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스토리텔링 시법으로 탐색하는 인생의 진실 --최영환 시집 『네 이름을 불러주마』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세월과 동행하는 내 인생 혹은 운명 현대시 읽기에서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이 소재와 주제뿐만 아니라, 상황 설정과 전개 그리고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시는 언어의 함축이라서 언어의 예술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보면 우리 시인들이 작품 전개과정에서 도출하는 주제가 어떤 어조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느냐의 작품과정의 현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예를 들면 감상적인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독자들 곁으로 다가갈 것인지, 아니면 설득력 있는 잠언처럼 시인들이 추구하려는 인본주의(humanism)를 피력할 것인가가 우리 시인들의 시 창작에서의 고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환 시집 『네 이름을 불러주마』의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우선 다가오는 어휘들은 일상생활에서 수반하는“세월”과의 정감적인 언어들이 그의 인생이나 운명 등을 메시지로 적시하고 있어서 그가 이 세월에서 발견하는 인생 즉 자신의 존재문제까지 담론하는 특성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올해도 새잎이 돋아나는 감천의 수양버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흠뻑 맞는 그 모습/ 일곱 고개에 다다르자/ 선히 눈에 들어오네(「왜 몰랐던가」 중에서)” 라는 어조와 같이 “일곱 고개”라는 시간성을 의식하면서 바람 부는 대로, 혹은 비 오는 대로 흔들리면서 흠뻑 젖어있는 자신의 형상에서 세월을 다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긴 세월을 이겨내고 먼 여행을 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한 모금을 위해 탄생하였다 이레 밖에 못산다는 매미도 하루만 산다는 하루살이도 있지만 한 번의 목축임에 내 인생 걸었다 혹여 두 번 쓰는 할머니도 있지만 그건 너무 욕심일 게다 번쩍이는 좌석은 언감생심 따뜻한 커피한잔에 홍조 번지는 모습에 난 일회용 컵이란 것도 잊어버린다 첫 키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휴지통으로 던져지는 운명이지만 커피 한잔에 목숨을 건 이 누가 있더냐 --「일회용 컵」 전문 최영환 시인은 “긴 세월”과 “먼 여행”을 통해서 “내 인생”을 걸고 지금까지 삶을 영위해온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들의 운명을 가용(可用) 기간이 끝나면 휴지통에 버려지는 모습과 유사한 비유는 어떤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어서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유용성(有用性)이 세월과 함께 종료되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형태의 시법을 ‘일회용 컵’에서 용도페기의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그는 작품 「아직 멀었습니다」 중에서도 “이제/ 기억도 가물거린다며/ 편지 내미는 구순의 할머니/ “백 오십은 아직 멀었습니다”라는 말에/ 저승꽃 사이에서 미소가 번졌다“는 요즘 100세 시대의 수명에 대한 순응을 수용하는 메시지가 세월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청소하다가 주운 새 연필 슬쩍 가진 적 있었고 시골 담벼락에 손닿은 감홍시를 따먹은 적 있었고 새벽 등굣길 빨간 신호등일 때 뛰어간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 월급봉투 명세서 고쳐본 적 있었고 술이 거나했을 때 전봇대 향해 실례한 적 있었고 길가는 예쁜 여인 곁눈질로 훔쳐본 적 있었다 살면서 잘못이 없이 허물이 없이 아리랑 고갯길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석양을 화려하게 물들이려는 꽃이면 다 용서가 되지 않겠는가 --「용서」 전문 여기에서는 살아가면서 화해해야 할 다양한 삶의 애환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명징(明澄)하게 적시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세월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등 과거의 삶을 회상하면서 존재를 인식하고 거기에서 생성한 다채로운 체험들이 사소한 과오에서 현현되지만 그는 결론적으로 “살면서/ 잘못이 없이/ 허물이 없이/ 아리랑 