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사를 했다.
필요한 가구도 새로 사서 넣었다.
이사는 주선미 누나를 통해서 남편이라는 김종칠을 불러 이사하는 일을 통째로 위임했다. 수더분하고 묵직하게 생긴 작자라 말없이 전문가답게 깔끔하게 했고 주선미 누나의 입김으로 가격은 싸게 했다. 이사를 간 집과 이사를 온 집의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쳐주었다. 김종칠은 자기 일에 아주 책임감이 있고 열성인 사람이었다. 최소한 페르세우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사를 하는 날은 일요일이어서 안드로메다가 일하기 편한 옷을 입고 와서 어머니를 도와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마무리 청소까지 했다.
큰아버지는 이사한 집이 매우 마음에 드는지, 불편하시거나 갑갑하지 않으신지 아침에 페르세우스가 출근하는 따라 나오시지 않는다.
큰아버지의 방에는 한쪽 면에 옷이 걸려 있다. 굳이 옷장에 넣지 않고 벽에 걸어둔 옷인데 육군상사의 계급장이 달린 전투복이다. 그 전투복의 명찰 밑에는 훈장이 매달려 있다. 큰아버지는 그 군복을 이따금, 그윽한 눈으로 보신다.
그걸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큰아버지의 방은 넓고 방에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어서 불편함은 없는 모양이다. 방에도 텔레비전을 넣어 어머니가 계시는 거실의 텔레비전은 잘 보시지 않고, 무엇보다 큰아버지의 방에 단독으로 딸린 테라스에 놓인 안마의자를 즐겨 사용하시는 것이다. 어머니가 선물로 사드린 것인데, 세상에 이런 효부가 없다고 하시며 안마의자를 며느리에 비유했다.
“세상에 이런 효부가 없어 몸 구석구석을 나른하게 만져주는 게 영락없이 손이 매운 효부야!”
안마를 받으시면 49년간 묵은 피로가 풀려 나른하고 혼곤해진다고 하시며 안마의자에서 잠깐씩 주무시기도 한다. 그 말씀을 하실 적에는 유독 ‘49년’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간다.
49년!
페르세우스는 그 숫자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49년!
김재환 중개사는 봉곡동 소형아파트를 전세가 아닌 사글세로 놓아서 그 돈을 어머니 용돈으로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큰아버지께서 그러라고 한 모양이다. 중개사가 어지간히 신경을 썼는지 세는 금세 나갔다. 어느 신혼부부가 계약했는데 아직 이사는 들어가지 않고 계약금만 어머니의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 집은 어머니의 명의로 되어있으니 김재환 중개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이사를 하자 달라진 점이라면 안드로메다가 자주 온다는 점이다.
페르세우스가 있건 없건,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와서 같이 장을 보러 다니고 밥을 같이 먹고 저녁 늦게까지 놀다 가곤 했다. 어머니는 페르세우스의 일에 평소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데 안드로메다가 온 날이면 페르세우스에게 전화해서 언제 들어오느냐고 묻는 것이다.
“얘야! 하루만 일하면 쌀 한 가마니를 넘게 살 수가 있다니?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다니?”
큰아버지는 물가를 알고 돌아다니시며 시장 구경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정가가 정해진 대형 슈퍼가 아닌, 흥정과 덤이 있는 재래시장을 즐겨 다니시는데, 가끔 시내에서 친구분의 아들이 한다는 정육점에서 연하고 질이 좋은 쇠고기를 큰 덩어리로 한 뭉치씩 손수 사 오신다.
“이 귀한 쇠고기가 한나절 품삯도 되지 않는다는구나.”
