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 아산 탄생 100년] 낡은 구두 세 켤레로 남은 사나이

[viva]

[스페셜 | 아산 탄생 100년] 

낡은 구두 세 켤레로 남은 사나이

다시 쓰는 정주영

고정일 소설가               

▲ 정주영기념관에 전시된 정주영 구두. photo 현대차

울산 현대중공업의 ‘정주영 기념관’에는 낡아빠진 구두 세 켤레가 전시되어 있다. 발 크기가 29.5㎝이다. 유별나게 크다는 점만으로도 지난날의 임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정주영은 발이 커서 기성품 구두가 맞지 않아 따로 주문 제작해 신어야 했다. 가죽 껍질이 허옇게 벗겨지고 앞부분은 닳아 구멍이 뚫릴 것만 같다. 바닥과 뒷굽을 갈아가며 신는 동안 저절로 낡아 버렸을 것이다. 이 신발들은 적어도 10년씩은 신은 것들이다. 그것 말고도 해질 대로 해진 골프장갑도 전시되어 있다. 정주영이 생전에 물건을 아껴 쓴 흔적이다. 골프를 매우 즐겼으면서도 변변한 골프웨어 한 벌 없이 그저 평상시에 입는 양복바지나 작업복을 입고 골프를 쳤다.
   
   세계적인 재벌이었으면서도 놀라울 만큼 검소했다. 그의 집도 건설업계 최고 명성과 전경련 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함이 배어 있었다. 집 자체가 건설현장에서 쓰다가 남은 자투리 자재로 지은 것이었다. 블록으로 일단 속벽을 쌓은 다음 나중에 다시 남는 돌들을 모아 벽에 붙여서, 집이 부분 부분에 따라 석재 색깔이 다르기도 했다. 집이 초라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는 웃으면서 흘려들었다. “내가 집을 새로 짓는다면 아방궁을 짓는다고 다들 떠들어댈 것 아닌가.” 집안의 가구는 소박했고, 응접실에도 변변한 동양화나 장식조차 없었다. 대문의 페인트칠이 벗겨져도 그저 비슷한 색깔의 테이프로 손을 보았다. 벽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신문 사장을 지낸 김종규가 청운동 자택에 초대받았는데, 집안을 둘러보고는 이런 농담을 건넸다.
   
   “대장장이 집 부엌에 쓸 만한 식칼이 없다더니, 회장님 집이 바로 그런 모양이군요.”
   
   그러자 정주영은 이렇게 맞받고는 껄껄 웃었다.
   
   “쓸 만한 것은 팔아서 돈으로 바꿔야지요.”
   
   정주영은 기본적으로 사치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다. 전경련 회장 시절 어느 대학교 강연에서 “재벌그룹 회장님으로서 구두쇠라 떠도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본인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하며 솔직하게 인정했다.
   
   1985년 7월, 정주영은 미국에서 온 경제 관련 인사들과 신라호텔에서 만나 회의를 가졌다. 그가 회의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중간층에서 셔츠와 반바지, 슬리퍼를 대충 걸친 햇볕에 검게 그을린 중년 남자가 올라탔다. 그는 정주영을 보더니 깜짝 놀라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꾸벅 인사했다. 정주영은 자기 얼굴을 아는 호텔 투숙객인가보다 싶어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현대건설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의 김정석 소장입니다. 본사에서 현장소장들 회의가 있어 귀국했습니다.”
   
   그가 현대 직원인 것을 안 순간 정주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에 냉기가 돌아 수행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회사에 돌아온 정주영은 현대건설 사장과 담당 임원들을 불러모아 불호령을 내렸다.
   
   “가족들을 떠나 먼 나라에서 고생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낭비를 해서야 되겠는가! 고작 회사 식구들끼리 회의하는 건데 왜 그런 비싼 호텔에서 묵는가 말이야. 게다가 반바지 셔츠 차림에 슬리퍼 질질 끄는 꼴이라니. 무슨 휴양지 왔나! 남들이 현대 직원인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나!”
   
   이처럼 정주영은 절도의 기준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참으로 질박·소박·투박하고, 인내·끈기가 있으며,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술수나 임시방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바를 기다리는 청빈한 선비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
   
   1985년 KBS 사장으로 취임한 박현태는 큰 고민에 빠졌다. 광복 4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공영방송 KBS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실무자들을 불러 물어봐도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해 폭우 피해가 극심해 정부도 이에 대처하느라 기념행사 준비는커녕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한편 북한 방송은 이른바 민족적 정통성을 과시한다면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박현태는 ‘대형 특집 프로그램’ 작성을 지시하고 독려했다. 서둘러 계획이 만들어졌다. 한강 둔치와 마포대교·원효대교에 ‘불꽃놀이 폭포’를 내걸고, KBS 본사 상공과 63빌딩과 남산타워 꼭대기를 연결하는 ‘레이저빔 쇼’를 펼친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한국에서 해본 일이 없는 대규모 행사였다.
   
