 의해 고생하고 있는 가지약(賈芝若)에게 역시 남궁세가의 내상약(內傷藥)인 구화옥로환(九花玉露丸)을 복용시켜서 내상을 치료할 수 도록 했었다.
세가를 떠나겠다고 했었던 노태태(老太太) 전일화 등은 이미 정말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완전히 세가를 떠난 뒤였다.
남궁세가에는 오직 어머니인 가심의(賈心意)와 누이들인 남궁석약(南宮惜弱), 남궁완청(南宮婉淸), 그리고 가지약이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어젯밤에 가지약은 심한 내상으로 인해서 거동을 거의 못했었고 어머니와 두 명의 누이들이 하녀들을 시켜서 사대호위를 돌봐주었다.
어제 아침에 죽은 남궁민의(南宮敏儀)에 관한 얘기는 의식적으로 거의 하지 않았으며 다만 남궁완청이 간단하게 한번 남궁청우에게 두 사람이 묻힌 장소에 대해서 말해주었을 뿐이었다.
이미 정오 무렵이었는데 옆에서 가지약이 열심히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하고 있다가 남궁청우가 몸을 일으키자 비로소 가부좌를 풀고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정랑?"
가지약은 이미 남궁세가의 그 유명한 내상약인 구화옥로환(九花玉露丸)의효과를 봐서인지 파리했던 안색에 점차로 화색(和色)이 돌기 시작하고 피부도 백옥(白玉)같이 투명한 윤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었다.
남궁청우는 자신의 옆에 다가와서 앉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사랑스럽게 안아주며 미소하며 물었다.
"그래, 내상은 이미 다 나았소?"
가지약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대략 하루만 운기조식을 하면 원래의 공력을 다시 되찾을 것 같아요."
남궁청우는 그녀에게 잠시 입맞춤을 하고 나서 미소하며 말했다.
"다행이오. 내가 어제 저녁때 돌아와서 당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혹시 내상이 너무 심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소."
가지약은 남궁청우에게서 다정한 입맞춤을 받게 되자 안색이 약간 상기되면서 가볍게 눈을 흘겼다.
"흥, 저야 뭐 그다지 죽을 정도로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으니 상관이 없지만, 오늘 아침에 들으니 정랑께서 어젯밤에 돌아오셨을 때에는 그야말로 굉장했었다면서요? 약(弱)언니께 들으니 정랑을 모시는 그 네 사람의 호위들의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고 하던데요?"
남궁청우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이제 금방 나을 것이고 또한 나도 이렇게 멀쩡하지 않소?"
가지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통 호위가 당하고 나면 이어서 당하게 되는 사람은 그 주인(主人)이래요. 그들이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멀쩡하게 돌아오신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요. 정말로 정랑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게도 위험한 것들인가요?"
남궁청우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지 사실은 별로 위험하지도 않소. 어제만 해도 나는 그 네 명의 호위들에게 일종의 경험을 갖게 해 주려고 그렇게 되도록 놔두었던 것이지, 불가피하게 당한 일들은 아니었소. 그래도 지약(芝若)은 나의 능력(能力)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오?"
가지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혹시 정랑께서 다치시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두려워져요."
남궁청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감싸주며 말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역시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오. 자, 걱정하지 말고 이제
그만 일어나도록 합시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춘매와 하란이 나란히 고개를 들이밀고는 공손히 물었다.
"저어, 가주님! 지금 식사를 이곳으로 가져올까요?"
(......)
보아하니 그 두 명의 하녀들은 벌써부터 무공에 제법 진전이 보이는 듯 두 눈에 기운이 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남궁청우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아래층에서는 이미 점심식사를 마쳤느냐?"
하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아직 식사를 하시기 전이예요."
남궁청우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그럼 아래층에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차리도록 하여라.“
* * *
남궁청우가 가지약과 함께 아랫층으로 내려가자 그가 지시한 대로 식탁에는 음식들이 가득하게 차려져 있었지만 그러나 왠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남궁석약과 남궁완청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단지 어머니인 가심의만이 식탁 앞에 혼자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머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간 것입니까?"