고갯길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라는 자인(自認)의 어조로 “석양을 화려하게 물들이려는 꽃이면/ 다 용서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자성(自省)으로 이 세상의 모든 허물과 “용서”라는 화해의 시법에서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의식의 정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최영환 시인의 뇌리에는 이처럼 많은 번민과 고뇌들을 용서하고 이제는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수 있다는 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말동무 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꼭/ 다리가 아파봐야/ 혼자가 되어봐야/ 정신을 잃고 헤매어 봐야만 아는가”(「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전문)‘라는 화합의 인생론을 들려주고 있어서 세월이 그에게 교시(敎示)하는 잠언(箴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편적 의식을 관류하는 ‘나’의 지향점 최영환 시인은 그의 의식의 흐름을 관류하는 일상적인 정서가 ‘나’를 중심축으로 하는 시적 사유의 결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이제서야 압니다」에서 “남은 길의 동행은/ 이심전심의 당신과 함께/ 불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기에/ 그리워하는 필름을 쌓을 수 있었기에/ 아름답고 행복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압니다”라는 어조와 같이 이제서야 안다는 인식으로 자신의 작금(昨今)의 입지(立地)를 통해서 생존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자아 인식의 형상이나 형태는 다양한 일상적 생활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써 그가 사유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상황이나 계획된 일의 진행 중 다채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심리적인 관념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구름에 가려진 봉우리는 도전할 만한 꿈 전력 질주의 얼굴엔 푸른 서기 어린다 가파르고 힘든 오르막길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도 오르고 또 오르고 아름다운 꽃내음의 유혹에도 몸 내어줄 여유 없다 단내 나며 올라선 팔부 능선 알밴 장딴지와 발바닥의 물집은 빛나는 훈장으로 남았다 골바람도 잠자고 액셀러레이터 힘이 부쳤지만 정상을 향하는 나는 아직 청춘이지 --「아직 청춘이지」 전문 그렇다. 그는 아직도 ‘도전할 만한 꿈’을 위해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삶의 행로에는 “가파르고 힘든 오르막길/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도/ 오르고 또 오르고/ 아름다운 꽃내음의 유혹에도/ 몸 내어줄 여유 없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삶에 대한 각오를 천명(闡明)하고 있어서 그가 잠시 망각했거나 태만했던 삶에 대한 고뇌와 난관을 이제사 인식하고 인내를 요구하는 심중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결론으로 “정상을 향하는/ 나는/ 아직 청춘이지”라는 인식으로 그의 명징(明澄) 존재의 지표를 정립하고 있어서 우리들 공감의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지난해 건강검진을 하고서/ 심장 동맥이 막혔으니/ 빨리 시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에/ 잠시 정신이 멍 하였다/ 조깅을 몇 키로 씩 해도 숨찬 일 없었는데,/ 믿기지 않아 사진도 찍어보고/ 버티다가 결국 뚫기로 하였다/ 연기가 안 빠져/ 눈물 흘리며 쇠죽 끓이던 생각을 해보면/ 오래되어 때가 많이 끼었을 수도관을/ 진작 뚫어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한결 시원하다 (「뚫어! 