   
   뜻이 훌륭하다면 아낌없이…
   
   비행통제구역 한강 부근과 남산에 레이저빔을 쏠 수 있게 허가를 받고, 프랑스에서 인력과 장비를 급히 들여와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약 4억원이 드는 예산이었다. 여러모로 큰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는 밀어붙였다. 박현태는 정주영을 떠올렸다. 지금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은 정 회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이렇게 찾아뵌 것은, 2억원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광복 4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을 하려 합니다. 국내외 절차가 까다로워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제작비가 4억원 넘게 듭니다. 이 용도의 예산이 없어 부득불 협찬을 받아야 하지만, 여기저기 신세를 지는 것보다는 정 회장님께 2억원을 얻으려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정주영이 말했다.
   
   “내가 이런 일은 잘 안 하는데, 박 사장이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합시다.”
   
   박현태가 감사인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정주영이 “돈 가져가시오”라며 불러 세웠다. 뜻밖에도 지금 바로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박현태는 깜짝 놀라 사양했다.
   
   “당장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KBS에도 시재(時在)는 많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면 실무자끼리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논의하는 일이었지만, 이 모든 게 차 한 모금 마실 시간인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듯 정주영은 이익이 남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 뜻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거액의 돈도 망설임 없이 내놓는 통이 큰 사람이었다.
   
   1989년 1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이륙한 조선민항 소속 일류신 62M기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이 타고 있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방북 일정이었다. 남북 간 경제협력을 중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정주영은 6·25전쟁으로 국토가 분단된 이래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남한 기업인이었다.
   
   김일성의 극진한 환대를 받은 방북 일정 중에 정주영은 고향마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을 방문했다. 꿈에도 잊지 못했던 고향이었다. 이젠 얼굴조차 가물가물하던 친척들과 함께 잔치를 열었다. 잔치라고 해야 북엇국 안주를 곁들인 조촐한 술상뿐이었지만 정주영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벅차고 즐거웠다. 좌중에는 웃음과 대화가 넘쳐흐르고, 세상 어느 잔치보다도 풍성했다. 정주영은 마을사람들에게 미리 준비해간 손목시계와 스웨터, 양말 등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고향 방문을 마친 뒤 정주영 일행은 금강산 구경에 나섰다. 북한 당국이 헬리콥터를 내주어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외금강에서부터 비로봉과 세존봉, 관음봉, 신계천 계곡, 구룡폭포 등에 이르기까지 금강산 모습은 그대로였다, 눈부신 설경은 봉우리마다 천하의 절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헬리콥터는 삼일포 쪽으로 나아갔다. 예로부터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시중호 위를 지나면서는 푸르게 빛나는 동해바다가 저만치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끼고 길게 이어진 모래밭과 소나무 숲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이곳에 호텔을 짓고 경관만 제대로 꾸민다면 세계적 휴양 관광지가 되리라고 정주영은 확신했다.
   
   하지만 서너 달 뒤에 다시 찾겠노라 다짐했던 평양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여러 정치적 문제가 얽히는 바람에 무려 9년이 지난 뒤 소떼 방북 때에야 다시 평양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정주영은 1993년 소설가 박경리를 처음 만났다. 박경리와 친분이 있는 어느 교수와 강원도를 가는 길에 원주 박경리의 집에 들렀다. 박경리는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도 방문이지만, 당대의 대재벌이라는 신분이 무색하리만치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촌부 같은 모습에 더욱 놀랐다. 낯가림 심한 아이처럼 섬세하고 희미한 표정의 흔들림에서 마치 그에게는 소년과 노인이 공존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간 박경리가 받아온 재벌에 대한 선입견은 금세 사라졌다.
   
   그 이듬해인 1994년 ‘토지’가 완간되었다. 주위에서 완간 기념회를 열자고 했고, 출판사 측에서도 선전 효과를 노려 찬성했다. 박경리는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주위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승낙했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몽준의 주선으로 현대그룹에서 비용을 댄 것이었다. 박경리로서는 아연할 일이었다. 원주 자택에서 열린 기념회에 정주영은 정몽준과 함께 기꺼이 참석했다. 박경리는 그 감사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만난 정주영에게서 박경리는 재벌 같지 않은 한없이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97년 정주영은 중국 방문을 추진했다. 그해 7월 29일 정주영을 비롯해 이한빈 전 부총리,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 서영훈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한완상·김종서 서울대 교수, 최효진 연세대 교수 등 70여명이 김포공항을 떠났다. 일행은 중국 쪽의 백두산 산록에 있는 호텔 ‘천지실록’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 뒤의 여흥 자리에서 정주영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그 노래를 듣는 모두의 가슴이 뭉클했다.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과감한 결단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써 세계적 재벌이 되었지만,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마음에 다들 안타까워했다.
   
   다음 날 정주영 일행은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고, 다시 압록강 건너편으로 멀리 조국 강산을 바라보았다.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서 나라 사랑의 충정이 뭉클 솟아올랐다.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정 회장님께서 이 순간을 함께 느끼려고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셨군요!”
   