가심의는 남궁청우가 가지약과 함께 내려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맞은편의 자리에 앉도록 권한 다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석약(惜弱)이하고 완청(婉淸)이는 사람들이 와서 치료를 해주고 있다오."
(......)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아니 누가 왔는데요?"
그때 문득 안쪽의 방문이 열리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좌선비 등의 사대호위와 하녀들을 대동한 남궁석약 등이었다.
알고 보니 좌선비 등이 와서 어느새 남궁석약 등이 그들을 치료해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주님, 어제 갖다 주신 한옥빙섬고(寒玉氷蟾膏)가 조금 부족해요. 그것을 좀 더 갖다주실 수가 있겠어요?"
남궁완청이 비교적 활발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남궁청우에게 물었다. 남궁청우는 그들을 한차례 돌아본 이후에 대꾸했다.
"한옥빙섬고는 본가(本 에 그리 많지 않은 외상성약(外傷聖藥)이오. 그것은한 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 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낭비할 수가 없소.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모두들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니?"
남궁완청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대꾸했다.
"그럼 우리는 뭐 모든 일들을 가주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가 있나요? 아까 그들이 왔었는데 아직 몸이 낫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가 솔선해서 그들을 치료해준 것이 잘못인가요?"
남궁청우가 약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들을 치료해주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시집도 안간 처녀들이 총각들의 처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써주다가 이거 혹시 무슨 사건(事件)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오?"
좌선비 등의 사대호위는 그 말에 문득 은근히 안색들이 붉어졌으나 오히려 남궁완청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흥, 가주님은 저보다 나이가 세살이나 어린데도 벌써 안사람이 있는데, 저라고 해서 지금 사건을 내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속으로는 나 같은 것은 빨리 시집을 가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계실 텐데?"
가심의가 미소하며 듣고 있다가 은근히 남궁완청을 나무랐다.
"완청아, 가주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남궁청우도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나직한 음성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가 저렇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대체 저와 같은 사람을 누가 데려갈까?"
(......)
남궁완청은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어머니의 눈치를 봐서 겨우 참는 기
색이었다.
좌선비 등이 그때 남궁청우의 앞으로 다가와서 절을 하면서 말했다.
"가주님, 간밤에는 편히 쉬셨습니까?"
남궁청우는 그들의 몸을 살피면서 답례했다.
"그래, 그 상처들은 좀 좋아졌소?"
가우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주님께서 그 좋은 약을 내리신 덕분에 저희들의 몸은 이제 거의 다 나아서 거뜬합니다."
좌선비 등의 부상은 실로 깊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 거의 다 나았다는 가우왕의 말은 그답게 약간 허풍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거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몸이 외상성약인 한옥빙섬고의 덕분에 상당히 좋아져서 이제는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본래 그 한옥빙섬고(寒玉氷蟾膏)라고 하는 것은 과거 남궁세가의 선조가 극북한옥(極北寒玉)과 현빙섬여(玄氷蟾艅)라는 두 가지의 희귀한 것을 혼합시켜서 만들어 놓은 금창약으로서 강호상에서도 이미 효험이 인정된 바 있는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그들의 부상이 정말로 좋아진 것을 보고는 웃으며식탁을 가리켰다.
"그럼 우리 모두 함께 식사나 하는 것이 어떻겠소?"
좌선비 등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속하들은 이미 식사를 하고 왔으니 가주님께서는 어서 드십시오."
이어 그들이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하자 남궁청우는 문득 가우왕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우왕, 오늘 나의 일과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가우왕은 즉시 돌아와서 대답했다.
"가주님께서는 모레 아침에 단주들과의 소회의(小會議)에 참석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듯 합니다."
남궁청우는 이에 즉시 품속에서 다섯 권의 비급을 꺼내서 가우왕에게 건네주면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내가 식사를 하고 있을 동안에 이것을 후원으로 가지고 가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시오."
(......!)
가우왕은 기실 이미 남궁청우가 보여주겠다고 했던 그 다섯 권의 비급에 대해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이내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럼 이것이 바로 그 용화대수미선공의 실용무학(實用武學)들을 적은 비급들이라는 말입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것이 아니면 내가 다른 어떤 비급을 주겠소?"