뚫어」 중에서)”라는 당면한 고통의 악몽에서도 전문가를 만나서 뚫었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자유로웠습니다 마음대로 쏘다니며 멋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들었습니다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행복이 영원한 줄 알았습니다 이후에는 불안한 날이 지속됩니다 집콕이 잦으며 갇혀 지내는 날이 많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더욱 겁이 납니다 반가운 만남인데도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마스크를 안 쓰고 나가면 벌금을 매긴다고 합니다 백신을 맞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전과 이후의 세상 이렇게 다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전문 최영환 시인의 인식은 바로 여기에서 절규하듯이 표출하는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어조에서는 지금 현재에는 알게 되었다는 전제로 요즘 우리들을 위협하고 있는 괴질(怪疾) 코로나에 대한 예방으로 백신을 맞은 후에 처하는 상황을 알게 되는 그의 현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유롭고, 마음대로 쏘다니며 친구를 반갑게 만나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또 그것이 영원한 줄로만 알았는데 마스크와 백신으로 예방한 이후의 세상은 “이렇게 다른 줄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전한하는 현실적 현상에서 그는 자아를 인식하면서 어려운 상황들을 잘 극복해야 하는 의식의 감도(感度)가 절실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티브이에선/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부추기고/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선 / 두 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엄명에도/ 코로나는 콧방귀도 안 뀌고/ 말복 까마득하니/ 등허리에 식은땀 송송하다(「언제쯤」 중에서)”는 그의 현실 감각은 바로 경각심의 메시지를 던지는 시의 사회성 혹은 시사성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나’를 인식하면서 부닥치게 되는 상황에서의 극복의지가 단호한 자아의 확인하는 시법이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3. 어머니와 가족들의 사모(思慕)의 정감 최영환 시인에게서 강렬하게 감응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존재의식에서 가장 중심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인 ‘어머니’를 필두(筆頭)로 해서 전 가족에 대한 사모의 정감이 광범위하게 그의 내면에서 재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적 화자에서 할머니를 비롯해서 아버지, 형수와 시동생, 누님, 손자, 외손녀와 조카 등 전 가족과의 실생활(real life)에서 감득(感得)하는 불망(不忘)의 정표(情表)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사모의 정감은 그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인 고향에서부터 나오지만 그곳엔 항상 어머니와 가족들이 그의 심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과의 접맥하는 체험은 그가 살아오면서 존재의 정념에서 재생하는 인생의 진실임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이따금씩/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쏟아 내는가 보다/ 숭숭 뚫린 대나무 숲/ 다 품어주기가 힘 부치는지/ 감추어진 이야기 마을로 내려온다(「대나무숲 이야기」 중에서)”는 추억의 고향에서 신화처럼 전해지는 ’감추어진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지만 특히 ’어머니‘는 영원불멸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가슴에는 따뜻한 난로가 있습니다 눈동자에는 청아한 보석이 있습니다 당신의 자애 넘치는 미소는 고단한 삶도 녹여 줍니다 불사의한 힘은 희망의 빛이 됩니다 당신의 기원이 날개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비로운 미소로 지켜봐주시는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전문 최영환 시인은 그의 곁에서 ‘자애 넘치는 미소’와 자애로 그를 지켜주시는 어머니는 ‘고단 삶도 녹여’ 주던 진정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나 상징은 나의 생명을 탄생시킨 모태(母胎)에서 생존의 의미를 부여한 신성한 존재로 남아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사모곡(思母曲)에 흡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불사의한 힘은/ 희망의 빛이’ 되고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애틋한 ‘기원이 날개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의 진정한 사모의 의식은 그의 작품에서 진실로 발현되고 있어서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희미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누군지 