그런 게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날이면 안드로메다를 불러 고기를 반으로 잘라 손수 싸주시며, 집에 부모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신다. 큰아버지도 안드로메다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 하는 짓이 참하다고 하셨고, 군대를 확실히 아는 처녀라 뭔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가 출근해서 청소하고 난 다음이면 느긋하게 사무실에 나오셔서 차를 한잔 마시고 카메라를 메고 출사를 나가시거나 사무실에서 페르세우스의 잔심부름을 하시는 정도다. 페르세우스는 가능하면 큰아버지께서 하실만한 일은 미루어 두었다가 큰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조수에게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게 페르세우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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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던진 원반에 맞아 외할아버지가 죽은 것에 대해서 페르세우스는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받았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다스리던 아르고스의 왕위를 도저히 물려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고민하던 페르세우스는 이웃 나라인 티린스(Tyrins)로 가서 그곳 왕 메가펜테스(Megapenthes)와 담판을 지어 두 왕국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아르고스가 땅이 넓고 비옥하기에 합의는 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메가펜테스 왕은 아르고스의 왕이 되고 페르세우스는 티린스의 왕이 되어 이웃 나라로 사이좋게 지냈다. 티린스에서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와의 사이에 고르고포네라는 딸 하나와 알카이오스, 메스토르, 엘렉트리온, 스테넬로스, 헬레이오스 등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들 중 몇은 헤라클레스 등 유명한 후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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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가 아버지의 사건에 몰입하고 들추는 것을 상당히 못 마땅해하셨다. 큰아버지는 왜 페르세우스가 공부를 더 하지 않고 사설탐정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계시는 눈치다.
페르세우스의 사무실 책상에는 당시의 당 대표와 선거에 깊숙하게 개입한 여권 인사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근황을 기록하는 A4용지가 붙어 있다. 물론 도경의 최경욱 이름도 적혀있었다. 그걸 페르세우스는 처단해야 할 악령, 메두사의 목이라고 여기고 있다.
의뢰인에게 수임받은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그 인물들의 개인적으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페르세우스는 아직 악령 메두사의 목을 베지 못한 것이다. 당 대표였던 장진수는 낙선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그 가족들이 뭘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외의 인물들도 추적 중이다.
“민수야! 너희 아버진 명을 그렇게 타고 난 것이야.”
가끔 하시는 큰아버지의 말씀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어. 명은 하늘이 내리는 거야. 11층에서 떨어져도 살 사람은 산다.”
역시 큰아버지의 말씀이다.
큰아버지는 월남전에서 죽는 사람을 하도 많이 보았기에 죽음 앞에는 덤덤하다고 했으며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있는 법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면서 그만하자고 했다. 정 억울하면 신문에 광고를 내라고 했다.
신문 광고?
아버지는 이렇게 죽었다, 억울하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놈들은, 삼족이 멸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런 공고를 내고 아버지의 결백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억울한 마음을 지우라고 하셨다.
“민수야! 마음 다친다. 세상에는 그보다 억울한 일이 늘려있다. 그게 인간이라는 욕망 덩어리가 사는 세상이니라.”
큰아버지는 광고에 낼 문구를 직접 만들기도 하셨다. 페르세우스의 사무실에 나오시면 프린터에 있는 A4용지를 빼서 볼펜으로 문구를 적어가며 생각하시다가 또 지우고 고치고, 그렇게 하여 거의 이틀에 걸쳐 한 장의 호소문을 만들었다. 큰아버지는 달필이었지만 문장에서 띄우는 법이나 철자법이나 틀린 곳이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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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시민께 드리는 호소문!
전 국회의원 설강진은 시민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21대 선거에 유력한 야당 후보이고 여당이 추진하는 개헌에 반대하는 중진 거물이라는 이유입니다. 여당 수뇌들의 모략으로 명예롭지 못한 혐의를 갖가지 수모를 당하고, 더러워진 명예에 비통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혐의를 수사하니 청렴하고 결백했으며 선거에 참패할 여당의 중상모략임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갖가지 언론들이 정확하지 않은 추론으로 설강진의원의 명예를 더럽혔지만 이제 그 언론도 진실을 인지하고 돌아섰습니다. 아직도 설강진의원은 시민들께 좋지 못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추문은 사실이 아니며 미개한 당의 중상모략이 청렴결백하고 선진화된 국정을 계획하던 인사를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우리 시민에 대한 치욕이자 멸시입니다. 시민 여러분! 설강진의원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건전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으로 여러분의 가슴에 피어날 것입니다. 설강진의원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해평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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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호소문이 완성되었다.
큰아버지께서 이틀에 걸쳐 초안을 잡고 구사한 것은 페르세우스가 철자법을 고치고 퇴고한 것이다. 짧지만 할 말은 다 들어있는 호소문이었다.
“네 아버지는 이 혼란한 시국을 제도하기 위해서 잠시 온 거야.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갔어.”
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페르세우스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페르세우스는 아버지를 제우스라 믿는다.
혼란한 정국을 제도하기 위해 잠시 황금 소나기로 변하여 청동으로 된 탑으로 들어가 다나에를 통해 페르세우스를 만들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정말 이 호소문을 신문에 광고하실 건가요?”