가우왕은 이에 내심 매우 기뻐서 허리를 깊이 굽히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가주님!"
......
이윽고 그들 사대호위가 모두 후원으로 나가고 나자 함께 식사를 하면서 문득 남궁완청이 자신의 어머니인 가심의에게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그 네 명의 청년들 가운데에서 어느 누가 가장 훌륭해 보여요?"
가심의는 식사를 하다가 말고 웃으며 되물었다.
"왜? 훌륭하면 네가 시집을 가려고 하느냐?"
남궁완청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시집을 가면 어때요? 일단 마음만 맞으면 시집을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어서 말해 봐요. 대체 그 중에서 누가 가장 훌륭해 보여요?"
가심의는 맞은편에 있는 가지약을 돌아보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나는 우왕(牛王)이 가장 듬직해 보이고 남자다와 보여서 좋더라."
남궁완청은 그 말에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의 조카만을 훌륭하다고 하다니, 내가 이래서 사실은 어머니께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가심의는 미소하며 물었다.
"그래 너는 대체 누가 마음에 들더냐?"
남궁완청은 대답했다.
"나는 그 좌(左)오빠가 가장 멋있는 것 같아요."
남궁청우가 식사를 하다가 말고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선비에게 벌써부터 오빠라고 한다는 말이오?"
남궁완청은 그를 돌아보며 태연자약하게 대꾸했다.
"그의 나이가 나보다 세살이나 더 많으니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남궁청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불과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오빠라고 부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약간 경박해 보이지 않소? 나 같으면 그런 경박한 여자에게는 관심도 가지지 않겠소."
(......)
남궁완청은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도 나는 그 좌오빠를 사귀어 볼 생각이니 가주님께서는 훼방이나 놓지 마세요."
남궁청우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그 선비는 셋째누이에게 과분한 사람이오. 만일 셋째누이가 그의 마음에 들기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내가 왜 훼방을 놓겠소?"
남궁완청은 매우 못마땅한지 다시 말했다.
"내가 그렇게도 못나 보인다는 말인가요? 흥! 본가의 안에서도 사실 나만큼 잘난 처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솔직히 아름답고 총명(聰明)하고 시원시원하며 무공도 뛰어난 내가 어디 빠질 것이 뭐가 있어요?"
남궁청우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글쎄, 그렇게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을 일부러 자랑하고 있으니, 설령 약간 예쁜 구석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오만하고 겸손할 줄을 모르는 여자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오."
(......)
가심의가 남궁완청이 내심 약이 올라서 얼굴이 새빨개진 것을 보고는 그러한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옆의 남궁석약에게 물었다.
"석약, 너는 그 가운데에서 누가 가장 마음에 들더냐? 역시 너도 완청처럼 그 좌씨 청년이 마음에 들더냐?"
남궁석약은 이제까지 묵묵히 식사만 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와 같은 질문을받자 안색을 사르르 붉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예요. 저는...... 잘난 사람보다는 정직(正直)한 사람이 더욱 좋아요. 하지만...... 하지만 그는......"
남궁청우는 그녀가 말을 더듬는 것을 보고 대략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과연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그것은 갑자기 내당에 불어닥친 봄바람의 기운이었다.
어제 아침에 남궁민의가 죽음을 당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에 외로운 나머지 그녀들은 자신들의 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어쨌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남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궁완청이 남궁청우의 말을 듣고는 문득 약간 놀라서 가심의에게 물었다.
"어머니, 혹시 그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 *
남궁청우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후원의 연못가로 나가자 가우왕 등이 이미 남궁청우가 보라고 건네주었던 비급들을 열심히 들고 읽어보고 있다가 황급히 그를 맞이했다.
"어떻소? 모두 대강 읽어 보았소?"
가우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분량이 많아서 다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돌아가면서 앞부분만 조금씩 보았습니다."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소. 우선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남궁청우가 그들에게 지금 보여주고 있는 비급들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았다.
----- 반선수(反禪手)
----- 백보신권(百步神拳)
----- 금강지(金剛指)
----- 빙허임풍(憑虛臨風)
---- 팔만사천검법(八萬四千劍法).
가우왕이 물었다.
"우리가 이 다섯 권의 비급을 모두 배우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