   모두 솟아오른 감동을 억누를 수 없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대한민국 만세!”를 연거푸 세 번 외쳤다. 70명의 마음이 하나로 뭉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 1998년 ‘소떼 방북’ 당시의 정주영 명예회장. photo AP

   “얘야! 한 발짝 한 발짝 꾸준히 멈춤 없이 올라라!”
   
   울산대학교·현대고등학교를 세운 정주영은 교육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폭넓은 교육철학을 지닌 뛰어난 교육실천가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지역사회교육협의회’를 이끌며 재벌 또는 경제인이라는 그의 일반적 면모와는 전혀 다른, 앞선 세대의 삶의 지혜뿐 아니라 새 시대를 개척해 나갈 비전을 다음 세대에 제시해 주는 탁월한 교육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화여대 교수 백명희는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일을 하면서 정주영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어느 날 백명희의 주선으로 서울의 한 초등학교 어머니회 모임에서 정주영을 초청, 특강 겸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어머니와 아이들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자녀교육에서부터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질문과 구수하면서도 정곡을 짚는 시원스러운 정주영의 대답이 이어졌다. 분위기가 때로는 진지하다가도 금방 웃음바다가 되는 등 활기에 차 있었다.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진행자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물었다.
   
   “정주영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니?”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부자가 되셨어요?”
   
   아이의 질문답게 너무 단순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아마 부모에게서 정주영이 우리나라 으뜸가는 부자라는 말을 들은 듯했다. 과연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 강당의 모든 시선이 정주영에게로 쏟아졌다. 정주영은 인자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아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등산을 해본 적이 있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얘야!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을 보면서 올라가는 게 아니란다. 산꼭대기를 자꾸 바라보면서 ‘저 높은 데까지 어떻게 올라가나?’ 생각하면 등산하기가 더 힘들어지기만 하지. 한 발짝 한 발짝 꾸준히 멈춤 없이 열심히 올라가다 보면 결국 꼭대기에 다다르게 된단다. 나도 처음부터 큰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 그냥 열심히 일하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다는 신조로 살아오다 보니까 조금 부자가 된 것이지. 학생도 꼭대기만 쳐다보지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틀림없이 성공할 날이 올 거야.”
   
   이 자리에 임원이자 학부모로 참석한 화가 김유경은 그날 아이와 정주영의 대화가 오늘에도 감명 깊게 남아 있다고 한다.
   
   정주영은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일을 맡아 하며, 학교 교장들과의 모임에서는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습니다. 그러나 서당과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이 오늘날의 나를 이룩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교육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교장선생님들께서는 어려운 현실적 요건 속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다음 세대의 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머니들 모임에서는 부모의 잘못된 자녀교육을 지적했다.
   
   “그저 자녀들을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자녀의 뜻을 잘 받아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준다고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집안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부모자녀 간에, 또 형제자매 간에 애정도 두터워지고 서로 감동을 주면서 살기 때문에 자녀들이 잘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내가 너희 때문에 고생한다느니, 내가 무엇을 해주었다느니 생색을 내지 마십시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기보다도, 부모의 행동을 통해 가슴으로 배우게 됩니다.”
   
   정주영이 세운 아산재단에서는 해마다 효행상을 시상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윤리 도덕의 파괴가 극에 달해 있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내버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주먹질을 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가르칠 교(敎)는 효도와 채찍질을 뜻하는 글자로 되어 있다. 효도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한국에는 진정한 교육이 없는 셈이다. 아산재단의 효행상 시상은 이런 교육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표창을 함으로써 모범을 세워주고 그 모범이 널리 확산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넓게 퍼질수록 깊이 파고들수록 파급 효과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 교육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거듭된 시련이 정주영 키워
   
   만약 10대 시절 정주영이 가출에 성공해 노동판에서 계속 있었다면 어느 정도까지 지위가 올라갔을까. 만약 부기학원을 끝까지 다니고 부기장 적는 법을 배워 경리직원으로 일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에 의해 쌀가게가 닫히는 일이 없었으면, 그리고 빚을 내서 시작한 자동차 수리공장이 전시체제령에 의해 강제 통합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국 정주영을 키워낸 것은 거듭된 시련이었다. 그런 시련들이 없었다면 정주영은 현대그룹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어려움을 겪을지언정, 밀고 나가다 보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단련되어 갔다. 거듭된 도전과 시련, 또 도전이었다. 그리고 끝내는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다.
   
   현대그룹은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라는 광고를 자신 있게 내건 적이 있다. 현대는 사소한 소비 물건보다는 건설·자동차·조선 등 중화학공업과 기간산업 위주로 성장한 그룹이다. 오늘날 정주영이 사업가가 아닌 경제인으로 평가되는 까닭은, 그가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집념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를 생각하여 기업을 이끌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부흥에는 대부분 현대가 있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주영의 지혜·능력·아이디어·외교력은 물론 강인한 의지와 불굴의 정신, 저돌적 추진력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은 그에 비할 만한 인물을 한국 역사상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먼 뒷날 후손들은 박정희와 함께 정주영을 한강의 기적, 한국 근대화의 신화적 존재로서 기억하고 흠모할 것이다.