알 수 없다/ 혹 선명한 얼굴이 보일까/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빡빡 문질러 보지만/뽀드득 소리만 낼 뿐이다//멍하니/ 보이지 않는 하늘을 그려보는 사이/ 촉촉해진 눈시울/ 어머니가 살짝 다녀가셨다(「흐린 날에 창을 닦는다」 중에서)”는 어조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별식을 준비했다하여 일어나 보니 지난밤 남았던 식은 밥 한 덩이에 시큼털털한 김치와 콩나물 어우러져 달콤한 맛을 내는 고구마 갱시기였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맛인지 가난하던 시절 새벽일 나갈 때 마다 후루룩 마셔 허기 채워주던 어머니 배고픈 시절을 질리게 하던 갱시기 멸치대가리 하나라도 건질 때면 왕건이 찾았다고 기쁨에 젖기도 하였다 오늘 큰 대접엔 얼굴도 안비치고 그때 못 보던 버섯 당근도 들어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건강식이 있을까 --「엄마표 보양식」 중에서 보라. 최영환 시인은 그가 겨울 불청객 콧물 감기에 앓아 누웠을 때 어머니가 지어주신 ;보양식‘에 대한 감응이다. 우리들이 흔하게 대할 수 있었던 과거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현현되고 있어서 당시 삶의 모습이 재현하는 스토리의 절정이다. 그는 ‘가난하던 시절’의 애환이 송두리째 표출되고 있어서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는 ‘식은 밥 한 덩이’와 ‘김치와 콩나물 어우러진’ 달콤한 ‘고구마 갱시기’가 오늘은 ‘엄마의 보양식’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그의 시에서 는 진행 중이다. 최영환 시인은 “어머니를 따라나선 시골장/ 커다랗게 웃는 얼굴이 그려진/ 수소 풍선에 반해/ 몇 번이나 치맛자락을 당겨/ 겨우 손에 넣었다(「수소 풍성」 중에서)”는 정경에서도 어머니와의 정감은 더욱 그의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생존의 이유에서도 그의 인생적 가치관 형성에서 지대한 원류(源流)가 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사랑, 이외에도 다음과 갗이 가족들에 대한 애정으로 넘처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끝물 고추 무말랭이 볕 쪼이러 나올 때/ 처마 끝에 달려있는 곶감 분 살아나고/ 지 팡이 짚은 할머니 문지방을 나선다(「햇살」 중에서) -(아버지)늘/ 들어주고/ 지켜봐주던/ 하늘을 향하던 아버지도 그랬다(「산이 내려앉았다」 중에 서) -(손녀)코로나로 일 년 만에 찾아온/ 유치원 다니는 손녀/ 손에는 예쁜 카드 쥐어 있었다(「석 줄의 편지」 중에서) -(외손자)제삿밥을 먹으려는데/ 딩동 하며 카톡에 온 선물/ 방금 태어났다는 외손자 사진이었 다/ 떠들썩한 덕담 속에/ 음복주는 축하주로 바뀌었다(「한가위 선물」 중에서) -(시동생)형수의 뒷바라지로/ 꿈을 향해 달려왔던 시동생/ 어느새/ 붉은 석양을 향해/ 무거 운 발걸음 옮기고 있다(「형수의 뒷바라지」 중에서) 4. 계절의 순환에 따른 이미지의 변화 최영환 시인은 자연과 계절의 순환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생태의 변화를 통해서 창출하는 이미지가 다채롭다. 그는 그 계절의 섭리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자연현상에서 교감하는 그의 시적 상상력과 거기에 생성하는 순정적인 서정이 발현되고 있다. 그는 서정적인 친자연관에서 만유(萬有)의 현상에서 감득하는 시적인 주제는 그의 정서에서 예외일 수 없는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어서 그의 인생적인 지향점은 언제나 순수하고 정갈한 이미지를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친 자연의 소재와 거기에서 창조되는 주제는 우리 시정신의 요체인 휴머니즘에 입각한 진선미(眞善美)의 범주에서도 아름다움에 기초한 시법이 많이 응용하고 있는데 주로 사계절과 동반하는 미적인 사물에서 취택하여 우리 인간들과의 정감적 정서로 현현되는 경우를 많이 대하게 된다. 늦봄의 기운에 핑크 빛으로 꽃불 붙은 황매산 형형색색의 등산복과 어우러졌다 배고픈 시절 참꽃을 따 먹느라 산을 헤매다가 주홍 글씨 자국으로 보라색 입술을 남겼고 너는 먹을 수 없는 개꽃이 되었다 겨울엔 불쏘시개가 되어 몸뚱아리가 잘리고 천시받던 나날들 속이 다타 텅 비었겠지 꽃잎이 저리 붉게 물들자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철쭉 축제 축하한다 철쭉아 이제야 네 이름을 불러준다 너는 폰 속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네 이름을 불러주마」 전문 최영환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네 이름을 불러주마」에서 그는 이러한 계절의 이미지는 우선 늦봄 황매산 등정의 정경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배고픈 시절’ 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참꽃을 따먹으면서 참꽃과 개꽃에 대한 대칭적 현상을 토로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사유는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정감적인 주제와도 별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개 한다. 