페르세우스의 질문에 큰아버지는 그렇게 하고 잊어버리자고 했다. 그래야 아버지가 눈을 감는다는 게 큰아버지의 주장이다.
아버지가 편하게 눈을 감는다?
과연 그게 옳은지 모르겠다.
페르세우스는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해평시에 어떤 언론매체가 있나 생각했다.
가장 널리 퍼지는 게 사흘에 한 번씩 나오는 벼룩시장과 교차로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포털사이트 해평넷이 있다. 신문은 주간으로 나오는 중부신문과 해평 문화신문이 있다.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의 의견을 싹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여 큰아버지께서 볼펜으로 심혈을 기울여 적은 것을 노트북으로 타이프를 하고 프린트를 두 장 해서 나누어 읽어보았다.
더 넣을 말이나 뺄 말이 없는 것인가?
다시 읽어보니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에는 충분하다.
큰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벼룩시장은 후배 녀석에게 전화해서 일면 아랫단에 광고료를 물어보았다. 후배 녀석은 무슨 광고인지, 광고의 성격부터 물었다. 사진을 보낼 터이니 보고 전화하라고 호소문을 사진으로 찍어서 메시지로 날렸다.
잠시 후 바로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 호소문이라면 세 번 정도 나가면 충분하겠는데 제목은 붉은색으로 하고 내용은 검은색으로 할 것이며, 세 번을 반복하는 것이 좋겠다며 광고비는 싸게 해서 얼마라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계좌번호를 묻고는 폰뱅킹으로 바로 송금했다.
송금하고 바로 교차로에 전화했다. 같은 방법으로 물으니 광고료가 조금 비싸게 불렀다. 벼룩시장에는 얼마라고 하면서 경쟁업체를 들먹였더니 기꺼이 그 가격에 해주겠다고 해서 메시지를 날리고 바로 송금 완료.
중부신문과 해평 문화신문은 주간이다. 전화했더니 오랜만에 들어오는 광고문의인지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네 번, 한 달간 나오는 광고라고 했더니 파격적인 가격에 실어주겠노라 했다. 두 신문사에도 사진을 보낸 후 송금.
그다음은 해평넷이 문제다,
쓰나미에게 전화했더니 메인화면에 싣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비싸더라도 배너로 실으면 되지 않겠느냐 했더니 그건 길어서 불가능하고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 고정으로 박아넣겠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페르세우스는 하지 못했다. 그 검색어를 클릭하면 바로 호소문이 뜰 것이다. 유료로 하고 싶다고 했더니 쓰나미 녀석은 다음에 술이나 사라면 일주일간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녀석은 배너광고로 나가는 사설탐정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다.
효과? 당연히 있지.
페르세우스는 덕분에 너무 바빠서 술을 살 겨를이 없다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인터넷을 켜고 큰아버지께 실시간 검색어가 무엇인지 해평넷을 띄워놓고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해평넷을 들락거리는 인원이 얼마인지도 설명을 해드렸다.
큰아버지는 신기하신 모양이다.
이렇게 발전한 광고 사이트가 있다니 게 그저 신기한 모양이었다.
“큰아버지 이런 것도 있어요.”
큰아버지의 시선을 묶어놓고 페르세우스는 메인화면에 있는 사설탐정 설민수의 배너광고를 클릭했더니 사무실의 약도와 상세설명이 떴다.
“이게 네 광고냐? 이걸 보고 사람들이 전화하는 거야?”
그렇다고 했다.
그때, 페르세우스의 핸드폰이 울렸다. 의뢰인의 전화였다.
사십 대로 보이는 남자인데 내용은 외사촌 동생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의뢰인의 홀어머니는 친정을 좋아하시는 까닭에 시골에 있는 외사촌이 모시고 있는데 병원에 모시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사고 위치와 사고유형을 아무리 추적해도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기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같은 소형 화물차를 탔는데 농로의 전신주를 들이박고 어머니는 중태고 운전을 했던 외사촌은 멀쩡하단다. 알고 보니 외사촌은 어머니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넣고 있다고 했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건이라면 탐정으로서 개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건이다.
한참 상담 통화를 하면서 돌아보니, 이런? 조수 아니, 큰아버지가 페르세우스의 책상 앞에 붙은 메두사 악령들의 명단, 주소와 연락처, 근황이 적힌 A4용지를 떼서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