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7】
17세기 중반부터는 청을 상대로 한 인삼 무역도 회복되었다.
조선의 인삼이 중국과 일본으로 활발하게 수출되었던 탓에 1650~1670년대에는 국내에서 인삼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국내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품질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정부는 인삼 무역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다.
인삼 무역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때, 정부는 중국과 일본 양쪽 모두 무역을 금지할 수는 업다고 판단했다.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과의 무역을 계속하되,청나라로의 인삼 수출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청나라로의 인삼 수출은 완전히 중지되지 않고 밀수출의 형태로 계속 이어졌다.
일본에 자생하는 인삼은 죽절삼(竹節蔘)으로, 고려인삼에 비해 그 약효가 훨씬 떨어지지만 일본 서민들이 약용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 왕실과 귀족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인삼을 귀중한 약재로 취급했다.
16세기 이래로 한·중·일 삼국 간의 무역은 꾸준히 활기를 띠었다.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조선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해진다.
임진왜란 후 일본과 청 사이에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던 반면, 일본과 조선은 1609년 국교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일본은 필요한 해외 물품 대부분을 쓰시마를 통해 수입했다.
청의 비단이 특히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물품이었고, 조선의 인삼도 인기가 높았다.
17세기 들어서 일본에 의약문화가 보급됨에 따라 민간에서도 인삼을 약용하는 일이 늘어나 인삼에 대한 수요가 크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기 조선 상인은 삼국 간의 교역에서 아주 중요한 매개자의 위치에 서게된다.
인삼을 수출해 은을 대금으로 받아 그 은으로 중국에 가서 비단 등을 사서 일부는 국내에서 유통하고 또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해서 이득을 남겼던 것이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