그는“‘꽃잎이 저리 붉게 물들자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철쭉축제에서 “이제야 네 이름을 불러준다”는 어조로 자연의 생존과 인간의 애환이 ‘늦봄’과 ‘겨울’의 계절적인 이미지를 상호보완적으로 현현하고 있어서 그의 깊은 자연관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사계절에 대한 그의 사유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봄) 회색빛 들판이 연두색 자락을 깔면/ 봄기운 감도는 밭이랑/ 농부의 발길 재촉하고// 북 풍만 맞이하던 나뭇가지/ 새벽 안갯속 햇살 받아/ 노랑 빨강 분홍빛으로 치장을 한다 (「그가 찾아오면」 중에서) -(여름) 쏴아, 청년의 기세로 쏟아지는 소나기/ 두두둑 두두둑 처마 끝/ 목관악기 두드릴 때 면/ 심술부린 먹구름 폭풍우로 돌변했다(「여름 교향곡」 중에서) -(가을) 알록달록 자랑하던 단풍잎/ 어젯밤 내린 비에/ 가로수 아래쪽 몇 개만 남긴 채/ 다 떨어졌다/ 찬바람 불어도 쓸려가지 못하고/ 밟혀지는 모습 애처롭다(「비에 젖은 낙엽」 중에서) -(겨울) 혹여, 감기 들새라/ 엄마는 아기 포대위에 덮개 하나 더 씌어주고/ 코트 깃 세우고/ 종종 걸음으로 퇴근하는 아버지 사랑에/ 호빵 김이 방안 가득 피어 난다(「겨울채비」 중에서) 이 밖에도 작품 「새봄의 노크」 「철늦은 봄눈」 「처서를 보내며」 「입추」 「백로」 「가을빛 내리기 전에」 등에서 계절의 향훈이 담뿍 풍기는 그의 내면에 잠재한 정서가 시적 진실로 적시되고 있는 것이다. 팔월 염천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너는 오롯이 움츠린 몸을 일으키고 힘주어 나팔을 펼쳤다 들어주는 이 없어도 네 나팔에는 소리없는 연주가 끊이지 않고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그늘진 네 얼굴에 환한 빛을 보내 주고 아무도 말 걸어 주는 이 없어도 기쁨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풋사랑에 지나지 않지만 누가 몰라줘도 아무도 가지 않는 왼쪽 길을 선택하여 가시덤불도 오르고 담장에도 올라 잎으로 사랑의 하트를 표현하는 열정 넌 오늘도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다 --「나팔꽃 연서」 전문 다음은 계절 중에서도 활기 넘치는 사계절에 대한 서정에서 꽃에 대한 그의 착목(着目)은 예사롭지가 않다. 그는 나팔꽃뿐만 아니라, 감꽃, 하얀 장미, 금계화, 아카시아, 억새풀 등 많은 화훼류가 등장하여 그의 서정적 이미지를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꽃들이 간직한 이미지는 다채롭게 나타난다. 이는 그 꽃들이 내미는 꽃말이나 꽃전설 등이 상당한 시적 발성법을 변화시키고 있음에 기인한다. 꽃은 무조건 아름답다가 아니라 그 미감에서 탐색하는 인간애가 바로 작품의 주제호 승화할 때 진정한 시의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나팔꽃도 “들어주는 이 없어도/ 네 나팔에는 소리없는 연주가 끊이지 않고/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언제나“기쁨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주면서 “넌 오늘도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다”는 그의 의식은 아름다움과 사랑이 접맥하는 우리들의 희원(希願)이며 기원일 것이다. 이제 최영환 시집 『네 이름을 불러주마』 읽기를 마무리한다. 최영환시인은 서정시인이다. 그는 영국의 비평가 리츠저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적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적인 기교(technic)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시적인 소재나 주제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주변상황에서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 시집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동행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고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유명한 「시론(詩論)」도 경청(敬聽)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 좋은 시 많이 창작하기를 기원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